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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파 마피아
토마스 키스트너 지음, 김희상 옮김 / 돌베개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이명박씨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많이 떠오른 이름이다. 1998년 피파 회장으로 선출되어 네 번째 회장직을 연임하며 장기집권을 하고 있는 제프 블라터와 비교해도 전혀 뒤질 것 같지 않은 인물이다. 그가 대통령에 있던 시기 했던 수많은 정책과 건설은 이제와서 엉망진창이었음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대통령과 이놈의 정부는 그를 잡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아마 새누리당이 아니라 야당에서 정권을 교체했다면 가장 먼저 검찰청 포토라인에 섰을 사람은 이명박씨였을 것이다. 그런데 너무 잘 살고 있다. 건드리지 않는 것인지, 건드릴 수 없는 것인지 모르겠다.

 

 

 

“피파 내부사정에 밝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파리의 마지막 선거에서만 200만 달러가 투입되었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p.130)

“블라터가 사무총장이던 시절의 서류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법으로 10년 동안 보존하도록 규정된 서류였다.” (p.171)

 

이명박씨와 그 정권은 임기 말, 여러 가지 서류를 흔적도 없이 없앴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간의 회담을 가지고 온갖 공격과 음모를 펼쳐내던 그들이다. 그런데 정작 자신들의 집권 기간 내 작성되었던 여러 가지 기록과 서류를 없앴다는 것이다. 피파 회장, 제프 블라터에게 배운 것일까? 블라터와 이명박씨에게서 보이는 유사성은 가히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피파라고 하면 일단 축구팬들에게는 어느 정도 좋은 이미지다. ‘피파’라는 게임시리즈는 마니아라면 한번쯤은 해봤을 게임이고, 월드컵을 주관하는 단체이기도 하다. 주말 밤과 새벽마다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챙겨 보며 환호하는 팬들도 시즌 중간 피파에서 주관하는 A매치 데이가 열리면 하는 수 없이 한 주를 더 기다려야 했다. 그만큼 막강하고 대단한 단체로 여겨진다. 아무리 축구 팬이라 하더라도 피파의 회장이 누구이고, 전직 회장이 누구이며 피파본부 건물이 어디에 있는지 등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찾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찾아볼 수 있는 방법도 알지 못한다. 그냥 매주 주말마다 프리미어리그에 열광하고 챔피언스리그에 열광하고 4년마다 치러지는 월드컵에 열광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그런 피파가 터무니없이 나쁜 곳이고, 아니 정확하게 말해서 피파에서 한 자리 하고 있는 사람, 특히 회장이라는 자가 비리와 불법의 결정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 전만큼 축구에 열광할 수 있을까 싶다.

이 책은 스포츠 탐사보도를 엮은 책이다. 두껍고 글씨는 깨알 같다. 시종일관 피파 회장인 제프 블라터의 비행과 비리, 불법과 안하무인이 기록된 책을 읽는 것이 버거웠다. ‘에이~ 설마 이 정도일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피파는 썩을 대로 썩어 있는 단체였다. 한국의 각종 스포츠 협회와 연맹의 부도덕성과 비리, 불법은 주지의 사실이다. 잊힐 만하면 툭툭 사건과 사고가 일어나는 곳이다. 지난 브라질 월드컵 축구대표팀 차출과 경기, 대회 종료 후 감독의 거취를 둘러싼 협회의 대응과 태도는 한 나라의 스포츠 협회 중 가장 막강한 자본력과 영향력, 힘을 가진 곳이라는 것이 부끄러울 정도로 어설프고 수준 미달이었다. 그런데 이런 스포츠 협회도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격언에 부합하는 것일까? 대한축구협회의 상위 기관인 국제축구연맹, 피파는 더 하면 더 했지 덜하지는 않은 것 같다.

 

 

“‘건설에는 오로지 스위스 기업만 참여했다.’ 피파가 의미심장하게 강조한 대목이다. 그러나 블라터의 회장집무실 살림을 맡은 어떤 여성 국장의 남편이 본부 건설에 한몫 단단히 한 게 사실이 아니던가” (p.327)

 

 

피파의 본부가 스위스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수천억의 공사비용이 들어간 이 본부건물(책에서는 궁전과 같다고 묘사되는)의 건설에 블라터 측근의 남편이 참여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나? 알 수 없다. 이명박씨 집권 시절 한반도 대운하 사업을 하려다 국민적인 저항에 부닥치자, 4대강 공사라며 슬그머니 이름만 바꾼 채 강을 파댔다. 공사 과정에서 일어난 각종 의혹에 대해서는 일일이 열거하기가 부담스러울 정도다. 그 중에서 낙동강의 일부 구간 공사에 참여한 건설 업체가 지역에서 유명하거나 자리를 잡은 중·대형 건설사가 아니라 이명박씨의 모교인 포항 동지상고(현재는 동지고등학교)출신이 운영하는 듣보잡 건설사였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해먹으실 수 있는 대로 최대한 해먹으시지만 주변은 꼭 챙기시는 살뜰하고 꼼꼼한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스위스가 어떤 나라인가? 높은 GDP, 천혜의 관광지, 장인들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기술국가, 금융업의 선두주자 등등. 그런 스위스의 한복판에서 한국의 전직 대통령이 하시던 방법대로 피파라는 거대한 조직을 떡 주무른 블라터의 변명은 단 한 가지 였다.

“모두다 스위스 경제를 위한 것이요!!”

개똥같은 소리하고 앉아 있네.

