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학창시절 읽었던 에세이에 '실반지'에 관한 짧은 글이 있었다. '하얀길' '아카시아' 등을 쓴 '신지식'님이었다 기억하지만 정확한지는 모르겠다.
내가 기억하는 '실반지'는 이런 내용이다.
결혼반지도 잘 끼지 않는 젊은 여인이 언제나 실반지를 끼고 있었다. 남편은 무슨 사연있는 반지일까 싶어 자꾸만 물어봐도 아내는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움만 탈 뿐 입을 열지 않았다. 이에 남편의 궁금증과 호기심은 더욱 깊어져서, 첫사랑과 관계된 추억의 반지일까 의심하며 왜 말을 못하냐~ 추궁하여 급기야 부부싸움에 이른다. 친정어머니께 온 여인은 남편이 싫어하니, 이제 그만 반지를 빼야겠다며 어머니께 맡긴다. 그 실반지의 사연은 초경을 치룬 딸에게 어머니가 해 주신 사랑의 징표였다.
예전에는 월경을 한다는 것이 부끄러워 행여 누가 알세라 얼마나 가슴 졸였던 일이던가......
내가 여고때 이 글을 읽으며 이 다음 엄마가 되었을 때, 우리 딸이 초경을 맞으면 실반지를 해 줘야지 생각했었다. 그 글을 읽은지 20년도 더 흘러 2002년 1월 25일 드디어 우리 큰 딸이 초경을 맞았다. 초등 6학년이 끝나가는 무렵에, 하하하~~~~~
쑥스러운 아빠가 케익을 사오고, 속 옷 선물도 준비하여 축하 파티를 열었다. 엄마가 될 수 있는 당당한 여자로 거듭나는거라며, 구성애씨의 조언처럼 우린 한껏 띄워주며 축하를 했다. 그때 열 살이 되던 아들녀석은 '거시기'를 알고 있어 킥킥거리니, 우린 엄숙한 분위기를 만들고 짧은 훈시를 했다. "이제 누나는 어른이 되어가는 거니까, 함부로 대하거나 놀려서는 안 되는 자랑스런 일"이라고. 그때 일곱 살이던 막내 민경이는 뭔지 모르니까 눈만 반짝거리며, 엄마 말이 빨리 끝나 케익 먹기만 기다렸다. ^^ 다섯 식구가 둘러앉아 기도를 하고, 촛불을 불어 끈 후에 케익을 맛나게 먹었었다. 그리고 동네 서울금방에서 거금 2만원을 주고 맞춘 18K 반돈 실반지에 2002년 1월 25일 날짜를 새겨 선물했었다.
홈페이지에 올렸던 기록을 보면 2004년 3월 열 살이 된 막내가 언니가 빌려주었다면서 그 실반지를 끼고 있었다. 이제는 '거시기'가 무언지 알기에 반지의 사연을 말해 주었고, 이 다음 너에게도 실반지를 해 줄거라고 말했다. 아이는 행복한 표정을 지었고... 우리 큰딸이 실반지를 끼고 다니지는 않지만, 먼 훗날 초경에 대한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하리라 생각한다.
민경이는 성숙도가 빠른지 5학년 되던 2006년 3월에 바로 초경을 하게 되었는데, 식구들이 아는 걸 부끄러워해서 엄마랑 둘이만 알고 덮었다. 축하파티나 선물도 나중에 해 달라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그냥 저냥 지나게 되었다. 이제 중학교에 가니까 어떤 형태로든 의미를 담아 마무리를 해야할 일이다. 하지만, 민경이는 아무것도 안 해줘도 된다며 오늘도 거부한다.
요 페이퍼를 쓰면서 큰딸에게 확인하니 잃어버렸다고 한다. A형 성격상 소중하게 잘 간직해 놓고 못 찾는게 아닐까 생각한다며 방구석 어딘가에 있지 않겠냐고.......17년째 사는 이 집에서 이사간다면 나올지도 모르겠다. 음, 큰딸이랑 막내랑 세트로 실반지를 다시 해 줄까? ^^
아~~~~~ 요즘 딸 없는 사람도 많은데, 난 실반지 해 줄 딸이 둘이나 있어 행복하다. 흠, 딸 없는 사람들은 이런 마음 모를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