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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침없는 고딩들의 일본 탐험기
김영민 외 지음 / 푸른길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나와 먼 얘기, 라고 생각했다. 정확히는 내 아이와 먼 얘기라고 해야 할까. 그간 무슨 동네 엄마들이 어떻게 교육하느니 하는 책들을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피해 왔다. 기질이 따라주지도 않거니와 나와 내 아이들의 여건도 허락하지 않아서이다. 비슷한 이유로 민사고나 특목고를 둘러싼 여러 이야기도 별 관심을 두지 않았고, 민사고 아이들이 어떤가에도 관심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은 민사고 아이들이 쓴 책이다. 민사고 아이들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부분이 아니고, 일단의 고등학생들이 ‘대한민국 청소년 일본 탐험대’에 응모하고, 뽑히고, 일본에 다녀오고, 그에 관한 논문까지 쓰는, 그 사건이 중심이다. 덧붙여 일관제도라고 하는, 일본 특유의 교육제도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다 떠나서 눈길이 표지 하단에 있는 '민사고 학생 네 명'이라는 부분에 멈춘다. 민사고 학생들이라...
슬쩍 들춰보고 잘난 아이들이 잘난 이야기를 하면 덮어 버려야지 했다. 그런데, 몇 페이지를 읽다가 그만 끝까지 읽고 말았다. 새벽 3시, 남편이 귀가할 때쯤에는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다. 그냥, 재미있었다. 민사고에 대한 관심이 점점 요즘 고등학생들에 대한 관심으로 옮겨가더니, 아주 똑똑한 우리나라 고등학생 아이들로 좁아졌다.
참, 야무지다. 이 아이들. 두루뭉술하고 누가 뭐 하자 하면 그저 우정을 외치며 우루루 몰려가던 우리 때와는 많이 다르다. 자신들이 무얼 원하는지 정확히 알고, 그걸 위해 노력하고, 자신을 굽히지 않으면서도 화합할 줄 안다. 게다가 유머러스하다!
유머러스하다는 말은 나로서는 대단한 칭찬이다. 유머는 지식이나 정보가 많은 이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지식이나 정보가 얕은 사람에게서도 나오는 것이 아니며, 지식도 상식도 정보도 풍부하되 그걸 자기 내부에서 소화할 줄 알며, 타인과의 관계를 조율할 줄 아는 데서 나온다고 보기 때문이다.
점점, 이 아이들이 좋아지기 시작하더니, 팬이 되어 버렸다. 사고방식이 건전하고, 열심히 공부하며, 세상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하고,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아이들. 문자나 메신저에 익숙하고, 쉬는 시간에도 컴퓨터를 만지는 걸 보면, 다이어리에 온갖 그림과 장난스런 말을 써대는 걸 보면, 영락없는 요즘 아이들이구나, 싶으면서도 유학을 위해 SAT를 준비하고, 학교 시험공부에 매진하고, 시간을 쪼개 도서관을 뒤지고, 나눠서 자료조사를 하고, 논문을 딱 써내는 걸 보면 참 똑똑하다 싶고! 아무튼 이 아이들의 부모들은 좋겠다.
특히 영민이는 만나보고 싶은 아이다. 그 아이가 쓴 글 “수화에게 이 익숙한 소리는 세이렌의 노래와도 같았다.” “우리의 말소리는 명경지수에 던져진 돌처럼 이 엄숙한 분위기를 흩트려 버렸다.” “메피스토가 파우스트에게 던진 한 마디였다.” 등이 내게 꽂혔다. 우리 아이가 이런 비유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중1인 딸아이를 불러 한 번 읽어보라고 했더니, “민사고 언니오빠들 이야기를 내가 뭐하게?” 그런다. “일단 읽어 봐.” 그랬더니 들고는 가는데, 책을 도통 안 읽는 아이가 이 책이라고 읽을까 싶다. 요즘 청소년들에 대해 우울한 생각을 하는 많은 어른들이 읽어보면 기분이 좋아질 것 같다. 그리고 좀 멋지게 살아보려는 중학생들이 읽으면 멋진 고등학생이 되는데 도움이 될 것도 같다. 하지만 한 시간 자고 공부하는 일은 좀 그렇다. 쉬면서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