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 배가 나와 무척 고생입니다.
먹고 사는 일이 앉아서 컴퓨터와 독대하는 일이다 보니
그것때문에 나오기도 하고 운동을 싫어하는 제 성격때문에도
그렇고 나오는 살을 막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특히, 배부분이 볼록하게 나와 더욱 안 좋게 보여서 심란합니다.
거기다 TV에서는 연일 몸짱 연예인들의 독무대인냥 인기를 끌고 
있고, 어떤 프로에서는 다이어트, 체질개선등을 통한 살빼기,
몸짱만들기 코너가 있지 않나! (ㅜㅜ)
살찌고 못 생긴 사람들은 존재지 못하는 세상이니 모르겠습니다. 

세상이 쭉빠진 아스팔트 길이기보다는 때론
울뚱불뚱한 자갈길, 질퍼덕한 진흙길이 더 그리운 것처럼
미끈하고, 잘생긴 사람만 가득한 세상보다는 온갖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 세상이 더 아름다우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제 자위적인 생각인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세상이 외모에
지나쳐 사람의 본마음마저 잊혀지게 하는 것 아닌지?
저부터 그렇지 않도록 노력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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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렸을 때 어른이 되면

지금의 나와는 다를 것이라 생각했다.

또, 나이가 들면 학교에 다니고, 군대를 가고

일정한 나이가 되면 결혼을 하고,

또 시간이 지나면 한 가족의 가장이 되리라 생각했다.

 

그냥 그것이 흐르는 물처럼 그냥 그렇케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되었다. 너무나 심한 답답함과 고통속에서...

내가 바랬던 꿈들도, 누군가와 만나 결혼한다는 것도

원하는 직장과 희망찬 가정을 가꾸는 것조차

하나하나가 어려운 문제를 푸는 아이처럼

내겐 너무나 힘들다.

 

그리고, 어린시절의 난 지금의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세상에 묻어가고 잃어버렸던 꿈과 희망들은

버려진 내 영혼의 끄트머리처럼 남아 덧없은

웃음을 짓게 만든다.

 

얻는 것보다 잃어버린 것이 많은 삶속에서

초점을 어디로 잡아야 하는지?

어떻게 사는 것이 제대로 사는 것인가?라는 막연한 질문들에

하루 종일 답답함과 걱정스러움에 시간을 보낼 뿐

이렇게 하루는 지나고 있다.

내 나이도 그 시간만큼 늙어가고 있다.

 

나이가 든다는 것보다 이렇게 멍하니

있는 나를 탓하게 만드는

우울한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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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면 떨어지는 낙엽들은 보면 저도 모르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여름날 화창한 자태로 나뭇가지 사이로 매달려 있다가 어느덧 가을이 되면서 노랗게 물들러니 이내 땅바닥에 떨어져 낙엽이 되고 이내 땅으로 돌아가는 것이 어찌 인간사의 굴곡들을 표현하는 것 같아 경건해질 때가 있습니다. 

우리도 세상이라는 나무에 잎을 피우다가 시간이 지나가면서 늙어가게 되고 이내 죽음을 맞이하고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집니다. 하지만, 세상이라는 나무는 다시 여름이 되면 우리의 빈자리에 다시 세상을 이끌어 갈 잎들을 꽃피웁니다.

그러나, 그런 나무도 양분없이는 그 모습이 계속적으로 유지할 수 없듯이 우리가 세상에 해를 끼치는 요소가 가진 양분을 남긴다면 나무는 더 이상 그 모습을 그대로 유지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렇듯 우린 세상이라는 나무에 귀중한 양분이 되어 더 나은 모습을 간직한 나무가 되도록 하는 것이 짧지만 긴 우리의 삶의 큰 목적이라고 생각됩니다.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오래토록 세상이라는 나무가 그  아름다움과 번영스러움을 간직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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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분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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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연금술사'로 큰 반향을 일으킨 그의 신작은 만난다는 자체에 기쁨과 함께 어떤 식의 이야기로 그가  우리를 즐겁고, 신비한 세계로  인도할 것인가라는 호기심에 이 책을 보게 되었다. 처음 제목에서 느껴졌던 느낌은 인간사회에서 종족의 보존과 쾌락의 요소로서 인정되는 성이 그 자체적인 자율성과 독립성을 상실한 채 숨겨야 할 부끄러움처럼 치부되어지는 현실속에서 그가 11분이라는 성교시 느껴지는 쾌감의 유지시간을 테마로 해서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할 것인가가 무척이나 궁금했다.

특히, 이 책의 여주인공이 이름 자체도 성모 마리아의 이름을 도용한 듯한 마리아이기에 작가 스스로 음지에서 논의되는 것으로 치부되었던 성에 양지에서 고결한 이미지로 이용되는 그 이름을 사용했다는 것 자체가 성에 대한 자율적 사고와 현실적 인식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언뜻 보면, 브라질 어느 시골마을의 촌티나는 시골아이가 처녀로서 성장하면서 느끼게 되는 현실과 성장 과정속에서 나타나는 사랑과 성에 대한 감정적인 인식의 변화등을 보이는 정도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그런 인식에서 벗어나 우리에게 남성위주 사회속에서 여성의 성적 권리는 박탈되고 잘못 판단되고 있는 현실 그리고 단순히 성교시 삽입에 의한 오르가즘이 아닌 영혼과 육체가 하나되는 진정한 의미로서 성교의 의미를 밝히려는 시도가 책을 읽는 내내 독보였다.  특히, 인간이 지나친 성에 대한 집착과 욕망으로 인해 가학적인 사랑 즉 사디즘, 마조히즘에 빠져 성이 주체를 상실하고 마약과 같이 영혼을 갉아먹는 도구로서 인식되면서 문란화되는 현실에 대한 자각과 비판도 잊지 않았다. 

