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23일, 우리 아이들 미술선생님한테 책 한권을 선물 받았다. 바로 김곰치의 '빛'. 내가 책선물을 했더니 답례로 보내셨는데, 책이 오고 간데는 사연이 좀 있다.^^
아이들 미술선생님은 시험 문제를 독특하게 내는데, 지문이 어찌나 긴지 미술시험은 종료시간까지 엎드려 자는 넘들이 거의 없다. 선생님이 학교 홈피에 올렸던 글에서 문제를 내는데 학생들을 주인공으로 한 실화다. 이런 상황이 적응 안되는 학생들은 투덜대지만, 선생님은 우리학교로 오신 3년간 줄기차게 하셨다. 미리 프린트물을 주고 거기에서 문제를 내니까 마음을 기울여 이해하고 외운다면 어려운 시험이 아니다. 그러나 100점짜리가 많이 나오진 않는단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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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학생들이 미술을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소재의 작품도 만들고, 명화를 감상할 안목도 키워 주신다. 특히 지식e를 보여주는게 내 맘에 쏙 들었는데, 덕분에 우리 애들은 지식e 책도 잘 보았다. 이번에도 권정생선생님을 비롯한 몇 문제를 지식e에서 출제했다. 분명한 교육철학과 소신을 갖고 있는 선생님께 감동한 순오기, 기말시험이 끝난 뒤 며칠을 고민하다가 문자를 보냈다. 내 맘대로 ’엄마를 부탁해’를 찜해 놓고 한 권은 선생님이 보고 싶은 책을 선물하는게 좋을 거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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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7 "선생님 안녕하세요? 미술시험지에 감동받아 책 한권 드리려는데 보고 싶은 책 말씀해주세요. 연락없으면 제 맘대로 골라 학교로 택배하렵니다. 1학년 학부모 드림"
12/17 12:26pm "학교 문자를 이용해 보내려고 인터넷에 접속했는데 민경이 어머니시네요. 제가 마음에 안 들어 늘 발등에 제 얼굴을 비추며 사는 요즘인데 참 기분 좋은 문자였어요. 우리 아이들은 제 시험을 아주 싫어합니다. 어렵고, 읽을 것도 많고, 헷갈린다고요. 어떤 아이 말로는 세상에서 가장 먼저 없어져야할 것이 미술선생님 시험이라고까지, 그래서 슬펐습니다. 이번에는 경황이 없어서 시험을 소홀히 출제했는데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수업시간에 보는 민경이..야무지고 옹골차고 글도 그림도 공부도 잘 하여서 재주가 많은 학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풍물반 활동하면서도 의젓하고 믿음직스럽고 책임감 있는 모습 많이 봤고요. 문자 받고 잠시 고민해봤습니다. 안 받고 살고 있고 당연히 마음만 받아야 옳은 교사의 모습이지요. 그런데 다음과 같이 하면 어떨까하고요. 책 한 권 사주시면 저도 책 한 권 사드리는 걸로요. 소설가인 남동생이 이전에 소설을 냈습니다. 김곰치 소설 '빛'입니다. 제가 민경이 편으로 보내드리거나 주소를 알려주시면 주문을 하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요즘 읽으려고 했던 책은 조중걸 '키치 우리들의 행복한 세계'입니다. 제가 사드리는 책의 가격이 조금 더 비싸니까 제가 손해보네요.^^ 고맙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문자도 보내주시고 미술시간을 좋아해주는 아이들이 있어서 늘 힘을 얻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감사할 일이 많이 생기고 꿈꾸는 삶 사시기 바랍니다. 아이들과 행복하시고 건강하십시오. 김00 드림"
12/18 "누군지 모르게 살짝 보내려고 했는데 다 알게 되었으니 민경이 편에 보낼게요.^^ 민경맘"
12/18 10:10 pm "늦게까지 학교 있다가 퇴근해서 방금 충전기에 전화기를 꽂으니 문자가 와 있네요. 00중학교 모바일 서비스를 처음 이용해 봤는데 문자가 제대로 도착했나 봅니다. 민경이 문학적 감수성이나 재능이 어머니를 닮았나 봅니다. 책, 늘 가까이 하시죠? 기다릴게요.그리고 제 책도 기다려주세요."
