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의 황제
김희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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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줄 알았으면 진작 정규직으로 취직하지 그랬어요? 몇 년 전인가, 철도노조 파업이 한창이던 때, 대학생이 한 인터뷰의 내용이다. 파업이 장기화되고 국민적인 여론을 등에 업으려던 찰나, 조중동이 가만있지 않았다. <연봉 6천만 원이 넘는 노조원이 파업을 한다>라는 뉘앙스의 제목을 하루에도 몇 번씩 쏟아냈다. 절망의 구렁텅이에 사는 한국의 젊은이들의 눈에 비친 연봉 6천만 원 받는 아저씨는 선망의 대상이다. 자기가 아무리 노력하고 공부하고 준비해도 들어갈 수 없는 직장에 있는 아저씨다. 그런 아저씨가 파업을 한다고 하니, 심정적으로 동조는 못할망정 조중동에서 만들어 낸 프레임에 그대로 갇혀 똑같이 비판을 하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그 대학생만이 아니라 많은 수의 국민들이 같은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연봉 6천만 원 받는 노조원이 어떤 일을 얼마나 오랜 기간 해왔으며, 그 과정 중에서 그가 흘린 땀이 얼마나 되는지는 고려하지 않는다. 현상에 집착해 공격을 한다. 무서운 세상이다.

 

 

그들이 내게 묻는 건 이런 거였다. 즉 지금 하늘에 떠 있는 비행접시에서 조만간 외계인들이 무리 지어 내려올 예정이며, 난민 신세가 된 그들을 W시가 받아주는 대신 그 외계 생명체들에게 환경미화와 같은 단순 업무를 맡기기로 비밀 계약이 이루어졌다는 것. 따라서 외계인들이 내려오면 회사 소속 미화원들이 대량 해고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 (<지상최대의 쇼> 중, p.163)

 

 

어느 날 갑자기 W시에 미확인비행물체가 나타났다. 강원도 영서지방의 작은 도시에 불과했던 W시의 하늘을 뒤덮는 비행접시가 나타난 것이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공포에 떨었다. 공상과학 영화나 할리우드 영화에 등장하는 비행접시는 대부분 공격적이다. 지구를 파괴하거나 인류를 파괴하기 위한 목적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전쟁을 한다. 인류와 외계인의 전쟁. 두려움에 떨던 W시민들의 머리 위를 6개월 동안 덮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비행접시는 도시의 하나의 풍경이 되었다. 연일 색종이를 뿌려 주기도 하고 고립되었던 W시의 경기가 관광으로 되살아나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이상한 말들이 오가기 시작했다. “아, 글쎄 저 외계인들이 사실은 자기들 행성에서 쫓겨 왔대.”, “쟤네들 여기에 정착해서 살려고 하는 거래.”, “외계인들이 벌써 내려와서 일하고 산대.” 유언비어는 일파만파, 십만파, 백만파로 퍼지게 마련이다.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던 김판석씨는 동료들과 이 유언비어를 접한다. 외계인들의 값싼 노동력이 W시에 투입된다면, 아마도 자신들처럼 미화원로 채용될 것이 뻔하다. 그러면 내 밥그릇을 뺏기는 건데? 이건 아니지. 절대 안 되지. 그러면 외계인 놈들을 쫓아내야 되겠네. 물러가라. 물러가라! 외계인 고 홈!!!

 

 

“도서관에서 매일같이 마주치던 이들이 이번에도 서로 눈을 내리깔며 모른 체하는 걸 보니, 새삼 일상으로 돌아온 게 실감났다. 벌써 몇 년째 여기서 각종 시험에 대비하여 공부를 해온 우리는,” (<지상최대의 쇼> 중, p.160)

 

 

불일 듯 일어난 유언비어는 군중을 끌어 모았고 목소리를 높였다. 언제나 목소리의 크기와 숫자가 이긴다. 비행접시가 W시 상공에 멈춰 있는 동안 W시에 떠돌던 수많은 유언비어는 하나도 사실로 드러나지 않았다. 그들은 그곳에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언제 왔나 생각될 정도로. 그리고 W시에 남은 이들은 그들의 일상으로 홀연히 돌아간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한때 라면이라는 음식이 있었다.” (<라면의 황제> 중, p.75)

 

 

라면은 완전식품이다. 라면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나도 무수히 라면을 먹었다. 자취생활이 거의 10년 정도 되는 내게 라면은 동반자였다. 귀찮고 피곤하고 짜증나도 라면봉지 하나면 충분했다. 어느 정도의 물과 어느 정도의 시간이면 충분했다. 그렇게 삶긴 면발을 먹고 국물을 들이켜면 충분했다. 그런데 라면이 없다면?

 

 

 

“그건 진짜 최고의 음식이었어. 아마 자네들은 상상도 못 하겠지, 그 따뜻한 국물 맛을.” (<라면의 황제> 중, p.79)

 

라면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본 적이 없다. 그 맛있고 편리하고 저렴한 음식이 없어진다니.

 

 

 

“예를 들자면 라면금지법안의 통과 같은 것들. 라면은, 그보다 더 오랜 과거에 아편이나 담배가 겪었던 것과 같은 운명을 맞아야 했다. 이제라면 어디에도 없었고, 하다못해 집 뒷마당에 솥을 걸고 면을 튀긴 뒤 직접 만든 가루수프를 넣고 끓여 먹는 행위조차 단속 대상이 되었다.” (<라면의 황제> 중, p.83)

 

 

라면금지법이라……. 라면금지법이 통과될 수 있을까? 아니, 그런 걸 입안하는 국회의원이 있을까? 그런데 가능할 것 같다. 싱글법도 제정하려고 폼 잡았던 한국 아닌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 벌어지는 다이내믹 코리아. 아편이나 필로폰 같은 마약을 하게 되면 불법이다. 큰 형사적 처벌을 받게 된다. 이제는 담배도 피울 수 있는 곳이 거의 없다. 그런데 라면을 마음대로 먹을 수 없는 세상이 된다?

 

 

라면을 먹기 위해, 그 향긋하고 담백하고 고소하고 짭조름하며 달콤한 면발을 먹고 구수하고 시원하며 매콤하고 속이 뻥 뚫리는 기가 막힌 국물을 마시기 위해서는 특급 작전을 펼쳐야 한다. RO에 버금가는 지하조직을 만들어 가입해야 한다. 신분을 확인하고 보장받기 위해서는 몇 단계의 까다로운 절차와 장시간의 인내가 필요하다. 지하조직원으로 위장해 라면을 먹는 현장을 급습하려는 경찰과 정보당국의 위장 가입이 많기 때문에 3중4중10중으로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어느 날 밤늦은 시각, 모처에 모여 든 이들의 손에는 너나 할 것 없이 까만 비닐이 들려 있다. 그들은 눈빛만으로 거사를 치루기 위한 암호를 주고받는다. 몇 달을 기다려 왔나? 버너와 냄비를 꺼낸다. 수저를 꺼내는 사람이 있다. 라면을 꺼낸다. 저 바스락거리는 라면 봉지소리! 물이 끓는다. 수프를 넣고 기다린다. 야채를 넣는다. 면을 넣는다. 뚜껑을 닫고 식기를 나눈다. 혹시 냄새가 새 나가지 않나, 멀리서 고배율의 렌즈로 촬영하는 사람은 없나 파수꾼이 360도 경계를 한다. 냄비 뚜껑이 들썩거린다. 이미 약속한 대로 조용히 냄비 주위로 모여든다. 라면과 국물을 받는다. 그때!!

