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선하게 살기 위해 우리는 추수에 대한 희망 없이 선의 씨앗을 뿌리는 법을, 희망 없이 인간을 사랑하는 법을, 그리고 보상에 대한 기대 없이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다하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는 그런 비극적 세계관 속에서도 언제나 기뻐하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김상봉 호모에티쿠스)
우리사회에서 착하다는 말이 칭찬이라기보다는 비난으로 쓰일 때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뭔가 모자란 듯 하고 자기 자신을 챙길 줄 모르는 소위 '순둥이'들을 부르는 단어가 된 것 같습니다. 특히 학생들이나 젊은 층에서는 누가 자신을 착하다고 하면 모욕을 느낄 것도 같습니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낙오되기 똑 참하다는 말처럼 들리니까요.
게다가 착하다는 말에는 '순종'이라는 그림자가 드리워 있습니다. 부모님 말씀을 잘 듣고, 선생님 말씀을 잘 따르는 '착한 아이'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몇 해 전 에 출간된 '착한 여자 콤플렉스'라는 책도 떠오릅니다. 그러나 착하다는 말이 남의 강요를 받아들이는 비굴한 복종과 같은 말일까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단어가 오염된 탓이겠지요. 그럼 말의 바른 의미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착하 게 사는 것일까요.
김상봉 교수의 말을 빌면 우리가 선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에 대한 참된 긍지가 필요합니다. 스스로가 비열하고 천박한 것을 넘어 더욱더 높은 정신적 이상을 향해 상승하려는 열망 말입니다.
그 다음엔 타인의 고통에 대해 관심을 갖아야 하겠지요. 남의 아픔과 슬픔에 대해 연민과 동정심을 갖지 않으면 우리의 긍지는 공허한 자만심에 불과하거나 한낱 정신의 허영으로 전락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론 우리 모두의 삶에 대한 관심입니다. 보편에 대한 고려 없이 너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는다면 자기만족에 그치기 쉽기 때문입니다.
착하게 산다는 것. 즉 윤리적으로 산다는 건 어쩌면 지금처럼 제동장치가 고장난 무한경쟁 사회에서는 안 어울리는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모두가 돈과 명예나 쾌락을 좇아 경주마처럼 달려간다면 우리의 메마른 삶이 어떻게 나아질 수 있겠습니까. 바쁘고 힘들더라도 따뜻한 눈으로 세상을 보길 바랍니다.
by.. 배원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