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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고 굵게 읽는 러시아 역사
마크 갈레오티 지음, 이상원 옮김 / 미래의창 / 2021년 6월
평점 :
러시아사에 대한 호기심으로 시작했다가
우리가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또 견지해나가야 하는지 통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된 책!
공포정치의 상징인 러시아의 황제 이반 4세(1530-1584)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전시회가 모스크바 크렘린궁 인근 마네지 전시관에서 열린 적 있다. 뿐만 아니라 ‘러시아-나의 역사’라는 이름으로 전국에 걸쳐 진행된 또 다른 전시에서는 차르와 소련 지도자들, 12세기 공후들과 21세기 외교관들의 모습을 번갈아 보여줌으로써 공공연하게 특정 관점을 주입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짧고 굵게 읽는 러시아 역사』의 저자인 마크 갈레오티의 해석에 따르면 그 관점이란, 러시아는 합치면 강해지고 분열되면 먹잇감이 되리라는 것이다. “우리는 늘 도 아니면 모라고 생각했습니다. 국가를 손아귀에 단단히 거머쥐지 않으면 전부 산산이 흩어지고 말 거라고요.” 은퇴한 어느 KGB 직원의 말에서 알 수 있듯 중앙 통치를 유지하기가 어려운 러시아의 특성상 국가의 권위에 복종시키고자 하는 권력자들의 사고관이 분명히 드러난다. 또 러시아는 침략자가 아니라 강력한 수호자일 뿐이라는 관점이다. 무자비한 영토확장, 수많은 분쟁, ‘프라하의 봄’ 자유운동 진압 등은 모두 조국과 자연 질서를 지키기 위해 필요했다는 주장이다. 마지막으로 러시아는 아시아 국가가 아니며 유럽 국가, 그것도 참된 유럽 국가라는 관점이다.
이처럼 현재 러시아 역사는 그늘을 감추고 영광만을 강조하겠다는 접근법으로 하여금 다시 ‘쓰여지고’ 있다. 우려되는 것은 푸틴 대통령을 중심으로 하는 현 정부의 민족주의 행보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푸틴은 공공연하게 이 새로운 공식 역사를 두고 “내부 모순이나 이중 해석의 여지를 없애야” 한다고 요구한다. 이렇게 피비린내 나는 역사를 말끔히 지워내고 재편집하려는 작업을 해나가고 있는 지금의 러시아를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국정교과서 편찬 문제, 일본의 끊임없는 역사 왜곡과 중국의 동북 공정 및 문화 공정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러시아의 이러한 작업 아래에서 우리도 자유로울 수 없다. 그것이 천 년에 걸친 러시아의 역사를 개관하면서 균형 잡힌 시각에서 역사 바로보기를 시도하는 이 책의 목표가 우리에게도 의미 있는 이유다.
류리크와 몽골, 차르와 혁명 그리고 푸틴까지
러시아를 떠올리자면 유독 남성적이고 거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뭐라 딱 규정할 수 없는 모호한 이미지 같은 것들이 있는데, 그것은 아시아인 듯 유럽인 듯 지리적으로나 세계사적으로나 꽤나 복잡 미묘한 위치에 놓여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아니나 다를까 『짧고 굵게 읽는 러시아 역사』의 저자 역시 러시아는 ‘자연적 경계도, 단일한 민족도, 중심이 되는 분명한 정체성도 없는 나라’고 소개한다. 그도 그럴 것이 유럽의 요새 지역 칼리닌그라드에서부터 알래스카와 불과 82킬로미터 떨어진 베링 해협에 이르기까지, 무려 11개 시간대에 걸친 영토를 가지고 있는 데다 접근 불가능한 지역도 많고 흩어져 살기 좋아하는 거주민들의 특성으로 인해 중앙 통치를 유지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바이킹과 몽골, 십자군 독일 기사단과 폴란드인들, 나폴레옹의 프랑스, 히틀러의 독일 등의 외침이 끊이지 않았으며 물리적인 공격이 없을 때에도 외부의 영향이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문화 자본에서 기술 혁신까지 모든 것을 국경 밖에서 구했기 때문이다. 분명한 영토 경계가 없는 상황에 대한 러시아의 대응은 결국 끊임없는 확장이었고, 그 과정 속에서 새로운 민족, 문화, 종교 정체성이 덧붙여질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다층적인 성격을 지닌 러시아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역시 한 권의 책으로 방대한 러시아의 역사를 아우르기는 쉽지 않는 일이다. 때문에 『짧고 굵게 읽는 러시아 역사』는 오늘의 러시아를 만든 주요 인물과 사건을 중심으로 서술하고자 한다. 그 시작은 고대 러시아 ‘루시’를 통치한 류리크로부터 출발한다. 빅토르 바스네초프의 그림을 보면 용 머리가 특징적인 바이킹 배를 타고 온 류리크가 형제와 수행원들을 이끌고 라도가 호숫가에 내려선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저희 땅은 드넓고 비옥합니다만 질서가 없습니다. 와서 우리를 통치해주십시오.” 법과 서열, 영토에 대한 합의를 이루지 못해 전쟁을 일으키기 일쑤였던 수많은 토착 부족들이 바이킹에게 가서 통치자를 청했음을 시사 하는 그림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명백한 거짓임을 지적하며 류리크가 노브고로드에 정착하게 된 과정, 또 다른 바이킹들이 남서쪽 슬라브 도시인 키예프를 점령하게 된 과정 등을 통해 바이킹 정복자들을 가리키는 ‘루시’의 땅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바로 설명하고자 한다.
