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곳에서 온 이야기들 Dear 그림책
숀 탠 지음, 이지원 옮김 / 사계절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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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마노아님의 '숀탠전' 페이퍼를 봤어도 내게는 생소한 이름이라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 주 '먼 곳에서 온 이야기들'을 먼저 읽은 중.고딩 남매가 완전히 숀탠에게 반해 버렸다.

"와아~ 이 책 너무 좋아!"
"뭐가 좋은데?"
"내용도 좋고 그림도 좋아!"
"어떻게 좋은지 구체적으로 말해야지."
"음~몽환적인 분위기와 기가 막힌 상상도 좋고, 연필그림도 맘에 들어."
"처음 나온 물소이야기와 에릭도 매력적이고, 어디에도 없는 안쪽 정원 이야기는 환상 자체야!"
 
이렇게 열광하는데 엄마가 모르는 작가여서 진즉 만나게 하지 못했다는 미안함이 앞섰다. 도서구매나 도서관 대출은 전적으로 엄마 몫인데, 이제라도 만났으니 더 늦지 않았다는 것으로 작은 위로를 삼는다. 

호주 예술 위원회의 예술 지원 사업을 통해 호주 정부가 후원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제목처럼 낯선 이야기 열다섯 편을 우표 디자인으로 소개한 차례부터 호감이 간다. 이야기 자체도 새롭고 독특해 놀랐는데, 그림 표현법도 참신하다. 짧지만 강한 인상을 남기는 작품에 철학적이며 교훈적인 요소를 감추어 둔 센스도 좋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로 분류됐는데 청소년들과 같이 보면 좋을 책이다. 어린왕자가 어린이를 위한 책으로 마구 재생산 되어 본래의 의미가 퇴색한 것처럼, 이 책은 그런 수모를 겪지 않고 고고한 자태 그대로 독자들과 오래도록 만나면 좋겠다.

 
 
풀이 무성한 빈터의 물소에게 무언가를 물어보면 언제나 정확한 방향을 가르쳐 주었지만, 한 번도 말을 하진 않았다. 다급한 문제를 의논하고 싶어도 말을 하지 않아 더 이상 찾지 않았더니 떠나 버렸다. 유년의 환상과 추억으로 남은 물소는 우리의 기억 한자락에도 있을 법한 이야기다. 무엇이든 척척 아는게 신기해서 "도대체 어떻게 알았지?" 라는 궁금증을 가졌었다면... ^^

 
 
외국인 교환학생으로 왔던 에릭은 '문화적 차이'를 실감케 한 친구다. 에릭은 호기심을 보이던 자잘한 뚜껑이나 소품으로 찬장 속에 환상적인 선물을 남기고 떠났다. 상상이란 무궁무진한 것이지만 이런 깜찍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가의 상상력이 경이롭다. 장난감에 얽힌 이야기와 찢어진 종이 조각 글자로 완성된 멀리서 온 비, 수면 아래에서 흐르는 역방향의 물결과 자신의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끼치는 변화까지 이중적 의미를 내포한 역류도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할아버지의 결혼식 이야기'는 요식행위처럼 후딱 치뤄지는 요즘 결혼식과 비교해 결혼의 참된 의미를 생각케 한다. 결혼 서약을 하기 전 마을 사람들이 감추어 둔 물건을 모두 찾아야 반지를 끼고 결혼을 할 수 있다. 마치 퍼즐을 맞추듯 들려준 힌트를 갖고 찾아야 할 물건은 그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다. 물건을 찾아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불안하고 다급해져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그동안 맞잡았던 손을 놓고 서로 상대방 때문이라고 화를 내며 입에 담지 못할 말을 뱉어냈다. 해 떨어지기 전에 반지를 찾아 결혼서약을 하기엔 늦었다고 생각하며... '모든 연인들이 한 번은 다다르고야 마는 곳'이 바로 이곳이구나 생각하며, 끔찍한 침묵 속에 잠겼던 두 사람은 얼어 죽지 않으려고 예비타이어를 떼어낸다. 힘들게 타이어를 떼어낸 자리 안쪽 진흙투성이에서 뭔가 반짝였다. 마침내 완벽한 한 쌍의 반지를 찾아내 결혼식에 늦지 않게 도착했다. 결혼 후에 갈등과 위기를 겪으며 파경에 이를 요소를, 결혼서약 전 경험으로 깨닫게 하는 놀라운 의식이다. 부부가 행복하려면 어떤 것을 하거나 하지 말아야 하는지 깨우치는 선험자들의 지혜가 만들어 낸 멋진 의식이 정말 부러웠다. 결혼을 앞둔 자녀들에게 맡게 변용 적용해도 좋을 것 같다.^^