 

 

 

“조직 예산은 매년 회장의 활동에 따로 100만 프랑이라는 액수를 할당했다. 피파 회장은 무보수 명예직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은가?” (p.101)

 

실제로 한 해 수천만 프랑 혹은 수천만 유로의 이익을 내는 피파로 인해 실제 스위스경제가 활성화 되고, 경제적 시너지가 일어났다는 통계나 수치는 전혀 없다고 한다. 그저 블라터의 허풍이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피파 회장은 무보수 명예직임에도 한 해 수십억에 이르는 활동비는 물론, 책에서 더 자세하게 파헤치지 못한 꿍꿍이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돌이켜 보면 이명박씨도 그랬었다. 4대강 공사를 하면서. 4대강 공사로 인해 가뭄 해결은 물론이고 환경개선과 무엇보다 경제적 파급효과가 엄청나다고 했었다. 고용창출의 수치는 구체적이고 화려했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경제적 파급효과나 고용창출은 일어나지 않았다.

닮아도 너무 닮았다.

 

 

“피고인이 연봉 외에도 오랜 시간에 걸쳐 피파에서 돈을 끌어다 쓴 게 형사처분의 대상인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그러니까 적시된 사실만으로는 처벌의 충분한 근거를 이끌어낼 수 없습니다.” (p.185)

“축구는 FBI와 다른 수사기관에 희망을 걸 수밖에 없다. 축구는 세계 각지에서 수사를 벌이고 있는 검찰의 독립성에 의존해야만 한다.” (p.32)

 

블라터의 이런 불법과 비리의 극성이 멈추지 않는 것은, 피파와 블라터를 조사하고 수사해야 할 감독기관과 해당관청 등이 서로서로 물려 있는 탓이다. 스위스 검찰 정도 되면 적어도 한국의 검찰보다는 공정하게 수사를 할 것으로 기대하는데, 그것도 아닌 모양이다. 블라터의 반대파와 다른 축구팬들은 모두 알고 있는 블라터의 비리와 불법을 수사기관과 감독기관에게만은 전혀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스위스도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월드컵만 열렸다 하면 수십억의 인구가 경기에 넋을 잃는다. 아무리 경영을 엉망으로 해놓고 돈을 빼돌려도 신경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 (p.257)

 

온갖 추악한 탐욕과 거래가 뒤엉켜 있는 피파와 블라터와 그 측근들의 전횡을 막을 방법이 정말 독립적인 수사기관일까? 책에서의 결론도 그렇고 내 개인적인 견해도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월드컵과 올림픽을 앞두고는 갑자기 온갖 방송매체에서 모두들 현재의 짐은 잠시 잊고 월드컵과 올림픽에서 화려한 경기를 펼치는 선수들에 목을 매야 하는 것처럼 분위기를 조성하는 탓도 있지만, 맹목적으로 빠져드는 대중에게도 책임이 있다. 오죽하면 비리와 불법의 상징, 블라터가 저런 이야기를 했을까? 4년마다 열리는 월드컵이 있으니 블라터는 아무런 걱정이 없는 것이다. 월드컵이 열리고 세계에서 가장 축구를 잘한다는 선수들이 경기를 펼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자신과 피파를 향해 가해지던 비판과 조롱은 뒤편으로 쑥 들어가는 꼴을 매번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책에서 아주 자세하게 언급되는 블라터의 치사한 방법이 있다. 제3세계 국가의 인사들을 돈으로 사는 것이다. 남미 온두라스와 서유럽 프랑스의 투표권이 1표로 동일하다. 블라터는 자신과 대립하는 강력한 인사들과 경쟁하기보다 돈으로 제3세계 인사들을 매수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것은 너무나 잘 통해서 오랜 기간 블라터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요한손과의 선거에서 번번이 승리하게 만들었다.

이쯤 되면 당연하게 생각나는 사람, 이명박씨. 이명박씨도 그랬다. 버스중앙차로제와 청계천 복원에 대해 일말의 호의를 가지고 있던 일반 서민들에게 각종 당근을 퍼부었다. 그것이 실제로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지킬 것인지에 대한 문제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이기면 그만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지난 대선에 대한 국가기관의 개입에 대한 문제는 아직까지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다. 만약 그 전황이 조금이라도 밝혀진다면 대선 훨씬 이전부터 각종 국가기관의 여론조작이 일어났었기 때문에, 이것에 대한 책임에서 이명박씨는 멀어질 수 없다. 어떻게 해서든지 이겨야 했기 때문에 상상하지도 못했던 국가기관의 여론조작과 대선개입을 시도한 것은 아니었을까? 만약에 말이다. 나 같은 범인이 뭘 알겠나? 만약에 말이다. 만약 국가기관에 의한 여론조작과 대선개입의 실체가 드러난다면, 우와~ 이것은 정말 엄청난 일이 될 것이다. 천하의 블라터도 당장 극동의 작은 나라로 날아와 이 방법과 노하우를 전수받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 피파 회장직을 오래오래 하면서 더 해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 에이~ 그래도 설마~ 그런 일이 있었겠어? 정상적인 국가에서?

 

 

“코카콜라가 조금이라도 싫은 내색을 하면 피파는 펩시에 아양을 떤다. 아디다스나 소니가 실제로 광고를 빼겠다고 하면, 나이키와 삼성이 이내 그 자리를 차지한다.” (p.233)

 

피파와 블라터가 계속해서 유지되고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자본의 힘이다. 월드컵 경기나 A매치 경기에서 경기장을 사각으로 둘러싼 광고판에 광고를 하기 위해서 얼마가 필요할까? 최소 수억 원 정도 되지 않을까? 프리미어리그에 속한 첼시팀의 유니폼에 삼성을 새겨 넣기 위해서 후원한 금액이 수백억 원에 이른다. 삼성이 바보일까? 그깟 유니폼에 ‘SAMSUNG’을 찍어 넣는 것에 수백억 원을 투자하다니. 삼성은 절대로 바보가 아니다. 나이키와 아디다스, 코카콜라와 펩시는 바보가 아니다. 돈이 되고 돈이 남으니까 그런 후원을 하는 것이다. 창단 이래 한 번도 유니폼 광고를 하지 않았던 스페인의 바르셀로나도 이제는 유니폼 광고를 하고 있다. 돈과 스포츠는 끈끈하게 얽혀 있다. 절대로 떨어지거나 멀어질 수 없는 관계다.