“그대로 멈춰!!!!!”

한 무리의 경찰과 사복을 입은 정보요원들이 무리를 급습한다. 밀고자가 있었던 것이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다. 어디서 기다렸다 튀어나왔는지 모를 경찰차와 시커먼 차들이 무리를 에워싼다. 5-6대의 차량에서 뿜어내는 라이트 위로 연기가 피어오른다. 모조리 바닥에 쏟긴 면발과 국물이 마지막 힘을 다해 토해내는 신음이다. 단 한사람도, 면발을 먹지 못했다. 국물도 홀짝이지 못했다.

다음 날, 이 사건은 대대적인 뉴스가 된다.

 

 

에이~ 이런 일은 절대 없겠지!!

<페르시아 양탄자 흥망사>, <교육의 탄생>, <2098 스페이스 오디세이>, <개들의 사생활>, <어느 멋진 날>, <경이로운 도시>,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책에 실린 다른 단편들도 재미있었다. SF 장르지만 현실성을 담보했다.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소재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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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마이너스
손아람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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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년 대학 입학.

98년은 여러 가지로 골치 아팠다. 본격적으로 국가 전체가 IMF체제 안에 들어갔다. 국가가 부도가 나 IMF라는 듣도 보지도 못한 괴물에게 잡아 먹혔다. 실제로 아버지는 주식으로 기천만원을 탕진했다. TV뉴스에는 연일 기업들의 부도와 가장들의 죽음이 보도 되었다. 나는 수능에 실패했다. 듣도 보지도 못한 대학에 입학했다. 편입을 목표로 1,2학년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공부와 토익만 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다가 선배들을 만났다. 과방과 단대학생회에서 그들에게 듣게 된 말과 글, 음모와 이론은 신기했다.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것들이었다. 98년과 IMF는 모든 가치를 해체시켰다. 친구, 낭만, 동아리, 지성, 정의 같은 것들이 주된 해체 대상이었다. 나를 비롯한 몇몇의 신입생들을 제외한 대다수의 신입생들은 과활동이나 동아리 활동에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채 중앙도서관과 단과대 열람실에 틀어박혀 공무원 시험과 토익을 대비한 공부를 시작했다. 대학 입학 2년 전, 내가 입학한 학교의 운동권 학생들은 총장실을 점거했다. 총장의 비리와 학내 운동권세력 탄압에 대한 항의로 총장 퇴진을 요구하는 지역 내에서는 꽤 이슈가 되었다. 교수회의마저 총장에게서 등을 돌렸다. 당장 총장이 퇴진할 줄 알았는데, 그는 지역사회의 기득권 중에서도 갑이었다. 몇 년을 질질 끌다 퇴진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다시 총장 자리에 앉았다. 지금까지도. 96년 총장 퇴진 운동 이후 학내 운동 진영은 급속도로 위축되고 IMF라는 폭탄을 맞고 입학한 신입생들은 더 이상 학내 운동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게 되었다.

 

 

 

“곧 우리나라에서 월드컵이 개최되는데, 너 같은 놈들이 또 후배들 끌고 거리로 뛰쳐나와 활개 치게 놔둘 수는 없지. 축제 기간 동안만 잠깐 머리 식히고 나와라. 너만 쳐 넣는 거 아니니까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고.” (p.300)

 

“그제야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았다. 남영동. 나는 대공분실로 끌려가고 있었다.” (p.202)

 

 

 

2002년 한일 월드컵.

이 책의 저자와 나는 같은 시기 대학에 다녔다. 2002년 나는 휴학생인 채로 한일 월드컵을 시청했다. 역사 상 최초로 민주적인 방식으로 정권교체를 달성한 김대중 정부에서 월드컵의 안정적이고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대학 운동권 학생들을 탄압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때는 정말 그랬다. IMF체제가 본격화 된 후 4-5년 동안 너무 힘들게 살아온 한국인들에게 2002월드컵은 마취총과 같았다. 갑자기 붉은색이 거리와 가슴과 본능을 사로잡았다.

남영동. 대공분실. 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질감은 불쾌하다. 1980년에도 그랬고 2002년에도 마찬가지다. 아니, 당시, 그러니까 2002년에는 남영동과 대공분실이 현실에서 사라진 존재로 생각되었다. 아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학생들이 남영동으로 끌려갔다.

나는 이 책의 가장 큰 재미가 픽션과 논픽션의 절묘한 줄타기라고 생각한다. 소설이 아니라 르포나 역사서를 읽는 것 같았다. 비슷한 시기를 살았던 내 기억을 떠올리며 읽는 것 또한 재미있었다.

맞다. 그때도 그랬다.

 

대식이는 단대 학생회장이었다.

98년 새내기로 처음 맞은 대동제에 대한 기대가 컸다. 단대 깃발을 함께 만든 후 노천강당으로 걸어가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휘청휘청 거대한 단대 깃발을 겨우 붙들어 들고 들어선 노천극장에서 본 것은 절망과 초라함이었다. 한때 지역 학생운동의 거점이었던 곳이 아무도 찾지 않는 황무지가 되었다. 200백 명? 도 채 되지 않는 학생들이 모였다. 나는 깃발을 놓고 노천극장을 빠져 나왔다.

대식이는 200백 명도 되지 않는 학생운동 세력의 중추가 되었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대식이는 한복 비스 무리한 옷을 입고 강의와 강의 사이 시간에 자주 들어와 학우들에게 참여와 관심을 호소했다. 함께 98년 대동제 깃발 제작을 위해 밤을 새우던 동희가 들어와 울부짖었다. 대식이가 구속되었고 탄원서를 제출해야 하니 도와달라고.

 

 

 

“나는 주체사상의 정서적 호소력이란 것에는 중독되지 않았지만 스타크래프트에는 단박에 중독됐다.” (p.63)

 

 

맞다. 그때도 그랬다.

학생들은 대식이의 구속에는 관심이 없었다. 동희의 울부짖음도 외면했다. 스타크래프트를 하기 위해 모여 든 학생들로 PC방은 매일, 매시간 만원이었다. 사회적 정의, 지성의 추구, 연대의 가치 보다 학점과 토익, 공무원 시험과 각종 자격증, 워킹 홀리데이와 교환학생이 화두였다. 책에 등장하는 진우는 마지막까지 학생 운동의 중심이 되고 졸업 후에도 운동권으로 성장하고 고착되지만 내 주위에는 진우 같은 친구는 없었다. 대학 졸업 한참 후 대식이가 지역의 중견기업에서 영업일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뿐이다.

 

 

 

 

“나는 진우의 이름을 불었다. 대석 형은 내 이름을 불었다. 전학협 간부가 대석 형의 이름을 불었다. 청년진보당 간부가 전학협 간부의 이름을 불었다. 민주노총 간부가 청년진보당 간부의 이름을 불었다. 침묵을 지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p.223)

“우리를 여기에 끌어들인 선배들은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나도 후배들에게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언젠가 우리는 떠나게 된다. 평범한 세상으로, 진우보다 내가 먼저였다.” (p.477)

 

 

책에서 그려내는 태의, 진우, 미주의 대학생활은 길고 고단했지만 낭만적으로 읽힌다. 아주 잠시, 학생운동 끄트머리에 발가락 하나 얹어 본 기억 때문일까? 실망과 좌절을 안고 그 세계에서 발을 뺐지만 지금까지 내내 목구멍 한 쪽에 낀 고기 가시처럼 뱉어낼 수 없고 토악질 할 수 없는 대식이와 동희의 울부짖음에 대한 부채감 때문일까?

