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4시 30분 이후로 막내 담임샘의 가정방문이 정해졌는데, 오늘 따라 늦게 온 녀석들이 있어 수업을 마친 시간이 4시 25분이라 발걸음이 동동거렸어요. 집에 도착한 시간은 4시 50분, 급한 맘에 달걀과 우유를 풀어 핫케이크를 구으려는데 전화가 왔어요. 집 찾아오는 길을 가르쳐 달라고... 공원길로 오시라 하여 막내를 마중보내고, 가스 불을 키워 선생님 맞기 전에 뒤집어야 하는데, 그만 새까맣게 타버렸어요.ㅠㅠ 선생님이 힘들고 출출할 시간이라 간식을 준비한다는 게, 할 수없이 시원한 배즙만 드리고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음, 아이는 막내라 엄마의 관대함이 적용되기도 하지만, 나무랄데 없는 사랑스런 아이야요. 난, 고슴도치 엄마^^ 고쳤으면 싶은 걸 적으라는 설문에도 고칠게 별로 없어, 엄마 말이 제 뜻에 안 맞으면 쬐금 툴툴거린다고 적었으니, 확실한 고슴도치잖아요.^^ 하여간 듣기 좋은 말인지 몰라도, 유치원샘이나 피아노, 미술학원에서도 나무랄데 없다고 말씀하셔서 그냥 그런가보다 믿거든요. 이제 3개월째인 영어학원에서도 스폰지가 빨아들이듯 흡수력이 좋고 제 할일 척척 알아서 한다며 칭찬하시니......막내는, "엄마 그런말 100% 믿지마. 그냥 엄마 기분 좋으라고 하시는 말씀이야!" 라고 하지만, 어디 엄마 맘이 그런가요? 제 자식 칭찬하면 마냥 입이 귀에 걸리지요.^^

막내 담임샘께서도 자원해서 임시실장을 하는 아이가 고맙고, 무엇이든 열심이라고 칭찬하시더군요. 사실 임시실장을 자원한 건, 전날 엄마의 말을 듣고 아마도 반은 의무감으로 했을거에요. 책임감이 싫어 실장을 안 한다면 자기 발전이 없다. 그런 책임감을 성실히 수행할 때 자기 발전도 있는거다. 또 초등학교와는 다른 버거운 친구도 상대해봐야 네가 강해질 수 있다. 사실 이런 이야기 듣고, 어떤 선택을 하든 네 결정을 존중하겠다고 말하는 엄마에게 배신감을 주지 않으려면, 싫어도 실장 하겠다고 할 수밖에 없었을 거지만... 아마 임시로만 끝내려나 봅니다.^^

우리 아들 녀석은 시험을 쳐도 무얼 맞고 틀렸는지 점수나 등수에 관심없으니, 엄마도 아들 닮아 담임샘께 일제고사 결과도 묻지 않았는데, 막내는 몰라서 찍은 것도 있고 사회도 이름을 잘 못 보고 적었다며 걱정을 했어요. 그런 시험 잘 못봐도 괜찮다 했는데 선생님께서 성적을 보여주시는군요.

오호~~ 중학교 배치고사는 문제집 한 권도 채 못 풀었지만, 10등 안에만 들어라 했는데 딱 10등을 했군요. 이번 일제고사는 국어, 수학은 만점이고 과학과 사회는 하나씩 틀려 6등을 했어요. 뭐, 말이야 진단평가 수준이니 별거 아니라 하면서도 결과가 잘 나오면 또 쫗은게 엄마 맘이잖아요. 남들 다니는 학원 안 다니고 문제집이랑 씨름하지 않아도, 독서내공만 믿는 엄마는 이 정도 성적이면 만족이에요. 졸업 때 장학금 받았던 친구들 중 네 명이 같은 학교인데 한명은 배치고사 일등으로 선서를 했고, 또 한명은 일제고사 일등을 했다는데... 그 애들은 4~5학년부터 학원을 다니고, 유일하게 우리 막내만 학원을 안 다녔으니 그 정도면 됐다 싶어요. 한줄 세우기 정책을 비난하면서도 자식 성적엔 너그러워지나 봅니다.

이번엔 아이들 선생님께 말씀드려 '중식지원'을 받기로 했어요. 사실 IMF 이후 고전하는 애 아빠가 세 아이를 감당하기엔 무리고, 또 대학생이 있으니 아이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지원받기로 했어요. 우린 5인 가족 의료보험 납부액으로 지원대상이 되거든요. 사실 자존심 문제라 제 자식 밥값도 책임 못지고 혜택받는 게 맘에 걸렸는데 그게 아닌 것 같아요. 제가 방과후학교 하면서 바우처 지원 받는 아이들 보니 절반은 국고낭비라 생각되더군요. 그냥 쏟아붓기만 하지 아이들의 성실성이 떨어져 교육적 효과도 거두기 힘들어요.ㅠㅠ

