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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시 - 내 것이 아닌 아이
애슐리 오드레인 지음, 박현주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7월
평점 :

완벽한 아이를 위한 완벽한 엄마가 되기를 요구받는 모성의 현주소를 예리하고 가차 없는 시선으로 그려낸 소설!
아이가 갑자기 바닥에 드러눕더니 세상이 떠나가라 울기 시작했어. 그것도 막 초록불이 깜박이기 시작한 횡단보도 위에서 말이야. 나는 순간 온몸의 핏기가 싹 사라지는 듯했다가 일제히 얼굴로 확 몰려드는 것을 느꼈어. 8차선이나 되는 도로 한복판에서, 신호를 기다리기 위해 서 있던 운전자들이 일제히 나를 바라보는 것 같았거든. 딱하게 바라보는 듯한 시선 말이야. 그렇게 아이를 끌어안고 강제로 뛰다시피 건너오고나면 집으로 돌아가기까지 나는 얌전히 갈 수 있을까를 걱정해. 겨우 수십 분에 불과한 시간 동안에 아이의 감정은 수시로 변하기 마련이거든. 이런 상황이 올 때마다 사람들은 말해. “애들이 다 그렇지 뭐.” 이 맘 때쯤의 아이들은 다 그렇다고 위로 아닌 위로의 말을 하지. 나도 모르는 건 아니야. 언젠가는 이 아이도 초록불이 바뀌기 전에 빨리 횡단보도를 건너야 안전하다는 것쯤은 알게 되겠지. 하지만 그러는 사이에 내가 마주해야만 하는 수많은 곤란들은 나를 지치게 해. 그리고 세상은 ‘모성’이라는 아주 간단하고 거창한 이름으로 그 모든 것들을 감싸 안아야 한다고 말하지. 그게 당연하기라도 한 것처럼.
모성이 세상에 던지는 질문
“어째서 내가 좋은 엄마가 될 거라고 생각하는데?”
블라이스는 한시라도 빨리 우리의 아기를 갖고 싶다는 남자친구 폭스에게 이렇게 묻는다. 여동생을 ‘예쁜이’라 다정하게 부르고, 주말에 격주로 집에 가서 아버지를 도우며 따뜻한 포옹을 나누는 그의 완벽한 가족 사이에서 그녀는 불안함을 느낀다. 블라이스는 그녀의 외할머니인 에타에 이어 엄마인 세실리아로 이어져 내려온, 모성 결핍이라는 유전자가 자신에게도 영향을 미칠 거라는 생각에 두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폭스에게 어울리는 아내가 되고 싶었고, 그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기에 그녀는 완벽한 아내가 되고자 노력한다. 어쩌면 자신만은 엄마와는 다르리라는 확고한 사실, 바로 그러한 사실을 확인받고 싶었던 마음이 더 컸을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내가 더 많은 사실을 숨기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결코 캐묻지 않았어. 무슨 말을 들을지 모르니 두려웠을 테지. 나도 이해해. 우리는 모두 서로에 대해, 자기 자신에 대해 어떤 기대를 가질 자격이 있지. 모성도 마찬가지야. 우리 모두 좋은 엄마가 있기를, 그런 사람과 결혼하기를,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라지. / 20p
우리는 이미 이전에 여러 번 이 얘기를 했었지. 내가 다른 사람들의 아이를 안거나 무릎을 꿇고 놀아주고 있노라면 당신은 신이 났어. 당신 천부적이야. 하지만 상상으로 그려본 쪽은 나였어. 모성. 그건 어떤 것일까. 어떤 기분일까. 당신에게 잘 어울려.
나는 달라지려 했어. 그런 일들이 쉽게 되는 다른 여자들과 같아지려 했어. 내 엄마가 되지 못했던 건 뭐든 되려 했어. / 35p



