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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 슬기로운 방구석 와인 생활
임승수 지음 / 수오서재 / 2021년 3월
평점 :
이 책을 읽고 당장 와인 사러 가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와인 초심자에게는 훌륭한 입문서이자 와인 애호가에게는 꿀팁이 되어줄 와인 실용서!
내 생애 첫 와인을 마신 게 언제였더라, 기억을 더듬어보다 피식 하고 웃음부터 새어나왔다. 대학교 3학년 때 즈음이었던 것 같다. 호감이 가는 오빠가 있어 친구들과 작당모의를 한 끝에 그 오빠가 일하는 카페에 간 적이 있다. 카페라고 해서 커피와 디저트류를 판매하는 곳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곳은 와인바에 가까울 정도로 상당한 양의 와인을 보유하고 있었다. 우리는 무슨 허세인지 이왕이면 자주 마시는 커피 대신 와인 한 병을 마셔보자 하고 마시기에 적당한 와인 한 병을 추천받았다. 지금은 그때 마신 와인이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소주와 맥주만 마시던 대학생들에게 가히 충격적인 맛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적당한 타닌에 밸런스는 물론 목넘김도 좋아서 우리 다음 달에 각자 아르바이트비를 벌어서 또 와보자 하고 함께 다짐까지 했었다. 그야말로 님도 보고 뽕도 따고 랄까.
그렇게 와인에 대한 첫 인연이 쭉 이어졌다면 좋았겠지만, 오빠가 카페 일을 그만두면서 와인 마시기를 향한 야심찬 계획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졌다. 이후 다시 와인을 찾게 된 것은 아르바이트를 함께 하던 언니 둘과 종종 일이 끝나면 방구석에 모여 앉으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기분은 내고 싶은데 술은 잘 마시지 못하는 언니들이라 선택하게 된 게 화이트 와인이었다. 치즈나 과일, 과자 같은 간식과 잘 어울리는 데다 달콤하고 시원한 맛이 한 여름의 수다와 이보다 잘 어우러질 수가 없었다. 그때 주로 마셨던 칠레산 아이스 와인 맛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사실 내게 있어 와인은 여전히 손쉽게 마실 수 있는 주류는 아니다. 지금이야 검색만 하면 각종 블로그나 와인 소비자들의 리뷰를 통해 맛을 미리 가늠해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았던 때에는 어떤 게 내 입맛에 맞을지 알 수 없었던 까닭이다. 주머니 사정이 빈곤한 사람에겐 선택이 조심스럽게 마련이다. 그나마 특별한 날에 야심차게 선택해 구입하면 코르크 마개가 부러져 가루가 병 속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그날 먹는 음식과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아 씁쓸함만 남기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실망스러운 일이 몇 번 반복되다보니 2년 전을 끝으로 와인을 더 이상 마시지 않게 되었는데,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을 읽고 나니 다시 와인에 대한 좋은 이미지가 깨어나 머리와 입 속을 살살 맴도는 느낌이다. “당장 와인을 사게 만드는 글”이라는 호평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이 책을 읽는 동안 몇 번이나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와인서쳐 앱을 깔고 책에서 나오는 와인을 검색하며 무슨 와인을 살까 고민하고, 당장 마트로 달려가서 사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기를 반복했던 게 대체 몇 번이나 되는지. 혹시나 뒷 페이지에서 더 사고 싶은 와인을 소개해줄지도 몰라, 조금만 더 참고 읽어보자 하고 마음을 다독인 게 한 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슬기로운 와인 생활을 위한 와인에 대한 모든 것
이 책은 자칭 와인교에 귀의한 한 사내의 좌충우돌 신앙생활을 솔직담백하게 담고 있다. 자칫 와인에 흠뻑 빠지면 가상탕진은 식은 죽 먹기라던데, 첫 만남의 신비로운 체험으로 인해 아내의 등짝 스매싱과 경제적 압박이라는 고진 박해를 견디면서도 꿋꿋이 와인 생활을 즐겨온 작가는 어떻게 하면 많은 이들이 실수를 줄이고 슬기롭게 와인을 즐길 수 있을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한다. 이를 테면 와인 라벨 읽는 법, 와인 잔 선택하는 법, 와인을 더 맛있게 마시는 법, 와인에 맞는 안주 고르는 법 등 초보 와인 구매자들을 위한 기본 정보에서부터 와인 정가에 속지 않는 법, 직구로 와인 사는 법, 와인 평론가 점수 참고법 등 와인 애호가들을 위한 팁들도 함께 소개한다.