실제로 태의나 진우, 대석처럼 시위대의 선봉이 되어 전경과 마주쳐 전투를 치르기도 하고 수배되어 경찰서나 대공분실 같은 곳에 끌려가지 않았던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일까? 저자가 그려내는 청춘들의 처절함이 아름답기까지 했다. 자연스럽게 그들의 선배들처럼 친구와 후배의 이름을 대고, 자연스럽게 운동에서 발을 슬며시 빼는, 그런 과정마저도 합리적이고 공정한 게임의 룰로 느껴질 정도로. 작가의 글 솜씨가 대단해서 일까? 모르겠다.

 

 

 

“늙은 남자는 오래전에 둥지를 틀었다. 그는 내가 입학하기 전부터 졸업한 뒤까지도 학교에서 살았다.”

“고약한 냄새를 풍겼다. 그의 이름은 아무도 몰랐다. 다들 미친 남자라고만 불렀다. 왜냐하면, 그가 미쳤기 때문이다.” (p.113)

 

내가 다닌 학교에도 이런 사람이 있었다. 선배들은 그를 ‘김군’이라고 불렀다. 새까만 피부에 작은 눈, 스포츠머리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몸냄새, 양 손에 들고 있는 우산과 신문. ‘김군’은 열람실에도 중앙도서관에도 학생식당에서 프리패스로 다녔다. 학생들이 밥을 사주기도 하고 커피를 건네기도 했다. 책에 등장하는 미친 남자처럼 특정한 말을 되풀이해 중얼거리지는 않았다. 학생들에게 위해를 가하지도 않고 그냥 그 자리에 있었다. 졸업 후 한참 뒤 다시 찾은 학교에도 여전히 ‘김군’이 있었다. 그리고 또 한참이 지난 지금, ‘김군’이 그곳에 있는지는 모르겠다.

 

 

 

“세상이란 단어에는 아무 뜻도 없어. 너희는 선배들과 싸우고 있다. 너만 할 때는 딱 너랑 똑같은 눈빛을 가졌던 놈들. 그리고 언젠가 네 후배들이 너랑 똑같은 눈을 하고 너의 미래와 싸우게 될 거야. 끝이 없는 윤회 같은 거지. 나는 너희를 혐오한다. 너희는 역겨워. 너희에 비하면 무장 강도가 차라리 순수하게 느껴질 지경이다.” (p.407)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력처럼 나는 실제적으로 학생운동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늘 그들에 대한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다. 386에게도 마찬가지였다. 30대 이전까지는. 민주정부 10년 이후 이제는 정치 기득권이 되어 그들이 학생운동에서 그렇게 빠져 나갔듯이 ‘슬며시’사회의 정중앙에서 똬리를 튼 채 완전 변태했다. 그리고 그 완전변태가 시대와 역사적 흐름에 맞는 것인 양 거짓말을 늘어놓는다. 지루하고 역겹다.

 

 

 

“우리가 떠나도 미친 남자는 여기 남는다. 늘 그랬듯이. 미친 남자는 우리 가운데 변하지 않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p.489)

 

 

세상에 변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인정한다. 하지만 변하더라도 곱게 변해야 한다. 좀 많이 변하더라도 미치지는 않아야 한다. 미친 사회를 살면서 미친 사람들을 너무 많이 맞닥뜨리다 보니 정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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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격 - 미공군의 공중폭격 기록으로 읽는 한국전쟁
김태우 지음 / 창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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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국제시장에 대한 말이 많다. 낡아빠진 진영 논리를 가져와 트위터에서 쓸데없는 말이 오가는 꼴을 지켜보는 것은 지겨운 일이다. 나는 보지 않았지만 부모님을 보여 드렸다. 영화를 보신 어머니는 재미있었다고 하시면서 “옛날 그런 고생한 거 보니까 마음이 짠하더라”고 하셨다. 뒤에 덧붙이신 말씀은 “차라리 님아 인가 그거를 예매하지 그랬냐?”라고 하셨다. “엄마 님아 그 영화가 더 짠해요”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렇다. 나는 내 부모님이 살아오신 이야기를 알지 못한다. 내 부모님 세대 다른 분들보다 늦은 나이인 서른, 스물아홉에 결혼하신 부모님은 아버지의 직장이 있는 곳으로 내려 오셨다. 충청북도 단양에서 경상북도 포항까지. 지금이야 도로도 좋고 자가용도 있어서 3시간 정도면 오갈 수 있는 거리지만 당시 명절을 맞아 포항에서 단양까지 가기 위해서는 어린 내 손을 잡고 나보다 2살 어린 내 동생을 업고 두 분 양 손에 집채만 한 짐 보따리까지 챙긴 후 포항 단칸방에서 포항 시외버스터미널까지 버스를 타야 했다. 시외버스터미널에서 경주 터미널까지 간 후 버스를 타고 경주역으로 가야 했다. 부산에서 청량리까지 가는 비둘기호 완행열차를 타고 단양역까지 5시간을 가야 했다. 밤 8시쯤 도착한 단양역에서 할아버지 댁까지 버스를 타고 가야 했다. 할아버지 댁에 오가는 길에 대한 기억은 안동역쯤에서 먹었던 가락국수 정도인 내게 부모님의 고달픔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힘들고 피곤한 일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세대 갈등에 대해서 많은 책과 기사, 보도와 논평이 쏟아졌다. 십년쯤 된 것 같다. 친구들과 모여 앉은 대화 자리에서도 그런 말을 많이 한다. “우리 부모님 세대가 마지막으로 부모를 봉양하고 본격적으로 손주를 돌보는 첫 세대래”라고. 쉽게 말한다.

추운 겨울, 개울가 얼음을 깨고 시집 식구를 빨래를 해야 했던 이야기, 단칸방에서 아들 둘을 키우며 정신도 없이 곤로에 밥을 하고 연탄을 갈고 천기저귀를 빨아야 했던 이야기 같은 것들은 나는 손톱만큼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세대 갈등은 어쩌면 당연하다.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알 수 없는 것이다. “아니 말이야~ 멀쩡한 중소기업이나 조그만 회사 놔두고 왜 그렇게 대기업이나 공무원 될려고 그래~ 젊은 것들이 고생을 안 해서 그래!”라고 말하는 기성세대는 지금 청년세대가 겪는 절망과 좌절의 이야기를 알지 못한다. 그렇게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대 갈등은 어쩌면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난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이 책 「폭격」을 읽으며 왜 아직도 박정희를 추억하고 암울하고 뒤틀렸던 60-70년대를 2014년 현재로 부활시키려 하는 세대가 많은 지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영화 국제시장을 놓고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는 허모씨나 변모씨가 차라리 이 책을 함께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광범하나 지역에 자그마한 토굴들만이 밀집해 있는 이곳을 놈들은 군사적 목표라고 한다. 죽은 부모와 오빠, 동생의 원쑤인 미제국주의자들에게 어찌 죽음을 주지 않고 참을 수 있겠는가! 죽음은 죽음으로, 피는 피로 갚아야 한다.”

