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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국가에서
V. S. 나이폴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21년 7월
평점 :
![](http://image.yes24.com/blogimage/blog/h/j/hjh8s/IMG_20210803_132350.jpg)
우리 모두는 각자의 의식과 세계 속에서 끊임없는 떠도는 유랑자들이다!
식민 시대가 개인과 사회에 미친 현실을 냉철하고 가감 없이 보여준 작품!
2020년 도쿄올림픽 개막식에서 국제 올림픽 위원회의 오륜기를 들고 입장하는 선수들이 있어 이목을 집중시켰다. 2015년 10월, UN 총회에서 IOC의 토마스 바흐 위원장에 의해 설립된 난민 선수단이었다. 앞서 리우 올림픽에서는 10명이었던 선수단이 이제는 29명으로 늘어나 이번 도쿄올림픽에 출전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들에게 있어 올림픽은 국위 선양이 목적이 아니라 자신의 꿈에 도전하고 전 세계 8000만 명의 난민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전하기 위한 무대였다. 메달의 색을 떠나 스포츠로 하여금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려는 이들의 도전에 감동하게 된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내 올림픽에 출전한 난민 선수가 코로나19 백신 접종 과정에서 차별 받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어 문제점으로 떠올랐다. 그들은 자신들이 “사람들 사이에 섞이지 못하고, 남자와 여자가 아닌 다른 존재로 느껴진다”고 고백하며, IOC마저 “우리를 다른 '정상적인' 운동선수들처럼 대하지 않는다”고 하여 씁쓸함을 남겼다. 그렇게 스포츠를 통해 전 세계의 화합을 도모하고자 하는 올림픽 정신 속에서도 배제는 존재했다.
인종, 종교, 사상, 정치, 자연재해 등의 이유로부터 고국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 그러나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심지어 정상에서 벗어난 사람들로 분류되고 마는 현실들. ‘나는 누구이고, 나는 어디에 속하는가?’란 질문 앞에서 끊임없이 무기력함을 느껴야 하는 이들의 삶에 언제쯤이면 진정한 자유가 깃들 수 있을까. 문득 『자유 국가에서』 말미에 수록된 에필로그 「룩소르의 서커스단」 속 한 문단이 마음을 붙든다. ‘유일하게 순수했던 시대는 태초뿐이었는지도 모른다. 자기가 사는 땅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 고대 예술가들이 자신이 머문 땅이야말로 완벽하다고 여기던 때가 그 시대일 것이다. (…) 어쩌면 나일강은 단순히 물에 지나지 않는데도 청록색 물결무늬로 일렁인다니, 그것은 그저 지어낸 환상일지도 모른다. 이 나라의 경관도 아득히 먼 태곳적에 만들어진 데 대한 동경과, 무덤을 장식하기 위한 하나의 허상 같은 것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순수했던 시대, 이른바 우리가 꿈꾸는 진정한 자유란 과연 허상에 불과한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 모두는 각자의 의식과 세계 속에서 끊임없는 떠도는 유랑자들이다. 인도, 영국, 아프리카, 미국, 이집트…… 모든 곳에 있지만 어디에서 속하지 못하는 방랑자들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 『자유 국가에서』 속의 인물들이 제3세계 혹은 어느 낯선 타인으로 읽히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나는 누구이고 또 어디에 속하는가
다수의 문학상을 비롯하여 부커 상 그리고 노벨 문학상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이력을 보면 일단 어마어마한 수상 내역에 놀라게 되지만 그에 비해 이름은 상당히 낯설다. ‘출신지인 트리니다드 토바고를 비롯한 제3세계 문제를 밀도 있게 다뤄 서구문단에서는 1급 작가로 인정’받는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크게 주목 받은 적이 없는 듯하다. 처음 표지를 접했을 때 일종의 정치적 성격을 띤 르포르타주인줄로 짐작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부커 상을 수상한 중편작 「자유 국가에서」를 비롯해 네 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책 속에는 자유를 찾아 떠난 이민자와 어디에서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떠도는 유랑자들이 등장한다. 「피레우스의 방랑자」는 이집트에서 추방당한 난민들, 끊임없이 주위를 경계하는 덩치 큰 미국 학생들, 영국인 방랑자 그리고 그를 바라보는 ‘나’가 아테네 피레우스에서 카이로의 알렉산드리아로 가는 소형 증기선에 몸을 싣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처음부터 영국인 방랑자는 나의 시선을 끈다. 그는 노련한 여행자 같기도 하고, 어깨에 둘러멘 배낭에는 시집이나 일기장 혹은 막 쓰기 시작한 소설 원고가 들어 있을 것 같은 낭만적인 구석도 있으며, 자기와 마음이 맞을 것 같은 청년에게 다가가 다양한 여행 경험을 늘어놓을 만큼 허세도 부릴 줄 안다. 하지만 이내 영국인 방랑자는 유색인들의 적대적인 시선과 폭행에 떠밀려 누구와도 소통하지 않고 선실 안을 외로이 떠돈다. 이윽고 도착지를 바라보는 그의 불안한 눈빛에서 이곳에서도 쉽게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마는 그의 미래를 언뜻 본 것 같아 씁쓸함을 남긴다.
