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 열린책들 세계문학 2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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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도 전에 '조르바' 욕부터 들었던 책이라서 읽기를 망설였던 책이었어요.

그래도 많은 분들이 인생 책으로 여기셔서 이야기하셨고, 저 또한 이 책이 저희 집에 떡하니 버티고 있어서 이번이 기회다 생각하고 읽어봤습니다.


이 책을 간단히 말하자면, 너무나도 다른 두 인물이 만나서, 함께 사업을 하고 그리고 각자 자신의 길을 찾아가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여기선 나와 조르바. 캐릭터가 확실한 인물 둘이 나오죠. 어쩌면 조르바를 만나면서 '나'라는 사람을 새롭게 알아가고 찾아가는 성장기와도 같은 책이라고 볼 수도 있겠어요.


책을 읽다 보면요. 등장인물을 보면서 '어떤 인물이 나와 더 가까울까?' 생각해 보게 되잖아요. 저는 '나'에 더 가까운 사람이에요. 아마 책을 읽으시는 분들이라면 '나'에 많이들 가까우시지 않을까 싶어요.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라고 볼 순 없지만, 그래도 책을 좋아했고요. 책의 유익함에 대해서는 여기저기서 너무나도 많이 들었어요. 책을 안 읽은 상황보다는 책을 읽는 것이 제게 훨씬 더 나은 환경과 생각을 줄 거란 기대를 갖고 여태껏 책을 읽었죠.


그런데 인생을 살다 보니 책이 아니어도 성숙하고, 지혜로운 분들이 있으시더라고요. '책이 아니어도 이런 분이 있을 수 있다니?' 책에 모든 것이 있다며, 책에 집착해왔던 제가 어땠겠어요? 그런 분들의 존재(?) 자체가 되려 충격이었어요. 조르바를 바라보는 화자인 '나'가 딱 저의 모습 같았어요. 제게는 없는 부분들이 조르바에게 있어서 신기하고, 그런 분들의 삶의 지혜와 새로운 면모들을 봤으니 제게는 신세계를 발견한 것과 같은 거였겠죠. 그런 분들을 동경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조르바가 그러죠?

"나는 버찌에 미쳐있었어요. ... 밤이고 낮이고 나는 버찌 생각만 했지요. 입에 군침이 도는 게, 아, 미치겠습디다. ... 어쨋든 나는 버찌가 날 데리고 논다는 생각이 들어 속이 상했어요. ... 도랑에 숨어 먹기 시작했습니다. 넘어올 때까지 처넣었어요. 배가 아파오고, 구역질이 났어요. 그렇습니다, 두목, 나는 몽땅 토했어요. 그리고 그날부터 나는 버찌를 먹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 하지만 웃으면 안 돼요. 이게 사람이 자유를 얻는 도리올시다. 내 말 잘 들어요. 터질만큼 처넣는 것 이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금욕주의 같은 걸로 안 돼요, 두목. 악마를 이기려면 자기가 악마 한 마리 반은 되어야 하지 않겠어요?" p.289


조르바를 보고, 그의 스타일을 따라도 하고, 조언과 가치를 수용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또 조르바는 조르바고, 저는 저죠. 이 말을 따라 '나'가 그랬듯이 저도 제 자신을 따라 여태껏 했던 것처럼 책을 터질 만큼 제 머리에 처(?) 넣어보려고요. 언젠가 그 끝이 오지 않겠어요?^^

이 책은 지금처럼 끝까지 책으로 가라고 격려하고 안내해 주는 책 같네요.


이 책에서 제게 가장 클라이막스 같은 장면은 오르탕스 부인의 죽음이었어요. 그 어떤 책보다 '죽음'이 와닿았어요. 죽음을 대하는 주변의 모습에 씁쓸했으며, 흙으로 돌아가는 썩어져가는 육신일 수밖에 없는 최후가 서글프게 느껴졌어요.


우리는 말이죠. 흔히 주변의 '죽음'을 접하게 될 때, 죽은 이와의 이별에 대한 아쉬움과 애도가 주(主)잖아요? 그런데 여기선 죽은 이의 물건을 하나라도 탐하려고 눈치싸움을 벌이는 이들의 신경전의 긴장감, 그리고 오르탕스 부인네 닭을 잡아서 먹으려는 판이 벌어집니다. 오히려 오르탕스 부인의 죽음은 주변인들에게는 '축제'를 앞두고 있는 듯한 모습이에요. 한 생명의 무게가 고작 이것밖에 안 되는 걸까요? 시대적인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저의 입장에서만 이해한 제 한계일 수도 있겠지만 충격이었어요.


