하이타니 겐지로가 그린 좋은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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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선생님이 좋아요 (양장)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양철북 / 2010년 4월
우리집엔 세 권의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가 있다. 오른쪽 2판과 가운데 3판은 구매했고, 2010년 4월 방금 나온 따끈한 양장본은 선물로 받았다. 양장본 뒤표지에 순오기의 한 줄 서평을 싣겠다는 전화에 '예' 했기 때문이다.^^
파리박사 데쓰조를 내세운 표지가 깔끔해 보인다. 양장본과 같이 온 편집자 명함과 감사의 메모까지 기념으로 찍었다. 고마움을 표시한 짧은 메모지만, 하이타니 선생님이 추구한 친절하고 상냥한 사람의 아름다운 모습일 듯하다.
뒤표지에 실린 다섯 명의 한 줄 서평은 이 책의 감동을 요약한 엑기스가 아닐까? 순오기의 한 줄은 "교사로 산다는 것, 한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 책은 하이타니 겐지로의 17년 초등교직 경험과 교육철학을 담은 작품이다. 1974년에 출간되어 일본 문학계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고, 이 작품으로 일본 아동문학의 대표 작가가 되었다. 1978년 국제 안데르센상 특별 우수작품으로 선정되었고, 30년 이상 세계의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작품이다.
하이타니 선생님은 2006년 11월 71세에 암으로 돌아가셨다. 왼쪽 사진은 2006년 8월, 양철북 문학기행으로 온 독자들에게 말씀을 들려주시던 생전의 모습이고, 오른쪽은 1973.11.11 하이타니 겐지로 선생님이 자신의 회갑날 노래하는 모습이고, 옆의 글씨는 술취해서 화장실에 남긴 낙서다.^^
2008년 7월 26일~29일까지 3박 4일, 하이타니 겐지로의 흔적을 찾는 문학기행을 다녀왔었다. 하이타니 선생은 책에 나오는 것처럼 근무하던 학교에서 500미터 떨어진 곳에 사셨다고 한다. 작품 속 히메마쓰초등학교는 터만 남아 공원으로 꾸몄는데, 차를 멈출 수 없는 곳이라 설명만 듣고 차 안에서 사진을 찍었다. 가까이에 있던 쓰레기 처리장은 매립 개발되어 깨끗해졌다고 한다. 근처 육교에 '서 시리게(시리게 서쪽지역)'라는 글씨가 보인다. 사진에 나온 분은 하이타니 선생님과 같이 근무했던 기시모토 선생님으로 여행 안내를 맡아 주셨다. 기시모토 선생님은 하이타니 선생님과 각별한 친구로 또 다른 작품인 '선생님은 내 부하가 되라'의 모델이다.
왼쪽 사진은 파리박사 데쓰조의 담임 고다니 선생의 모델인 츠보야 레이코 선생님이다. 하이타니 겐지로와 평생 친구로 하이타니 작품에 삽화를 그렸다. 가운데는 하이타니 겐지로의 여동생과 형님의 둘째 아들, 오른쪽은 형님의 큰아들 하이타니 마사유키로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 인세로 1983년 하이타니 선생이 직접 지은 '태양의 아이 유치원'원장이다.
이 책을 읽을 때마다 울컥 솟구치는 눈물은 감당이 안된다. 울보 고다니 선생이 울 때마다 덩달아 울었으니 수를 헤아리기도 어렵다. 특히 초보교사 고다니 선생님은, 곧 우리 큰딸의 모습일거라는 생각에 더 감정이입이 되었다. 히메마쓰 초등학교 1학년 담임인고다니 선생은 곱게 자란 화초처럼 여렸지만, 데쓰조를 비롯한 쓰레기 처리장 주변의 아이들과 아다치 선생의 영향으로 단단하고 심지 굳은 교사로 성장한다.
무참하게 개구리를 찢고 짓밟은 데쓰조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던 고다니 선생님은, 데쓰조의 할아버지에게 모든 상황을 듣고 자신이 무얼 잘못했는지 깨닫는다. 데쓰조는 산에 살면 곤충을 기르고 강가에 살면 물고기를 기르겠지만, 쓰레기가 모이는 곳에서 사니까 파리를 기를 수밖에 없다는 것. 고다니 선생님은 데쓰조를 이해하고 그 마음을 얻기 위해 조심스레 다가선다. 집으로 찾아가 목욕을 시키고 좋아하는 파리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도감도 사준다. 데쓰조는 아주 세밀한 파리 그림을 그리고, 선생님이 표본에 붙여준 파리 이름을 쓰면서 글자도 깨친다. 파리를 탐구하는 데쓰조는 햄 식품공장의 집파리 문제를 해결하여 일약 파리박사로 유명해진다. 문제아로 낙인 찍혔던 데쓰조는 고다니 선생님의 지도로 자기 안에 감춰진 보물을 찾았고, 고다니 선생님에 대한 사랑을 서툴게 표현해 뭉클한 감동을 자아낸다.
이 책엔 감동의 장면이 수없이 등장하지만, 아이들의 순수함보다 더한 감동은 없다. 장애아 미나코 때문에 수업 방해된다고 학부모들은 반대했지만, 고다니 선생님과 아이들은 협력하여 놀라운 결과를 얻었다. 아이들은 미나코를 돌보는 동안 책임감과 배려심 등 더불어 사는 세상을 배웠고, 부모들은 아이들의 변화된 모습에 자기들의 이기심을 반성하고 처리장 이전 문제에도 선생님과 같은 편이 된다.
이 책은 분명 고다니 선생님 중심으로 진행되지만, 고다니 선생님에게 결정적 영향을 끼친 아다치 선생님이야말로 진짜 주인공이다. 거칠 것없이 자유로운 아다치 선생님은 '짱'이다! 아이들을 편견없이 대하며 그네들 마음을 잘 알아주고, 더우기 그 아이 속에 잠들어 있는 '보물'을 볼 줄 아는 선생님이다. 아이들과 막힘없이 소통하는 자유로운 수업도 교사들에게 가르침을 준다. 아이들에겐 한없이 상냥하고 친절하지만, 소위 윗사람의 눈치나 보며 저항하지 않는 교사나, 아이들을 억압하는 동료교사는 가차없이 공격한다. 하지만 당당한 아다치 선생님에게도 아픈 상처가 있으니 어린시절 먹을 게 없어서 감자를 훔쳐야 했던 기억이다. 자신은 도둑질이 무서워 곧 그만뒀지만, 형은 여섯이나 되는 동생들을 먹이기 위해 도둑질을 멈출 수 없었다. 결국 자신은 형님의 목숨을 먹고 자랐다는 고백은 눈물을 쏟게 한다. 상처를 가진 사람만이 남의 아픔도 알고 상처를 치유하며 위로할 수 있다. 아다치 선생님은 교사로 산다는 건, 또는 한 인간으로 산다는 건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고다니 선생님이나 독자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