이집트계 그리스인인 그들은 이집트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하지만 이집트는 더 이상 그들의 모국이 아니었다. 그들은 이집트에서 추방당한 난민들이었다. 침략자들이 물러나고 수차례 굴욕을 겪은 끝에 이집트는 마침내 자유를 되찾았는데, 단순한 기술 덕에 이집트 사람들보다 형편이 조금 나았던 이 그리스인들은 그 자유의 피해자가 되어 이 배처럼 허름한 선박에 태워져서 강제 추방을 당했다. 그러다 지금 이렇게 관광객 틈에 섞여 귀국길에 오른 것이다. 그 가운데에는 레바논의 사업가, 스페인의 나이트클럽 댄서, 독일에서 귀국하는 뚱뚱한 이집트 학생도 있었다. / ‘피레우스의 방랑자’ 중에서 9p
피레우스와 레오나르도 다빈치호가 시야에서 사라지기도 전에 방랑자와 청년은 다시금 모르는 사이가 되었다. 결국 방랑자는 동행이 필요했던 게 아니었다. 그저 다른 사람에게 동행이 있는 것처럼 보이고, 스스로 보호받고 있다는 안도감을 느끼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는 자신이 괴팍한 사람이라는 걸 잘 아는 눈치였다. / ‘피레우스의 방랑자’ 중에서 1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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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에서 벗어나 한 개인으로」에서는 자신이 모시는 주인을 따라 인도 뭄바이에서 워싱턴으로 건너 온 산토시가 등장한다. 그는 이제껏 자신을 주인의 일부로 생각해왔기에 좁은 붙박이장에서 지내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았지만, 점점 ‘개인으로서의 나’로 자유에 눈을 뜨기 시작한다. 그리고 아파트, 붙박이장, 텔레비전, 주인, 슈퍼마켓으로 한정되어 있는 이 죄수 같은 삶으로부터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뭄바이로 돌아간다고 해서 예전처럼 살 수 있을까? 더군다나 지금의 주인이 아닌 또 다른 사람의 일부로 살아갈 자신도 없다. 그렇게 뭄바이로 돌아갈 수도 없고 주인으로부터 도망쳐 불법체류자의 신세로 워싱턴에 뿌리내리고 살 수도 없는 현실 앞에서 고민하던 그는 마침내 흑인 여자와 결혼함으로써 합법적으로 신분을 보장받고 워싱턴에서 살게 된다. 하지만 우연히 알게 된 인도인 프리야를 새 주인으로 섬기게 되는 마지막 장면에서 또 다시 이어지고 마는 피지배자로서의 역사와 한계를 들여다보게 해 안타까움을 남긴다.
나는 전에 자유인이었지만 지금은 그 자유도 잃고 말았다. / ‘무리에서 벗어나 한 개인으로’ 중에서 80p
형제라니, 대체 누가 누구의 형제라는 말인지 알쏭달쏭했다. 나도 한때는 큰 무리의 일부였다. 그때는 나를 독립된 개인으로 인식하지 못했다. 그러다 거울 속에서 나를 발견하고는 자유로워지기로 마음먹었다. 자유는 내게 이런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내가 가진 건 오로지 몸뚱이 하나뿐이라는 사실, 어떻게 해서든 그 몸뚱이를 입히고 먹여 살려야 한다는 사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 모든 게 끝난다는 사실을. / ‘무리에서 벗어나 한 개인으로’ 중에서 95p
‘'누군가 아는 사람이 있으면 말하라, 대체 나는 누구를 죽여야 하는지'’라고 묻는 이름 없는 사내의 이야기 「누구를 죽여야 하는지 말하라」는 자신의 인생을 망친 자들에 대한 적의를 강하게 드러낸다. 고향을 떠나와 죽기 살기로 일하며 번 돈을 아무렇지 않게 강탈해가는 저 불량배들인가, 하고 싶다던 공부를 할 수 있게 해주었건만 비싼 담배나 축내며 무기력하게 시간만 보내고 있는 동생 데이요인가, 아내를 때리고 돈을 함부로 낭비하면서도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형인가 혹은 너무나 뒤처진 나머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는 아버지인가. 그도 아니면 동생 데이요를 집요하게 괴롭혔던 숙부와 사촌들인가, ‘내가 그토록 열심히 일한 사실’도 모르는 이 유령 같은 도시인가. 대체 어디에다 이 원망과 분노를 쏟아내야 엉망이 된 나의 삶을 보상받을 수 있는지 알 수 없어 괴로워하는 사내의 처절한 고통이 날카롭게 파고든다.