 

 

미 공군의 공중 폭격으로 가족 6명이 모두 사망하고 홀로 남은 안영실이라는 이름의 여성이 종군 기자들을 향해 토로한 내용이다. 책을 읽으며 가장 충격 받았던 내용은 흰 옷을 입은 무리에 대한 무자비한 폭격이다. 그리고 미 공군은 적군인 북한군과 중공군을 향한 폭격, 북한의 군수시설과 보급시설에 대한 폭격에 그친 것이 아니라 북한 주민들에 대한 폭격. 그리고 대한민국의 자유 수호를 위해 참전했다는 명목상의 이유를 집어던진 채 한국의 무고한 양민들을 학살했다는 것이다.

 

 

“이 책은 한국전쟁기 미공군 공중폭격의 배경과 전개과정에 대한 역사학적 분석을 통해 지나치게 우상화 혹은 악마화된 미국의 실체에 다가가고자 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2000년 즈음부터 미국의 국립문서보관소와 미공군역사연구실을 통해 공개되기 시작한 한국전쟁기 미공문 문서 약 10만 장을 수집·분석했다.” (p.6)

 

이 책은 쉽게 쓰이지 않았다. 저자는 처음 미공군의 한국전쟁 당시 폭격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부터 10년에 이르는 긴 시간 동안 이것과 관련된 각종 자료와 문서를 분석했다. 10년이 걸렸다. 전쟁이 발발한 지 50년이 지난 후에야 공개된 한국전쟁 당시 문서를 뒤졌다. 책에 덧붙인 주석과 참고문헌의 양이 70페이지에 이르는 것을 보면 그 과정이 얼마나 험난하고 지루하며 골치 아픈 것이었을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저자와 같은 연구자들이 있어서 나와 같은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한국전쟁 당시의 진짜 실체에 한발 더 다가설 수 있으니 충분한 고마움을 표현해도 마땅하다. 단순히 몇 가지 자료와 책을 발췌하거나 끼워 맞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의 이 연구에 대한 가치는 이미 충분히 증명되고 많은 연구자들에게 인정을 받았다고 한다. 한국전쟁에 대한 많은 책이 출간되고 자료가 소개되었지만 이 책을 읽으며 한편으로는 ‘한국전쟁을 연구하고 분석하는 학자들이 너무 게으른 거 아냐~’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시차를 두고 공개된 미국과 옛 소련의 군사기밀들에 접근하는 것이 물론 어려운 일이지만 학자로서의 사명을 가지고 덤벼들면 못할 것도 없을 것 같아 보이는데, 아직 우리는 한국전쟁에 대해 아는 것 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은 것 같다. 어느 정신 나간 단체에서 내게 연구비를 지원해 준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럴듯한 논문 한 편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은데. 흐흐흐. 말도 안 되는 얘기겠지? 흐흐흐.

 

 

“당대 전폭기 조종사들은 북한군 점령하의 남한지역 도시와 농촌을 향해 일상적으로 폭격작전을 수행했고 흰옷을 입은 민간인 무리를 향해 무차별적으로 기총소사를 가하곤 했다. 조종사들은 그 같은 자신의 행위를 군사적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정당화했다.” (p.166)

“독도폭격사건이 발생했던 1948년 6월 8일, 오끼나와 카데나기지에서 1분 간격으로 이륙했던 B-29기들은 카미노시마 북단에서 회합하여 11시 47분에 첫 번째 폭격시발점인 울릉도 상공에 도착했다.” (p.77)

 

거대한 폭격기 B-29기는 한반도의 북쪽과 남쪽을 가리지 않았다. 책의 단 한군데만 발췌했지만 책에 실리지 않은 무고한 양민을 향한 폭격은 엄청나게 많을 것이다. 일제 강점기 이후 기독교가 가장 안정적으로 정착해 성장한 평양지역과 북한의 서북지역 주민들은 미군의 B-29기가 자기 머리 위를 날아다녀도 미국 선교사가 세운 교회당 안에 대피하면 당연히 무사할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너도나도 집을 버리고 교회당으로 피신했지만 그곳은 공중에서 보기에 가장 좋은 폭격 대상이었다. 소이탄과 네이팜탄을 가리지 않은 미공군의 공중폭격은 교회당과 민가, 피난민들이 모여 있는 공터를 가리지 않았다. 그리고 독도와 울릉도에 대한 폭격, 나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당시만 해도 레이더 기술이 온전치 않아 미공군은 자체 관제시스템이나 조종사 각자의 육안식별로 폭격을 가했다. 울릉도와 독도는 그들에게 북한 폭격을 위한 연습 대상이었다. 분명히 작은 배와 민간인으로 식별 했음에도 공중 폭격은 멈추지 않고 이루어 졌다.

 

 

“9시 45분에 모스키토 와일드웨스트와 접속되었다. 배정된 목표는 겉보기에 피난민으로 보이는 약 30명의 사람들이었다. 통제관은 그들에게 공격을 가하라고 말했다. 네이팜탄으로 직격탄을 날렸다. 모두 죽었다.” (p.226)

 

네이팜탄으로 피난민으로 보이는 약 30명의 사람들을 모두 죽인 미공군 조종사의 임무보고서다. 짧은 문장이 더 섬뜩하다. 군인이 사용하는 문서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일상적이었다는 것이 충격적이다. 저자는 이렇게 한국전쟁 당시 무차별 공중폭격이 자행되었던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분석한다.

 

 

 

첫 번째는 전선의 상황이다.

 

 

“미공군은 한국전쟁 초기 급작한 전선의 상황 때문에 다수의 B-29기들을 원래 용도와는 달리 지상군 근접지원작전에 대거 동원했다.” (p.237)

“북한 지상군은 짧은 기간 동안 한반도의 90퍼센트 이상을 점령하며 연이어 승전보를 올리고 있었지만, 실제 38선 이북의 전쟁 후방지역에서는 연일 충격과 공포의 절규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p.148)

 

 

전쟁 초기 북한군은 터진 둑의 물처럼 남쪽으로 밀고 들어왔다. 대통령이 도망친 수도 서울이 북한군의 손에 들어가고 제대로 된 준비조차 하지 않았던 남한군은 남쪽으로 도망치기 바빴다. 제대로 된 준비나 훈련 없이 투입된 미공군은 북한 후방지역 폭격에 집중했다. 전선 후방으로부터의 보급과 수송을 차단하기 위한 작전이었다. 일제 식민지 시기 북한에 집중된 공업화는 미공군의 폭격의 주된 대상이었다. 초기 미군과 미공군 수뇌부의 방침은 정밀폭격이었다. 민간과 중국과의 접경지역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한국전쟁기 B-29기 폭탄 하나로 가로 5미터 세로 150미터 크기의 타깃을 적중시킬 수 있는 확률은 0퍼센트에 가까웠고, 최소한 100-200발의 폭탄으로 대량폭격을 가해야만 50-80퍼센트의 타깃 적중률을 기록할 수 있었다.” 는 웃기지도 않는 적중률로는 정밀폭격이 불가능했다. 이후 지역폭격이라는 이름으로 명령이 바뀌기는 했지만 민간에 대한 피해는 줄일 수 없었다.

