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1일, 우리 아이들은 중간고사가 끝나고 놀토라서 어거지로 끌려간 문학기행이었다. 처음부터 회비 냈고 주민번호 알려줘 1일보험도 들었으니 안 가는거 없다고 밀어부쳤다. 너희들 머리 컷다고 가족여행도 마다하고 앞으로 같이 갈 기회가 얼마나 있겠냐며 '엄마의 권력'을 최대한 활용했다. 단순한 여행이 아니고 문학기행인만큼 반드시 '당신들의 천국'을 읽어야 했지만~ 초반 보다가 잠들었던 아들녀석은 다녀와서 절반 이상을 읽었다. 현장을 샅샅이 탐색했기에 이해가 잘된다고~~~ 그러면 됐지, 그 이상 무엇을 바라리오!
학부모독서회 담당선생님이 준비한 자료는 너무 훌륭해, 미처 책을 못 읽고 온 학생이나 엄마도 대략 알 수 있었다. 우리는 달리는 차 속에서 작가 이청준님과 '당신들의 천국'줄거리와 소록도의 역사를 돌아가며 읽으며 기본적인 이해를 가졌다. 표지에 올려진 한하운의 '소록도 가는 길'은 이미 우리의 마음을 소록도에 데려다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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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 가는 길 -한하운-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 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
쑤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 막히는 더위 속으로 절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어졌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 먼 전라도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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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하남에서 소록도행 배를 타는 녹동까지 2시간 걸렸다.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화악~ 끼쳐오는 갯내음이 폐부를 찌른다. 우우~ 우리를 환영하는 비릿한 갯내음 기꺼이 들이마셨다. ^^ 배를 기다리는 동안 생선을 늘어놓고 있는 아주머니들을 담았다. 손질해 말린 서대와 가오리도...
녹동 앞바다 풍경~ 저 멀리 보이는 연륙교는 고흥과 소록도를 잇고 거금도(금산)까지 연결된다. 붕괴사고가 있어 다시 철저한 시공으로 개통이 늦어지고 있다.
금강산도 식후경, 메인메뉴인 갈치지짐이 나오기 전 깔끔한 상차림. 인당 6천원, 공기밥은 서비스^^
우리 애들도 추가로 나온 공기밥을 둘이 나눠 먹었다. 7일째 단식한 나도 간만에 밥을 먹었고~~ 너무 맛있지만 뺀 살 도로 찔까봐 눈물을 머금고 참았다.ㅜㅜ 먹는 중에 찍어서 사진이 좀 그렇지만 맛은 최고였다. 전라도 손맛을 아는 분은 공감할 듯...ㅋㅋ
자~ 점심도 맛있게 먹었으니 슬슬 소록도 가는 배를 타러 가야지~~ 30분 간격으로 운행되는데 어른 1인당 왕복 1,000원 차는 10,000원인데 굳이 차를 가져갈 필요가 없다. 차가 들어갈 수 있는 거리도 짧고 산책 삼아 걷기에 딱 좋을만큼의 거리와 풍경이다.
녹동과 소록도만 오가는 배, 저래도 카페리호. 얼굴은 안보여도 괜찮아, 증거물로 필요할 뿐!^^
뱃머리를 돌리는가 싶더니 벌써 소록도에 도착, 5분도 채 안 걸리는 시간~ 승합차가 먼저 내리고.^^
소록도에서 바라본 녹동 풍경~ 녹동항은 소록도로 들어가는 유일한 통로지만, 연륙교 개통하면...저기 보이는 배는 국립소록도병원선이다.
관광지가 아니라 입장료는 없다. 작은 사슴형상이라 '소록도'라 불리고, 고흥반도 끝에 위치하며 앞쪽엔 거금도가 있어 아늑하고 온화한 날씨로 비나 눈이 많이 오지 않는다. 녹동항과 가까와 물자수송이 용이하기에 한센병 격리 수용 장소로 선택되었다. 섬 전체가 국유지로 11만평에 달하며 현재 보건복지부 소속기관인 국립소록도병원이 관리하고 있다. 행정구역은 전남 고흥군 도양읍 소록리~ 직원 거주지역(관사지대)은 1번지, 한센병환우 거주지역(병사지대)은 2번지다.
소록도 입구의 추모탑~ 위령탑?
곳곳에 배치된 직원들의 집~
입구에서 제일 가까운 곳에 있는 성당- 직원들이 다니는 곳
전형적인 일본식 주택~ 직원지대의 집들은 직원들이 사는 집이다. 현재도 180여명이 근무한다.
