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선생님이 좋아요 카르페디엠 1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윤정주 그림 / 양철북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작년에 양철북 출판사가 개정판을 내면서 '하이타니 겐지로, 일본문학기행'을 이벤트로 내걸었다. 이미 책이 있음에도 문학기행에 코꿰어 개정판을 샀는데, 운 좋게도 알라딘에선 내가 당첨됐다. 덕분에 2008년 여름 3박 4일, 하이타니 겐지로의 흔적을 찾는 일본 여행을 다녀왔다. 물론 이 책의 배경지도 돌아보고, 이미 고인이 된 하이타니 선생님은 만날 수 없었지만 고다니 선생의 모델이라는 츠비야 레이코 선생님도 만났다. 알라딘 리뷰대회 마감시간에 마지막 리뷰로 등록하는 이유다.^^ 






하이타니 선생님은 2006년 11월 71세에 암으로 돌아가셨다. 왼쪽 사진은 2006년 8월 8일, 양철북 문학기행으로 온 사람들에게 말씀을 들려주시던 생전의 모습. 오른쪽 사진은 1973.11.11 하이타니 겐지로 선생님이 자신의 회갑날 노래부르는 모습이다. 옆의 낙서는 술취해서 화장실에 남긴 낙서. 사진에 찍힌 날짜는 가족들이 보관한 사진을 가져와서 내 디카로 찍은 날짜다.  



파리박사 데쓰조의 담임 고다니 선생의 모델인 츠보야 레이코 선생님, 하이타니 겐지로와는 평생을 친구로 지내며 하이타니 작품에 삽화를 그렸다. 가운데는 하이타니 겐지로의 여동생과 형님의 둘째 아들, 오른쪽은 형님의 큰아들로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 인세로 1983년 하이타니 선생이 직접 지은 '태양의 아이 유치원'원장이다.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는 우리 가족과 인연이 깊다. 2006년 처음 만나 가족 모두가 깊은 감명을 받았다. 2007년 5월 초등독서회 토론도서로 교장선생님과 함께 바람직한 교사에 대해 토론 했었고, 우리 큰딸은 이 책의 영향으로 교대에 진학했다. 막내는 6학년 스승의 날, 아침방송에서 좋은 선생님의 의미와 고마움을 새기는 독후감을 발표했었다. 우리는 책 한 권을 온 식구가 다 읽으니까  책값을 제대로 한다. 게다가 마을도서관이라 이웃들이 빌려다 보니까, 두 권이 있어도 아까울 건 없다.^^

이 책은 하이타니 겐지로의 17년 초등교직 경험과 교육철학을 담은 작품이다. 1974년에 출간되어 일본 문학계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으며, 선생님은 이 작품으로 일본 아동문학의 대표 작가가 되었다. 1978년 국제 안데르센상 특별 우수작품으로 선정되었고, 30년 이상 세계의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작품이다.   

네 번째 읽지만 여전히 울컥 솟구치는 눈물은 감당이 안됐다. 울보 고다니 선생이 울 때마다 같이 울었으니 수를 헤아리기도 어렵다. 특히 이번에는 초보교사 고다니 선생의 모습이 2년 뒤, 우리 큰딸의 모습일거라는 생각에 더 감정이입이 된 듯하다. 히메마쓰 초등학교 1학년 담임인 고다니 선생은 곱게 자란 화초처럼 여렸지만, 데쓰조를 비롯한 쓰레기 처리장 주변의 아이들과  아다치 선생의 영향으로 단단하고 심지 굳은 교사로 성장해 간다. 

하이타니 선생은 이 책에 나오는 것처럼 초등학교에 근무하실 때, 학교에서 500미터 떨어진 곳에 사셨다고 한다. 지금은 학교는 없고 터만 남아 공원으로 꾸몄는데, 차를 멈출 수 없는 곳이라 설명만 듣고 차 안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 가까운 곳에 있던 쓰레기 처리장은 매립 개발되어 깨끗해졌다고 한다. 근처 육교에 '서 시리게(시리게 서쪽지역)'라는 글씨가 보인다. 사진에 나온 분은 하이타니 선생님과 같이 근무했던 기시모토 선생님으로 여행 안내를 맡아 주셨다. 기시모토 선생님은 하이타니 선생님과 각별한 친구로 또 다른 작품인 '선생님은 내 부하가 되라'의 모델이라고 한다.