 

 

“소각과 파괴를 위한 초토화정책 (scorched earth policy to burn and destroy)을 되풀이하여 강조” (p.284) 맥아더

“다른 소도시들도 시험 삼아 불태우고 파괴하시오 (burn and destroy as a lesson any other those towns)” (p.286)

 

전선이 고착되고 중공군의 참전이 이루어진 이후, 미군은 급박했다. 맥아더는 초토화정책을 지시한다. 이미 도시 기능과 산업 기능이 마비된 북한 지역 곳곳에 대한 초토화가본격화 되었다. 앞서 소개한 안영실이라는 북한의 양민도 이 초토화정책으로 인한 무차별적이고 무자비한 공중폭격 당시 피해를 입은 사람이다. 이미 집이 없어 토굴 생활을 하던 사람들에게 이전보다 더 참혹한 피해를 안겼다. 연합군 참전과 미공군의 공중폭격으로 압록강까지 차지한 후 종전을 기대한 미군 수뇌부는 워싱턴을 향해 장밋빛 보고를 남발했는데, 중공군 참전으로 다시 전선은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공중폭격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미군과 미공군 수뇌부 몇 명의 즉각적인 판단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정말 가슴 아픈 일이다. 그들 몇몇의 짧고 성급한 판단으로 인해 수많은 민간인이 학살된 것이다.

 

 

 

또 하나는 미군이 가진 인종차별주의와 미공군 조종사들의 결여된 인간애다.

 

 

“미공군의 공중폭격은 한국전쟁 초기부터 ‘누구도 진실로 이해할 수 없는 완전히 개인적인 증오’를 북한 곳곳에서 만들어내고 있었다.” (p.153)

“기초교육과 훈련과정에서 인문학적·사회과학적 지식을 배제한 채 기능주의적인 전쟁기계로 육성된 미공군 조종사들의 전시 행동양식은 폭격의 구조와 양상을 살피는 데 중요한 분석대상이다.” (p.188)

 

 

태평양 전쟁으로 인해 일본군에 대해 질려버린 미군은 편집증적으로 동양인을 일본군과 동일시했다는 주장이다. 100% 동의할 수는 없지만 설득력 있는 부분이다. 2차 대전 시 유럽 동부 전선에서 겪었던 살인적인 추위보다 적도 인근 수많은 섬과 정글에서 마주한 살인적인 더위와 기꺼이 자살을 감행하는 일본군의 무모한 군인정신에 질려버린 것일까? 미공군 조종사들이 뻔히 보이는 피난민 무리에, 자신들은 민간인이라며 입고 있던 흰 옷을 벗어 흔드는 무리를 향해 기총소사를 가하고 네이팜탄을 투하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군인이 가진 명령복종의 구조로는 이해할 수 없는 비인간적인 폭력이다. 저자는 당시 미군의 상황에 주목한다. 아직 불안정한 유럽의 정세에 더불어 유럽과 미국 본토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극동의 한반도에 공군을 투입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빨리 조종사를 선발하고 훈련시킬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한국전쟁에 관련된 다른 책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해석이다. 워싱턴 당국과 미군은 한국전쟁에 참전하는 미공군 조종사들에 대한 특전을 제시했다. 일정 정도의 임무를 완수하면 진급을 보장한다거나 하는 것이었다. 특히, 사관학교 출신이 아닌 조종사들은 격추의 위험도 작고 타 대륙의 전선보다 안정적으로 보였던 한국전쟁에서의 임무가 어렵지 않았다. 출격해 미공군 자체 관제시스템의 명령하달을 완수하면 그만이었다. 조종석에서 바라본 폭격 대상이 민가이고 피난민 무리라도 상관없었다. 발사 버튼을 누르고 기지로 돌아가 임무보고서를 작성하면 끝이었다. 저자의 말대로 기능적인 전쟁기계로 양산된 당시 미공군 조종사들에게 어떠한 인간애를 기대한다는 것이 무모한 일이다. 거기에 더해 동양인에 대한 차별과 증오, 내지는 혐오는 이것을 더욱 부추겼을 것이다.

 

 

 

“1950년 11월 5일 맥아더는 북한지역의 모든 도시와 농촌을 소이탄으로 불태워 없애버리라는 공세적 명령을 하달했다. 그리고 워싱턴은 맥아더의 조치를 묵인했다.” (p.7)

“소위 ‘한국인의 자유’를 위해 실시되었다는 미공군의 대량폭격은 이렇듯 남과 북에서 대규모의 한국 민간인 희생을 끊임없이 강요하고 있었다.” (p.331)

 

‘한국인의 자유’를 위해 실시되었다는 폭격은 ‘한국인의 자유’도, 그들이 꿈꾼 북한군과 중공군의 섬멸도 성공해내지 못했다. 무고한 대규모 북쪽과 남쪽의 양민 학살은 전쟁이 멈춘 뒤 60년이 지난 오늘에도 제대로 규명해 내지 못하고 있다.

 

 

“폭격의 주체인 미국은 자신들이 치른 모든 전쟁에서 단 한 번도 공중폭격으로 인한 민간인 희생자 수를 밝힌 적이 없다.” (p.385)

 

 

전쟁은 멈춘 상태다. 미국은 한국전쟁 당시 미공군의 폭격으로 인한 민간인 희생자 수가 어느 정도인지 밝힌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그 숫자가 얼마 만큼인지 파악은 하고 있을까 싶다.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적으로 행해진 민간인에 대한 폭격이니 말이다. 밝힐 수가 없는 게 아닐까 싶다. 모르니까.

 

차마 서평에 삽입할 수 없었던 사진이 있다. 책에 실린 사진인데, B-29기에서 폭탄을 낙하산에 실어 떨어뜨린 장면이다. 공중에서 촬영된 사진인데 민간인 남성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낙하산과 그 끝에 달린 물체가 신기했던지 하늘을 향해 팔을 벌린 채 다가오고 있는 장면이다. 그 사진의 장면 이후가 어땠을지 상상하기도 싫다. 그렇게 큰 비행기와 그렇게 무시무시한 폭탄을 처음 본 사람들은 그냥 그 자리에서 폭탄을 맞았다. 눈앞에서 가족이 죽고 친구가 죽는 장면은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을 수 없는 것이다.

북한의 정치체제가 어떤 것인지, 세습 왕조의 코미디 같은 독재가 어떤 것인지 나는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들이 가진 미제, 미군의 비행기, 그 비행기의 폭탄에 대한 증오와 적개심이 어떤 것인지는 아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미공군의 폭격을 경험한 남쪽도 마찬가지다. 부모와 친지에 의해 비행기와 폭탄과 죽음과 또 비행기와 폭탄과 죽음을 전해 들었던 내 부모님 세대를 나와 같은 세대는 결코 이해할 수 없다. 그들에게 전쟁은 직접적인 것이었다. 직접 폭탄이 터지는 것과 그 터진 폭탄으로 인해 죽은 사람을 보지 못했지만 그것을 직접 경험한 사람들로부터 들었던 기억은 수십 년이 지나도 생생한 것이다. 전해진 이야기를 또 한 번 듣게 된 세대는 그만큼 더 알지 못한다. 이것이 한 번 더 전해지면

그만큼 더 알지 못하게 되는 것이고.