직원 자녀들이 다니던 유치원, 아홉 명의 아이들이 있는데 여기까지 와서 근무하는 선생님이 없어서 다른 용도로 쓰인다고~
사람 사는 곳이면 있을 건 다 있다~ 우체국과 출장소
성당과 별반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직원들이 다니는 교회~
원불교 신사는 가까이에 있다. 소록도에 절은 없지만, 마음에 절을 모신 분들은 있다는 말씀~~
사진 가운데에 있는 것이 신사다. 소설에선 해방이 되자 원생들이 몰려가 신사를 부쉈다고 나온다. 1965년에 복원했다는 해설사의 설명~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남은 신사란다.
'소록도는 역사의 현장이다' 아픈 역사도 우리 역사~~ 똑똑히 기억해야 할 일이다. 4대 원장인 일본인 주정수가 부임하면서 모든 걸 일본식으로 강요하고 참배케 했으며 무참한 인권유린이 자행되었다. 2대 원장이었던 하나이(?)는 자유를 인정하고 존중했으며, 원생들이 동상을 세워준다는 것도 사양했다고...
부모와 자녀가 한 달에 한번 만났던 수탄장~~~ 아이들은 바다쪽에 서 바람을 등지고 부모들은 바람을 맞으며 양편에서 바라보기만 했기에 '탄식의 장소' 즉 '수탄장'이라 불렀다. 그때는 문둥병(한센병)이 전염되고 유전되는 줄 알았기에 자녀를 미감아라 불렀고, 바람을 통해 병균이 옮을까봐 부모들이 바람을 안고 섰단다. (문화유산해설사 홍승희 씨)
바로 이 곳에서 길게 늘어서 한 달에 한번 만나지만, 원장 맘대로 고무줄처럼 늘리기도 했단다.ㅜㅜ
저 멀리 바닷물 색깔 보이나요? 바다가 깊어서 나는 색채라고... 군데 군데 있는 것들은 어구를 보관하는 시설물로 고흥 주민들이 어구를 배에 싣고 나가 일하고 들어올때는 다시 저곳에 보관한다. 건너편은 고흥이고, 그 옛날의 아픔을 다 지켜봤을 소나무들은 운치가 있었다.
하늘과 바다와 갯벌~ 모두가 어우러져야 자연스런~ 새들과 벌레와 갯벌의 게들이 사는 그곳에 사람이 잠시 빌려 살다 갈 뿐이다.
산 중턱에 보이는 탑이 납골당이다. 환자들은 죽으면 모두 화장해서 납골당에 안치한다. 얼마나 잘 지었는지 온도와 습도가 잘 맞아 벌레 하나 생기지 않는다고...
건너편 보이는 건물, 물자를 저장하던 창고로 지금까지 보수 없이 멀쩡하게 남았다니 정말 대단하다. 태백산맥 배경지 보성에 가도 우리 농산물을 일본으로 빼가느라 지은 창고들이 즐비하다.ㅜㅜ
애한의 추모비, 해방이 되고 서로 실권을 잡으려던 의사들과 직원들간의 알력 싸움에 밀려난 의사들은 직원들이 식량과 물자를 빼돌렸다는 유언비어를 유포했다. 자치권을 주장하던 원생대표들을 이곳에 몰아넣고 송탄을 끼얹어 불을 질러, 1945년 8월 22일 84명이 죽었다. 살아남은 6명이 이들의 죽음을 헛되지 않도록 한센 가족에 대한 이해와 온전한 인권회복을 위해 2001년 유골을 발굴하고 2002년 8월 22일 애한의 추모비를 세웠다.
애한의 추모비 근처에 있는 나무와 병원 앞뜰의 편백나무~~
1910년 선교사들이 시립 나요양원 설립 -> 1916년 조선총독부가 소록도 자혜병원으로 정식 개원 ->소록도 갱생원 -> 국립 나병원 ->국립 소록도병원(http://www.sorokdo.go.kr/)
5천~ 6천명 이상 있었지만 지금은 약 500명 정도가 병사지역에 살고 50여명은 병원에 입원하여 일대일 간병을 받는다. 평균 연령이 74세로 이들을 끝으로 한센병은 소멸될거라는 말씀이다.
전면과 후면~
한센가족들이 운영하는 선물의 집~ 음료와 아이스크림, 기타 자잘한 선물용품들을 팔았다. 소록도는 입장료도 없으니까 그냥 갈아주는 의미로 갈고리 모양의 안마용 나무(2,000원), 남매와 선생님, 해설사님께 드릴 음료캔을 샀는데 모두 5,600인가 들었다.
그들은 세번 죽었다. 한센병 발병으로 한번, 죽은 후 사체해부로 한번, 세번째는 장례 후 화장이다.
검시실과 감금실은 등록문화재이다, 정식 문화재 등록을 위한 관리 차원의 선결조처다.
