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안의 생각을 달리게 하자
너 정말 우리말 아니? 이어령의 춤추는 생각학교 4
이어령 지음, 김용연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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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학창시절 우리세대는 이어령 선생님의 에세이를 많이 읽었다.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등 줄줄이 시리즈로 나왔고, 친구들의 책꽂이에 한두 권은 꽂혀있는 필독 에세이였다. 이 분의 책을 읽거나 방송을 들으면 많은 이들이 우리 것을 비하하고 나쁘게 생각하는 것도 긍정적인 해석으로 자존감을 주었다고 기억된다.  

이어령 선생님은 해박한 지식에 말씀도 재밌게 하는 분이지만, 이 책도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춰 조곤조곤 풀어낸 '우리 말' 이야기라 흠뻑 빠져든다. '너 정말 우리말 아니?' 이 물음은 어린이 뿐 아니라, 영어만이 살길인 양 허우적대는 높은 양반들과 부모들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영어로 무엇을 말할 것인가? 제아무리 영어를 잘해도 우리 것을 모르면, 말할 내용이 빈약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이 책을 읽어보시라. 혹시 이 책을 못 보실 분들을 위해 책내용 위주로 장문의 리뷰를 쓴 변명이다.^^

우리는 스스로 한국말을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정말 잘 아느냐 재차 물으면 자신없어 스스르 꼬리를 내린다. 프랑스 사람들은 딸을 키워 시집보낼 때 살림 밑천이 아니라 아름다운 프랑스 말을 가르쳐 보냈다는데, 바리바리 싸서 보내는 우리와 얼마나 대조적인가? 왜 그네들은 딸들에게 아름다운 프랑스 말을 가르쳐 보냈을까?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아홉 마당으로 풀어낸 우리말 이야기와 창의성이 뛰어난 삽화는 책읽는 재미를 더한다.  

 
 
첫번 째 마당, 발없는 말을 타보자. 물건을 실어 나르는 말과, 생각을 실어 나르는 말은 닮은 점이 많다. 알타이어족에 속하는 우리말은 홀소리어울림(모음조화)이 또렷하고 어말과 어미 구분이 분명하다. 한 뿌리에서 갈라져 나왔지만 사람들이 살아가는 환경과 모습에 맞춰, 새로 만들어지거나 바뀌고 사라지기도 한다. 

두번 째 마당, 말은 생각이 사는 집이다. 듣기에 같은 말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우리 생각과 함께 새끼를 치기도 하고 변하고 늙어 죽기도 한다. 아름다운 우리말이 많이 사라지고 한자말이나 영어가 대신하기도 한다.  한자와 우리말, 영어와 우리말, 일본어와 우리말이 겹쳐서 쓰이기도 한다. 닭을 뜻하는 일본어 '도리'를 겹쳐서 쓴 '닭도리탕', 역전앞, 외가집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세 번째 마당, 말의 뿌리를 알면 우리 말이 보인다. 우리 말은 체계적이고 정돈되었다. 민족 전체가 하나의 나무이고 거기서 여러가지로 갈라진 것이 우리이고, 뿌리는 우리 조상들이다. 한가지, 마찬가지, 여러 가지에 쓰이는 '가지'와 동물의 새끼를 이르는 '아지'는 어미에서 갈라져 나온 '가지'라는 말과 같은 칼로 'ㄱ'이 떨어진 것이고, '아기'라는 말도 '아지'에서 나온 말이다. 

네 번째 마당, 소리가 살아 있는 우리말. 한국말은 소리로 감정이나 모양을 잘 나타낼 수 있다. 그래서 한국인은 머리로 생각하고 따지기보다는 소리나 감각 같은 느낌에 기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인정이 많고 감수성이 예민하다고 한다. 그래서 외국어에선 한가지로 표현하는 것이 우리 말엔 엄청나게 세분화되었구나.  

다섯 번째 마당, 토씨 하나가 세상을 바꾼다. 우리말과 서양말의 가장 큰 차이는 토씨에 있다고 한다. 우리말은 같은 말이라도 토씨 하나만 바꾸면 뜻이 완전히 달라진다. '아' 다르고 '어' 다른 우리말은 '나'를 붙이면 만사가 시들해지는 것도 '도'를 바꾸면 희망과 기쁨이 솟구치는 말이 된다.^^
    '잠이나 잘 자야지 ==> 잠도 잘 자야지'
   '여행이나 가야지 ==> 여행도 가야지'
   '공부나 해야지 ==> 공부도 해야지'
   '밥이나 먹자 ==> 밥도 먹자'
  

 