12/19 "김곰치 소설 '빛'이 4분기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되었네요. 축하드립니다! 민경맘"
12/19 08:15pm "우연히 1층 교무실에 들린 성주와 성주친구랑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민경이 어머니 문자가 왔습니다. 이런저런 이바구를 하다가 방금 도착했습니다. 작고 가지런한 치아가 보이게 웃는 모습이 성주랑 민경이가 닮았더군요. 얼굴은 오빠가 더 이쁩니다.^^
선정도서가 되었다고 저의 어머니가 전화를 주셔서 알고 있었는데 따로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올 여름에 모두가 말렸지만, 지역출판사가 잘 되어야 한다, 지역출판사가 잘되어야 지역작가에게 힘이 된다고 가난하고 작은 부산의 출판사에서 책을 내더니 책은 김곰치가 생각했던 것만큼 사회적인 논란도 종교적인 이슈도 되지 않고 많이 팔리지도 않았습니다. 누나라서 그런건 아니지만 치열함이나 진정성이나 문학성이나 참됨이나 이것저것 따져도 김곰치만한 작가가 없는데 말입니다.^^ 김곰치보다는 제가 많이 속상해서 마음앓이를 했죠. 요즘 모두 내려놓고 새로운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내일 민경이 편으로 책 보낼게요. 동료교사 결혼식 축의금은 언제부터인가 김곰치책으로 대신하기 때문에 늘 책을 주문해서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동생이라고 얘기는 안하고요. 김곰치 책이 제대로 주인을 찾아가는데 제가 도움을 주고 싶어서입니다. 첫장부터 30페이지까지가 더디 읽힌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저는 처음부터 끝까지 단어 한개도 놓치지 않고 짝짝하게 두번 읽었습니다.
오늘 성주가 그러더라고요. 집에 책밖에 없다고요. 어머니가 책을 너무 많이 읽으신다고요. 그래서 교문 부근에서 헤어지면서 말했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늘 책을 읽는 사람은 눈빛부터가 다르다고요. 나이가 들어도 맑고 선한 눈빛을 갖고 살고 싶습니다. 오늘도 열심히 살아낸 4시간이 남았네요. 좋으시기를, 저도 공부하겠습니다. 김00 드림"
민경이는 이 문자에 오빠가 더 이쁘다고 했다면서 내일 가서 따진다고 난리였었다.ㅋㅋ 우리 애들 치아가 고르고 관리도 잘돼서 초등학교 땐 '건치대회'에 학교대표로 나가기도 했었다. 역시 선생님은 눈썰미가 좋으시다니까!^^
책을 민경이 편에 보냈더니 선생님이 안 계셔서 책상 위에 두고 왔다고 했다. 다음날 내가 담아 보냈던 알라딘 선물상자에 김곰치 '빛'과 A4 11장의 리뷰 및 자료를 같이 넣어 민경이 편에 보내주셨다. 이 페이퍼 작성하느라 문자보관함을 열었더니 책을 받고 보낸 문자가 와 있었는데 여태 몰랐다. 나중에 삭제되면 흔적없이 사라지니까 장문의 문자를 남기려고 다 옮겨 놓았다.^^
12/23 10:20 am "오늘은 일제고사가 있는 날입니다. 우려했던 거와는 다르게 아이들이 최선을 다해 시험을 보고 있네요. 책 고맙습니다. 제가 손해네요, 했던 말은 농담이었는데, 신경숙 책이 묻어왔네요. 책 나오기 전에 인터넷에 인터뷰가 먼저 올라와서 꼼꼼히 읽었더랬습니다. 제 삶에 늘 배경처럼 존재하는 엄마처럼 저도 언젠가부터 아이들에게도 관계에서도 늘 배경이 되는 존재입니다. 박수 받는 사람보다 뒤에서 박수 쳐주는 사람, 배경이 되어 주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하곤 했는데 이번에 주인공인 된 신경숙소설의 엄마를 의미있게 읽겠습니다. 아침에 출근해서 깜박 잊을새라 저도 김곰치 소설을 민경이에게 주었습니다. 키치, 책의 뚜껑을 여니 작가의 다음과 같은 말이 있네요. '다른 모든 즐거움이 덧없다 해도 글 읽는 즐거움은 항구적이라 믿는다'는. 빈 시간인데 미술실에 올라가서 차 한잔 마셔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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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고사가 있던 12월 23일날, 우리 아들 담임샘과 또 한분의 전교조 선생님이 정문과 후문에서 피켓을 들었지만 조용히 지나갔다. 아들의 담임샘께는 12월 31일 방학하는 날 '지식e 3'을 보냈고, 민경이 담임샘께는 '엄마를 부탁해'를 보냈다. 한해동안 수고하신 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을 책 한 권으로 전하는 일은 내가 오랫동안 해 온 일이다.