 

지붕과 천정 사이에 있는 비밀의 안쪽 정원은 발견한 가족만이 누릴 수 있다. 그 마을 어느 집이나 다 있지만 발견하지 못하면 영원히 알 수 없다. 이런 상상은 생각만으로도 즐거울 거 같다. 명화 속에나 등장할 법한 멋진 정원이 우리 집 천정에 있다면... 그 안쪽 정원에 빨래도 널고 고기도 구워먹는다니 부러움에 질투가 생겨도 책임질 수 없다.^^ 정부로부터 집집마다 대륙간 탄도 미사일을 지급받은 마을. 처음엔 닦고 윤을 내어 기름 칠하고 녹슨 곳을 벗겨 페인트를 칠했다. 하지만 미사일의 쓰임새는 곧 다양하게 변모했다. 크리스마스 전구를 달거나 개조하여 개집이나 우로주켓형 오두막을 만들고 꽃을 심기도 했다. 이런 유쾌한 상상은 안보를 내세우며 전쟁에 열 올리는 그네들을 조롱하는 환타지로 읽힌다.^^ 

 

길 한가운데나 집앞에서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받고 짓밟히거나 흐트러져도 다시 나타나는 나뭇가지 사람들. 왜 여기 있는지, 무얼 바라는지 다시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그들은 누구인가? 심오한 의미를 담고 있어 다시금 질문을 하게 된다. 순록이 나타나는 이름없는 축일, 맞아 죽은 개를 장사 지내기 전에 치르는 개들의 의식, 모험이 가져다 주는 흥분 등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낸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에 그 의미를 되새기며 읽고 또 읽게 되는 보석 같은 그림책이다. 진지한 철학적 성찰을 요구하는 어른을 위한 동화라는 말이 딱 맞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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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0-01-24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그림책은 그림책같지 않게 그림이 넘 좋네요^^

순오기 2010-01-24 22:57   좋아요 0 | URL
이 책 그림도 멋지지만 상당히 철학적인데 어른을 위한 동화라고 하네요.

꿈꾸는섬 2010-01-25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만보고도 급 관심이요.^^ 보관함으로 가져가요.^^

순오기 2010-01-25 11:59   좋아요 0 | URL
아직 정리도 다 안했어요.
어여 해야 되는데 서재마실만 다니고 있다지요.ㅋㅋ

L.SHIN 2010-01-25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에~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책이군요!

순오기 2010-01-25 15:31   좋아요 0 | URL
흐흐~ 외계인 엘신님과 잘 어울릴 이야기예요.^^

무스탕 2010-01-25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숀텐의 책은 빨간나무 한 권 읽었는데 참 느낌 묘한 동화책이더군요.
이런 책은 동화라는 분류가 그닥 맘에 안들어요. 아이들만 읽는 책이 아니라구요. 아이들도 읽을 책이지요.

순오기 2010-01-25 15:32   좋아요 0 | URL
내게 숀탠은 처음 만난 작가인데 탕님은 벌써 알고 책도 읽으셨군요.
어른을 위한 동화라고 되어 있네요.^^

같은하늘 2010-01-25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도서관에서 검색해보니 없어요. 아쉽다. ㅜㅜ

순오기 2010-01-25 21:03   좋아요 0 | URL
이거 따끈한 신간이에요. 도서관에 신청도서로 올리면 구입해주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