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일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작가의 유머 시도다. 원래 이 정도의 유머 센스가 있는 작가였나 싶을 정도로 이 책에서 시도하는 작가의 유머는 칭찬해 줄만 하다. 그렇다고 매번 웃겼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내가 읽은 작가의 작품이 대부분 다소(?) 우울하고 건조했었다는 기억 때문에, 작가의 유머가 내게 잘 통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다소(?) 아쉬운 부분이기도 한데, 굳이 이렇게 글 곳곳에 ()괄호를 넣어가며 유머를 던져야 했나 싶었다.

작가와 별로 안 어울린다고나 할까. 근데 이게 원래 작가의 모습일 수도 있지 뭐. 그간 봐왔던 작가의 작품과 작가를 일치시키는 건 오류 투성이일 테니까.

어쨌든 소설가에게 소설가의 일을 듣게 되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물론, 이 책과 관련된 이벤트에 당선되었다면 더 좋았을 뻔했겠고. 크흐흐.

 

 

 

“소설가란 어떤 사람들인가? 초고를 앞에 놓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 ‘자기가 쓴 것을 조금 더 좋게 고치기’가 바로 소설가의 주된 일이다.” (p.75)

“소설에 이렇게 익히 알려진 단어보다 숨은 단어들을 더 많이 쓰는 건 나만의 문장, 나만의 미문을 얻기 위해서였다.” (p.178)

 

 

소설 비스무리 한 것이라고는 한 번도 써 본적이 없는 내게 소설가의 일은 낯선 것이었다. 특히, 단어와 문장에 대한 소설가의 집착을 엿볼 수 있어서 재미있기도 하고 끔찍하기도 했다. 더군다나 작가가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고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초고를 퇴고하고 또 퇴고하고 고치고 수정하는 작업이라고 하는 데, 이건 내게 쥐약이다. 내가 가장 못하는 일이기도 하고 내가 가장 귀찮아 하는 일이기도 하며 내가 가장 불편하게 생각하는 일이기도 하다. 내가 뭐, 등단한 프로 작가도 아니고 원고료를 받고 글을 주는 사람도 아닌데 유독 나는 내 글 보는 것이 불편하다. 시장 통 한가운데 발가벗고 서 있는 느낌 정도로 내 불편함을 속시원하게 표현할 수 없다. 정확하게 어떤 것인지 나도 모르기 때문에 더 불편하고 답답하다. 아내나 몇 몇 지인에게 보여주는 일은 있지만 대게 “뭐, 괜찮은 거 같애” 정도에서부터 “우와~ 정말 잘 썼다.” 정도에 다 포함되는 반응들이기에 블록을 설정해서 한꺼번에 삭제하는 일은 없었다. 그래서 영~ 글에 발전이 없나 싶기도 했다. 프로 소설가, 베스트셀러 작가조차 자신의 글을 철저하고 가학적일 정도로 퇴고한다고 하는데, 나는 옷도 벗지 않고 거사를 치르려는 무모함만 가득한 풋내기인 것 같다. “나만의 문장, 나만의 미문”을 얻기 위한 욕심은 끝이 없는 것 같다. 책을 읽다 처음보는 표현이나 단어나 나오면 사전적 정의를 찾아 메모해 두고 반복해서 찾아 본다. 그리고 서평을 쓰거나 할 때 종종 사용하기도 하는데, 엄밀히 말해 이것은 나만의 문장, 나만의 미문은 아닌 듯 하다. 누군가의 문장에서 그 부분만 쏙 뽑아내 내 것인양 사용하는 것일 뿐. 아마, 퇴고를 하지 않는 내 글의 가장 큰 취약점일 테다. 당장 소설을 쓴다거나 ‘돈을 줄테니 글을 주시오’라는 청탁도 받은 일이 없어 언제쯤 정정당당하게 내 글에 맞서 퇴고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시점이 이 책을 읽기 전에 가졌던 정말 아무 생각도 없던 것보다는 구체적으로 발전했다는 점만 밝혀두기로. 크흐흐.

