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첫주에 남편은 아버님댁에 가서 하룻 밤 자고 오더니 심한 감기에 걸려 아직도 깔끔하게 낫지 않았다. '남의 옘병이 내 고뿔만 못하다'는 속담도 있지만, 얼마나 시달렸는지 3Kg나 빠졌다고 엄살이다. 사실 100킬로 육박하는 몸에 3킬로 빠진 게 표날까 싶지만... ^^ 입맛이 똑 떨어진 남편을 위해 요즘 줄기차게 '매생이 국'을 끓인다. 창비에서 나온 안도현 시집 '간절하게 참 철없이' 76쪽에 보면 '매생이 국'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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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생이 국 -안도현-
저 남도의 해안에서 왔다는
맑은 국물도 아닌고 건더기도 아닌 푸른 것, 다만 푸르기만 한 것
바다의 자궁이 오글오글 새끼들을 낳을 때 터뜨린 양수라고 해야 하나? 숙취의 입술에 닿는 이 끈적이는 서러움의 정체를 바다의 키스라고 해야 하나? 뜨거운 울음이라고 해야 하나?
입에서 오장육부까지 이어지는 푸른 물줄기의 폭포여
아무리 생각해도 아, 나는 사랑의 수심을 몰랐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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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를 읽어도 '매생이'가 어떤 것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 분들은 식객 5권 60쪽~ 117쪽에 실린 '매생이의 계절'을 정독한다면 충분히 알 수 있다. 여수 사람인 허영만 화백의 식객 속으로 살짝 들어가 보자.
식객에도 나와 있지만, 매생이는 장모가 딸을 못살게 구는 사위한테 내놓는 음식이다. 열기를 밖으로 내뿜지 않고 속으로 담고 있어서 식은 줄 알고 급하게 먹다간 입천장이 홀라당 벗어진다. ^^ '겨울에 매생이(국)를 먹지 못하면 힘을 쓰지 못한다'고 할 정도로 전라도 사람들에게는 겨울 별미 중에 별미다. 나도 전라도로 시집오지 않았다면 평생에 못 먹어 봤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음식 때문에, 내 남편이 나한테 시집 잘 왔다고 큰소리친다.^^
매생이가 전라도 사람들 음식으로 자리매김한 데는 그럴만한 까닭이 있다. 11월말부터 2월까지 약 3개월간 차가운 겨울바다, 그것도 청정해역에서만 자라는 매생이는 공해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조금이라도 오염된 바다에서는 녹아버리는 탓에 생육 자체가 불가능하다. 게다가 갯벌이 있어야 하며 조류가 잔잔한 내해라야 성장이 가능하다고 한다. 아직은 전라도가 청정해역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분은 없을 것이다. 바로 지금이 매생이 최고의 계절이다. 설이 지나면 맛이 떨어지고, 1월에 나온 것이 발이 가늘고 잡태가 없으며 결이 곱고 미끄러운 약간 검은 녹색이다. 1월에 사서 냉동실에 쟁여 놓아야 앞으로도 맛 볼 수 있다. 한 재기씩 비닐에 냉동했다가 잠자기 전, 꺼내 놓으면 밤새 해동되어 아침에 매생이 국 끓이기에 딱 좋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에는, "누에실보다 가늘고 쇠털보다 촘촘하며 길이가 수 척에 이른다. 빛깔은 검푸르다. 국을 끓이면 연하고 부드럽고, 서로 엉키면 풀어지지 않고 맛은 매우 달고 향기롭다." 라고 나왔으며, '동국여지승람'에는 매생이가 장흥의 특산물로 임금님께 진상되었다고 되어 있단다.
매생이국은 생굴과 같이 끓여야 궁합이 딱 맞는다. 끓이는 방법은 1.매생이를 고운 체에 받쳐 깨끗이 씻는다. 여러번 씻으면 맛과 향이 없어진다. 2.생굴이 익었다 싶을 때 매생이를 넣고 다진 마늘을 넣는다. 매생이는 오래 끓이면 흐물흐물해지므로 주의한다. 특히 처음 끓이면 물을 많이 넣어 실패한다. 씻은 상태로 물을 빼지 않으면 아주 조금만 넣어야 한다. 3.한번 끓으면 소금으로 간을 한다. 4.그릇에 담은 뒤 참기름 몇 방울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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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매생이는 한 재기에 5,000원이다. 우리 집 앞 재래 시장에선 20,000원에 다섯 재기를 준다. 우리 애들은 "매생이국 먹을래?" 하면 "조금만" 이라고 동시에 외친다. 또 반찬이 없을 때, "매생이국 먹을래?" 하면 "됐어!" 이런다. ^^ 하긴 애들이 좋아할 맛은 아니다. 그래도 전라도 땅에 사는 덕에 매생이를 맛보니, 역시 시집을 잘 온 듯하다! ㅎㅎㅎ~
**으~~~ 요 페이퍼 쓰다가 고등어 구이를 새까맣게 태웠다. 알라딘 폐인의 변명: "알라딘~너 때문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