우린 편법이 아닌 정석으로 혜택받으니 그냥 결정했어요. 그리고 한 달 급식비 정도의 학급문고를 지원해야겠다 싶어, 마노아님의 추천으로 중고샵에서 아들반의 학급문고 18권을 구입했어요. 몇권은 우리가 가질거니까 13~4권 정도 될 것 같아요. 책을 받고 상태가 좋다면 막내반 학급문고도 같은 식으로 구입하려고요. 글쎄~ 중식지원 요청한 엄마가 부리는 객기인지 허영인지 모르지만, 받을 수 있는 혜택은 받고 내가 베풀 수 있는 것은 베풀면 되는 거겠죠? 사실 제 소득은 근로소득이 아닌 기타소득으로 신고돼서 연말정산 적용도 못 받아요. 제가 내는 세금이 우리 아이 하나 중식비 정도는 되니까 혜택을 받아도 되겠죠?

막내 샘은 도덕선생님이신데, 작년에 아들녀석의 도덕샘이었대요. 아들넘 표현에 의하면 수업을 정말 교과서적으로 재미없게 한다고... 입학식날 뵙긴 했지만, 카리스마가 약한 착한선생님이라고 생각되었어요. 게다가 선생님이 책을 별로 안 읽는 것 아닐까 싶어, 우리가 마지막 집이라 하시기에 '지식e-시즌2'를 드렸어요. 선생님이 가시고 나서 아들녀석 하는 말이, 그냥 졸다가 질문을 받아도 대답할 수 있어서, 학년말에는 대놓고 잤다는군요. ㅠㅠ 내가 못살아~ 아들넘은 왜 엄마 맘대로 안되는 거죠? ㅎㅎ 그래도 1,2학기 '도덕'은 성적우수 상장을 받았으니...... 하여튼 이렇게 해서 두 녀석의 담임샘과 만나는 가정방문이 모두 끝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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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8-03-12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받을 수 있는 혜택은 받는 것이 좋지요 ^_^ 잘하셨어요 순오기님
제가 책임감이 싫어 임시실장같은 걸 안해봐서 자기발전이 없나봐요 ㅋ

순오기 2008-03-12 23:55   좋아요 0 | URL
ㅋㅋㅋ~ 글 써 놓은 걸 보면 책임감이 보이던걸요. 제말의 반은 아이를 어르는 말이잖아요.ㅎㅎ

조선인 2008-03-13 0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마를 축하드립니다!!!

순오기 2008-03-13 08:52   좋아요 0 | URL
ㅎㅎ 축하 받을 일인지... 하여간 아들편에 서류를 보냈습니다.

마노아 2008-03-13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혜롭고 합리적인 멋진 엄마예요. 학운위 결정하셨군요. 역시 멋진 순오기님이에요!

순오기 2008-03-13 19:44   좋아요 0 | URL
글쎄 바빠서 안 하고 싶은데...자의반 타의반 그렇게 되었어요.
학운위 선출하는 날 방과후학교 열린수업이라 중학교 총회에 참석을 못하게 돼서, 경쟁자가 많으면 제가 탈락할거 같아요.^^

뽀송이 2008-03-13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민경이 팬 할래요.^^
예쁘고, 속 깊고, 공부까지 잘하는 민경이 정말 탐나요.^.~
민경이 같은 딸 있는 순오기님이 넘~ 부러워요.^^

순오기 2008-03-14 00:11   좋아요 0 | URL
ㅎㅎ 뽀송이님께는 염장페이퍼가 되었나요? 예쁜 마음으로 민경이 팬 해주신다니 그런건 아니지요?^^ 님의 든든한 두 아드님은 상상해봐도 그림 같아요.
어제는 임시실장하면서 개기는 아이 때문에 많이 속상했는지 글썽하더니, 오늘은 마음이 풀렸는지 좀 좋아졌어요. 그러면서 세상을 알아가는거겠죠!

라로 2008-03-13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저희 N군도 친구들이 화장으로 선출해 줬는데도
정중히 사양을 했다네요~.
저희 N군도 책임감이 없을까 걱정이에요~.ㅎㅎㅎ

순오기 2008-03-14 00:14   좋아요 0 | URL
요새 애들은 거의 대부분 귀찮아서 싫어하더라고요. 우리 애들 셋 다...^^
어쩌다 '나서기 좋아하는-나서는 게 체질인' 아이들도 있긴 하지만요.
N군의 정중한 사양이 눈앞에 떠오르네요.ㅋㅋ하지만, 책임감 걱정은 안 하셔도 될 듯해요. 지난번 올린 만화를 생각하니.....^^

프레이야 2008-03-14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정방문, 실장, 이런 말 우리 옛날에나 쓰던 말인 줄 알았는데
여긴 가정방문도 하군요. 와~
민경이 야무지고 예뻐요.^^

순오기 2008-03-14 00:51   좋아요 0 | URL
우리 애들 셋~ 중학교는 꼬박 가정방문했어요. 실장은 추억이죠!^^
나름 좋아요. 선생님과 진지하게 대화할 수 있는...
고슴도치 엄마의 막내라서 무조건 이쁜거야요, 저도...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