 

“나만의 문장, 나만의 미문”을 찾기 위해서인지, 소설 속 자료를 찾고 소설의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인지 김연수 작가는 작품의 배경이 되는 곳에 오랜 기간 머물었다고 한다. 부러웠다. 요즘같은 때, 아무리 베스트셀러 작가라고 해도 외국에서 할 거 다하고, 먹을 거 다 먹고 흥청망청 즐기며 시간을 보냈을리는 결코 없겠지만! 그래도 부러웠다. 몽골 사막에서 생애 첫 지평선에서의 일출을 본 후 내가 자연을 향해 하던 표현의 깊이가 달라졌던 것처럼, 실제 내가 쓸 글의 대상과 배경이 되는 곳을 걷고 보고, 냄새 맡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분명 설레고 재미있는 일임에는 틀림 없다. ‘나도 당장 그러고 싶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소설가는 아무나 되나? 생각만... 크흐흐

 

 

 

“소설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왜 소설은 안 쓰고 소설가가 될 생각을 했을까?” (p.99)

“아무리 멋진 소재를 안다고 해도, 남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모험을 경험했다고 해도, 아무도 모르는 엄청난 비밀을 알고 있다고 해도, 쓰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아니다.” (p.199)

 

 

“나는 소설가가 될 테야.”라고 한 번도 말해 본 적 없다. 주위에서 기분 좋으라고 부추김을 받기는 했어도, “에이~ 내가 어떻게 소설을?” 했다. 맞다. 이래가지고는 소설가가 절대로 될 수 없다. 소설을 안 쓰고 어떻게 소설가가 될 수 있나? 절대 소설가가 될 수 없다. 아무리 기가 막힌 소재와 경험, 비밀을 알고 있어도? 쓰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아니다. 라는 소설가의 멘트에 K.O

쓰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아니다. 맞다. 진짜 아무것도 아니다. 머릿속에는 이미 1억원이 넘는 고료의 주인공이 되어 등단을 하고 손가락 안에 드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종국에는 해외에도 내 작품이 번역되어 출간되고, 저 북유럽에서도 슬그머니 후보로 끼워주기도 하는 공상. 딱 거기까지다. 손가락에 의해서 종이에 쓰이거나 키보드를 두드려 글자를 만들어 내지 않는 이상 모!두! 공상!! 딱 거기까지.

 

 

“좋은 시를 쓰는 것인지 아닌지, 내게 시인의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그런 따위의 걱정은 전혀 하지 않고 매일 한 몇 편씩, 때로는 몇 십 편씩의 시를 노트에 썼다.” (p.15)

“지금까지 수많은 작가들이 수없이 많은 책을 썼다. 거기에 무슨 새로운 내용을 더 보탤 수 있을까? 새로 쓸 수 있는 건 오직 문장뿐이다.” (p.192)

 

 

매일 한 몇 편씩, 때로는 몇 십 편씩의 시를 노트에 쓰는 일은 쉽지 않다. 작가도 처음부터 시인이 될 테야. 작가가 될 테야. 해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뭐가 그렇게 생각나서 쓸 것이 있을지 나는 우선 걱정이 된다. 하루 일이야 정해져 있는 것일 테고, 그 안에서 보고 듣고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도 일정 정도의 범위를 벗어나기 어려운 데.

책에는 좀 더 친절하고 자세한 길라잡이도 등장한다. 이를테면, 세 시간 이상 글을 쓰지 마라 같은.

나는 그런 친절하게 자세한 길라잡이 보다 새로 쓸 수 있는 건 오직 문장뿐이다. 라는 직구가 더 와닿는다. 맞다. 뭐 얼마나 잘난 인간이라고 새로운 글을 써낼 수 있을까? 인류는 늘 기록하고 그리고 남기고 싶어했을 테니까. 수백 년이 지나도 여전히 인류 전체의 지적 양식을 채우는 고전도 한 두 권이어야 말이지. 새로 쓸 수 있는 건 오직 문장뿐이라는 소설가의 말이 무겁게 들린다. 일종의 자기 암시이자 최면인 것 같기도 하다. 직업 작가들만이 갖는 고충을 잠시 토로한 것 같기도 하다. 창작을 해야 하는 사람들의 고통인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 고충과 고통에 당장 뛰어들고 싶기도 하고. 크흐흐.

그런데 말이 쉽지. 나만의 문장을 만드는 일은 어렵고 지겹고 골치 아픈 일이다. 어딘가에 내가 쓴 이 문장들이 백팔십삼만육천이백칠십개 정도는 있을 것 같다. ‘그렇다고 해도 겁먹지 말고 나만의 문장을 만들어라’라는 말은 나도 하겠다. 어쩌라는 건지 김연수 작가에게 물어보고 싶다. 새로 쓸 수 있는 문장은 뭡니까? 라고.

 

 

“흔한 인생을 살아가더라도 흔치 않은 사람이 되자. 미문을 쓰겠다면 먼저 미문의 인생을 살자. 이 말은 평범한 일상에 늘 감사하는 사람이 되자는 말이기도 하다. 그게 바로 미문의 인생이다.” (p.174)

 

 

쉬운 듯 어렵다.

아니, 어렵다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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