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사촌여동생이 유방암으로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헉~~ 아직 젊은데 어쩌라고?
그래도 손댈 수 없는 건 아니겠지? 마음 졸이며 모두 결과를 기다렸다.
그런데, 임파선까지 전이됐다는 통보였다.
사촌언니는 사는 게 힘들어서 동생한테 해준 것도 없는데 어쩌냐고 통곡하고
'남이섬'에 가고 싶단 소리에 우리언니랑 셋이서 다녀왔다는 전화를 받았다.
아~ 암이라면 겪을만큼 겪어서 나는 치가 떨린다.
친정아버지, 전립선암으로 오랫동안 고생하셨다. 돌아가기 몇해 전 우리집에 오셨을 때,
당신 생각에 마지막이라 생각했는지 다녀가면서 많이 울으셨다.
'저는 아버지 제사에 온다고는 장담 못해요, 살아서 한번이라도 더 볼래요.'
격주로 광주에서 인천을 오르내리며 아버지 손이라도 한 번 더 잡아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2003년 11월 12일, 아버지를 보내드리고 해마다 가을이면 혹독하게 아팠다~~
우리 시어머니는, 백두 살까지 사신 시할머니 모시느라 평생 고생하셨고
대장암으로 2년 반 투병하면서도 할머니 수발하다가 그양반 돌아가신 1년 반 뒤에 가셨다.
항암치료 받으며 머리카락 다 빠지고 힘겨워하는 걸 간병하며 지켜보는 나도 고통이었다.
마지막 생신을 우리집에서 치뤄드렸고, 마지막 목욕도 내가 해드렸고
어쩌다 임종까지 나혼자 지키고 보내드려서 서러운 그분의 삶이 한동안 아프게 했다.
그렇게 가신 2004년 5월 18일은 나한테 또 하나의 의미로 다가오는 5.18이 되었다.
지금도 주변에서 항암치료를 받으며 사투를 벌이는 지인이 있어 안타까운데
어릴 적 같이 자란 사촌동생이, 그것도 나보다 다섯 살이나 어린데 손댈수 없을 지경이라니
나혼자 히히낙낙 전국구로 돌아다닌 며칠이 미안하게 느껴졌다.
아~~~~ 가을인데~~~~~
이 햇살 좋은 날에 죽음을 준비하는 젊디 젊은 사촌이 나를 아프게 해서
며칠이라도 근신하는 맘으로 조신하게 지냈다.
그래~~ 떠난 뒤에 아쉬움을 토로하면 뭐 하겠나~~
이도 저도 못해보고 떠난다고 억울해 말고,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살자는 결론이다.
그래서 그동안 망설이던 '시집'을 몽땅 질렀다~~~ 역시 내가 제일 하고 싶은 건 '책사는' 거였어!
쿠션과 마지막 강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