피파 회장직이 명시된 대로 무보수 명예직에 불과하다면, 블라터는 물론 그의 라이벌들이 그렇게 온갖 노력을 기울이며 그 자리에 오르려고 했을까? 피파 회장을 하면 남는 게 있으니까 혈안이 되어 갖은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그 자리를 차지하고 싶은 것이다.

축구를 좋아하는 것과 블라터를 비판하는 것은 양립할 수 있는 문제다. 정말 축구를 좋아하고 사랑한다면 축구계를 좀 먹고 명예로운 피파회장의 이름을 더럽히는 블라터를 향해 가차 없는 비판을 해야 마땅하다. 이 책의 내용을 여러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 같고, 신께서 한국인들에게 허락해주신 게시판 폭격의 힘을 피파에 선사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으로 보인다. 그리고 브라질 월드컵과 지난 남아공 월드컵 기간 전후에 걸친 브라질과 남아공 국민들의 시위와 월드컵 반대의견에 대해서 찾아보고 경청하는 것도 좋은 태도라고 생각한다. 이후 월드컵은 러시아와 카타르에서 열린다. 모르긴 몰라도 남아공과 브라질 이상으로 반대와 비판이 많을 것으로 보이는데, 진정한 축구팬이라면 이런 비판과 반대의 목소리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필요하다.

블라터가 피파 회장직에서 물러난다고 해서 피파의 불법과 비리가 사라질까? 나는 전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요한손, 빈 함맘, 정몽준, 플파티니 등 강력한 라이벌이 피파회장이 되어도 블라터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아니, 조금은 덜 하겠지(블라터 형이 정말 많이 해 드셨으니...) 그래도 크게 바뀔 것 같지는 않다. 조직과 운영은 단 한사람이 바뀐다고 해서 갈아엎어질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말이다. 전 세계의 축구팬들이 매의 눈으로 피파와 그 궁전 같은 본부건물에서 뽐내고 있는 회장을 비롯한 고위인사를 살펴보고 감시하는 것이 썩어 있는 피파를 조금이나마 바뀌게 할 수 있는 힘이다.

이명박 형님이 여전히 건재하신 걸 봐~! 안된다니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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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신의 오후]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독신의 오후 - 남자, 나이듦에 대하여
우에노 지즈코 지음, 오경순 옮김 / 현실문화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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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결혼 전까지 9년 동안 자취를 했던 경험에 비춰보면, 독신은 별로 좋지 않다. 나름 시간관념이 철저하고 집안일을 좋아하는 나였지만 자취 경력 7-8년차가 지나고 사회생활을 본격적으로 하게 되면서 그간 지켜온 자취생활의 계획성과 철저함은 차츰 무너지게 되었다. 아침 일찍 출근해 피곤에 찌든 몸으로 퇴근해 자취방으로 돌아오면 말 그대로 ‘만사가 귀찮았다.’ 될 수 있으면 밥은 밖에서 해결하게 되고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하던 대청소는 그 주기가 점점 벌어지게 되었다. 아침에 빠져나온 이부자리는 저녁 잠자리에 들어가기 전까지 그대로가 되기 일쑤였고 어머니가 바리바리 싸다 주신 반찬들은 냉장고에서 곰팡이와 함께 발효되었다. 지금도 결혼식 앨범이나 결혼 직전 웨딩촬영을 한 사진들을 보면 피부상태나 몸의 상태가 가장 최악이다. 평생에 한 번 있을(있어야만 하는) 결혼사진을 찍는데, 몸무게도 가장 많이 나가고 피부도 최악일 때였으니 다시 찾아보기 싫을 정도다. 물론, 아직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자취를 하며 사는 수많은 사람들은 내가 한 8년의 자취경력보다 더 오랜 기간 자취를 하고 있음에도 멋있게, 깨끗하게, 건강하게 자취를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맞지 않았던 것 같다. 결혼 후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다이어트 했어? 피부 좋아졌다.”였으니, 내게는 독신보다 결혼이 더 맞고, 자취보다 동거가 더 맞는 것 같다.

 

 

이 책 「독신의 오후」는 제목만 놓고 독신의 삶을 찬양한다거나, 독신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으로 오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책의 내용은 전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우리보다 훨씬 일찍 노령화가 정착된 일본인이 쓴 책이다. 독신 여성의 관점에서 본 ‘노년 남성들의 독신 생활을 위한 노하우’ 정도로 읽힐 수 있을 것 같다.

책이라는 것이 어떤 독자가 읽느냐에 따라 그 제목은 물론 내용의 상당 부분도 다르게 읽힐 수 있는데, 내게 이 책은 ‘노년 독신 남녀의 간병생활의 대두’로 읽혔다. 아무래도 암투병 중이신 아버지와 그 아버지를 6년 째 간병 중이신 어머니가 있기 때문이다.

 

 

 

“간병은 체중과의 싸움이라는 말이 있다. 남편의 아내 간병와 아내의 남편 간병의 차이는 바로 ‘체중’차이다.” (p.229)

 

 

 

두 번의 수술과 네 번의 항암치료를 거쳐 거의 완치 판정을 받기 직전, 그러니까 지난 3월 병원으로부터 또 다시 재발 판정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국립암센터를 찾아 현재 한국에서 유일한 양성자치료를 받으신 것이 지난 5월부터 7월까지였다. 양성자치료를 받기 위해 수술을 받고 2개월 넘게 양성자치료를 받으셨다. 예후가 좋아 지금은 서서히 회복되고 있으신데, 문제는 어머니였다. 2개월 동안 아버지 간병을 하시면서 평소 좋지 않으셨던 허리와 무릎에 문제가 왔다. 그리고 찾아간 정형외과에서 깜짝 놀랄 이야기를 들었는데, 어머니 오른쪽 어깨 인대가 파열되었다는 것이었다. 의사는 인대가 끊어질 정도면 엄청난 고통이 있었을 텐데, 어떻게 참았느냐며 도리어 놀랐다. 체중 차이가 20kg넘게 나는 아버지를 침대에서 일으키고 다시 누이고, 부축하는 과정에서 어깨 인대가 끊어진 것이다. 너무 마음이 아프고 죄송했다.