또한, 한 사람이 죽으면 사후 처리되어 단정한 옷을 입은 모습이 아닙니다. 화장된 후 유골함에 담긴 모습도 아니에요. 구더기가 넘실거리고 파리가 꼬이며 악취로 진동하는 모습일 수도 있어요. "죽고 싶지 않아!"를 외치며, 아픔에 괴로워하는 최후를 맞이할 수도 있고요. 생기 돋고 팽팽했던 탄력이 사라진 죽은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이 꺼져버린 듯한 모습일 수 있어요. 중간중간 등장하는 오르탕스 부인의 최후 모습을 보며,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에게서 이런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겠구나 싶어서 마음이 저렸습니다.


드디어 이 책을 읽어봤구나!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엄청나게 뿌듯합니다.

그리고 많이들 욕하시는 포인트 잘 알 것 같아요. '여성'이란 존재가 남성 앞에 한없이 의존적으로 보였고, 여성은 남성들이 갖고 있는 많디많은 도구 중 하나로밖에 여겨지지 않았으니까요. '당시엔 뭐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어갔습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가는 내용들도 군데군데 많기도 했어요.

그래도 조르바의 자유로운 삶의 태도, 어쩌면 제게는 없어서 어느 정도 배울만한 사고방식, 조르바답게 우여곡절 끝에 인생의 빅데이터를 쌓아 해석한 그의 지혜가 있어서 이 책은 몇 번이고 재독해보고 싶은 책입니다. 재독 후엔 지금보다 이 책을 더 사랑하게 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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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3-06-01 20: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읽었습니다 여성형 조르바에 관한 소설도 나오면 좋겠습니다 이 달 잘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렛잇고 2023-06-02 09:09   좋아요 1 | URL
서곡님 안녕하세요^^ 여성형조르바라니!! 굉장히 신박한 소설이겠어요. 서곡님 댓글 덕에 막혔던 생각이 뻥뚫리는 느낌이네요.^^ 서곡님의 6월 한달의 시작도 응원하겠습니다. ^^

서곡 2023-06-02 09: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렛잇고님 안녕하세요 답글 감사합니다 ㅎㅎ 뻥 뚫리셨다니 시원합니다 ㅋㅋ 이 달 지나면 올 상반기도 가네요 렛잇고 렛잇고!!!! 오늘 잘 보내십시오 저도 응원합니다 ^--^
 
썬킴의 거침없는 중국사 - 신화시대부터 청나라까지 영화처럼 읽는 중국 역사 이야기 썬킴의 거침없는 역사
썬킴 지음 / 지식의숲(넥서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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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가 이렇게 깔끔하게 재밌고 쉽게 전달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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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산 - 이제는 안다. 힘들어서 좋았다는 걸 아무튼 시리즈 29
장보영 지음 / 코난북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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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측근으로 두고, 최근 산에도 오르다 보니 이 책이 눈에 띄었다.

산을 타본 이들의 장비를 빌려서 (동네더라도) 높다는 산에 올라가 보니, 나 또한 제대로 된 산을 타본 듯 이 책이 읽고 싶어졌다.


출판사에서 일하던 저자는 초반엔 열정을 갖고 일하다가 점차 그 열정이 사그라드는 것을 발견한다. 그래서 이래저래 이유를 찾다가 결국 찾은 게 산이었다. 산 때문에 매 주말을 등산하는 데 썼고, 일하면서도 온통 산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그러다가 '산'과 관련된 잡지사 기자로 일하면서 산에 대한 애정을 쏟게 된다.


산을 사랑하게 된 과정과 등산에 이어 산악 마라톤까지 도전하는 모습들을 보며, 나 같은 일반인들은 몰랐던 산의 이야기를 알게 되는 재미가 있다. 종합운동장에 그렇게 줄을 지어 서있던 차가 산악인들의 버스였다는 걸 이제서야 알았다. 각 대학에 그렇게 산악부가 존재했다는 것도. '비박'이라는 단어도 이 책에서 알았다. 요가복이나 운동복으로 산을 다니며 등산복으로 쫙 빼입은 사람들을 볼 때, 오버스럽게 여긴 나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등산복과 장비의 필요성을 조금은 알게 됐다. 우리가 흔히 아는 등산 브랜드들의 대부분이 한국에 본사가 있다니!! 조금이지만 알수록 이거 흥미롭네!!