그래서 영화 국제시장을 보고 나서 무슨 소리를 해도, 그것은 각자의 자유다. 경험하고 전해들은 이야기는 각자의 경험과 기억에 따라 각색되어 체화되기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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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일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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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작가의 유머 시도다. 원래 이 정도의 유머 센스가 있는 작가였나 싶을 정도로 이 책에서 시도하는 작가의 유머는 칭찬해 줄만 하다. 그렇다고 매번 웃겼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내가 읽은 작가의 작품이 대부분 다소(?) 우울하고 건조했었다는 기억 때문에, 작가의 유머가 내게 잘 통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다소(?) 아쉬운 부분이기도 한데, 굳이 이렇게 글 곳곳에 ()괄호를 넣어가며 유머를 던져야 했나 싶었다.

작가와 별로 안 어울린다고나 할까. 근데 이게 원래 작가의 모습일 수도 있지 뭐. 그간 봐왔던 작가의 작품과 작가를 일치시키는 건 오류 투성이일 테니까.

어쨌든 소설가에게 소설가의 일을 듣게 되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물론, 이 책과 관련된 이벤트에 당선되었다면 더 좋았을 뻔했겠고. 크흐흐.

 

 

 

“소설가란 어떤 사람들인가? 초고를 앞에 놓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 ‘자기가 쓴 것을 조금 더 좋게 고치기’가 바로 소설가의 주된 일이다.” (p.75)

“소설에 이렇게 익히 알려진 단어보다 숨은 단어들을 더 많이 쓰는 건 나만의 문장, 나만의 미문을 얻기 위해서였다.” (p.178)

 

 

소설 비스무리 한 것이라고는 한 번도 써 본적이 없는 내게 소설가의 일은 낯선 것이었다. 특히, 단어와 문장에 대한 소설가의 집착을 엿볼 수 있어서 재미있기도 하고 끔찍하기도 했다. 더군다나 작가가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고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초고를 퇴고하고 또 퇴고하고 고치고 수정하는 작업이라고 하는 데, 이건 내게 쥐약이다. 내가 가장 못하는 일이기도 하고 내가 가장 귀찮아 하는 일이기도 하며 내가 가장 불편하게 생각하는 일이기도 하다. 내가 뭐, 등단한 프로 작가도 아니고 원고료를 받고 글을 주는 사람도 아닌데 유독 나는 내 글 보는 것이 불편하다. 시장 통 한가운데 발가벗고 서 있는 느낌 정도로 내 불편함을 속시원하게 표현할 수 없다. 정확하게 어떤 것인지 나도 모르기 때문에 더 불편하고 답답하다. 아내나 몇 몇 지인에게 보여주는 일은 있지만 대게 “뭐, 괜찮은 거 같애” 정도에서부터 “우와~ 정말 잘 썼다.” 정도에 다 포함되는 반응들이기에 블록을 설정해서 한꺼번에 삭제하는 일은 없었다. 그래서 영~ 글에 발전이 없나 싶기도 했다. 프로 소설가, 베스트셀러 작가조차 자신의 글을 철저하고 가학적일 정도로 퇴고한다고 하는데, 나는 옷도 벗지 않고 거사를 치르려는 무모함만 가득한 풋내기인 것 같다. “나만의 문장, 나만의 미문”을 얻기 위한 욕심은 끝이 없는 것 같다. 책을 읽다 처음보는 표현이나 단어나 나오면 사전적 정의를 찾아 메모해 두고 반복해서 찾아 본다. 그리고 서평을 쓰거나 할 때 종종 사용하기도 하는데, 엄밀히 말해 이것은 나만의 문장, 나만의 미문은 아닌 듯 하다. 누군가의 문장에서 그 부분만 쏙 뽑아내 내 것인양 사용하는 것일 뿐. 아마, 퇴고를 하지 않는 내 글의 가장 큰 취약점일 테다. 당장 소설을 쓴다거나 ‘돈을 줄테니 글을 주시오’라는 청탁도 받은 일이 없어 언제쯤 정정당당하게 내 글에 맞서 퇴고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시점이 이 책을 읽기 전에 가졌던 정말 아무 생각도 없던 것보다는 구체적으로 발전했다는 점만 밝혀두기로. 크흐흐.

 

“나만의 문장, 나만의 미문”을 찾기 위해서인지, 소설 속 자료를 찾고 소설의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인지 김연수 작가는 작품의 배경이 되는 곳에 오랜 기간 머물었다고 한다. 부러웠다. 요즘같은 때, 아무리 베스트셀러 작가라고 해도 외국에서 할 거 다하고, 먹을 거 다 먹고 흥청망청 즐기며 시간을 보냈을리는 결코 없겠지만! 그래도 부러웠다. 몽골 사막에서 생애 첫 지평선에서의 일출을 본 후 내가 자연을 향해 하던 표현의 깊이가 달라졌던 것처럼, 실제 내가 쓸 글의 대상과 배경이 되는 곳을 걷고 보고, 냄새 맡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분명 설레고 재미있는 일임에는 틀림 없다. ‘나도 당장 그러고 싶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소설가는 아무나 되나? 생각만... 크흐흐

 

 

 

“소설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왜 소설은 안 쓰고 소설가가 될 생각을 했을까?” (p.99)

“아무리 멋진 소재를 안다고 해도, 남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모험을 경험했다고 해도, 아무도 모르는 엄청난 비밀을 알고 있다고 해도, 쓰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아니다.” (p.199)

 

 

“나는 소설가가 될 테야.”라고 한 번도 말해 본 적 없다. 주위에서 기분 좋으라고 부추김을 받기는 했어도, “에이~ 내가 어떻게 소설을?” 했다. 맞다. 이래가지고는 소설가가 절대로 될 수 없다. 소설을 안 쓰고 어떻게 소설가가 될 수 있나? 절대 소설가가 될 수 없다. 아무리 기가 막힌 소재와 경험, 비밀을 알고 있어도? 쓰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아니다. 라는 소설가의 멘트에 K.O

쓰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아니다. 맞다. 진짜 아무것도 아니다. 머릿속에는 이미 1억원이 넘는 고료의 주인공이 되어 등단을 하고 손가락 안에 드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종국에는 해외에도 내 작품이 번역되어 출간되고, 저 북유럽에서도 슬그머니 후보로 끼워주기도 하는 공상. 딱 거기까지다. 손가락에 의해서 종이에 쓰이거나 키보드를 두드려 글자를 만들어 내지 않는 이상 모!두! 공상!! 딱 거기까지.

 

 

“좋은 시를 쓰는 것인지 아닌지, 내게 시인의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그런 따위의 걱정은 전혀 하지 않고 매일 한 몇 편씩, 때로는 몇 십 편씩의 시를 노트에 썼다.” (p.15)

“지금까지 수많은 작가들이 수없이 많은 책을 썼다. 거기에 무슨 새로운 내용을 더 보탤 수 있을까? 새로 쓸 수 있는 건 오직 문장뿐이다.” (p.192)

 

 

매일 한 몇 편씩, 때로는 몇 십 편씩의 시를 노트에 쓰는 일은 쉽지 않다. 작가도 처음부터 시인이 될 테야. 작가가 될 테야. 해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뭐가 그렇게 생각나서 쓸 것이 있을지 나는 우선 걱정이 된다. 하루 일이야 정해져 있는 것일 테고, 그 안에서 보고 듣고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도 일정 정도의 범위를 벗어나기 어려운 데.