이 책은 분명 고다니 선생님 중심으로 풀어가지만, 고다니 선생님에게 결정적 영향을 끼친 아다치 선생님이야말로 진짜 주인공이다. 거칠 것없이 자유로운 아다치 선생님은 정말 '짱'이다! 아이들을 편견없이 대하며 그네들 마음을 잘 알아주고, 더우기 그 아이 속에 잠들어 있는 '보물'을 볼 줄 아는 선생님이다. 아이들과 막힘없이 소통하는 자유로운 수업도 교사들에게 가르침을 준다. 흉내만 내지 않는다면 누구든지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격려하고, 좋은 녀석과 나쁜 녀석으로 구분한 글쓰기 비법도 현장에서 적용해 볼 만한 좋은 교수법이다. 저학년들은 자기가 한 일 중심으로만 글을 쓰기 쉬운데, 아다치 선생님처럼 '좋은 녀석(본 것, 느낀 것, 생각한 것, 말한 것, 들은 것, 기타)과 나쁜 녀석(한 것)'을 가르쳐 주었더니 아이들도 글쓰기에 잘 써 먹는다.^^ 

아이들에겐 한없이 상냥하고 친절하지만, 소위 윗사람의 눈치나 보며 저항하지 않는 교사나, 아이들을 억압하는 동료교사는 가차없이 공격한다. 언제나 당당하게 정의의 편에 서기에 싫어하거나 적대하는 동료도 있다. 그러나 고다니를 비롯한 오다와 오리하시 선생님에겐 절대적 지지를 받는다. 이들 젊은 교사들은 아다치 선생님과 함께 아이들 문제를 풀어가는 동지가 된다. 모두가 숨죽일 때 물꼬를 트는 사람이고, 좋은 교사가 되고자 애쓰는 선생님들에겐 든든한 버팀목이다. 처리장 이전 문제로 아이들이 등교거부를 할 때도 단식투쟁으로 힘을 실어주며, 지역주민 모두의 문제로 해결을 촉구한다. 하지만 당당한 아다치 선생님에게도 아픈 상처가 있으니 어린시절 먹을 게 없어서 감자를 훔쳐야 했던 기억이다. 자신은 도둑질이 무서워서 네댓 번하고 그만뒀지만, 형은 여섯이나 되는 동생들을 먹이기 위해 도둑질을 그만 둘 수 없었다. 그래서 자신은 형님의 목숨을 먹고 자랐다는 고백은 눈물을 쏟게 만든다. 상처를 가진 사람만이 남의 아픔도 알고 상처를 치유하며 위로할 수 있다. 아다치 선생님은 교사로 산다는 건, 또는 한 인간으로 산다는 건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고다니 선생님이나 독자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고다니 선생님은 데쓰조의 할아버지에게 모든 상황을 듣고, 자신이 무얼 잘못했는지 깨닫는다. 데쓰조가 개구리를 잔인하게 죽였던 일이나 후미지를 공격한 일은 같은 사건 때문이었다. 데쓰조가 기르던 파리가 든 병을 후미지가 몰래 가져왔기 때문이다. 바쿠 할아버지 말씀처럼 데쓰조는 산으로 데려가면 곤충을 기르고 강으로 데려가면 물고기를 기르겠지만, 쓰레기가 모이는 곳에서 사니까 파리를 기를 수밖에 없다는 것. 고다니 선생님은 데쓰조를 이해하고 그 마음을 얻기 위해 조심스레 다가선다. 집으로 찾아가 목욕도 시켜주고 좋아하는 파리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도감도 사준다. 데쓰조는 아주 세밀한 파리 그림을 그리고, 선생님이 표본에 붙여준 파리 이름 글자를 익히면 자기가 쓴 이름표로 바꿔 붙인다. 데쓰조의 정확한 관찰은 햄 식품공장의 집파리 문제를 해결하여 일약 파리박사로 신문에 오른다. 장애아 미나코 때문에 수업을 방해받는다고 학부모들은 반대하지만 고다니 선생님과 반 아이들은 모두 협력하여 놀라운 일을 만들어 낸다. 아이들은 미나코를 돌보는 동안 책임감과 배려심 등 더불어 사는 세상을 배워 나간다. 결국 부모들도 아이의 변화된 모습을 보곤 자기들의 이기심을 반성하고, 처리장 이전 문제에서도 선생님과 같은 편이 되어 준다.  

아다치 선생님께 스스럼없이 말을 트고 안기는 아이들을 보며 살짝 질투나고 부러웠던 고다니 선생님은, 한결같은 사랑과 이해로 아이들과 데쓰조의 마음을 얻었다. 연구수업으로 상자 속에서 빨간 가재가 나왔을 때의 느낌을 쓴 데쓰조의 글은 읽어나가던 고다니 선생님을 돌아서 울게 했다.