하지만 블라이스는 아이를 자신의 몸에서 밀어내는 순간, 격렬한 고통과 함께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낀다. 초현실적인 시간의 우주 속에서 맥박을 나눈 단둘만의 역사가, 경이로운 감각이 이따금 마음을 뭉클하게 했지만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엄마’는 아이의 생존을 책임져야만 하는 절대적인 역할로 돌입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내 그녀는 이 관계 속에서 살아나갈 수 없는 유일한 엄마가 되는 기분을 느낀다. 항문부터 질까지 회음부를 봉합한 상처에서 회복되지 못한 유일한 엄마. 젖꼭지를 면도날로 베는 것 같은 고통을 주는 신생아의 잇몸과 싸워 이길 수 없는 유일한 엄마. 잠을 못 자 머리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유일한 엄마. 커리어를 내려두고 아이를 먹이고 재우고 액상 유산균을 주는 일에만 집중해야 하는 엄마. 아이를 낳고 축 늘어진 피부에 마시멜로 같은 몸뚱이를 가진 엄마. 자신과 있을 때만 우는 아이에게 배신감을 느끼는 엄마. 딸을 내려다보고 제발 꺼져버려, 라고 생각하는 유일한 엄마. 아이를 아기 침대에 내려놓고 한밤에 떠날까 생각하는 엄마. 엄마와 아이란 서로를 원해서 태어난 존재지만, 엄마가 짊어져야 할 모든 현실의 무게에 점점 지쳐간다.
우리는 몇 분 동안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어. 그런 다음 여자가 말했어. “애가 나한테 별안간 생긴 것만 같아요. 내 세계로 쿵 떨어져서 가구들을 다 넘어뜨린 것처럼.”
“그렇죠.” 나는 그 여자의 아이가 무기라도 되는 양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어. “아이를 원했고 몸 안에서 키웠고 내보내기도 했지만 별안간 생긴 일이기도 하죠.” / 65p
나는 여전히 너무 피곤했어. 너무 신경이 곤두서서 당신 어머니를 우리 집에 내내 모실 수가 없었지. 어머니에 대한 나의 감정은 복합적이었어. 어머니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어. 누구의 도움이라도 필요했지. 그렇지만 어머니의 능력에 대해 분개심을 품게 되기도 했어. 당신의 인생 내내 당신의 어머니가 모든 것을 너무 쉬운 일처럼 처리했다는 것이 싫었어. / 111p
그런 가운데 블라이스는 딸 바이올렛으로부터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한다. 아이가 유독 아빠에게만 애정을 보이더니 급기야 엄마가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극도로 거부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바이올렛이 미끄럼틀 위에서 발을 걸어 넘어뜨린 친구가 죽는 끔찍한 일까지 발생한다. 불과 10초, 그 잠깐의 순간에 벌어진 사고를 보게 된 블라이스는 이때부터 대체 자신의 딸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경계하게 되고, 이후 둘째 아이 샘의 죽음에도 블라이스가 관련이 되어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된다. 딸이 내 팔을 잡아 당겼어요. 나는 뜨거운 차에 데었어요. 내가 유아차를 놓아버렸어요. 그러자 딸이 그 유아차를 길 위로 밀었어요. 그녀는 경찰에게, 남편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하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 너무나 사랑하는 아들을 잃어버렸다는 상실감에 그녀가 미쳤다고 생각할 뿐이다.
이처럼 소설 『푸시』는 완벽한 가족을 이루길 꿈꿨던 한 여성이 자신이 낳은 아이를 사랑하지 못함으로써 겪게 되는 모성의 딜레마와 딸의 손끝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죽음의 서스펜스를 정교하게 엮어낸 심리스릴러다. 엄마가 되는 순간부터 이전과는 다른 삶으로 돌입하게 되는 나의 시간. 그리고 매순간 아이를 둘러싼 세상으로부터 도전받는 듯한 느낌. “당신은 걔 엄마잖아. 당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은 그뿐이야.” 완벽한 아이를 위한 완벽한 엄마가 되기를 요구받는 모성의 현주소를 예리하고 가차 없는 시선으로 그려낸 것은 물론, 자신이 낳은 아이의 손에서 일어난 비극이 과연 그녀만의 망상일까, 혹은 진실일까 혼란의 혼란을 거듭하며 마지막까지 극적 긴장감을 잃지 않는 수작이다. 여기에 소시오패스로 의심될 만한 딸 아이의 공격성이 바로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에 괴로워하는 엄마 블라이스의 심리까지 섬세하게 그려냄으로써, 모성의 이면이 세상의 모든 엄마들에게 지우는 과도한 무게감에 대해 다시 한번 더 생각하게 한다.
그렇게 잠 못 드는 밤이면, 엿들은 이야기를 재생하며 점점 이해하기 시작했어. 우리는 무언가로부터 자라난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씨앗에 실려 온 것이며, 나는 엄마가 일군 정원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 72p
“내가 마치 범죄를 저지른 사람 같은 기분이 들어요.” 엄마 중 한 사람이 말했어. “시설에 가면 교도관들이 나를 그런 식으로 대해요. 변호사들도 나를 그런 식으로 대해요. 모두가 내가 마치 잘못을 저지른 사람처럼 쳐다봐요. 하지만 나는 아무 짓고 안 했는데.” 그 여자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이었어. “우리는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어요.”
“안 한 걸까요?” 잠시 생각한 후에 한 엄마가 입을 열었어. / 217p


오늘도 나는 아이의 손에 들려주지 말아야 할 것을 들려준 것은 아닌지, 아이가 흘린 눈길에 어떤 의미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조금 전에 내가 한 말이 아이의 마음에 평생 상처로 남는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의심한다. 이 모든 게 엄마라는 이유로, 아이와 관련된 그 모든 것에 시험받는 기분을 느끼곤 한다. 그런데… 나만 그런 거 아니죠? 당신들도 그런 거죠? 물어보고 싶지만 차마 물어보지 못하는 말을 삼켜가면서.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