책에서 이 부분에 대한 소개가 있어 반갑기도 하고 놀라기도 했다. 일본의 경우나 한국의 경우가 비슷한데, 대부분 남성의 수명이 짧고 암 발병 확률도 높다. 그래서 노년 부모의 간병하면, 아버지를 간병하시는 어머니의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의 경우처럼. 그 경우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체중’차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책의 내용이 부모님에게서 그대로 적용이 되었다.

노년에 남편이나 아내 누구나 아프지 않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다. 누구나 바라는 바다. 하지만 지금 암 발병과 투병은 흔한 일이 되었다. 앞으로 나와 내 아내가 노년에 접어들게 되면 또 어떤 병이 더 일반화 될지 모르는 일이다. 책을 읽고 부모님의 경우를 보며 ‘정말 나는 아프지 않아야 한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어디 내 뜻대로 되는 일도 아니고, 어떤 병으로 인해 혹시 투병하게 된다면 절대로 아내 손은 빌리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불편하겠지만 전문 간병인을 쓰는 것이 좋겠다 싶었다.

 

 

 

“시니어 세대를 대상으로 한 조사를 보면 ‘국내 여행을 함께 가고 싶은 상대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여성의 대답 중 1위가 ‘가족’, 2위는 ‘친구·지인’, 3위는 ‘남편’의 순이었다. 참고로 남성의 대답은 ‘아내’가 단연코 1위였다.” (p.187)

 

 

 

황혼이혼이 우리 사회에도 만연하다. TV의 모 교양프로그램에서는 황혼이혼을 염두에 둔 노년의 부부가 나와서 상담을 받고 다시 관계가 좋아지는 것을 방송하기도 한다. 저자가 소개한 일본의 조사는 당연하게 생각되면서도 안타깝다. 남편은 노년이 되면 아내를 의지하게 된다는 것. 하지만 아내는 점점 그런 남편에게서 멀어진다는 것. 이 책을 읽으며 아직은 신혼이라 생각하는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아내도 나처럼 생각하고 있을까?’ 지난 4월 너무 사랑스럽고 예쁜 딸을 낳았다. 어른들 말씀처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정도는 아직 아니지만 너무 귀하다. 그런데 그런 딸아이에게 나는 줄곧 얘기한다. ‘너도 너무 예쁘고 사랑스럽지만 아빠는 엄마가 더 좋아~’ 그런데 아내도 그렇게 생각할까? 갑자기 식은땀이 나려고 한다. 흐흐

노년의 부부가 신체적으로 건강해서 결혼생활을 유지한다고 해서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수십 년 같이 살아도 정서적으로 이혼인 상태도 많다.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서 배우자의 죽음을 막을 수는 없다. 남편과 아내 서로가 너무 사랑하고 너무 행복한 결혼 생활을 영위한다는 전제 하에, 그 부부의 바람은 한날한시에 눈감는 것일 테다. 그런데 그게 가능하지 않다.

 

 

“남자가 여자와 다른 점은 똑같이 약한데도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p.102)

“남성은 조직 구성에 능하다. 그 대신 남성들이 만든 조직은 그들이 익히 잘 아는 조직, 요컨대 기업과 닮아간다. 당연히 처음에는 자유롭게 만들었을 터인 그 집단이 어느새 부턴가 기업 축소판이 돼버리고 만다.” (p.124)

 

 

 

책은 독신 남성이 여성들과 조화롭게 어울려 생활하는 방법을 소개한다. 사실 이 부분은 크게 와 닿지 않았다. 아직 젊은 탓이다. 하지만 저자의 지적대로 남성은 좀처럼 자신의 치부나 약점을 드러내거나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자유롭고 평화로운 조직도 금세 권력구조로 만들려 한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이것은 젊은 남성이나 노년의 남성이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힘들 때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랑스러운’ 싱글 남성의 증가는 대환영이다. 그리하여 세상살이가 상부상조할 수 있는 방향으로 변화해나가기를 기대해본다.” (p.295)

 

 

가는 책의 말미에 ‘사랑스러운 싱글 남성’을 언급한다. 오금이 저리고 손가락과 발가락이 오그라드는 표현이기는 한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남성들 모두 염두에 둬야 하는 코칭이 아닐까 싶다. 배우자의 죽음이나, 배우자와의 이혼, 혹은 처음부터 비혼인 채로 독신생활을 유지하는 남성이 앞으로 점점 더 많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동성은 물론 이성과의 관계를 잘 유지하는 것이 필수다. ‘힘들 때 힘들다고 말하는 사랑스러운 싱글 남성’을 언급한다. 이게 말은 쉽지만 정말 어려운 것이다. 일본의 경우도 비슷한 것 같은데 한국 남성들에게 자신의 약함과 한계를 인정하고 터놓는 것은 정말 흉금을 터놓는 친구와의 격한 술자리를 제외하고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아내에게도 그렇지 못한 남성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원래 그런 남자다. 눈에 흙이 들어가지 않는 이상 그럴 수는 없다.’라고 고집피울 수도 없다. 책에 소개된 일본의 싱글 남성들, 혼자서 고립되어 살아가는 삶을 피하려면 차라리 눈에 흙을 한번 집어넣은 후 깨끗하게 씻고 사람들과 상부상조하면서 조화롭게 살아야 한다. 아! 물론, 혼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대인관계 따위는 필요치 않다고 생각하는 독신의 절정고수가 계시다면 그렇게 사시면 된다.

