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짧음에 관하여
딘 리클스 지음, 허윤정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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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삶을 말하기 위해 언급되어야만하는 단어는 바로 ‘죽음’일 것이다. 죽음이 없다면 삶은 끝나지 않을테고 우리는 무한한 삶에 미련따위 두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생은 유한하다. 끝마침이 있기에 아쉬움과 후회가 늘 따라온다. 결국 ‘죽음’, 끝이 있기에 숨 쉬고 살아가는 지금이 소중하다.

<인생의 짧음에 관하여> 독서를 하며, ‘당연한 얘기지!’ 싶을 때도 있었지만 괜스레 뜨끔해지는 순간이 참 많았다. 삶이 유한함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이를 진정으로 새기고 순간순간을 꾹꾹 눌러 살아가는 사람은 사실 많지 않다. 그러니 눈을 흘기며 당연히 아는 얘기라고 말하기가 껄끄러웠던 것 같다.

‘소년’과 ‘노인’ 삶을 비유하기에 적절했다. 소년과 노인의 그 사이를 우리는 살아야한다. 한 번 뿐인 인생 매우 현명하게 말이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하는 행동이 미래의 현재 순간들에 담길 내용을 어느 정도 결정할 것이다.’ 세네카의 글을 여러 번 새겨 보았다.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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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생트의 정원 문지 스펙트럼
앙리 보스코 지음, 정영란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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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꾸듯 아름답다. 보리솔의 풍경을 묘사하는 모든 문장은 목가적이고 티없이 순수하며 맑다. 아름다운 문장을 여러 번 읽다보면 어느 순간 마을의 풍경 속 인자한 미소가 만연한 게리통 내외의 모습이 저절로 그려진다. 태초의 에덴동산, 지상의 낙원은 달리 있는 것이 아니었다.

게리통 내외는 성탄절 밤에 버려진 펠리시엔을 사랑으로 돌본다. 마치 영혼을 잃은 듯한 공허한 표정의 아이는 게리통의 죽음으로 메장과 시드니의 보살핌을 받게 되며 조금씩 변화한다. 신비로운 소녀, 펠리시엔이 바로 마법사에게 납치되었던 ‘이아생트’였고 기억과 영혼까지 모두 잃은 후 운명처럼 보리솔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된다.

사랑하는 이들과 소박하게 살아가는 삶, 생명으로 가득한 풍경과 충만하게 깃든 신뢰와 애정은 한 영혼을 구원한다. 마치 시든 꽃을 정성 다해 돌보면 서서히 본래의 생기를 찾듯이. ‘이아생트의 정원’은 영혼을 잃은 그녀의 마음이며, 다정한 이들과 함께하는 너른 대지이기도 하다. 따스한 애정으로 이아생트의 정원에 색색의 꽃들이 가득한 빛의 공간이 되기까지의 변화가 진정 마법이 아닐까.

앙리 보스코의 글은 살아 움직인다. 생동감 넘치는 문장들에 몰두하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한 번도 닿은 적 없는 프로방스, 평화로운 신뢰로 가득한 이 곳에 머무는 나를 발견한다. 선한 사람들이 머무는 정겨운 풍경에 마음을 여러 번 뻬앗겼다.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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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패거리
필립 로스 지음, 김승욱 옮김 / 비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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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풍자소설

이 소설을 더욱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국 전 대통령 ‘리처드 닉슨’의 임기를 돌아봐야한다. 당시 닉슨 행정부는 베트남전에 반대한 민주당을 저지하기 위해 각종 불법을 저지르는데, 이를 워터게이트 사건이라하며 ‘닉슨’은 미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한 임기 중 사퇴한 대통령이 되었다. 필립 로스는 이 무능하고 국민들을 기만한 닉슨 행정부를 풍자하는 소설 <우리패거리>를 출간했다.

제목부터가 Our Gang이다. 대통령과 그 행정부를 표현한 방식이라 생각된다. 하는 짓들이 도덕이나 책임과는 거리가 먼 Gang처럼 생각되기 때문이지 않을까. 소설에서 등장하는 대통령 ‘트리키(Tricky)’는 사기꾼, 국방장관 ‘라드(Lard)’는 돼지기름을 뜻한다. 한 치의 망설임도 보이지 않는 저격인 셈이다.

글을 읽다보면 블랙코미디가 떠오른다. 대통령과 관계자들의 대화가 어찌나 황당하고 어이없는지 웃음이 푸쉬쉬 새어나온다. 대화체로 진행되는 글은 마치 지근거리에서 그들의 대화를 훔쳐 듣는 느낌인데, 어려운 이야기는 없어 빨리 읽힌다. 다만 ‘내가 읽은 게 맞아?’ 싶을 정도로 대화의 질이 낮다.