러시아의 경우에는 놀라운 점이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외부 영향을 역동적이고 유연하게 적용시키는 현상이 대단히 깊고 다양하게 일어난다는 것이고 둘째, 그 겹겹이 쌓인 층들이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어느 나라나 복합적 존재라고는 해도 구성 요소나 혼합 방식은 무척 다르기 마련이지 않은가. 세 번째로 놀라운 점은 이 과정에 대한 러시아의 반응이다.
뒤섞인 정체성을 인식한 (종종 과도하게 인식한) 러시아인들은 이를 부정하거나 과시하는 국가적 신화를 만들어내곤 했다. 오늘날 우리가 러시아라고 부르는 나라의 토대를 닦은 것도 그렇게 꾸며낸 이야기다. 바이킹 침략자들에게 정복당하고 나서는 스스로 침략자를 불러들여 정복하게끔 했다고 바꿔버리는 식이다. / 11p
몽골인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키예프는 파괴되고 노브고로드는 몰락하면서 모스크바가 번성기를 맞이하는 시대가 찾아온다. 당시 모스크바는 도시라 부르기도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이후 모스크바는 루시 전체의 주인이 되었을 뿐 아니라 러시아 전통, 몽골 관행, 모스크바 특유의 실용주의가 결합된 정치 문화의 본산지가 된다. 다만, 몽골인들의 등장은 루시인들에게 치명적이었던 게 분명하다. 《노브고로드 연대기》에 따르면 “우리 죄가 많아 알 수 없는 이들이 몰려왔다. 어디서 왔는지, 종교나 언어가 무엇인지 아무도 몰랐다. 러시아 전사 열 명 중 한 명만이 그 전투에서 살아남았다”라고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몽골의 거침없는 정복은 이들 역사에 ‘몽골 멍에’라는 흔적을 남기게 된다. 이른바 러시아가 두 세기 이상 아시아의 압제를 받게 되어 유럽 다른 지역과 차단되었다는 것이 그들의 해석이다. 다시 말해 몽골의 압제가 러시아를 유럽과 단절시켜 당시 진행되던 르네상스와 초기 종교개혁에서 소외되었다는 것이며, 당대의 문화·사회·경제·종교적 변화를 경험하는 대신 불쌍한 러시아인들은 몽골의 노예라는 피투성이 늪에 빠져 허우적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몽골 침략이 분명 러시아의 도시화나 도시 중심의 장인 경제를 후퇴시킨 것은 분명하나 당시 러시아의 환경이나 사회적 요건을 고려했을 때 유럽과 같은 르네상스를 기대하기란 힘들었을 것이라고 이견을 드러낸다.
이후 국가 제도로부터 남쪽과 서쪽으로의 팽창에 이르기까지 오늘날의 너무도 많은 모습은 뇌제(두려운, 무시무시한)라 불린 이반 4세로 거슬러 올라간다. 러시아 역사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사람도 ‘폭군’, ‘광기의 리더십’, ‘러시아 최초의 차르’로 통하는 그의 이름을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일리야 레핀의 그림 <1581년 11월 16일 금요일의 이반 뇌제와 그 아들 이반>에는 분노에 사로잡힌 이반 4세가 아들의 머리를 내리쳐 죽인 순간이 묘사되어 있는데, 피해망상에 사로잡혀 충격과 공포, 광기와 회환에 사로잡힌 그의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국민들을 무한대의 공포로 몰아넣고 심지어는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 여왕에게 청혼을 하기까지 했던 여러모로 기이한 인물이지만, 러시아라는 국가가 부상해 북유럽에서 군사 대결을 벌이게 되고, 상대적으로 무시할만한 변방의 존재를 벗어난 주역 국가이자 당대의 유럽 패권국들에게 심각한 위협을 가하는 존재로 변모하게 된 것은 이반 4세의 제국 건설이 낳은 결과다.