깜깜한 산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전하고 싶은 말도 많고 보여주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전파가 터지지 않으니 핸드폰은 무용지물. 저녁 8시도 되지 않았는데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그 자리의 모두가 취침에 들어갔다. 나 또한 꾸물거리며 침낭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계획에도 없었던 생애 첫 비박이었다. p.23


...여름 산, 가을 산은 신축성 좋은 추리닝 정도로도 충분히 소화할 만했다. 하지만 겨울 산은 달랐다. 생애 첫 설산이었던 강원도 강릉 괘방산에 솜 점퍼와 코듀로이 바지를 입고 올랐다가 호되게 당한 이후로 괜찮은 등산복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솜 점퍼와 코듀로이 바지는 산을 오르는 동안 내가 흘린 땀을 전부 흡수해버렸고, 옷은 이내 차갑게 식어 얼어버렸다. 하마터면 저체온증에 걸릴 뻔했다. p.87


한국 산은 세계 등산 브랜드의 전시장이라 할만했다. 그리고 마무트, 파타고니아, 라푸마, 고어텍스 같은 아웃도어 시장에서 손꼽히는 기업의 경영자들이 직접 방한할 만큼 큰 시장이었다. 시장 규모가 커진 만큼 고산 원정대에 대한 브랜드들의 지원과 후원도 과감해졌다. 제품의 우수함을 입증하고 홍보해 줄 모델로는 산악인이 재격이었다. ...

흥미로운 건 히말라야나 알프스 같은 고산에서도 끄떡없는 이 고기능성 의류와 신발이 국내 브랜드의 제품이라는 사실이다. 블랙야크, K2, 코오롱, 네파, 국내 매출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등산 브랜드는 한국에 본사가 있었다. 글로벌 브랜드 노스페이스가 업계 부동의 1위를 유지할 수 있는 요인은 해외 수입 라인이 아닌 국내 생산라인에 있었다. 체인젠 크램폰으로 유명한 한국 브랜드 스노우라인과 부산 사상구에 본사가 있는 등산화 전문 브랜드 캠프란인은 뛰어난 품질 덕분에 제작 기술과 일부 제품을 해외 시장에 수출하기도 했다. p.89


어떤 주제든 그렇지만, '산'은 인생을 참 많이도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왜 산에 오르는지, 이 산을 계속 올라야 하는지, 지금의 이 길을 계속 가야하는지 저자가 자신에게 묻고 또 묻는 질문이 내 자신에게도 주어지는 질문 같았다.


그동안 수많은 계획 아래 내가 가진 능력치와 한계치를 가늠하며 리스크가 적은 쪽에, 가능성이 좀 더 기우는 쪽에, 좀 더 안전한 쪽에 패를 던지고 살아왔다. 그러나 산이라는 공간에서는 그러한 저울질이 무의미하다. 내가 계획한 대로 되지 않는 것, 모든 일들이 예측한 대로 이뤄지지만은 않는 것, 그래서 좌절하고 실패하는 것이 산에서는 훨씬 더 자연스럽다. p.58


전문가가 느끼고 성취한 경험은 훌륭한 누군가의 것으로 나와는 먼 사람의 이야기로 보인다. '아무튼'에서 씌여진 주제 이야기는 그것과는 다르다. 뭔가를 알아가고, 실패하고, 몸소 체험하는 일들을 통과하며 지나온 과정이 완벽한 성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소소하면서도 그 자체로 행복을 알아가는 모습이 나랑 가장 근접하고 친근하게 다가온다. 그게 '아무튼' 시리즈만이 가진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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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이야기를 쓰는 법 -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저자 은유 추천
낸시 슬로님 애러니 지음, 방진이 옮김 / 돌베개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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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내삶의이야기를쓰는법



한 권의 책을 선택하는 이유는 저마다 때마다 다르다. 나 한사람이 읽을 책 한 권을 때도 각기 다른 이유가 있는데, 책을 읽는 이들에게 책을 읽는 이유를 말하라고 한다면 얼마나 다양할까? 하지만, 내가 이 책을 읽기로 한 이유는 딱 하나였다. 내게 '글쓰기'란 걸 알려준 네 번째 선생님이 여기에 추천사를 적으셨기 때문이다. 그냥 그 선생님의 이름이 있어서 제목도 내용도 보지 않고 읽고 싶어졌다. 나중에 보니 이 책은 '자전적 에세이' 쓰기를 다룬 책이었다. '자전적 에세이'이라니! 훌륭한 사람들이나 쓴다는 '자서전'의 다음 등급은 될 것 같아보이는 장르로, 나는 내가 쓸 거라고 절대 꿈꾸지 않는 글쓰기였다. 그래도 이 책을 읽으면 '글쓰기'의 'ㄱ'이라도 알게 되는 게 있겠지?