올 연말에 선물용으로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10권 구입했다. 미술샘께도 키치와 같이 보냈더니, '제가 더 손해네요'라는 말 때문에 한 권 더 보낸거로 생각하셨지만, 이 책은 미리 찜해놓고 미술관련 책을 원할 거 같아 선택하시게 했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으니 문자 보내기를 잘했지, 사실 자기가 보고 싶은 책을 선물받아야 휘리릭~ 빨리 본다는 거 다들 인정하시죠?^^
김곰치라는 소설가, 나는 잘 모르는 사람인데... 방학이라서 내려온 큰딸한테 말했더니,
"정말 미술선생님 동생이야? 그 사람 대단하던데~" 라면서 감격했다. 김곰치로 검색하니 4권의 책이 떴고, 1999년 제 4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했다고 나왔다. 김규항선생 추천도서목록에도 들어있는 책이다. 이제 김곰치 소설을 읽을 일만 남았는데 391쪽이나 된다. 이렇게 두꺼우면 접근하기가 쉽지 않단 말이지.ㅜㅜ
알라디너 여러분, 특히 부산에 계신 분들~
부산지역 출판사 '산지니'에서 나온 김곰치의 '빛'에 관심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김곰치 - 1970년 경남 김해에서 태어나 서울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1991년 단편 '토큰 한 개의 세상'으로 서울대 대학문학상을 수상했으며, 1995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푸른 제설차의 꿈'이 당선돼 등단했다. 1997년 『시와 사상』에 평론 '민중시를 위한 밤'을 발표하기도 했다. 부산에 거주하며 '시 21' 동인에 참여해 '시읽기의 기쁨'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엄마와 함께 칼국수>의 김곰치가 9년 만에 펴낸 장편소설. 남자와 여자, 그리고 예수의 이야기다. 소설은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연애소설을 빌린 종교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가 똥 누는 이야기, 교회 다니는 여자와 교회 다니지 않는 남자 사이의 서툰 연애, 가이아 하느님, 그리고 사계절을 사랑하고 지지하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소설은 2007년 가을 겨울, 대도시 부산을 배경으로 일상 속에 존재하는 예수를 그린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심하고 질투많고, 잘 삐지며 애원하고, 화내고 성질부리는 연애 이야기 속 예수의 문제를 그리는 것이다. 때문에 작가는 기독교적 지식의 나열이 아닌 남녀의 시시콜콜한 연애과정을 통해 예수라는 인물에게 과도하게 씌워진 신비화와 신격화를 없애려 한다.
작가가 그린 예수는 생물학적 완전성의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예수가 매일매일 열심히 배설하는 것도 하느님의 명령을 즐겁게 따르는 일이다. 풍성하고 인간적인 모두의 친구 예수를 그려 보이는 것이다. 이처럼 작가는 리라이팅 바이블을 통해 십자가에 매달려 죽음을 맞이한 사나이에 대한 기록에 대해 집요하게 캐묻는다.
책에 나온 김곰치 사진을 보니 미술샘과 닮았다. 빼빼한 것도 닮고 눈매와 코나 입이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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