이 외에도 책은 귀족들에게 유럽을 배우도록 하고 서구 전역에서 새로운 사상과 기술을 도입하면서도 아시아 특유의 전체 정치를 법규화하고 국가에 대한 봉사를 지위의 유일한 토대로 삼은 표트르 대제, “거대한 바람이 불어온다. 이 바람은 상상력이나 두통, 둘 중 하나를 줄 것이다”라는 명언을 남긴 계몽 전제군주 여제, 러시아를 공산주의 국가로 만든 혁명가 레닌, 러시아인들을 공포정치로 몰아넣은 스탈린, 현대판 차르라 불리는 푸틴에 이르기까지 주요 인물들을 통해 러시아의 서사를 관통한다. 핵심은 단순히 러시아의 역사를 열거하는 방식이 아니라 러시아가 시도하는 역사 다시쓰기의 흔적들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올바른 역사 바로보기를 시도한다는 점이다. 한 권의 책으로 천 년이라는 방대한 러시아 역사를 속속들이 이해할 수는 없지만, 러시아라는 다층적인 국가가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과 현재 러시아인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어떠한 방식으로 신화화하는 작업을 해내가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다.
다시 말하지만 ‘계몽 전제군주’ 예카테리나는 계몽보다 전제군주 쪽에 가까웠다. ‘나카스’ 법령에 등장하는 구절만 봐도 이는 명확하다. “통치권은 절대적이다. 군주 한 개인에게 집중된 힘, 광대한 영토와 비례하여 커지는 이 힘 외에 다른 권력은 없다. 대안적 통치체제는 무엇이든 러시아에 해로울 뿐 아니라 결국 러시아를 폐허로 만들어버릴 것이다.” 하지만 여제는 현명한 전제군주였고, 러시아의 전통적 통치 방식이 점점 시대에 뒤떨어지고 있다는 점을 파악했다. 그리하여 “거대한 바람이 불어온다. 이 바람은 상상력이나 두통, 둘 중 하나를 줄 것이다”라는 계속 회자되는 명언을 남겼다. 예카테리나는 러시아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가에 대해 답을 주지 못했지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 138p
19세기는 서로 경쟁하는 신화들의 시대였다. 어느 신화든 러시아를 유럽과 직접 연결시켰다. 개혁가들은 러시아가 더욱 서구화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보수주의자들은 서구를 거부함으로써 혼란을 막자고 했다. 다른 한편 혁명가들은 유럽에서 만들어진 이데올로기가 마법적 해결책이 되어 러시아를 사회적 경제적 선진국으로 도약시켜줄 것이라 믿었다. 유럽을 바꿔놓고 있는 변화를 받아들일 수도, 유럽에서 배제되는 길을 갈 수도 없는 러시아는 자신에 대해 자신이 만들어낸 이야기들 속 모순으로 인해 분열되는 중이었다. / 148p
레닌 지도 하에 1917년 권력을 잡은 혁명 세력은 냉정함과 이상주의로 무장했지만 미래를 위한 현실적 청사진이 없었다. 1918-1922년의 힘겨운 내전을 거친 결과, 국가는 차지했지만 영혼은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상주의는 기회주의에 자리를 내주었고 덕분에 스탈린이 부상하게 되었다. 스탈린의 ‘일국 사회주의’는 개인의 권력욕뿐 아니라 소련의 취약성에 대한 날카로운 인식까지도 반영한 것이었다. 그는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새로운 국가 신화를 작동시키면서 산업화를 거칠게 밀어붙였다. 대고국전쟁의 승리는 오래 이어져온 러시아 메시아주의의 절정이었다. 러시아에는 무언가 고유하고 특별한 것이 있다는, 위대한 운명을 타고 났다는 믿음 말이다. / 201p
책을 읽으면서 어째서 러시아는 푸틴의 장기집권을 용인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점에 해답을 얻을 수 있어 흥미로웠다. 또 유독 남성적이고 거친 느낌이면서도 뭐라 딱 규정할 수 없는 모호한 이미지의 러시아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무엇보다 국가 정체성을 구축해 피비린내 나는 과거에 의미를 부여하고 미래의 갈 길을 찾아보려는 그들의 역사 다시쓰기를 견제해야만 한다는 저자의 시각은 우리에게도 유의미한 메시지를 던진다고 생각한다. 덕분에 단순히 러시아사에 대한 호기심으로 접근했지만 우리가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또 견지해나가야 하는지 통찰할 수 있어 특별한 독서 시간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