아래처럼 이 책은 여러가지 챕터로 자전적 글쓰기에 대한 팁을 다뤘다. 각 글마다 자신의 글을 적절히 예시로 들었고, 마지막엔 '길잡이'코너로 독자들을 글쓰기의 세계로 차근차근 안내했다.



글쓰기에 대한 책은 읽어본 적은 있다. 이렇게 분명히 장르를 정한 글쓰기 책은 처음이었다. 주제와 목표가 확실하니, 자전적 에세이는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써야 할지, 왜 써야 하는지가 분명했다.


... 진정한 자전적 에세이는 단순히 자신에게 일어난 일만을 기록하지 않는다. 그 일이 왜 일어났는지가 중요하다. 왜라는 질문을 파고들 때 당신의 이야기는 보편성을 얻는다. 그것이 우리가 자전적 에세이를 읽는 이유이기도 하다. p.15


"왜 굳이?"라고 묻는 대신 시인 숀 토머스 도허티의 답변에 귀를 기울여보자. "왜냐하면 지금 저곳에 당신의 이야기와 똑같은 모양의 상처를 지닌 누군가가 있으니까."p.16


...

일기와 자전적 서사는 뭐가 다를까? 후자에는 내면의 변화 과정과 당신이 배운 교훈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당신은 어떤 과정을 거쳐 거기에서 여기까지 왔는가? 당신은 현재 어디에 있는가? 일기는 보통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기록한다. 서사는 당신이 그 일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서술한다. 예상치 못한 장소에 떨어졌다가 어떻게 지금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가? 그런 변화의 과정을 우리에게 보여줘야 한다. p.227


번역서인지, 문화적인 차이인지 모르겠지만, 처음엔 글의 흐름을 따라가는 게 쉽지 않았다. 대마초가 합법인 문화, 이런 저런 종교적 색채가 강한 명상프로그램, 종교의식이 나왔을 땐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너무나도 솔직하고 특이한 성향을 가진 듯 보이는 저자의 글도 내겐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끝까지 읽어낸 책은 그 가치를 배신하지 않았다. (그녀가 말하는) 자전적 에세이는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를 보여주는 솔직함이 필요했다. 작가가 그렇게까지 솔직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자전적 에세이를 쓰는 법을 알려주는 동시에, 저자만의 '자전적 에세이'가 담긴 이야기이기 때문에 솔직함은 필수였던 것이다. 내가 다르다 여겨진 문화도 그가 여기까지 오게 된 과정을 보여주는 일부였다. 소극적이고 사생활침해에 예민한 우리나라에서라면 이렇게까지 다양하고 솔직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까 싶기도하다. 그녀의 솔직함은 독자들에게 글쓰기에 있어 용기를 주기도 하는 방식이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내가 신경 쓸 일이 아니다"라는 문장을 들었을 때 내 인생이 바뀌었다.

자전적 에세이를 쓸 때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하면 그로 인해 침묵하게 된다. 멈추게 된다. 구속당하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쓴 책은 평범하고 안전하고 더할 나위 없이 지루할 것이다. p.131


꼭 자서전 에세이가 아니더라도, 전반적인 글쓰기에도 도움될만한 이야기들이 많다. 글을 쓰는데 집(씽크대)을 치워야 한다는 죄책감에서 자유하게 해줬고, 자료조사에 대해 강력하게 필요성을 말해줬으며, 퇴고의 중요성, 작업실이 없어도 우리가 얼마든지 쓸 수 있다고 알려준다.


... 그러나 곧 문제의 핵심이 드러난다. 어째서 싱크대를 청소할 시간이 났지? 게다가 온 힘을 다해 아주 열정적으로 했네. 그래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 글을 쓰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야. ... 책을 쓰고 싶은가? 자전적 에세이를 완성하고 싶은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가? 깨끗한 싱크대로는 세상 사람들을 치유할 수 없다. 그러나 당신이 쓴 책으로는 그것이 가능할 수도 있다. p.38-39


당신이 아는 것들이 있다. 그런 것들에 대해 쓰라. 당신의 잠재의식이 아는 것들이 있다. 그런 것들을 믿으라. 당신이 알지 못하는 것이 아주 많다. 그런 것들에 대해 쓰기 전에는 자료조사를 하라. 아는 척할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마라. 당신이 전문가 행세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당신이 모르던 것을 그 자리에서 알게 되었다고 솔직하게 말하면 독자는 당신과 함께 뭔가를 배울 기회를 얻는다. 당신은 전문가가 아니다. 학생이다. 독자는 바보 취급당하지 않을 때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다. 당신의 약점은 독자에게 파트너가 되어달라고 제안하는 초대장이 된다. p.122


