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짓 - 최악의 의사결정을 반복하는 한국의 관료들
최동석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해안소초에서 소초장을 하다가 사단본부로 전입가게 되었다. 단기복무 장교에게는 거의 보직이 나지 않는 자리였다. 해안부대 대대장을 하던 양반이 사단본부 작전처로 가게 되었고 그가 나를 끌어당겼다는 이야기는 첫 회식때 듣게 되었다. 어쨌든 나는 촌구석 중에서도 촌구석에 외떨어진 소초에서 나올 수 있었고 남은 군생활은 대구에서 하게 되었다. 직접 병사들을 지휘하고 작전을 나가는 부담은 없었지만 사단본부에서의 행정업무는 또 다른 고역이었다. 관할부대의 상황을 유지하고 부대장과 상급부대에 보고하는 것이 주요 업무였다. 자연스럽게 업무 시간 내내 컴퓨터 앞에서 전화기를 붙들고 있어야 하는 일의 연속이었다. 처음 해보는 군대내 행정문서 작성과 전화업무는 숙달되니 재미있었다. 사단본부에서 근무한다는 것이 계급을 뛰어넘게 하는 힘이 있었다. 그렇다고 해봐야 중위가 누릴 수 있는 권력의 힘은 거의 없었지만, 별을 네 개나 달고 있어 전투모가 너무 무거워 보이는 사람들도 볼 수 있었고, 별을 세 개 달고 있는 사람에게 대면보고도 할 수 있는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이 책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짓」을 읽으며 내 군생활을 떠올린 것은 책에 등장하는 ‘품의제도’ 때문이다.

 

 

 

“교육부차관을 만나기 위해 교육부 청사에 갔었습니다. 나이든 공무원들 대여섯 명이 결재서류판을 들고 장관실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관료들에게 일하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상관에게 결재를 받는 일입니다.” (p.208)

 

 

 

이것과 거의 똑같은 장면을 나는 사단본부 군생활 내내 경험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나는 사단의 상황을 유지하고 보고하는 일을 했다. 그 보고라는 것의 주된 업무는 <일일상황보고>이었다. 예하부대에서 어떤 일이 있었고, 상급부대는 어떤 일이 있었고, 명일(군대내 용어로 ‘내일’을 뜻한다)사단과 예하부대, 상급부대의 중점사항은 무엇인지 등의 사항들을 짧게 정리해서 보고하는 것이다. 사단의 부대장인 사단장이 퇴근 전 그 A4 한 장의 <일일상황보고>를 보고 부대의 오늘과 내일을 파악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문서를 작성하는 나로부터 사단장 직전까지 결재를 받은 후 사단장 부속실에 들어가면, 열이면 여덟에서 아홉 번은 사단장의 결재를 받기 위해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일일상황보고>는 빨리 사단장의 결재를 받은 후 상급부대로 보고를 해야 했기 때문에 신속하게 사단장실로 들어갔던 데 반해, 다른 결재서류들은 그대로 군인들 손에 들려 있거나 부속실 책상위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했던 <일일상황보고>도 가장 신속하게 결재를 받아야 하는 서류였음에도 불구하고 절차는 복잡했다. 내가 작성해서 사단장 직전까지 받아야 할 결재가 4개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부득이하게 자리에 없을 경우 전결처리 하거나 순서를 뛰어 넘은 채 사단장에게 들어가는 경우도 있었는데, 추후에 왜 기다리지 않았냐며 되레 혼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결재라는 말은 품의제도를 사용하는 나라에서만 통용되는 용어입니다. 영어단어에는 결재라는 말이 없습니다.” (p.199)

“품의제도(稟議制度, Ringi-System)는 일제의 잔재로, 이러한 의사결정제도를 시행하는 나라는 우리나라 그리고 선진국 중에는 일본밖에 없는 매우 독특한 것입니다.” (p.96)

 

 

일본을 그렇게도 싫어하면서 일제의 잔재를 이렇게도 유지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책의 저자가 강하게 지속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품의제도의 비효율성과 무책임성이다. 결재를 받기 위해 자신의 의견이나 창의적인 생각이 제한되는 것은 뻔 한 일이다. 한번이라도 기안을 해 결재를 받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바로 알 수 있다. 최초 내가 100을 만들어 결재를 올렸다고 가정했을 때, 마지막 결재권자가 받아든 결재서류는 60정도일 때가 많다. 중간 결재권자들이 다듬고 첨삭하고 편집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아예 중간에서 결재 자체가 되지 않아 없던 일이 되는 경우도 많다.

 

 

 

“넷째, 품의제도 아래에서는 어떠한 의사결정도 그 결과에 대하여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점” (p.218)

 

 

더 큰 문제는 품의제도가 불러오는 무책임이다. 저자의 지적대로 무수히 존재하는 결재 층은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기에 충분하다. 문제가 생기고 사고가 났을 경우 최초 기안자에게 책임을 떠넘기기에 최적화된 시스템이다.