책에는 좀 더 친절하고 자세한 길라잡이도 등장한다. 이를테면, 세 시간 이상 글을 쓰지 마라 같은.

나는 그런 친절하게 자세한 길라잡이 보다 새로 쓸 수 있는 건 오직 문장뿐이다. 라는 직구가 더 와닿는다. 맞다. 뭐 얼마나 잘난 인간이라고 새로운 글을 써낼 수 있을까? 인류는 늘 기록하고 그리고 남기고 싶어했을 테니까. 수백 년이 지나도 여전히 인류 전체의 지적 양식을 채우는 고전도 한 두 권이어야 말이지. 새로 쓸 수 있는 건 오직 문장뿐이라는 소설가의 말이 무겁게 들린다. 일종의 자기 암시이자 최면인 것 같기도 하다. 직업 작가들만이 갖는 고충을 잠시 토로한 것 같기도 하다. 창작을 해야 하는 사람들의 고통인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 고충과 고통에 당장 뛰어들고 싶기도 하고. 크흐흐.

그런데 말이 쉽지. 나만의 문장을 만드는 일은 어렵고 지겹고 골치 아픈 일이다. 어딘가에 내가 쓴 이 문장들이 백팔십삼만육천이백칠십개 정도는 있을 것 같다. ‘그렇다고 해도 겁먹지 말고 나만의 문장을 만들어라’라는 말은 나도 하겠다. 어쩌라는 건지 김연수 작가에게 물어보고 싶다. 새로 쓸 수 있는 문장은 뭡니까? 라고.

 

 

“흔한 인생을 살아가더라도 흔치 않은 사람이 되자. 미문을 쓰겠다면 먼저 미문의 인생을 살자. 이 말은 평범한 일상에 늘 감사하는 사람이 되자는 말이기도 하다. 그게 바로 미문의 인생이다.” (p.174)

 

 

쉬운 듯 어렵다.

아니, 어렵다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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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원하는 삶을 살 것인가 - 불멸의 인생 멘토 공자, 내 안의 지혜를 깨우다
우간린 지음, 임대근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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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을 부축해 드릴 선생님이 없다.

 

 

“무우대에 이르러 나는 선생님의 팔을 부축하며 위로 올랐다.” (p.59)

 

 

그런 선생님이 계셨는데 지금은 부재하신 게 아니라 처음부터 없었다. 팔을 부축해 드린다는 것은 그만큼 선생님과 친밀하다는 것이다. 함께 계단을 오를 수도 있고, 등산을 할 수도 있고, 몸이 좋지 않으셔서 부축을 해 드릴 수도 있다. 나는 그렇게 할 선생님이 없다. 처음부터 없었다. 다른 서평에서 여러 번 밝힌 바 있어 또 다시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민망하지만 사실이기도 하고 부축해 드릴 선생님이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는 방증이다.

 

 

 

“그때 선생님의 자상한 눈빛을 보았다. 선생님은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다.” (p.63)

 

 

자상한 눈빛으로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시는 선생님이 나는 없다. 미간을 찌푸리신 채 무섭게 호통 치시더라도 그런 선생님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나는 없다. 어릴 때는 잘 몰랐다. 인생의 스승이 없다는 부재가 주는 안타까움과 억울함을 느낄 새도 없이 지나가 버렸다. 아니,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별 필요가 없었다. 내가 생각하는 대로, 내가 꿈꾸는 대로 내 인생의 그림이 그려 질 것 같았다. 간혹 어떤 이들이 조언과 직언을 해주었지만 흘려들었다.

그런데 30줄을 넘기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나니 선생님의 부재가 주는 안타까움과 억울함은 짙어만 간다. 제대로 된 스승을 만나지 못한 것에 대한 교육정책의 구조적 문제를 탓하고 싶지 않다. 나와 같은 시절, 같은 교육정책 속에서도 인생의 선생님, 스승을 만난 사람들이 많으니까. 다만 내게는 왜 그런 행운이 찾아오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다. 너무 아쉬워서 억울한 것일 테다.

 

 

 

“미안하구나, 방금 한 말은 농담이었느니라. 자유 너의 말이 옳구나.” (p.240)

 

 

 

고맙다.

 

내가 유일하게 선생님으로 모셨던 분에게서 들었던 마지막 말씀이다. 고(故) 리영희 선생님. 돌아가시지 며칠 전 병상에 누워계신 선생님과의 통화 마지막 목소리다. 한 번도 만난 저거 없고, 뵌 적도 없는 분이지만 그분의 책을 읽고 내 인생의 선생님으로 모셨다. 내 인생관과 세계관, 내 인생의 지향성을 바꾸게 해준 게 리영희 선생님의 책이었기 때문이다. 멀리서 선생님의 책을 읽으며 가르침을 얻고 마음에 새긴 것이 전부지만 좋았다. 건강하게 활동하시면서 내 인생의 가르침이 될 말씀도 많이 해주시고 책도 써주시기를 바랐다.

어느 날 우연히 찾아 본 기사에서 선생님의 병환소식을 알게 되었고 위독한 상황이라 많은 제자들이 병원으로 찾아간 사진도 보게 되었다. 무작정 병원으로 전화를 걸어 선생님과 통화했다. 선생님 책을 읽고 영향을 받은 사람입니다. 존경합니다. 쾌차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한참 무슨 말인지도 기억나지 않는 말을 쏟아 냈다. 선생님의 대답은 한 마디였다.

고맙다. 고맙다.

아마 제자나 선생님의 강의를 들었던 학생 한 명으로 생각하셨던 것 같다. 힘겹게 고맙다. 라고 말씀하셨다. 그게 내 유일했던 선생님과의 처음이자 마지막 대화였다.

단 한번 뿐이었지만 이후 내 평생 동안 마음에 새기고 가슴에 박을 말씀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고(故) 리영희 선생님과의 마지막 통화, 마지막 대화가 생각났다.

 

 

 

夫子曰 : “小子識之, 苛政猛於虎也.” 《예기禮記》<단궁檀弓>

“가혹한 정치가 호랑이보다 무섭구나! 호랑이가 있는 곳에서는 그래도 모두가 잡아먹히지는 않지만, 가혹한 정치 아래서는 살아남을 사람이 없구나!”

“너희는 알아야 한다. 가혹한 정치가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것을.”

 

 

 

가혹한 정치가 호랑이보다 무서운 세상을 살고 있다. 자칫하면 나락으로 떨어질 위험천만한 시대를 살고 있다. 이렇게 무섭고 위험한 시대와 세상을 사는 내게 자공의 눈에 비친 공자의 모습은 부러움 그 자체다. 가까이에서 선생님을 모시고 선생님과 함께 먹고 자며 살았던 수십 년의 시간. 선생님과 나눈 대화, 겪은 사건, 보고 느낀 것들은 그대로 자공의 삶이 되었다. 장사꾼의 자식이었던 자공이 어떻게 공자라는 스승을 만났는지 정확하게 나와 있지는 않지만 수십 년 동안 한 선생님을 모신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책에서 자주 표현되는 대로 공자와 그의 제자들은 제자백가 시대를 살았다. 열국을 주유했다. 수많은 나라를 떠돌았다는 말이다. 열국을 주유했다는 말이 편하게 가르침을 전해주는 낭만적인 여행은 물론 아니었다. 중국의 역사에서도 가장 혼란스러웠던 시대를 살았던 공자와 제자들은 수도 없는 위험과 목숨의 위협 속에서 한 몸으로 지냈다. 아주 혹독한 훈련을 겪고 난 후 군대 동기들 간 더 끈끈한 동기애가 생기는 것처럼 공자와 제자들도 그랬을 것이다.

