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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순아 노올자 ㅣ 신나는 책읽기 14
이상권 지음, 정지윤 그림 / 창비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어제와 오늘 둘째에게 소리내어 읽어주니 아쉽게도 이야기가 끝났다. 초등 1, 2, 3학년을 위한 신나는 책읽기 시리즈라서 비교적 짧다. 매우 재미있는 책이냐 하면 내게는 그렇지 않지만, 아이는 어제 읽은 마지막 부분을 정확히 기억하면서 다음을 재촉해 댔다. 재미있단다.
재미라... 나같은 어른들에게는 재미있게 읽히기에는 좀 슬픈 이야기. 시어머니의 치매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이 책 연우의 엄마처럼 한숨부터 새어나오는데 어찌 재미를 느낄 수 있을까. 나 자신 흰머리가 뽑아도 자꾸 솟아나오는 나이가 되어 버렸는데, 치매는 잘못한 사람에게 내려앉는 벌이 아니라 한없이 순하게 살아온 사람에게도 예고 없이 덮치는 해일 같은 걸 아는데!
초등 3학년 연우의 할머니는 치매 환자이다. 하루종일 돌보아도 잠깐 한눈을 팔면 손녀딸의 속옷을 모두 가위질해 놓거나, 남의 집 앞에다 똥을 싸거나, 혹은 화장실 문을 잠그고 들어가 바닥에 똥을 눈 뒤 그걸로 장난을 한다. 연우를 제외한 모든 이들은 냄새나고 소통되지 않으며, 예쁘지 않은 늙은 목숨에 대해 소리를 지르거나 외면해 버린다.
연우만이 아무도 상대해 주지 않는 시간에도 자신을 강아지라 부르며 놀아주었던 할머니를 기억한다. 그래서 연우는 거꾸로 자기가 할머니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놀아준다. "금순아, 노올자."하면서. 아마도 할머니가 연우에게 들려주었을, 집요하게 달려드는 비둘기와 고추 말리는 할머니의 대결에 관한 재미난 이야기는 늘 연우 할머니를 어린 시절 남자친구였던 만수와의 추억 속에 잠들게 한다.
희한하게도 연우네 가족의 이름을 거꾸로 하면 연우 이야기의 주인공 우연이가 나오는데, 우연이네 이야기는 다름아닌 목숨붙이에 대한 이야기다. 눈물 겨운 삶의 이야기. 삶을 서로 보듬고 살아가는 인생들의 이야기.
한때 매우 소중했던 이가 소용없어지는 순간이 오면 많은 이들은 소중했던 사람을 버린다. 소용되느냐, 아니냐의 문제로 사람을 보면 그렇다. 그러나 살붙이, 목숨붙이는 소용의 문제로 생각할 수 없다. 살을 잘라내면 피가 나오고, 그 자리는 영원히 남는다.
이 책은 그런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초등 저학년에게도 가족, 치매, 혹은 불치병, 함께 겪는 어려움 등에 대해 들려줄 필요가 있고, 생각하며 살 여지를 줄 필요가 있다. 그럴 때 이렇게 들려주는 것, 참 좋다. 우리 둘째가 재미있다니, 재미있게 생각할 거리를 주는 방식이라면 더할 나위 없다.
둘째에게 유치한 질문을 해 본다.
"엄마가 치매 걸리면 어쩌지? 내다 버릴 거야?"
"아니."
"그럼, 연우처럼 해 줄거야?"
자신 없는지 한참 생각한다. 그 대답은 내가 해야겠지. 친정엄마나 시어머니가 치매에 걸리면 나는 어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