 

 

 

“국가를 위기 사태로 내몰았는데도 국가운영을 책임지고 있던 정치가나 고위공직자들 중 정치적 책임 외에 어떠한 법률적 책임을 지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p.7)

“관료들에게 자신들이 섬겨야 할 국민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오직 자신에게 은혜를 베풀어 줄 우두머리에게만 잘 보이면 되기 때문입니다.” (p.270)

 

 

 

저자는 97년 국가부도를 불러 온 그 당시의 정치가와 고위공직자, 공무원들과 지금 세월호 참사를 빚은 그들의 경우를 등치시킨다. 십 수 년이 흘렀지만 조금도, 아주 조금도 개선의 여지가 없는 그들의 적폐(積弊)를 향해 분노를 쏟아낸다. 국가가 부도가 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가늠하기 어렵지만 당시 고3이었던 내게도 그것은 충분한 절망과 공포였다. 갑자기 결석하는 아이들이 생겼고, 전학을 가는 아이들도 있었다. 다음해 입학한 대학에서는 이전에 꿈꾸던 로망을 찾을 수 없었다. 바로 토익 공부에 매달리고 공무원 시험에 내몰렸다. 그만큼 큰 일이었다. 가정 하나가 부도가 나도 개개인에게는 엄청난 일인데, 국가 전체가 부도난 상황은 어떻게 더 표현할 수 없다. 그런데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지금 세월호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특별법은 아직도 통과되지 않고 있다. 지금은 조금씩 사람들에게서 세월호가 잊히고 있는 것 같지만 이 거대한 상처가 수 년 후에 어떻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지 알 수 없다.

 

책의 제목처럼 정치를 하는 사람들, 고위공직자들, 공무원들 모두 똑똑한 사람들이다. 고시를 통과하거나 각종 경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이전투구에서 살아남은 엄청난 생명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모여 앉아서 멍청한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책에서 품의제도에서 근원을 찾는다. 수십 년 간 지속되어온 품의제로로 인해 각계각층의 구성원들의 정신이 굳어져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해경을 해체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는 것으로 문제의 근원을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 장기간 정착시키고 이것이 전체 구성원들의 정신적 토대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제도는 ‘단위업무담당제’다.

 

 

 

“이제 해결책은 분명해졌습니다. 지금까지 관행적으로 해 왔던 품의에 의한 의사결정방식을 버리고 단위업무담당제(work unit system)에 의한 의사결정방식으로 새로 시작하면 됩니다.” (p.245)

“자신의 고유 업무를 직접 수행하는 상관이 부하들에 대해 하는 일은 두 가지뿐입니다. 하나는 부하들의 직무가 능력과 적성에 맞는지를 파악하여 단위업무의 중요도와 난이도에 따라 부하들의 직무를 재조정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부하들이 각자의 의사결정을 더 잘할 수 있도록 장애물들을 제거해 주는 일입니다. 이것이 관리의 핵심입니다.” (p.255)

 

 

단위업무담당제는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보인다. 만약 저자의 이 제도가 관료조직은 물론 사기업에까지 정착될 수 있다면 대단한 파급력을 보일 것 같다. 쓸데없는 결재시간을 줄일 수 있고 결재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참견과 지시가 사라진다면 최소한 지금보다는 더 건강한 조직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이것이 실제로 제도로 입안되어 실행될 수 있느냐가 문제다. 사실 이 정도 대안은 이미 수차례 나왔을 것으로 짐작된다. 행정학자들과 조직관리연구자들이 이런 생각을 안 했을 리 없지 않나. 명칭만 다를 뿐이지 지금의 조직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꿀 대안은 이미 넘쳐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의 조직이다. 각계각층의 조직들이 수십 년간 유지해온 품의제도를 한 번에 내던질 수 있냐는 것이다. 기존의 제도와 시스템이 익숙하고 그것에 적응해온 구성원들이 새로운 제도와 시스템을 받아들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강제한다고 해서 한 번에 바뀌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저자의 단위업무담당제를 포함한 각종 개혁 아젠다가 충분히 논의되고 토론되어야 하는데, 이것을 확인할 길은 없다. 조직 구성원이 아니더라도 새롭게 합의되어 정착된 조직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다. 품의제도가 만연한 한국 사회이지만 ‘품의제도’라는 단어조차 낯선 실정이다. 달리 말해 사회 전체적인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어설프게 자기들끼리 시도했다가는 ‘도로 아미타불’이 되어 ‘거봐~ 그냥 하던 게 좋다니까~ 품의제도 얼마나 좋아~ 용어도 어렵고~’ 라고 하며 품의제도로 되돌아갈지도 모를 일이다. 익숙한 것이 편하니까.

 

 

 

“국민이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 달라고 기업가에게 권한을 위임한 것이 아니라 정치가들에게 위임했고, 그들은 위임받은 권한을 잘못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p.155)

 

 

투표를 통해 선출된 정치인은 국민에게 봉사해야 하고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무원 조직도 국민에게 봉사해야 한다. 하지만 정치인은 자신의 입신양명과 정치적 입지를 위해 존재하고 공무원은 관료제의 바다에서 빠져 나올 생각을 않는다. 정치인과 공무원을 향해 ‘당신들 좀 변하쇼! 좀 달라져야 하는 거 아뇨! 국민을 생각하고 봉사하시오!’라고 한다고 그들이 바뀔까? 턱없는 일이다.

문제다. 똑똑한 사람들이 계속해서 멍청한 짓을 한다면 또 다른 국가부도와 또 다른 세월호고 언제 어디서 갑자기 터질지 모를 일이다. 적어도 국민이 그들의 행동을 정확하게 관찰할 수는 있어야 할 텐데, 아무도 알려주는 이 없다. 요원한 일이다. 그저 요행을 바라는 마음으로 그나마 ‘덜 멍청한 짓’을 해주시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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