여섯 번째 마당, 널리 사람을 섬기는 말.한국말에는 우리는 모두 같은 '사람'이니까 어떤 경우에도 함부로 대접받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뿌리 깊이 배어 있다고 한다. 영어의 '헬프 미'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나'라는 존재를 잊지 않는다. 일본어 '다스케데 구레'는 그냥 '살려주세요'라는 말로 '누구'를 살리는 것인지가 빠졌단다. 하지만 우리말의 '사람 살려'는 살려야 할 존재가 '나'라는 개인이 아닌 일반적인 '사람'을 뜻하는 것으로 사람 모두를 소중히 생각하는 표현이다. 역시 홍익인간의 후예답다.^^ 

일곱 번째 마당, 자연과 시간의 순리를 담아. 우리말의 '철들었네'는 과일이나 채소가 철이 들어야 맛이 나는 것처럼, 사람도 시간이 흘러 배우고 익힌 것들이 자기 몸안으로 들어오고 비로소 철이 들어야 진정 사람이 되는 것이다.  

여덟 번째 마당,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말. 무엇을 따지다가 상대방을 공격할 때나 자기 주장을 고집할 때 흔히 쓰는 '어쨋든'이란 말은 대표적인 언어 폭력이란다. 인간에게 절대란 것은 없으니까 항상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지 말고, 남의 생각도 인정하는 뜻의 '좌우지간'이란 말로 바꿔 생각하라고 권한다. 

아홉 번째 우리 마당, 되살려야 할 아름다운 우리말. 우리가 쓰지 않아서 잃어버린 우리말이 많다. 동네로 들어가는 골목의 첫머리인 '어귀'와 동네의 좁은 골목인 '고샅', 작고 오목한 것을 나타탠 '옹달' 밤이나 도토리 같은 작은 열매는 '아람'이다. 처마에서 비가 떨어지는 것은 비가 '듣다'가 되고, 비를 잠시 피하는 것은 비를 '긋다'가 된다. 우리가 알면서도 잘 쓰지 않는 말에는 동풍-샛바람, 서풍-하늬바람, 남풍-마파람, 북풍-뒷바람, 북동풍-높새바람, 금성-샛별, 반달-이지러진 달, 혜성-살별 등이 있다.  

우리말에는 우리 조상들의 얼과 지혜가 스며 있다.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지키고 가꾸는 것은 우리들 몫이다. 맨 끝에 나온 '우리말 생각 사전'은 우리말의 유래와 어떤 과정을 거쳐 뜻이 다른 말로 쓰이게 됐는지 '가시나, 터무니없다, 시치미 떼다, 돌팔이, 바가지 긁다, 꺼벙하다, 미역국 먹다, 노다지,누리꾼'을 들어 설명한다.   

 

우리가 시험에 떨어지거나 승진에서 밀렸을 때 '미역국 먹었다'고 하는데, 노다지와 같이 어원을 들어보면 슬프다. 예로부터 동해에는 고래가 많았는데, 고구려 사람들이 고래의 이상한 버릇을 발견했다. 고래가 새끼를 낳은 뒤에 꼭 미역을 먹더라는 것, 이때부터 사람도 아기를 낳은 뒤에 미역국을 먹게 되었다. 19세기 조선은 나라를 지킬 힘이 없어 주변의 힘센 나라들이 온갖 자원을 빼앗아 갔는데 러시와 일본 미국의 고래잡이 배가 고래를 마구잡이로 잡아들였고, 결국 동해의 고래와 조선은 최후를 맞아야 했다. 1907년 일본은 조선 군대를 강제로 해산(解散)시켰는데 아기를 낳는 해산(解産)과 소리가 같아서, 나라도 잃고 일자리도 잃은 스스로를 비웃으며 '미역국 먹었다'고 했단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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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11-06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겠어요. 아이와 같이 봐야겠네요. 춤추는 생각학교 시리즈는 다 좋아보이는데요? 아님 오기언니 리뷰에 혹해서 그런 생각이 드는건지?

순오기 2009-11-06 20:52   좋아요 0 | URL
재밌게 술술 읽혀요. 이미 아는 이야기라 시시할지도 모르지만...
이 책은 괜찮고 좋은 책이 확실해요. 이어령선생님 책이니까요.^^

하늘바람 2009-11-06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제가 봐야겠네요

순오기 2009-11-06 20:52   좋아요 0 | URL
님은 이미 다 아는 이야기일듯...

카스피 2009-11-07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이어령 교수님의 이런 책도 쓰셨군요.저는 이어령 교수님하면 축소지향의 일본인이 생각나더라구요^^

순오기 2009-11-08 00:08   좋아요 0 | URL
10년 전 웅진에서 출판했던 책이지요.
축소지향의 일본인은 저도 갖고 있지요. 옛날 책이라 글씨가 너무 작아 이제는 읽기 어려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