원고에서 잠시 떨어져라. 잠시 숙성될 시간을 줘야 한다. 공기와 접촉해야 한다. 공간이 필요하다. 뿌리를 내릴 시간이 필요하다. 그 뿌리가 땅속 깊이 박히도록 놓아주자. 미량의 미네랄을 찾도록 내버려두자. 당신은 지금 당신 책의 목을 조르고 있다. 당신 책은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다. 이것은 파트너십이다. 당신만의 문제가 아니다. 섹스와 마찬가지다. 두 존재가 관여하고, 그 둘 모두 보듬어주는 손길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 붓을 마구 휘두르지 마라. 팀을 이뤄 협력할 때 얼마나 더 좋은 작품이 탄생하는지 당신도 알지 않는가. p.201


현명한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다 헛소리야. 글을 쓰고 싶으면 어디서든 쓸 수 있어. 당신도 알잖아. 내가 읽은 당신의 가장 뛰어난 글들은 대부분 마룻바닥에서, 두 아이가 당신을 올라타는 와중에 빨래를 개면서 쓴 거였어."

작업실이 없어도 글을 쓸 수 있다. 만약 작업실이 없어서 글을 못 쓴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말로는 쓰고 싶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쓰지 않는 자기 자신을 합리화하려는 궁색한 변명일 따름이다.

그러니 다시 한번 말하겠다. 작업실이 없어도 글을 쓸 수 있다. 글을 쓰는 데 필요한 것은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과 자기 절제력뿐이다. p.291


나의 관점 혹은 다른 이의 관점에서 쓸 수 있다는 것, 돌려가며 쓰거나 직접적으로 쓰는 방식 등('기타 등등' 쓰지 말랬는데^^:) 새로운 글쓰기의 방식도 알게 됐다. 글 마지막에 써보라고 권하는 '길잡이'는 정말이지, 읽으면서 감탄했다. '내가 지나친 가장 아팠던 그 과정을, 부분을 어떻게 쓰라고 할 수 있는 거지?' 아마도 아픔과 고난의 과정을 고스란히 겪어 글로써 극복한 저자였기에 가능한 '길잡이' 코너였다. 내 인생을 스치고 지나간 아픔과 상처, 그리고 아직 해결되지 않은 여러가지 문제들이 떠올랐다. 길잡이대로 쓰면서 나 자신의 인생을 관통하고 나면, 글쓰기 뿐 아니라 자기 치유와 자기애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실제로 저자를 만난다면, 에너지가 넘치면서도 솔직한 '맏언니'스러운 강연자가 아닐까 상상했다. 저자의 화끈한 성격만큼이나 다채롭고 생생하며 감각을 자극하는 글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대단한 사람이 아닌데?', '내가 왜 그렇게까지 솔직하게 써야 하지?'

자전적 에세이는 내게 그런 거부감과 부담감을 주는 장르였다. 하지만, 글쓰기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 아래의 글처럼 우리 안에 뚫고 나올 수 밖에 없는 보라색 꽃이 내 안에도 있음을 알고, 웅크리기를 거부하는 시도라는 것을 알았다. 나를 위해 빛을 향해 뻗어가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아주 작지만 나의 용기있는 시도가 세상에는 또 하나의 빛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굉장히 희망적이었다.


한번은 뉴욕에서 인파에 섞여 길을 걷다가 문득 아래를 내려다봤다. 아주 작은 보라색 꽃이 시멘트를 뚫고 나와 있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저 꽃을 밟았을까? 그런데도 꽃은 빛을 향해 뻗어나갔다. 사람들이 어떤 것에서 살아남았는지 그들의 이야기를 꽤 오랫동안 들은 덕분에 나는 사람들이 시멘트를 뚫고 나온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들은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기를 거부한다. 이야기 전달자인 우리는 빛을 향해 뻗어나가는 법을 배운 생존자들이다. 우리는 모두 작은 보라색 꽃이다. 자전적 에세이를 쓰면서 당신은 아주 작은 빛 조각을 향해 뻗어나간다.p.234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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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이야기를 쓰는 법 -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저자 은유 추천
낸시 슬로님 애러니 지음, 방진이 옮김 / 돌베개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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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토로하는 글쓰기의 최고를 본 것 같아요. 거침없이 직진하는 듯하지만 고통은 충분히 헤아리는 글쓰기 과정을 지나는 듯 했습니다. 저자의 길잡이대로 써보면 굉장한 자전적 에세이를 한권 써낼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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