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때에도 인간이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은, 가령 세계의 종언이 명백하더라도 자기는 오늘 사과나무를 심는다는 것이다." 게오르규 -25시-
며칠 전, 한 수험생의 자살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녀가 유서에 남긴 '어머니를 위로해 드려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죄송하다' '인생의 낙오자란 말을 듣게 될까 두렵다'라는 말이 송곳처럼 가슴에 박힙니다.
그녀의 절망이 얼마나 깊었기에 스무 살 꽃다운 나이에 생을 접어야만 했을까요. 시험 점수가 잘 안나왔다고 부모님께 미안해하던 그 착하고 여린 마음이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합니다.
이 죽음의 일차적 원인은 언론에 있는 듯이 보입니다.
모두들 성적이 올랐다는 성급한 보도가 그녀를 외롭고 고통스럽게 만들었겠지요.
더 큰 책임은 수능시험 한번으로 대학을 결정짓고 그 대학에 따라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우리 사회의 시대착오적 행태에 있습니다. 능력보다 학벌이, 개인보다 배경이 더 중요하다고 바라보는 일부의 지독한 '사시(斜視)' 말입니다.
하지만 모든 책임을 다른 곳에 모두 돌리고 나면 인간이라는 존재는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때때로 죽음을 생각합니다. 가난 때문에, 사랑 때문에, 취업 때문에, 굴욕 때문에…. 그러나 삶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그 끈을 놓아버리는 것만큼 비겁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허약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공부를 못하고 대학에 못 간다고 해서 낙오자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목숨을 걸만한 일은 더더욱 아닙니다. 인생의 거대한 전쟁에서 단 한 번의 전투에서 졌을 뿐입니다. 창공의 새들도 처음엔 날기 위해 몇 번이고 땅에 머리를 처박았겠지요.
만약 추락의 두려움 때문에 날갯짓을 포기한다면 그 새는 영원히 날 수 없을 것입니다. 시련은 우리를 단련시키는 기회입니다. 그 칠흑 같은 절망을 이겨내고 새처럼 새롭게 도전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자라나는 아이들은 지금과 같은 고민 없이 미래를 준비할 수 있게 사회도 바꾸어야겠지요. 소녀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