영락없는 노동자의 얼굴이었다. 그 얼굴이 슬퍼 보여 마음이 아팠다. 답답할 정도로 좁은 방도, 창밖의 콘크리트 벽도, 햇볕이 들지 않는 뒷마당도 마음이 아팠다. 앞으로 어ㄸ?ㅎ게 될가? 동생과 내게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까? 동생은 결국 고향으로 가는 배에 올라 햇빛 밝은 아침에 내려서 택시로 교차로까지 가서는 낯익은 길을 달리게 될까? / ‘누구를 죽여야 하는지 말하라’ 중에서 153p
양복을 입고 책을 든 채 넓은 계단을 오르는 데이요도 관광객처럼 보였다. 관광객들은 그저 관광을 위해 이곳에 들렀을 터였다. 다들 행복해 보였다. 광장 한쪽에는 호텔로 데려다줄 버스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관광객들에게는 저마다 돌아갈 고향도, 편안한 집도 있을 터였다. 가슴 가득 슬픔이 차올랐다. / ‘누구를 죽여야 하는지 말하라’ 중에서 159p
표제작인 「자유 국가에서」는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땅에서 여전히 중앙 정부 산하 기관의 행정관으로 근무 중인 영국인 남성 바비와 유럽인 거주 구역 정부 공관의 행정관 아내인 영국 여성 린다가 함께 남부 관할 지구로 가는 길 위에서 일어나는 일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그들이 스쳐지나가는 아프리카의 풍경 속에는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원시 형태의 마을이란 없다. 기껏해야 관광객 전용 상점에 진열된 목각이나 가죽 제품, 기념품 북이나 뾰족한 창 정도다. 새로 들어선 관광호텔 입구에는 어색한 제복 차림의 소년들이 서 있고, 멀지 않은 곳에서 백인이나 유대인 관리자들이 소년들을 감독하고 있다. 또 몇몇 흑인 소년들이 자신의 몸을 팔아 돈을 버는 모습도 눈에 띤다. 심지어 린다는 아프리카인들이 피와 똥오줌, 쓰레기 같은 것을 주말마다 먹으며 증오의 의식을 치른다는 등의 소문까지 아무렇지 않게 떠벌린다. 이렇게 소설은 바비와 린다의 시선과 대화를 통해 식민 시대 이후의 아프리카를 냉철하고 가감 없이 보여준다.
소설 속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아프리카인들에게 호의적이었던 바비가 간간이 보여주는 모순된 행동들이다. 그는 줄루족 청년에게 “다시 태어난다면 나는 당신 같은 피부색을 갖고 태어나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바람에 그것이 진심이었든 아니었든 상대방으로 하여금 분노를 사고, 주유소에서 일하던 아프리카인이 자신의 차에 흠집을 내자 물어내지 않으면 여기서 쫓겨나게 만들 거라고 윽박지르거나 자신이 말하는 중에 건방지게 등을 돌렸다고 화를 낸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식민 시대의 특권 의식에 사로잡혀 피지배자들을 저급한 족속으로 몰고 가는 린다에게 날을 세우는 그의 태도는 기묘한 아이러니를 낳는다.
“나는 이곳 사람들이 유럽인들에 대해 편견 같은 걸 갖고 있다면 그건 순전히 유럽인들 탓이라고 생각해요. 대통령은 매일 이 나라 곳곳을 다니며 우리 유럽인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국민을 설득하고 있어요. 대통령이 뭘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에요. 그 또한 식민지 시절 유럽인들이 챙길 것 다 챙겨서 남쪽으로 도주한 사실을 훤히 꿰고 있어요. 생각하면 웃기는 일이에요. 우리는 아프리카인들에게 부패하면 안 된다고 역설해요. 그런데 그들이 우리의 사소한 부정이나 부패를 지적하면 화를 벌컥 내며 그건 잘못된 편견에서 나온 것이라고 핏대를 세우죠.” / ‘자유 국가에서’ 중에서 216p
“저 사람들은 오랫동안 농도로 지냈어요.” 바비가 말했다. 그는 다시 화가 났다. “수백 년 동안 압박과 착취에 시달렸던 사람들이란 말입니다.”
“아무튼 어처구니없는 사람들이에요.”
린다가 말했다.
바비는 눈앞의 길에 신경을 집중했다.
“어처구니없는 건 저 사람들이 아니라 이런 곳에 온 나예요.” / ‘자유 국가에서’ 중에서 29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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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자유 국가에서』에 수록된 작품 대부분에는 자신의 뿌리와 자유를 갈망하며 떠도는 자들의 슬픔과 좌절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제3세계 출신으로 자칫 감상주의에 빠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이폴은 포스트 식민 시대의 현실을 냉정하게 소설 속에 투영하고자 했고, 그러한 이유로 그의 언어는 높은 설득력을 지닌다. 덕분에 그의 작품에는 하나같이 억압된 역사의 굴곡을 뚜렷하게 직시하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또 그 역사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한 나폴리의 문학은 몇 번이고 회자될 것 같다. 아직 나폴리의 작품을 읽어보지 못한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 드린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