쭈뼛대는 내 모습을 포착하고는 와인 수입사에서 파견 나온 직원이 접근했다. 참고로 마트의 와인 매장에서 일하는 분들은 대체로 와인 수입사 소속이다. 결국 직원의 친절한 응대로 할인가 5만 원의 그 와인을 구입했는데, 내가 와인 초짜임을 파악한 직원은 신신당부했다.
“와인을 드시기 30분 전에 냉장고에 넣으세요. 와인은 온도에 따라 맛과 향이 달라지거든요. 그리고 꺼내서 바로 드시지 말고 코르크를 연 후 최소 30분 정도 기다렸다가 천천히 드세요. 와인은 공기와 접촉하면서 맛이 점차 부드러워지거든요.” / 19p
와인이 공기와 접촉해 변화는 과정을 브리딩이라고 한다. 와인이 공기와 만나 숨을 쉰다는 의미인데, 에어레이션이라고도 한다. 브리딩을 하면 와인이 마시기 좋게 부드러워진다고 해서 마냥 방치하면 지나치게 산화가 진행되어 오히려 풍미가 꺾이고 심지어 식초가 되기도 한다. / 30p
와인 애호가들을 위한 궁극의 아이템으로 추천하는 ‘와인서쳐’ 앱은 이 책에서 알게 된 매우 유용한 정보 중 하나다. 와인서쳐 앱을 다운로드 받아 여기에 라벨 사진 혹은 와인 이름을 입력을 입력하면 해당 와인의 해외매장 판매가격 및 평균 거래가격이 나온다. 예를 들어 와인서쳐에서 테루뇨 카베르네 소비뇽을 검색하면 해외 평균 거래가(세금 제외)가 4만 2,086원(2020년 12월 6일 기준)인데, 국내 마트 판매가가 5만 원(세금 포함)이면 상당히 준수한 가격임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나 역시 찾고 싶은 와인 제품명이 있어 검색해보니 다양한 제품들을 두루 볼 수 있는 데다 가격 비교까지 한꺼번에 할 수 있어 내가 구매하려는 와인의 가격이 합당한 수준인지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아울러 책에서는 안주 정보를 참고하는 데 ‘비비노’ 앱도 추천한다. 해당 앱에서 베린저 프라이빗 리저브 샤르도네를 검색하면 돼지고기, 기름진 생선, 채식 신단, 가금류를 안주로 추천하는데, 베린저 샤르도네의 풍미를 떠올렸을 때 꽤 설득력 있는 안주 목록이라고 하니 참고할 만하다. 와인서쳐와 비교하면 가격 정보 신뢰도는 떨어지지만 사용자들이 매긴 와인 평점 평균치를 비교할 수 있는 점도 나름 유용할 듯하다.
와인을 고를 때, 나는 와인 산지부터 정한다. 미국 캘리포니아 나타 밸리, 프랑스 보르도의 마고, 프랑스 부르고뉴의 본 로마네, 이탈리아의 피에몬테, 이런 식으로 포도 재배지를 특정하면 선택의 폭을 좁힐 수 있다. 와인을 산지별로 경험하면 취향에 맞는 와인을 찾는 데에도 수월하다. 예컨대 나는 샤토 보날그 2008 빈티지를 경험하고 한동안 포므롤 와인을 찾아 마셨다. 특유의 덕후 기질 때문이기도 한데, 은행 잔고가 급격하게 감소했지만 어쨌든 와인 경험치 상승에는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 62p
그런 이유로, 와인을 진지한 취미로 여기는 사람은 불가피하게 와인셀러를 구비한다. 다만 와인을 구매해서 며칠 사이에 바로바로 마시는 경우라면 굳이 와인셀러에 보관할 필요는 없다. 서늘한 곳이나 (여름에는) 냉장고에 보관하면 된다. / 86p
보르도 잔은 카베르네 소비뇽이나 시라같이 바디감 묵직한 레드 와인에 적합하다. 뚱뚱한 부르고뉴 잔은 피노 누아처럼 섬세한 향의 레드 와인에 적합하다. 화이트 와인 잔은 레드 와인잔에 비해 크기가 작다. 화이트 와인은 대체로 차갑게 마시므로, 공기 접촉면을 줄여 온도 상승을 늦추기 위함이다. 디저트 와인 잔은 화이트 와인 잔보다 더 작다. 당도와 알코올 도수가 높은 디저트 와인을 마시기에 적합한 형태로 제작한 것이다. 위스키나 소주잔을 봐라. 작지 않은가. / 116p
