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의 역사 - 늑대인간부터 지킬 박사까지, 신화와 전설과 예술 속 기이한 존재들의 흔적을 따라서
존 B. 카추바 지음, 이혜경 옮김 / 미래의창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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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의 역사는 곧 인류의 역사다!

잔혹하지만 매혹적인, 기괴하지만 아름다운 셰이프시프터에 담긴 의미들!

 

 

  셰이프 시프터(shape shifter). 주로 이야기 속에서 변신할 수 있는 사람 혹은 동물 등을 가리키는 말이다. 보름달이 뜰 때마다 늑대로 변신하는 늑대인간, 박쥐로 변신하는 뱀파이어, 심장박동수가 빨라지면 초록색 피부의 엄청난 체력을 가진 몸으로 변신하는 헐크 등이 전형적인 셰이프시프터 중 하나다. 신, 요정, 악령 등 모습을 바꾸는 이 놀라운 존재들은 고대부터 지금까지 전 세계의 역사와 문화 곳곳에서 우리의 상상력을 사로잡아왔다. 오늘날 셰이프 시프터가 허구인지, 진실인지의 여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영화, 책, 그래픽 노블, 게임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오늘날 대중문화 곳곳에 등장하며 우리와 공존하고 있다. 매혹적이거나, 잔혹하거나, 비록 국가와 신화마다 성격과 모습은 다르지만 셰이프 시프터들의 이야기를 쫓다보면 놀랍도록 유기적이고 인류 보편적인 특성들을 지니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변신의 역사』는 신화와 전설, 예술 속에서 발견되는 기이한 존재들의 흔적을 찾는 작업인 동시에 단순히 흥미를 넘어서 인간의 내적, 외적 욕망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인류사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재미있는 건 두말 할 것도 없지만 말이다.

 

 

 

그 신비로운 존재들은 어떻게 탄생되었나

 

 

 

“얘야, 내 안에서는 항상 싸움이 일어나고 있단다. 두 마리 늑대가 벌이는 처절한 싸움이지. 그중 하나는 사악해. 그놈은 분노, 질투, 비통, 원한, 후회로 똘똘 뭉쳐 있단다. 탐욕스럽고 오만하며 자기 연민에 빠져 자신밖에 모르는 놈이야. 다른 하나는 선해. 이놈은 즐거움, 평화, 사랑, 희망, 겸손, 친절 그 자체란다. 너그럽고 동정심이 많으며 진실하고 신의가 있지. 똑같은 싸움이 네 안에서도, 다른 모든 사람 안에서도 벌어지고 있단다.” / 157p

 

 

 

  북아메리카 남동부에 거주하는 원주민인인 체로키족 사이에 전해지는 작자 미상의 이야기다. 고대 원시시대부터 인간은 자신의 삶과 주변 동물들의 삶이 긴밀하게 얽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반인반수들이 새겨져 있는 선사시대의 동굴벽화를 통해 짐작해보건대 속도, 힘, 사냥 능력에 있어서 동물이 인간보다 훨씬 우월했기 때문에 인간에게 있어 동물과 같아지고 싶다는 욕망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냥꾼들이 동물, 그중에서도 자신이 사냥하는 동물 모습의 옷을 입고 그 동물의 움직임을 흉내 내며 사냥춤 의식을 가졌던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셰이프시프터에 대한 믿음이 단순히 동물과 동물적 본성에 대한 동경에서 시작되었다면, 불미스러운 행동을 하지 못하게 억제하는 규칙에서 벗어나고 싶은 유혹, 동물적 본능을 받아들여 의식이나 도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은 욕망을 점차 이들에게 투영했던 것 같다. 위의 이야기에서 드러나듯 늑대인간은 인간 본성의 이중성, 다시 말해 동물적 본성이 우리를 장악할 때 생길 수 있는 문제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예다. 『변신의 역사』의 저자 존B. 카추바는 늑대인간이 매력적으로 느껴지고 인기를 누린다는 사실은 도덕과 사회규범이라는 족쇄에서 벗어나 한밤중에 벌거벗은 채 숲을 가로지르고 달을 보며 울부짖고 싶다는 우리 인간의 잠재적 욕망을 반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설명한다. 적어도 늑대인간이 민속 설화, 영화, 소설을 통해 대중적 인기를 얻는다는 것은 우리가 억눌리고 금지된 우리의 동물적 본성에 끌린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셰이프시프터의 매력은 ‘제멋대로’ 행동하고 싶다거나 성별을 바꾸고 싶다는 바람을 충족시키는 데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정체성을 찾기 위해, 사회에서 우리에게 적절한 자리가 어디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셰이프시프터는 이러한 노력의 상징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많은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 우리는 개인의 다양한 역할이 사회규범과 충동할 때, 혹은 여러 역할 중에서 특정 시점에 적합한 역할을 선택해야 할 때, 혹은 어떤 역할들을 수정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때 혼란스러워진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내적 셰이프시프터다. 결국 대중문화 속 셰이프시프터는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혼란스러워하고 고군분투하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투영한 존재인 셈이다. / 17p

 

 

 



 

 

 

 