검시실 앞방은 해부실이고, 뒷방은 단종실(정관절제실)이다. 인권유린의 잔혹한 현장이다. 가운데 구멍으로 피가 모아져 관을 타고 흘러 밖으로 배출되었다고...
적출물들은 유리장에 보관 전시했고 사체는 들것(사진 왼쪽 다 헤진 것)에 실어 내갔다고....
징계를 받아 감금실에 갇히면 무조건 단종을 해야 했고, 부부로 동거하기 전에도 반드시 단종~~
단종실에 걸려 있는 시~~ 그 절절한 비애~~~
감금실~ 내부는 H자 형태로 되었으면 벽에 긁어 판 글자가 남아 있다.
감금실 위쪽에 있는 소록도 역사관
그들은 문드러진 손과 발로 오직 황토뿐인 이곳을 낙원으로 꾸미기 위해 노예처럼 착취당했다. 소록도에 있는 모든 돌과 바위는 외지에서 옮겨왔다. 완도에서도~ 주정수의 오른팔이었던 간호장 사토는 닞을 수없는 악령이었다고 소설은 묘사한다.
한센병 자료관
왕진가방과 수술용 기구들
한하운 시인과 이청준님의 '당신들의 천국' 사인본
여기서부터 중앙공원~ 그들의 낙원이 아니라 4대 원장 주정수의 낙원이었던 곳...
중앙공원에 한가운데 세운 '문둥이를 구한다'는 구라탑
중앙공원 주정수 동상이 있던 자리에서 열심히 설명 듣는 우리 남매~ 다른 사람들은 뭐하는 거야?
4대 원장인 주정수의 동상이 있던 자리, 그는 자신의 동상 앞에서 칼에 찔려 죽었고 그의 동상은 전쟁 군수물자로 징발되었다. 지금은 소록도 병원 개원 기념비가 서 있고 아래 큰 바위는 동상에 참배하던 요배석이다. 한하운의 보리피리가 새겨져 카메라에 담았는데 알아보기 어렵다.
이런 나무들도 모두 외지에서 가져와 심었다. 그들의 낙원이 아닌 주정수의 낙원을 위해서~
벽돌공장이 있던 자리~ 연간 10만 12만장을 찍어냈다니 노동착취와 인권유린은 상상을 초월한다
벽돌공장 터에 있는 삼나무, 곧게 자라야할 나무가 아래로만 처진다~ 한맺힌 원혼들의 기가 아래로 끌어당긴다는..... 오른쪽 삼나무도 가운데가 뚫려 있다
벽돌공장 터는 반듯하게 정리되어 나무들만이 자리를 지킨다.
반지하 벽돌공장의 굴뚝이 있던 자린데 늘 우는 소리가 나서 십자가 고상을 세웠다고 한다. 오른쪽 탑은 교황 요한 바오르 2세가 방한했을 때 한센인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세웠다고......
중앙공원 햇빛에 노랗게 보이는 황금편백~
둥그런 모양의 '가이스까 향나무'
조백헌소령이 원장으로 부임하고 이들에게 1년간 축구만 시켰던 운동장, 그들은 우승을 하며 군 대표 도대표로 출전했다~ 자신감도 되찾고 원생들이 하나로 뭉쳐 응원도 하며 눈빛이 빛났던...
노란 지붕을 이고 있는 남독신사와 그들의 성당~
금지구역 안에 있는 그들의 성당에 멋진 나무를 보려고 잠시 양해를 구하고 들어갔다~ 금지구역이라고 안내판이 서 있다. 시커매서 글자는 잘 안 보이지만...
멋지게 손질되어 아치를 이룬 두 그루의 히말라야시다~
그분들 말로는 후박나무라는데 내가 아는 후박나무와 다르다~
바나나 나무~~~~ 바나나가 열리는지는 모르지만......
외부인들이 원생들을 면회하던 길~~ 이 길로 죽~나래비를 섰다는데, 눈물의 면회길이었을 듯...
수탄장을 지나 주욱 가면 면회소가 나오는데 사진에선 까매서 안 보일테고, 늘어섰던 그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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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둘러보고 나오는 길~~~
녹동으로 나가는 배를 기다리며~~~
저~멀리 하얀 등대도 보이고~~~
소록도에서 바라본 녹동~
멀리 보이는 연륙교가 개통되면 배타고 갈 일이 없을 듯.....고흥에서 거금도까지
배에서 바라본 소록도, 잘 있어라~~ 5분만에 소록도에서 녹동으로, 반갑다, 녹동~~~
모든 일정을 마치고 광주로 달리는 길~~ 차창밖으로 보이는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