이 외에도 책에서는 코르크 옆면으로 끓은 흔적이 보이는 열화 와인과 같이 와인 보관 상태가 양호하지 않은 와인을 구매했을 때 와인을 교환하거나 환불하는 방법을 소개해주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작황이 안 좋을 때 만든 와인에 대한 선입견, 프랑스 와인이면 다 좋다는 편견과 오해들도 살펴본다. 비싼 와인이라고 해서 다 좋은 것도 아니고 저렴하다고 해서 다 맛없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자신의 경험을 통해 불식시켜주기도 한다. 더불어 이 책의 가장 꿀팁이라 할 수 있는 연말연시 가성비 최강 와인 리스트, 2만 원대 최강 와인 리스트, 숙성 와인의 진가를 느낄 수 있는 와인 리스트, 우울할 때 마시기 좋은 와인 리스트, 3만 원대 가성비 와인 리스트, 가을에 어울리는 와인 리스트, 비 오는 날 추천 가성비 와인 리스트 등 무궁무진한 와인의 세계 속에서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들까지 소개해주니 이대로 옮겨 적고 우리는 얼른 와인 매장으로 달려가기만 하면 된다.
코르크를 보니 열화 와인일 가능성이 있었다. 열화 와인이 뭐냐고? 와인 보관 상태가 양호하다면, 일반적으로 코르크와 와인이 닿는 둥근 면만 빨갛게 착색된다. 하지만 열화 와인 코르크는 와인이 옆면으로 치고 올라온 흔적이 선명하다. 그 흔적의 형태가 마치 와인이 끓어오른 것 같다고 해서 ‘끓은’ 와인이라 부르기도 한다. 와인은 열에 민감해서 섭씨 30도 혹은 그 이상의 온도에 장시간 노출되면 변질되는데, 그 과정에서 코르크 옆면으로 끓은 흔적을 남긴다. 정도가 심하면 와인이 병 밖으로 새어 나와 알루미늄 포일에 묻고, 그 탓에 포일이 병에 달라붙기도 한다. / 122p
2017년에 2007 빈티지를 지인에게 선물로 받아 마셨다. 보르도 2007년은 작황이 매우 좋지 않은 해라 별 기대감 없이 마셨는데, 맛과 향이 상당히 맘에 들어 깜짝 놀랐다. 작황이 안 좋을 때 만든 와인은 타닌이 부족해 여타 빈티지보다 더 빨리 숙성된다. 그러다 보니 10년 만에 충분히 숙성이 진행되어 마시기 좋았던 것이다. 고급 와인은 작황이 안 좋은 빈티지라고 무시할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 131p
맞다. 스월링 얘기다. 와인을 잔에 따랐으면 돌려라. 허리케인을 일으키듯 빙빙 돌려라. 그러면 와인이 산소와 활발하게 접촉해 향기를 한껏 뿜어내고 맛도 부드러워지기 때문이다. (…) 과도한 스월링은 와인의 산화를 촉진해 풍미가 급격하게 꺾일 수 있다는 의견도 있는데, 나는 여태껏 그렇게 돌려댔는데도 풍미가 급격하게 꺾인 기억이 없다. 그러니 웬만하면 그냥 돌려라. / 162p
이렇듯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은 와인 에세이답게 와인 한 병에 담긴 진솔한 경험을 담아냄과 동시에 와인에 관한 각종 정보들을 담은 실용서로서의 역할에도 충실한 책이다. 더불어 작가의 유쾌한 입담과 ‘내돈내산’에 입각한 솔직한 평들은 책을 읽는 재미와 더불어 와인을 선택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뭐니 뭐니 해도 이 책을 읽고 난 후에는 와인을 사러 가지 않을 수 없다. 나 역시 당장 이번 주말에 남편과 어떤 와인을 마실지 즐거운 고민을 하고 있는 중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