  시대가 흐르면서 셰이프시프터는 다양한 방식으로 변형된다. 신비로운 초자연적인 현상이나 삶과 죽음의 깊이, 세상에 고통이 존재하는 이유나 우리가 존재하는 목적과 같은 기본적인 질문에 답할 수 없었던 과거에는 신이라는 존재의 능력을 통해 이해를 구해야만 했을 것이다. 혹은 징계와 처벌의 목적을 위해 셰이프시프터를 이용하기도 했을 것이다. 이를 테면 동화나 설화에 잘못을 저지른 대가로 동물이나 물건으로 모습이 바뀌는 벌을 받은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것이 그 이유다. 반면, 불행하게도 타의에 변신이 된 셰이프시프터들을 통해서는 사람의 겉모습이 아닌 내면을 봐야 한다는 교훈을 전하기도 했다. 이는 외적·성적으로 매력적인 사람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인간의 비뚤어진 욕망을 상징한다. 그러고 보면 아이들에게 물가와 같이 위험한 장소에 가면 안 된다는 경고를 하기 위해, 젊은 여성들에게는 낯선 남성을 주의해야 한다는 경각심을 주기 위해 기괴하고 잔혹한 셰이프시프터들을 등장시키는 것만큼 훌륭한 효과가 또 어디 있을까.

 

 

 

사회에서 소외되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혹은 편견이나 증오, 차별을 경험하는 사람들에게, 그도 아니면 그저 좀 더 부유해지고, 똑똑해지고, 예뻐 보이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변신은 비록 상상 속에서긴 하지만 자신의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다. (…) 변신은 세상 누구나 품을 만한 보편적인 판타지다. 모습을 바꾸고 싶다는 이 타고난 잠재의식적 욕망이 너무 크다 보니 평범한 인간의 모습을 한 셰이프시프터가 우리 사회 속에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믿음이 ‘원시적’이고 ‘무지한’ 문화에서만 발견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는 사회·경제적인 지식 수준과 무관하게 전 세계 거의 모든 문화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 85p

 

 

셰이프시프터가 직면하는 난관은 변신 전 평범한 상태였을 때 직면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 이 난관과 갈등은 변신한 주인공의 용기와 지혜, 힘을 시험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당면한 문제의 본질을 이해해야 하고, 나아가 달라진 자아의 본성 또한 이해해야 한다. 문제 해결 방법을 찾는 것은 그다음의 일이다. 즉, 어려움을 극복하고 평범했던 자아로 되돌아가기를 바란다면 심사숙고하고 창의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독자는 주인공이 그의 딜레마를 해결하는 과정을 따라간다. 그러면서 주인공이 직면한 딜레마가 자신이 현실에서 마주하고 있는 문제와 동일한 것으로 여길 수 있다. 따라서 주인공이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고민과 창조의 과정은 독자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무의식적으로라도)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 271p

 

 

 

  저자는 우리 모두의 내면에는 셰이프시프터가 있다고 말한다. 우리 안의 셰이프시프터는 다른 사람이나 동물로 물리적 변신을 할 수는 없지만 강력한 이미지, 강렬한 인격의 형태로 무의식 속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정신의학자 칼 구스타프 융 역시 우리의 정신 기저에 자리 잡은 잠재의식 속에 우리가 성격이라 부르는 특성들이 외부로 발현되기 전 원형의 모습 그대로 간직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셰이프시프터는 이러한 원형들이 모여 ‘집단 무의식’을 형성하고, 모든 개인이 보편적으로 지니고 있되 무의식적 수준에서만 이해할 수 있는 상징들의 집합체라고 바라보는 저자의 의견은 타당해 보인다. 이것이 오늘날 핼러윈, 코스프레를 단순히 유희의 목적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변신 설화가 전 세계 곳곳에서 만들어지는 이유는 전파에 따른 문화적 전유 때문이기도 하지만, 셰이프시프터라는 요소 속에 인간의 마음을 울리는 보편적인 무언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 142p

 

 

스스로 잘못된 육체로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가끔씩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혹은 무언가)가 되고 싶다는 은밀한 열망을 품은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일시적으로라도 지금의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되고 싶었던 적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 바람은 열등감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그럴 때 우리는 다른 누군가가 되기만 하면 그 열등성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 239p

 

 

 



 

 

 

 

  얼마 전, 아이와 『머리 아홉 달린 괴물』이라는 전래동화를 읽었다. 그때는 『변신의 역사』를 읽기 전이라 그저 ‘위기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으면 할 수 없을 것 같던 일도 해낼 수 있다’ 정도의 교훈만 생각했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머리가 아홉이나 되는 괴물의 상징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변신’이라는 상징이 얼마나 우리 생활 곳곳에 반영되어 있었는지를 깨닫게 된 것은 물론, 그것을 통해 드러나는 인간의 욕망이란 무엇인지 함께 가늠해 수 있어 매우 뜻깊은 독서였다. 사실 단순히 재미 위주의 접근으로 읽기 시작한 책이었지만 인류사적으로, 문학사적으로, 문화사적으로 뜻밖의 큰 배움을 얻었다.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꼭 읽어보시라 추천 드리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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