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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블로그 ㅣ 푸른도서관 22
강미 지음 / 푸른책들 / 2007년 11월
평점 :
'겨울, 블로그'로 검색하니 뜨지 않아서 '겨울 블로그'로 검색해 리뷰를 쓴다. 검색이란 그처럼 헛점이 많다. 반점 하나로 얼마나 많은 느낌이 들고나는지를 검색엔진은 모른다. 온라인상의 커뮤니케이션이 헛점 투성이이듯이. 그리고 우리가 우리 아이들을 이해하는 방식이나 깊이가 헛점 투성이이듯이.
흰 눈을 뒤집어쓴 벗은 나무의 모습이 싸아하게 다가오는 책을 펼치며 이 작가가 구사하는 독특한 낱말의 말맛을 음미하며 읽어내려 가다가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아니, 최근 일련의 청소년 소설들을 읽으며 나는 거듭 충격을 받는다. 마치 신문 사회면을 들여다보는 듯한 착각을 하게 하는 소설들은 청소년 딸을 가진 나같은 독자들에게는 그야말로 충격이다. 이 소설들은 청소년 독자를 우회하여 정확하게 어른들에게 꽂힌다. 청소년 독자들에게는 가슴 후련한 공감이겠으나, 저자의 눈은 오히려 어른들, 기성세대를 겨냥하고 있다.
동성애와 우정 사이의 고무줄놀이를 하는 아이들, 생활수준으로 간격이 벌어져버린 아이들이 이미 달리기 경주에서 맥을 놓아버리는 모습, 가정문제와 이성문제, 성적문제로 삼중고를 겪는 아이들, 그리고 자신의 몸에 대해 방관자의 눈으로 바라보며, 상처를 아물기는커녕 짓물러 터뜨려 버리는 아이들의 모습은, 저자의 말처럼 청소년에 대한 어른들의 착각에 일침을 놓는 아픔으로 다가온다.
저자는 묻는다. '너희는 그렇지 않았더냐'고. 수십 년 전 고등학생 시절로 돌아가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이 아이들과 얼마나 같았으며, 얼마나 달랐던가를 찬찬히 생각해 본다. 시쳇말로 범생이에 가까운 모습이었을 나도 역시나 마음 속에 불만과 울분과 억울함과 경멸이 가득 차 있었다. 그랬다. 되지 않는 시를 쓰거나, 분노에 가득찬 일기를 쓰거나, 친구들과 하염없이 이야기하거나, 부모에게 대들며 그 시절을 보냈다. 돌이켜보니, 기를 쓰고 인근 도시가 아닌 서울로 대학 진학을 한 것도 집으로부터 좀 더 멀어지고자 한 이유도 섞여 있었을 듯하다.
그러니, 이해하라고? 이해한다. 인디언들이 사랑이라는 낱말과 이해라는 낱말을 따로 가지지 않고 있는 것은 이해하는 일이 사랑하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했듯이, 나는 우리 아이들의 저 생각과 행동을 이해한다. 사랑하므로. 그러나 우리가 사랑한다고 할 때는 구속이라는 의미가 어쩔 수 없이 개입한다. 돌고 돌아 제자리로 돌아오겠거니 내버려두지 못하는 구속.
모든 것은 어른의 잘못이라고 치부하더라도, 다 받아줄 수는 없는 것은 그런 마음이다. 행여 미처 못돌아올까봐. 자기도 모르게 너무 멀리 가 버릴까봐. 모든 선생님들이 그렇듯, 모든 부모들이 그렇듯 아이들의 친구같은 동반자 역할을 울며겨자먹기로 하기란 실로 어려운 노릇이다. 그게 고민이다.
나 읽기 전에 중1 딸아이에게 읽으라고 주었더니, 학교에서 읽으라는 책이 많아서 순서가 밀린다고 했다. 슬며시 그 아이에게서 거두어왔다. 좀 더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읽으라고 하고 싶어서다. <호밀밭의 파수꾼> 같은 다른 나라 책은 그렇지 않은데, 왜 주인공이 혜욱, 창우, 은호, 소희 같은 아이들이 되면 가슴이 두근거리며 겁이 나는지 모르겠다.
문장 구사나 짜임이나 혹은 독특한 낱말 구사까지 매우 흡입력 있고 완결성 있는 소설집인데, 읽는 마음이 편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