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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기다릴게 - 시간을 넘어, 서툴렀던 그때의 우리에게
가린(허윤정)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3월
평점 :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된 것들!
모든 게 어설펐지만 풋풋해서 아름다웠던 그때 바로 그 시절!
평범하지만 쾌활한 성격의 마코토가 어느 날 타임리프를 경험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 <시간을 달리는 소녀>. 타임리프를 이용해 친구를 구하기 위한 노력을 거듭하는 과정 속에서 바로 지금 현재,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는 내용이다. 일본 애니메이션 특유의 서정적인 감성과 풋풋했던 그때 그 시절, 청춘이라는 특유의 감각이 잘 녹아든 영화였던 걸로 기억난다. 가린의 에세이 『미래에서 기다릴게』는 바로 이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모티프로 한 감성에세이다. 바람 한 점에도 설레었던 솜사탕 같은 마음들, 서로를 할퀴거나 맞추는 데 애쓰느라 놓쳐버린 사람들, 모든 게 어리석고 서투르기만 했던 청춘의 그 시간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부끄럽지만 찬란했고, 어설펐지만 그래서 더 아름다웠던 바로 그 시간으로.
함께 동네를 쏘다니고, 함께 학원을 빠지고, 함께 고민하고, 함께 혼났다. 그 시절 나는 ‘함께’라는 단어의 의미를 친구들을 통해 배웠다. 다시 그때처럼 누군가와 ‘함께’ 존재할 수 있을까? / 하나의 모양이었던 우리 중에서 22p
‘어릴 적에는 친한 친구일수록 나와 같은 모양이기를 바랐던 것 같다’ 책 속의 문장이 탁, 하고 마음을 잡아챈다. 청소년 시절의 우리는 그랬다. 반드시 같은 연예인을 좋아해야 했고, 같은 책을 읽고 공유했으며 같은 메이커의 옷을 나눠 입은 듯 닮은꼴처럼 하고 다녔다. 학원은 물론, 수업이 끝나고 매점에 갈 때도 항상 같이 다녔고 심지어 글씨마저도 비슷해졌다. ‘겹쳐두었을 때 어긋나는 부분 없이 완전히 맞아떨어지는’ 그런 사이. 그게 친구라고 믿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우습지만 그때만큼 ‘함께’하는 것이 좋았던 때는 없었던 것 같다. 나이가 들고 보니 생각보다 자주 그때가 많이 그립다. 작은 것에도 함께 깔깔대고, 같은 음악을 듣고 함께 설레어하며, 같은 머리에 같은 양말을 신고 다녀도 부끄럽지 않을 수 있었던 그 시절은 이제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아서.


사람을 만나는 건 점점 더 어렵고 조심스럽다.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고받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애쓰지 않아도 되는 관계에 더 마음이 간다. 만났을 때 나를 감추지 않아도 되는, 만나도 집에 돌아와서 내가 실수하지는 않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지 않아도 되는,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예민한 부분을 건드리지 않는 그런 사람들. / 애쓰지 않아도 되는 관계 50p
얼마 전에 친구가 나에게 이렇게 물어왔다. 이 사람과 결혼을 해도 될지 모르겠다고. 나는 이런 조건, 저런 조건, 좋은 사람은 많지만 결혼이란 건 그 무엇보다 애쓰지 않아도 되는, 내가 가장 자연스러울 수 있는 사람과 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지금의 남편은 다행히 상대방의 감정을 가늠하느라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아도 되고, 잘 보이려고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될 만큼 나를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사람이지만, 예전의 나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나를 맞추느라 관계 맺기에 쉽게 피로감을 느끼곤 했다. 그때의 나는 서투르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감과 그럴 듯해 보이는 사람이 되려는 마음에 상당히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이었기에. 그러다 남편을 만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애쓰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 여전히 내 곁에 있다는 것을, 관계에 연연하며 나를 소모시키느라 놓쳐버린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는 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와 비슷한 결을 가진 사람들과 오랫동안 천천히 같은 보폭으로 걷는 것만큼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시간을 돌려 그때 그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면, 혼자만 모든 순간을 기억한다면 너무 외롭지 않을까. 무엇보다 그것이 다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순간이었음을 뒤늦게 알아차린다면… 그 어찌할 수 없음 위에 홀로 선 외로움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절실하게 타임리프 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삶은 되돌릴 수 없기에 더 소중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잊고 싶다고 생각한 날들조차 가끔은 그리워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 타임리프 중에서 59p
지금 붙잡지 않으면 시간과 함께 흘러가 영영 다시 돌아오지 않는 일들이 있다. 그런 일을 마주할 때면 아버지께서 내게 해주신 말씀을 떠올린다. 어떤 일을 할지 말지 고민이 될 때, 지금만 할 수 있는 일인지를 생각해보라고. 만일 그렇다면, 망설이지 말고 하라고. / 오직, 지금 중에서 139p


시간을 달리는 마코토처럼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시간 속을 달리고 있는 중이다. 때로는 버거우리만치 느리게 흐를 때도 있고, 붙잡지 못할 만큼 빠르게 흘러가버릴 때도 있다. 다만 그 시간을 늘 마음에 포개어 살기를, 내 방향과 속도대로 나아가기를 희망한다. 여전히 부끄럽고 어리석은 것투성이지만 그 조차도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걸 알기에. 『미래에서 기다릴게』를 읽는 동안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된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아련하게 남아있던 추억의 한 페이지와 그 순간에 함께 했던 사람들을 많이 생각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내 곁에서 변함없이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까지도. 그러니 잊지 말아야지. 모든 것이 모호한 미래에도 치아키에 대한 마음만은 확신할 수 있었던 마코토처럼.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