 

 

 

 

“선생님도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불편하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이해하고 감싸주어야 한다는 말도 했다.” (p.82)

“결코 높은 곳에 홀로 앉아 계시거나 세상 사람들과 다른 것을 드셨던 신선은 아니었다. 그 누구라도 선생님을 폄하하지 말고, 그렇다고 한도 없이 선생님을 우러르지도 말았으면 한다.” (p.383)

 

 

자공의 눈에 비친 공자의 모습은 성인(聖人)의 반열에 오른 모습만이 아니다. 정치적 꾐에 넘어가 들러리를 서기도 하고, 뻔히 보이는 실수를 반복하기도 하고, 제자에게 화를 내기도 하고, 어쩔 수 없는 생활의 곤궁함에 아끼는 제자의 관 하나도 마련해 주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많은 공자와 관련된 책의 내용처럼 이 책도 공자에 대한 찬양과 추앙 일색이었다면 리영희 선생님 생각은 손톱의 때만큼도 나지 않았을 것이다. 자공의 눈에 비친 공자의 모습은 평범한 생활인, 부족하지만 존경하는 선생님이었다. 그 모습을 공자를 좋아하는 사람이나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 아닐까 싶다. 자공의 눈이지만 저자의 눈이기도 하다. 이 책이 중국에서 큰 대중적 인기를 얻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공자가 아끼던 제자 중 세 사람인 자공과 안회, 자로의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데, 예수의 제자 중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겹쳐졌다. 자로는 무인이다. 무도가 뛰어나고 직설적이며 공격적이다. 책에서 여러 번 자로의 이런 면모가 표출되는 데, 매번 공자가 만류한다. 예수를 잡으러 온 군사의 귀를 칼로 자른 베드로의 모습이 비교되었다. 당시 로마와 빌라도 총독, 예루살렘의 기득권이었던 바리사이파를 향해서도 줄곧 비폭력 저항을 했던 예수는 이런 베드로를 꾸짖는다. 공자가 가장 아끼던 안회는 예수의 제자 중 사랑의 제자로 일컬어지는 요한과 비교된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자공과 야고보인데, 둘의 유사점은……. 잘 모르겠다. 어쨌든 공자와 예수가 아끼던 제자였다.

 

 

나는 베드로도 아니고 자공도 아니다. 자로도 아니고 요한도 아니다. 다만 그들처럼 내 스승을 가까이에서 오랫동안 보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아쉽고 억울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내가 뭘 바꿀 수 있는 여지도 없다. 돌아가신 리영희 선생님이 부활하실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만약 부활하신다면 염치 무릅쓰고 계신 곳으로 찾아가 무릎 꿇고 사사를 간곡히 청하고 싶을 뿐이다. 자공도 요한도, 베드로도 자로도 공자 선생님과 예수 선생님이 후세에 이렇게 까지 존경받고 추앙받는 스승이 되리라 생각지는 못했을 것이다. 내 딸아이가 내 나이쯤 되는 시대에 리영희 선생님이 최소한 지금보다는 더 인정받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시대의 스승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현대인은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한다. 이야기는 흡입력이 있을 뿐 아니라 기억하기에도 쉽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인해 독자들은 옛사람과 현대인의 높은 장벽을 부수고 공자의 지혜를 직접 깨닫게 될 것이다.” (p.11)

 

 

자공의 눈에 비친 스승, 공자의 모습 이라는 접근 방식이 좋다. 현대인에게 어필하는 스토리텔링 좋다. 높은 차원의 경전을 번역하고 주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시중에 나온 수많은 공자와 관련한 책을 읽기 힘든 이유다. 이 책은 가까운 제자의 눈으로 공자를 본다. 그의 말과 행동과 삶을 가까이서 지켜본다. 살갑고 친근하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다.

 

 

 

“아, 자공 선생님의 친구이셨군요. 정말 잘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틀림없이 자공 선생님께 공자 선생님에 관한 말씀도 많이 들으셨겠지요? 제게도 그 이야기를 좀 전해주십시오. 자공 선생님에게 공자 선생님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p.366)

 

 

공자 사후 자공은 다른 제자들과 함께 3년 상을 한 뒤, 혼자서 더 스승의 묘를 3년 간 지킨다. 이후 관직이나 현실 정치에 참여하지 않고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간다. 공자가 아끼는 제자였고, 학문과 정치의 경지가 굉장한 수준이었지만 산 속으로 들어간다. 수많은 권유와 요청과 부탁이 있었을 것인데, 모두 물리친다. 그리고 우연히 공자의 문하에 있던 사제의 제자를 만난다. 자신이 자공인지 모른 채 자공과 공자의 가르침을 요청한다. 책에서 저자가 상상해 풀어 낸 자공의 마음은 설렘과 떨림이다. 이미 공자 선생님은 세상을 떠나셨고, 자신도 산 속으로 들어간 지 한참이 지났지만 스승의 사상과 가르침이 대를 이어 전해지고 있다는 마술과 같은 사실 앞에서 다시금 선생님을 향한 경외와 존경심이 일었을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한 저자의 묘사는 간결하고 짧지만 충분히 그 느낌을 공감할 수 있다.

 

나의 권유로 리영희 선생님의 책을 읽은 내 후배와 함께 한참동안 리영희 선생님의 삶과 그 분의 책에 대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너무 좋았다. 대화를 나누는 우리 둘을 지긋이 바라보시는 선생님이 함께 계신 선생님의 서재에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이어지는 삶도 꽤 괜찮을 것 같다.

당장 뛰어 가 만나거나 전화해서 통화할 수 있는 선생님은 없지만 같은 선생님을 모신 이들을 발견하고 그들과 선생님의 이야기를 하는 것 말이다. 어떻게 보면 귀찮기도 하고 오랜 시간이 필요한 지난한 일이기도 하지만 그래서 더 가치 있는 일이다.

어떻게 원하는 삶을 살 것인지의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로봇처럼 입력한 대로만 움직이면 원하는 성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우리의 삶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쉽고 간단하다면 누구나 별 노력 없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를 독려하고 위로하고 가르쳐 줄 수 있는 무엇이 있어야 한다. 그 무엇은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다. 틀린 것이 있을 수 없다. 우리의 인생은 각자 매길 수 없을 만큼 큰 가치를 가진 것이니까. 물론, 이것도 당위는 아니다. 그 무엇이 없이도 나름 자신이 원하는 삶을 이미 영위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테니까.

 

책을 읽으며 선생님을 가까이에서 모시고 팔을 부축해 드린 자공을 부러워하고 내 현재를 안타까워 하다가 돌아가신 리영희 선생님 생각에 한참을 빠져 있었다. 잠시지만 행복했다.

이 책이나 일상의 어느 순간을 통해 내게는 선생님이었던, 그 무엇을 발견하는 분들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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