‘낙태’를 인구통제수단으로 규정하고 태아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겠다는 ‘트리키’ 대통령을 향한 반감이 거세지며 대책회의를 연다. 체포부터 총살, 독가스 등 단순하고 폭력적인 대화가 오간다. 소설은 끝을 향해갈수록 그들의 만행은 한층 더 무모하며 우습다. 속시원하게 닉슨 행정부의 부패를 까발리는 ‘필립 로스’의 소설은 통쾌함이 있다.

🔖이 나라가 위대해지는 데 필요한 것이 바로 대량의 무지입니다.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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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멜론 슈거에서
리처드 브라우티건 지음, 최승자 옮김 / 비채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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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을 위한 동화. 우화. 같은 것들이 떠올랐다. 워터멜론 슈거로 만들어진 마을, ‘아이디아뜨’의 태양은 요일에 따라 빛이 바뀐다. 월요일은 붉은 워터멜론날, 목요일은 검은색의 소리 없는 워터멜론 날로 소리 내지 않는 물건을 만드는데 안성맞춤이다. 띠지의 그림과 같이 폭신하고 부드러운 솜사탕 구름이 떠다닐 것만 같은 ‘아이디아뜨’ 에서 발생하는 일들은 동화의 순수함과는 거리가 멀다.

잊힌 작품과 인보일 일당들. 잊힌 작품으로 만들어 낸 위스키를 먹는 그들은 거의 늘 취해있다. 그리고 잊힌 작품에 마음을 빼앗겨 매일 그 곳으로 가는 마거릿. 잊힌 작품이 시사하는 바가 분명히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풍자적 메시지가 있지만 아이디아뜨란 가상의 마을을 탐색하는 것만으로도 꽤 즐거운 독서였다.

🔖여기는 잊힌 작품 입구입니다.
조심하십시오. 당신은 길을 잃을지도 모릅니다.

시적 문체는 독자로 하여금 소설의 상상력을 최대치로 이끌어준다. 마음껏 상상하고 나만의 해석으로 이 소설을 바라본다면 더 없이 독서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도서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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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영사 문지 스펙트럼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최윤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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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무더위의 인도 켈케타, 곧 다가오는 계절풍과 철책으로 분리된 사람들. 뒤라스의 문장은 시가 그렇듯 음악적 요소를 지녔고 질식할듯 단조롭고 외로운 선율을 떠올린다. 분절된 문장은 멈춰 세우고 분절된 철책은 넘나들게 하며, 그녀의글은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애쓰면서도 그 과정의 몰입과 흥미를 놓치지 않는 미로와도 같았다. 자주 길을 잃었고 되돌아갔으며, 그 때마다 새로운 이야기를 만났다.

그 동안 읽은 모든 책을 통틀어 인물을 탐구하는데 전체 페이지를 할애한 적은 처음이었다. 끊임없이 궁금했다. 복중 태아에게 잠식당하는 한 소녀의 끝없이 이어지는 걸음의 이유가. 결국 혼자 남겨져 문둥병자들 속에 뒤엉켜 이름조차 부여되지 못한 채 본능만 남겨진 자신의 삶을. 또한, 철책 안 사람들에게 외면받는 프랑스 부영사의 지난 날과 그만의 광기, 울부짖음에 대해. 그리고 사랑을 말하는 그를.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떻게 서로에게 엮이는지, 도대체 어떤 인간인지 알기 위해 모든 페이지를 탐독했다.

철책 안밖의 풍경은 극명하다. 걸인과 문둥병자들이 머무는 철책 밖과 보호를 받으며 철책 안에 머무는 백인들은 같은 땅을 밟고 있지만 철저하게 분리되어 다른 삶을 산다. 철책 안 부영사와 철책 밖 소녀의 영역은 다를지라도 자기 삶의 무력감, 공허함, 통제가 어려운 본능(사랑과 식욕)과 같은 점에서 유사하다. 부영사가 사랑에 빠진 대사의 부인도 마찬가지다. 위 인물들은 대체로 신경쓰지 않는다. 내버려둔다. 외로움과 슬픔에 세워진 자신을 알지 못한다. 혹은 알려하지 않는다.

카키색 군복의 보초들이 보호하는 안-마리와 사람들의 두려운 눈길을 받는 고독한 부영사, 불임이 된 소녀였던 이름 없는그녀까지도 애처로웠다. 부영사가 그녀를 슬픔으로 이해할 때, 나는 부영사를 슬픔으로 바라봤다.

“나는 인생을 가볍게 생각해요.” 그녀는 손을 빼내려도 애쓴다. “그것이 내가 하고 있는 일이에요. 모든 사람이 옳아요. 내게는 모든 사람이 완전히, 온전히 옳아요.” (p164)

“부영사의 인도는 고통스러운 인도인가요?”
“아니요, 그는 그렇지조차 못해요.”
“그렇다면, 그 대신 그에게 무엇이 있을까요?”
“아무것도.” (p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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