   
 

나는가마니보앗따. 그리고나서상자속까지 가마니보앗따. 빨간놈나와따. 나는코가찡햇따. 사이다마신거갓따. 나는가슴찡햇따. 나는빨간놈조아고다니선생님조아.
(278쪽)

 
   

사람의 진심은 통한다. 가난한 쓰레기 처리장 주변의 아이들이라고 다르지 않다. 단지 어른들의 그릇된 편견이 아이들을 문제아로 만들고 그들 안에 숨겨진 빛나는 보물을 꺼낼 기회조차 빼앗는 것이다. 히메마쓰 초등학교 아이들의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서로 돕는 모습에서 선생님들도 배운다. 쓰레기 처리장 주변의 아이들이나 어른들은 서로 미워하지 않는다. 쓰레기 처리장 이전 문제로 의견이 다른 고지네 가족도 따뜻하게 감싸 안는다. 자기들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파업할 수도 있지만, 많은 이들에게 불편을 주는 파업은 하지 말자는 바쿠 할아버지의 말에 설득되는 성정 고운 사람들이다. 바쿠 할아버지가 말하는 조선인 김용생에 대한 이야기는 하이타니 겐지로가 갖는 한국관일거라 생각돼 더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에 대한 예의를 잃지 않는 것, 사람에 대한 친절하고 따뜻한 마음이 묻어나 눈물 찔끔거린 행복한 책읽기였다. 살면서 뭔가 배움을 주고 깨우침을 주는 사람은 모두 선생님이다. 우리도 살면서 누군가의 선생님이 될 수 있고, 좋은 선생님을 만날 수도 있다. 그러면 데쓰조처럼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라고 고백하고 싶을 거 같다. ^^

개정판 뒤표지에 마노아님의 서평이 실렸다는 걸 본인은 알고 있을까?

"이 책은, 참 투박했다. 그럼에도 행간에 놓여진 '진심'만은 진하게 읽혀진다. 신참내기 젊은 선생님의 고군분투기가 눈물겹고, 그 선생님이 알아가고 또 마음을 얻어가는 쓰레기 처리장 주변의 가난한 아이들의 당찬 모습이 눈에 밟힌다"

라고 나왔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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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2월 6일, 마노아님 생일 축하해요!
    from 엄마는 독서중 2009-12-06 01:48 
    12월 6일, 땡하면~ 마노아님 생일 축하 페이퍼 올리려고 했는데 헤헤~ 시간이 한참 지났군요.^^  생일 축하케익과 떡을 올렸으니 다들 오셔서 같이 드시며 축하해주세요.^^         마노아님이 쓴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 서평이 개정판에 실려서, 내가 리뷰를 쓰면서 올렸는데 아직 모르는 것 같아 생일 축하 페이퍼에 다시
  2. 교사로 산다는 것, 한 인간으로 산다는 건...
    from 엄마는 독서중 2010-04-10 10:33 
 
 
잎싹 2009-12-01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게 마지막 등록리뷰네요.
저도 포기할까 하다가 참여에 의의를 두고, 괜찮게 썼던 작품 몇개응모했어요.ㅎㅎ
저의 마지막 작품은 제 닉네임의 의미가 된 <마당을 나온 암탉>이랍니다.
마감시간 임박하여 다시 적었어요. 평소 적고 싶었던 글이라...

앗, 그런데 너도 하늘말나리야는 열심히 다시 적고 보니, 대상도서가 아닌 모양이더군요.ㅠㅠ 어쨌든 그동안 순오기님 수고많으셨어요.^^

순오기 2009-12-01 00:49   좋아요 0 | URL
하하~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보는 거죠.^^
너도 하늘말나리야는 양장본이 아니고 페이퍼백이 대상도서인데 상품넣기를 잘못하셨군요. 수정하면 될지도...

잎싹 2009-12-01 01:07   좋아요 0 | URL
자상하신 순오기님...
수정해도 안되길래 그냥 다시 썼어요.
덕분에 12월1일이 찍혔고요.ㅋㅋ

마지막 작품 기대할게요.~~

같은하늘 2009-12-02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번에 이거 읽으려고 빌려왔다가 못보고 반납했어요. ㅜㅜ
다시 빌려서 읽어야지...

순오기 2009-12-02 08:37   좋아요 0 | URL
이 책은 꼭 보셔요~ 우리집엔 구판, 개정판 다 있지요.^^

민들레처럼 2010-03-02 0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나쁜 어린이표' 마이리뷰에 댓글을 달아주신 분이셨는데요..제 글에 처음으로 댓글을 달아주신 분이라..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책을 사다가 발견하게 됐네요..리뷰를 읽으니까 정말 좋은 교사, 후회없는 인생을 살기 위해 고민하시는 선생님이실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교직 4년차가 되가는데...현실과 이상에서 많은 고민이 드는 시간이네요. ^^ 그래도 처음 교사가 되려는 마음 잊지 않고 살려고 합니다.

순오기 2010-03-09 01:09   좋아요 0 | URL
댓글 보고 답방을 했는데 답글은 늦었네요.
4년차,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고민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