또한, 과거에 성에 대한 종속적 객체 인식을 대표하는 인물로서 하이디라는 도서관 사서를 보여주고 있다. 남편에 이끌려 억지로 느낌도 없는 성교에 대한 느낌을 강요받고, 스스로가 원하는 쾌락을 찾으려 하지 않은 그녀가 마리아와의 숱한 만남과 토론속에서 자신이 얼마나 잘못된 성생활에 빠져있었던 것은 아닌가에 대해 자각하는 대목에서는 고개가 끄덕여졌다.

한 여인이 유명한 연예인을 만들어 주겠다는 로제라는 스위스인의 사탕발림에 이끌려 나이트클럽 댄서로 전락하고 그 과정에서 의식주의 결핍에 이끌려 시작한 창녀생활속에서 순수한 어린시절 만나지 못했던 사랑을 랄프라는 모든 면에서 완력하지만 욕구불만과 정체성에 흔들렸던 남자와의 만남을 통해 진정한 성과 사랑을 이룬다는 내용은 다소 자위적으로 동화적이기 하지만, 작가가 이 과정을 전개하는 과정속에서 보여지는 심리적, 성적 변화의 미세한 캐치와 이야기 전개하는 방식은 그만의 장기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여자보다 더 여자를 잘 표현해 주는 그의 이번 작품은 관련 직종에 종사하는 여성과 많은 인터뷰와 만남을 통해 얻어진 소산물로써, 어찌보면 무시되고 인정되지 않았던 여성의 성에 대한 자율적 사고와 독립성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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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소리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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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아이를 가지는 못하는 여자와 IMF이후 다른 동료들과 달리 성실성과 능력을 인정받아 이직을 했지만, 그곳에서 정을 느끼지는 못하는 남편에게 언젠가부터 창틀에 집을 짓고 살게 되는 새를 발견하게 된다. 이 새의 출현은 외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내부적으로 심한 내적 갈등과 서로에 대한 지침속에 살얼음판을 걲고 있는 두사람에게 일시적 창구 역할을 하게 된다. 하지만, 계속해서 악화되는 남자의 병속에서 보여지는 두 사람의 사랑 그리고 믿음은 다시 떠나간 새들의 귀환을 그리워함을 보여준 [종소리]에서 처럼 작가 신경숙이 그려내는 인물들은 쉽게 접할 수 있고, 보여지는 사람들은 아니지만,서서히 책을 읽으면서 내면적으로 공감되고 이해된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특히, 그녀는 [우물을 들여다보다]나 [혼자 간 사람]에서처럼 불특정인에게 자신이 살아오면서 느꼈던 일과 감정들을 편지글이나 전화 통화의 수단을 통해  독백적이면서도 서로 교감될 수 있는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에 반해 [물속의 사원]처럼 한 인물의 행동을 뒤에서 카메라가 뒤따라오듯이 치밀하게 그려내기도 했다.

또한, [달의 물]처럼 주인공이 어머니, 아버지, 오빠의 세사람들의 중간적인 입장에서 감정이나 행동의 변화들을 나열하듯 늘어 놓거나 [부석사]처럼 사랑을 실패한 두 남녀가 부석사라는 원치 않는 곳을 여행하면서 느껴지는 남녀의 심리적 변화들이 그곳에 가까워지면서 합치되는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했다. 이것이외에 특징적인 것은 신경숙씨가 이 책속에서 다양한 여성의 모습을 그려내고,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말한 [종소리]처럼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여자, [우물을 들여다보다]처럼 애를 낳다 죽는 언니의 상처를 극복하려 하는 여자, [물속의 사원]처럼 어느 지하 다방 수족관에 악어를 키우면서 죽음을 준비하는 여자등등 상처입고, 번뇌에 빠진 여자들의 모습을 통해 작가가 말하려 했던 것은 무엇인지?

결핍되고 모순된 인물들의 모습이나 행동들이 이 책속에 글로써 표현되는 순간 내면적으로 이해되고 공감됨은 우리가 보지 우리에 대한 작가의 성찰이 아닐런지? 그것을 불편한 일시적 감정의 틀에서 묶어두지 말고 진정으로 내면적으로 느끼고 이해하기를 바라는 작가의 의도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석사의 부석처럼 두개의 돌이 떠 있으면서도 쓰러지지 않는 것처럼 우리와는 다른 평행적인 사고와 심리적 감정들도 결국 하나의 사회틀속에서 존재할 수 있고, 공존할 수 있음을 통해 독자에게 작가는 심리적 평안과 위로를 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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