 

 

아~ 나는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아내도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친구들도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처럼 웃으면서 재미있게 살았으면 좋겠다. 만약 내 소중한 사람들이 내 곁을 먼저 떠난다면…… 생각하기도 싫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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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짓 - 최악의 의사결정을 반복하는 한국의 관료들
최동석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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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소초에서 소초장을 하다가 사단본부로 전입가게 되었다. 단기복무 장교에게는 거의 보직이 나지 않는 자리였다. 해안부대 대대장을 하던 양반이 사단본부 작전처로 가게 되었고 그가 나를 끌어당겼다는 이야기는 첫 회식때 듣게 되었다. 어쨌든 나는 촌구석 중에서도 촌구석에 외떨어진 소초에서 나올 수 있었고 남은 군생활은 대구에서 하게 되었다. 직접 병사들을 지휘하고 작전을 나가는 부담은 없었지만 사단본부에서의 행정업무는 또 다른 고역이었다. 관할부대의 상황을 유지하고 부대장과 상급부대에 보고하는 것이 주요 업무였다. 자연스럽게 업무 시간 내내 컴퓨터 앞에서 전화기를 붙들고 있어야 하는 일의 연속이었다. 처음 해보는 군대내 행정문서 작성과 전화업무는 숙달되니 재미있었다. 사단본부에서 근무한다는 것이 계급을 뛰어넘게 하는 힘이 있었다. 그렇다고 해봐야 중위가 누릴 수 있는 권력의 힘은 거의 없었지만, 별을 네 개나 달고 있어 전투모가 너무 무거워 보이는 사람들도 볼 수 있었고, 별을 세 개 달고 있는 사람에게 대면보고도 할 수 있는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이 책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짓」을 읽으며 내 군생활을 떠올린 것은 책에 등장하는 ‘품의제도’ 때문이다.

 

 

 

“교육부차관을 만나기 위해 교육부 청사에 갔었습니다. 나이든 공무원들 대여섯 명이 결재서류판을 들고 장관실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관료들에게 일하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상관에게 결재를 받는 일입니다.” (p.208)

 

 

 

이것과 거의 똑같은 장면을 나는 사단본부 군생활 내내 경험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나는 사단의 상황을 유지하고 보고하는 일을 했다. 그 보고라는 것의 주된 업무는 <일일상황보고>이었다. 예하부대에서 어떤 일이 있었고, 상급부대는 어떤 일이 있었고, 명일(군대내 용어로 ‘내일’을 뜻한다)사단과 예하부대, 상급부대의 중점사항은 무엇인지 등의 사항들을 짧게 정리해서 보고하는 것이다. 사단의 부대장인 사단장이 퇴근 전 그 A4 한 장의 <일일상황보고>를 보고 부대의 오늘과 내일을 파악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문서를 작성하는 나로부터 사단장 직전까지 결재를 받은 후 사단장 부속실에 들어가면, 열이면 여덟에서 아홉 번은 사단장의 결재를 받기 위해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일일상황보고>는 빨리 사단장의 결재를 받은 후 상급부대로 보고를 해야 했기 때문에 신속하게 사단장실로 들어갔던 데 반해, 다른 결재서류들은 그대로 군인들 손에 들려 있거나 부속실 책상위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했던 <일일상황보고>도 가장 신속하게 결재를 받아야 하는 서류였음에도 불구하고 절차는 복잡했다. 내가 작성해서 사단장 직전까지 받아야 할 결재가 4개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부득이하게 자리에 없을 경우 전결처리 하거나 순서를 뛰어 넘은 채 사단장에게 들어가는 경우도 있었는데, 추후에 왜 기다리지 않았냐며 되레 혼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결재라는 말은 품의제도를 사용하는 나라에서만 통용되는 용어입니다. 영어단어에는 결재라는 말이 없습니다.” (p.199)

“품의제도(稟議制度, Ringi-System)는 일제의 잔재로, 이러한 의사결정제도를 시행하는 나라는 우리나라 그리고 선진국 중에는 일본밖에 없는 매우 독특한 것입니다.” (p.96)

 

 

일본을 그렇게도 싫어하면서 일제의 잔재를 이렇게도 유지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책의 저자가 강하게 지속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품의제도의 비효율성과 무책임성이다. 결재를 받기 위해 자신의 의견이나 창의적인 생각이 제한되는 것은 뻔 한 일이다. 한번이라도 기안을 해 결재를 받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바로 알 수 있다. 최초 내가 100을 만들어 결재를 올렸다고 가정했을 때, 마지막 결재권자가 받아든 결재서류는 60정도일 때가 많다. 중간 결재권자들이 다듬고 첨삭하고 편집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아예 중간에서 결재 자체가 되지 않아 없던 일이 되는 경우도 많다.

 

 

 

“넷째, 품의제도 아래에서는 어떠한 의사결정도 그 결과에 대하여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점” (p.218)

 

 

더 큰 문제는 품의제도가 불러오는 무책임이다. 저자의 지적대로 무수히 존재하는 결재 층은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기에 충분하다. 문제가 생기고 사고가 났을 경우 최초 기안자에게 책임을 떠넘기기에 최적화된 시스템이다.

 

 

 

“국가를 위기 사태로 내몰았는데도 국가운영을 책임지고 있던 정치가나 고위공직자들 중 정치적 책임 외에 어떠한 법률적 책임을 지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p.7)

“관료들에게 자신들이 섬겨야 할 국민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오직 자신에게 은혜를 베풀어 줄 우두머리에게만 잘 보이면 되기 때문입니다.” (p.270)

 

 

 

저자는 97년 국가부도를 불러 온 그 당시의 정치가와 고위공직자, 공무원들과 지금 세월호 참사를 빚은 그들의 경우를 등치시킨다. 십 수 년이 흘렀지만 조금도, 아주 조금도 개선의 여지가 없는 그들의 적폐(積弊)를 향해 분노를 쏟아낸다. 국가가 부도가 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가늠하기 어렵지만 당시 고3이었던 내게도 그것은 충분한 절망과 공포였다. 갑자기 결석하는 아이들이 생겼고, 전학을 가는 아이들도 있었다. 다음해 입학한 대학에서는 이전에 꿈꾸던 로망을 찾을 수 없었다. 바로 토익 공부에 매달리고 공무원 시험에 내몰렸다. 그만큼 큰 일이었다. 가정 하나가 부도가 나도 개개인에게는 엄청난 일인데, 국가 전체가 부도난 상황은 어떻게 더 표현할 수 없다. 그런데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지금 세월호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특별법은 아직도 통과되지 않고 있다. 지금은 조금씩 사람들에게서 세월호가 잊히고 있는 것 같지만 이 거대한 상처가 수 년 후에 어떻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지 알 수 없다.

 

책의 제목처럼 정치를 하는 사람들, 고위공직자들, 공무원들 모두 똑똑한 사람들이다. 고시를 통과하거나 각종 경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이전투구에서 살아남은 엄청난 생명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모여 앉아서 멍청한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책에서 품의제도에서 근원을 찾는다. 수십 년 간 지속되어온 품의제로로 인해 각계각층의 구성원들의 정신이 굳어져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해경을 해체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는 것으로 문제의 근원을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 장기간 정착시키고 이것이 전체 구성원들의 정신적 토대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제도는 ‘단위업무담당제’다.

 

 

 

“이제 해결책은 분명해졌습니다. 지금까지 관행적으로 해 왔던 품의에 의한 의사결정방식을 버리고 단위업무담당제(work unit system)에 의한 의사결정방식으로 새로 시작하면 됩니다.” (p.245)

“자신의 고유 업무를 직접 수행하는 상관이 부하들에 대해 하는 일은 두 가지뿐입니다. 하나는 부하들의 직무가 능력과 적성에 맞는지를 파악하여 단위업무의 중요도와 난이도에 따라 부하들의 직무를 재조정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부하들이 각자의 의사결정을 더 잘할 수 있도록 장애물들을 제거해 주는 일입니다. 이것이 관리의 핵심입니다.” (p.255)

 

 

단위업무담당제는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보인다. 만약 저자의 이 제도가 관료조직은 물론 사기업에까지 정착될 수 있다면 대단한 파급력을 보일 것 같다. 쓸데없는 결재시간을 줄일 수 있고 결재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참견과 지시가 사라진다면 최소한 지금보다는 더 건강한 조직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이것이 실제로 제도로 입안되어 실행될 수 있느냐가 문제다. 사실 이 정도 대안은 이미 수차례 나왔을 것으로 짐작된다. 행정학자들과 조직관리연구자들이 이런 생각을 안 했을 리 없지 않나. 명칭만 다를 뿐이지 지금의 조직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꿀 대안은 이미 넘쳐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의 조직이다. 각계각층의 조직들이 수십 년간 유지해온 품의제도를 한 번에 내던질 수 있냐는 것이다. 기존의 제도와 시스템이 익숙하고 그것에 적응해온 구성원들이 새로운 제도와 시스템을 받아들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강제한다고 해서 한 번에 바뀌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저자의 단위업무담당제를 포함한 각종 개혁 아젠다가 충분히 논의되고 토론되어야 하는데, 이것을 확인할 길은 없다. 조직 구성원이 아니더라도 새롭게 합의되어 정착된 조직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다. 품의제도가 만연한 한국 사회이지만 ‘품의제도’라는 단어조차 낯선 실정이다. 달리 말해 사회 전체적인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어설프게 자기들끼리 시도했다가는 ‘도로 아미타불’이 되어 ‘거봐~ 그냥 하던 게 좋다니까~ 품의제도 얼마나 좋아~ 용어도 어렵고~’ 라고 하며 품의제도로 되돌아갈지도 모를 일이다. 익숙한 것이 편하니까.

 

 

 

“국민이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 달라고 기업가에게 권한을 위임한 것이 아니라 정치가들에게 위임했고, 그들은 위임받은 권한을 잘못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p.155)

 

 

투표를 통해 선출된 정치인은 국민에게 봉사해야 하고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무원 조직도 국민에게 봉사해야 한다. 하지만 정치인은 자신의 입신양명과 정치적 입지를 위해 존재하고 공무원은 관료제의 바다에서 빠져 나올 생각을 않는다. 정치인과 공무원을 향해 ‘당신들 좀 변하쇼! 좀 달라져야 하는 거 아뇨! 국민을 생각하고 봉사하시오!’라고 한다고 그들이 바뀔까? 턱없는 일이다.

문제다. 똑똑한 사람들이 계속해서 멍청한 짓을 한다면 또 다른 국가부도와 또 다른 세월호고 언제 어디서 갑자기 터질지 모를 일이다. 적어도 국민이 그들의 행동을 정확하게 관찰할 수는 있어야 할 텐데, 아무도 알려주는 이 없다. 요원한 일이다. 그저 요행을 바라는 마음으로 그나마 ‘덜 멍청한 짓’을 해주시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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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석 지음 / 네오픽션 / 2014년 5월
평점 :
품절


얼마 전 케이블 채널에서 <천장지구>를 보게 되었다. 몸의 곳곳에 거뭇한 털이 올라오기 시작할 무렵, 친구 놈들과 모여 앉아 비디오테이프를 보는 게 낙이었다. 남자 놈들끼리 보는 것이 대부분 장롱 깊이 숨겨져 있던 친구 부모님의 비디오테이프였고, 친구 놈의 형이 빌려 놓은 프로레슬링 비디오테이프, 그리고 홍콩 영화였다. <첩혈쌍웅>, <영웅본색> 등등 거의 모든 종류의 홍콩 액션 영화를 보면서 끓어오르는 혈기를 해소시키고는 했다. 해소가 되기도 했지만 영화를 다 본 후 다들 얼굴이 벌게져 마치 자신이 방금 본 영화의 주인공이 된 양 서로 레슬링을 하고 주윤발 형님을 따라 성냥개비를 물어보기도 했다. 멋지게 바바리코트를 입고 선글라스를 쓴 채 총을 난사하는 윤발 형님처럼 되고 싶었다. 어두운 과거를 가진 주인공이 폭력조직에서 활동하며 경찰과 싸우고 너무나 예쁜 누나와 사랑을 하면서 조직에게 배신을 당하고, 다시 조직에 복수하지만 결국 죽게 되는, 이런 뻔 한 스토리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일단 멋있었으니까. 윤발 형님, 덕화 형님, 국영 형님은 학교 앞 문방구의 책받침과 브로마이드에서도 멋지게 폼을 잡고 계셨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은 그런 홍콩 영화들이 ‘느와르’라는 장르이고, 90년대 중반 이후에는 완전히 망해서 더 이상 그런 종류의 ‘홍콩느와르’는 만들어지지 않는 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전히 윤발 형님과 덕화 형님은 참 멋진데, 내가 가장 좋아하던 국영 형님은 돌아가셨다. 한 번씩 국영 형님이 출연했던 영화를 잠깐이라도 보게 되면 좁은 방에 둘러앉아 숨소리도 내지 않은 채 성인영화보다 더 몰입하며 보던 그때의 나와 친구들이 생각난다.

 

이 책 「통」은 여러모로 아쉽다. 작가가 홍콩느와르를 표방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내게는 홍콩느와르에 대한 오마쥬로 읽혔다. 부산의 통이던 정우가 서울의 동진고로 전학하게 되면서 겪는 스토리는 홍콩느와르의 그것과 거의 일치한다. 새롭게 적응하게 된 서울의 학교에서도 갖은 사건을 통해 통이 되고 자연스럽게 범죄조직에 들어간다. 그러는 중간에 교생인 정임과의 설익은 러브스토리가 전개되고, 또 자연스럽게 조직의 보스인 재식의 배신을 겪게 된다. 홍콩느와르와 다른 점은 마지막이다. 내가 본 홍콩느와르의 대부분은 주인공의 비극적인 죽음으로 끝나게 되는데, 이 책에서 이정우는 끝까지 살아남는다. 또 다른 삶은 향해 살아가는 이정우의 모습으로 책은 끝난다.

그냥 시간 때우기 정도로 책을 읽는다면 ‘그런가 보다’하면서 책을 덮겠지만, 이 책을 읽으며 홍콩느와르를 생각하고, 국영 형님이 생각하면서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이 책은 PC통신 시절 작가가 올린 연재를 새롭게 엮은 책이다. PC통신이라 하면 지금 어린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반 인터넷 보급기에 성행하던 것이다. 천리안, 나우누리 등 전화기와 삐삐 말고도 쌍방향으로 소통하는 것이 대유행이었다. 그 당시 이 책이 꽤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과는 다른 상황이어서 그랬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지금처럼 정보가 흘러넘칠 지경의 인터넷 환경에서는 이 책의 내용이 좀 유치하게 생각된다. 나의 홍콩느와르 영화의 대사를 그대로 책으로 옮긴 것보다 더 유치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통이다. 어느 때이든지, 어느 곳이든지. 그것이 진리다.” (p.53)

“그것은...정말로...비상이었다!”

“그만큼 나의 동작은 화려했고 완벽했으며 재빨랐다.” (p.103)

“순간적으로 넋이 나간 것 같았다. 나는 녀석의 공격을 공중에서 몸을 비틀어 피하며 이중 점프를 했다. 공중에서 걸어 다니듯이 움직이는 내 모습을 처음 본 그들로써는 눈이 현혹되는 것이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p.209)

 

책의 주인공인 정우의 대사는 손발이 오그라들 지경이다. 정우는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싸움에서 결코 지지 않는다. 키가 175cm 정도이고 마른 체형임에도 불구하고 정우는 불사조처럼 싸운다. 자기가 통이라는 사실을 자랑하지는 않지만 책의 곳곳에 등장하는 독백에서 스스로 인정한다. 자신이 통이기 때문에 약한 모습을 보여서도 안 되고 누구라도 자신에게 명령을 해서도 안 된다. 그것이 학교 선생님이든, 조직의 보스이든, 친구이든, 썸을 타는 정임이든 간에.

정우의 싸움 장면은 거의 무협소설 수준이다. 정우보다 훨씬 키가 크고 덩치가 좋은 상대, 그리고 귀신과 같은 칼솜씨를 가진 칼잡이라도 정우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학교 단상 위에 있는 상대를 향해 날아서 공격을 하는 가하면, 한 번 도약한 상태에서 다시 도약하는 만화와 같은 기술을 선보인다. 이런 정우의 싸움 기술은 같은 편은 물론, 상대편까지 넋이 나가게 만든다. 이 장면에서 더욱 손발이 오그라드는 것은 공중에서 기술을 선보이면서 동시에 정우가 독백을 한다는 것이다. 만화에서 컷이 나눠지면서 주인공의 움직임이 촤르르 펼쳐지는 것처럼 그렇게 표현된다. 차라리 만화라면 ‘무협장르려니...’라면서 읽을 수 있었을 텐데...

 

 

“그래, 젠장. 어차피 살아봐야 뻔 하잖아. 우리 같은 놈들. 어른 돼서 공사판에서 벽돌을 나르게 될지 몰라도. 지금 이 순간은 즐겨야지” (p.242)

“이정우, 난 이것밖에 몰라. 이정우란 녀석을 위해서라면 난 언제든 목숨을 내놓을 각오가 되어 있다는 것 말이다.” (p.342)

 

조직을 향한 복수를 위해 정우는 인근 학교의 통들을 끌어 모은다. 고작 열일곱에서 열아홉인 아이들이 조직폭력배를 향해 복수를 감행한다. 아~ 이 부분쯤에 이르러서는 읽기가 버거웠다. 어차피 살아봐야 뻔하고, 어른 되면 공사판에서 벽돌을 나르게 될 것이라 생각할 수 있는지 어이가 없었다. 죽으러 가는 길일지도 모르는 싸움에 뛰어들면서 ‘이 순간은 즐겨야지’라고 하는 고등학생이 실제로 있을까? 요즘 아이들이 얼마나 영악한데! 그리고 오직 통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어놓는다는 말을 하는 것이 너무 비현실적이다.

앞에서 말한 홍콩느와르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 흔한 무협소설쯤 되는 내용이다. 2014년인 지금 읽기에는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고, 유치한 내용의 책이 될 수밖에 없다. 혹시 30,40대 남성들을 공략하기 위함이라면 조금 이해는 된다. 정우에게 감정을 이입하며 한번쯤 읽기에는 별 무리가 없는 내용이니까. 그런 30,40대 아저씨들을 제외하고는 읽기가 버거운 책이다.

 

 

“저것도 연기야. 반가운 척하는 거라고. 한두 번 당하는 것도 아니고 당신 같은 선생들 스타일을 알지. 어떻게 보면 말로 은근히 어르는 당신 같은 타입이 더 야비하다는 것도.” (p.126)

 

책에 등장하는 정우의 무조건적인 학교와 교사에 대한 반감의 이유가 전혀 나오지 않는 것도 좀 불만이다. 무작정 싫어하다가 마지막까지 자신에게 잘 대해주는 교사 강덕중에게 조금이나마 마음을 털어놓게 되는데, 이 부분도 좀 억지로 보인다. 정우가 서울로 전학 오기 전 부산에서의 생활이나 정우의 가정환경에 대해서 일부라도 묘사가 되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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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애니비평 2014-08-06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것 글을 쓰시는 분 전번에 만났는데

lmicah 2014-08-06 20:40   좋아요 0 | URL
혹 다시 만나신다면 재미없었다고 전해 주세요
 
인문/사회/과학/예술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1. <아프리카의 운명>














에볼라 바이러스가 연일 화제다. 당장에라도 치사율이 90%에 이르는 이 바이러스에 전 세계가 위기에 빠진 것처럼 보도한다. 그러면서 자료로 가져다 쓰는 것은 늘 아프리카다. 지금도 서아프리카 3개국을 거의 격리시킨 채 힘 업이 먼 산만 쳐다보는 아파보이는 아프리카인들을 TV에 노출시킨다. 얼마전 읽었던 마리-모니크 로뱅의 <죽음의 식탁>에서 몇 년 전에 전 세계를 공포로 집어삼켰던 '신종플루'가 국제단체와 제약회사간의 로비와 암약으로 인한 거대한 사기극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요즘 에볼라 바이러스에 대한 보도를 보면서 그 '신종플루 사기극'이 떠오르는 것은 너무 과한 비교인가? 

어쨌든 아프리카 대륙은 늘 피해자였던 것 같다. 열강들에 의해서는 땅따먹기의 대상으로, 자신들의 거대농장에서 엎어져 일할 노예를 제공해 줄 인간 공장으로 여겨졌다. 지금도 아프리카의 진짜 모습을 알고 있는 사람은 흔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언론과 지식인, 책이라는 필터에 의해 한 번 걸러지고 편집된 아프리카의 모습만을 봐왔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이 전부이고 다 맞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책을 통해 진짜 아프리카의 모습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2. <예루살렘의 광기>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휴전이 이어지고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공격이 잠시 멈춰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잔인하고 무자비한 공격이 SNS를 통해 전세계를 뒤덮고 있는데, 유엔은 물론 서방세계에서는 별다른 반응이 없다. 홀로코스트에 대한 죄의식을 원죄처럼 떠안고 있는 유럽의 일부 선진국을 제외하고는 이번 사태에 대해 논평은 물론, 강력한 비판이 있어야 하는데 별로 없는 것 같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는 다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한국의 경우만 해도 이것을 제대로 가르치거나 알리지 않는다. 그냥 저 멀리 어느 나라에서 일어나는 분쟁 정도로 생각한다. 일부 개신교 인들은 무작정 이스라엘을 옹호하기도 한다. 

이 책은 지금의 예루살렘이 광기의 중심이 된 과정을 역사적으로 되짚는다. 나처럼 이 문제에 대해 잘 모르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적절한 책이다. 




3.<종횡무진 역사>














역사는 참 재미있다. 돌이킬 수 없는 것이어서 더 가치가 있다. 최근 엄청난 흥행을 얻고 있는 영화 <명량>도 역사 영화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아하고 사랑하는 역사적 인물인 이순신 장군이 주인공인 영화다. 지금으로부터 500년도 훨씬 전에 있었던 역사적 이야기가 사람들의 흥미를 유발하고 기꺼이 영화표를 사게 만드는 데는 역사적 힘이 있다. 그 시대를 살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원천적으로 역사를 향한 동경이 있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이 책은 서양과 동양의 역사를 아울러 비교하고 섞어가며 종횡무진 역사 이야기를 펼쳐 놓는다. 이 소재자체로 이미 나처럼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흥미를 끌게 하기에 충분하다. 




4. <대한민국 치킨전>














치킨... 요즘과 같은 열대야의 한 가운데 시원한 맥주와 함께 하면 금상첨화인 음식이다. 남녀와 노소를 불문하고 치킨을 사랑하는 나라다. 가벼운 술자리에서부터 가족 외식, 회사 회식에 이르기까지 치킨을 빠질 수 없다. 한국처럼 치킨을 많이 먹는 나라가 있을 까 싶을 정도다.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도 가장 놀라는 것이 치킨의 종류라고 한다. 별별 치킨이 다 있다. 프랜차이즈 치킨에서부터 지역마다 꼭 하나씩은 있는 치킨 맛집들. 당장 포털에서 5분만 검색해 봐도 화려한 치킨의 행렬을 만날 수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BBQ치킨을 가장 좋아한다. 야들야들하고 바삭하면서 깔끔한 맛이 일품이다.

대한민국 치킨전 이라는 제목으로 책이 출간되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고 재미있다. 이 책은 치킨이 어떻게 한국인들에게 이렇게 사랑받게 되었는지 소개한다. 그리고 치킨을 둘러싼 다른 재미있는 이야기도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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