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격 - 미공군의 공중폭격 기록으로 읽는 한국전쟁
김태우 지음 / 창비 / 201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영화 국제시장에 대한 말이 많다. 낡아빠진 진영 논리를 가져와 트위터에서 쓸데없는 말이 오가는 꼴을 지켜보는 것은 지겨운 일이다. 나는 보지 않았지만 부모님을 보여 드렸다. 영화를 보신 어머니는 재미있었다고 하시면서 “옛날 그런 고생한 거 보니까 마음이 짠하더라”고 하셨다. 뒤에 덧붙이신 말씀은 “차라리 님아 인가 그거를 예매하지 그랬냐?”라고 하셨다. “엄마 님아 그 영화가 더 짠해요”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렇다. 나는 내 부모님이 살아오신 이야기를 알지 못한다. 내 부모님 세대 다른 분들보다 늦은 나이인 서른, 스물아홉에 결혼하신 부모님은 아버지의 직장이 있는 곳으로 내려 오셨다. 충청북도 단양에서 경상북도 포항까지. 지금이야 도로도 좋고 자가용도 있어서 3시간 정도면 오갈 수 있는 거리지만 당시 명절을 맞아 포항에서 단양까지 가기 위해서는 어린 내 손을 잡고 나보다 2살 어린 내 동생을 업고 두 분 양 손에 집채만 한 짐 보따리까지 챙긴 후 포항 단칸방에서 포항 시외버스터미널까지 버스를 타야 했다. 시외버스터미널에서 경주 터미널까지 간 후 버스를 타고 경주역으로 가야 했다. 부산에서 청량리까지 가는 비둘기호 완행열차를 타고 단양역까지 5시간을 가야 했다. 밤 8시쯤 도착한 단양역에서 할아버지 댁까지 버스를 타고 가야 했다. 할아버지 댁에 오가는 길에 대한 기억은 안동역쯤에서 먹었던 가락국수 정도인 내게 부모님의 고달픔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힘들고 피곤한 일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세대 갈등에 대해서 많은 책과 기사, 보도와 논평이 쏟아졌다. 십년쯤 된 것 같다. 친구들과 모여 앉은 대화 자리에서도 그런 말을 많이 한다. “우리 부모님 세대가 마지막으로 부모를 봉양하고 본격적으로 손주를 돌보는 첫 세대래”라고. 쉽게 말한다.

추운 겨울, 개울가 얼음을 깨고 시집 식구를 빨래를 해야 했던 이야기, 단칸방에서 아들 둘을 키우며 정신도 없이 곤로에 밥을 하고 연탄을 갈고 천기저귀를 빨아야 했던 이야기 같은 것들은 나는 손톱만큼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세대 갈등은 어쩌면 당연하다.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알 수 없는 것이다. “아니 말이야~ 멀쩡한 중소기업이나 조그만 회사 놔두고 왜 그렇게 대기업이나 공무원 될려고 그래~ 젊은 것들이 고생을 안 해서 그래!”라고 말하는 기성세대는 지금 청년세대가 겪는 절망과 좌절의 이야기를 알지 못한다. 그렇게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대 갈등은 어쩌면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난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이 책 「폭격」을 읽으며 왜 아직도 박정희를 추억하고 암울하고 뒤틀렸던 60-70년대를 2014년 현재로 부활시키려 하는 세대가 많은 지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영화 국제시장을 놓고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는 허모씨나 변모씨가 차라리 이 책을 함께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광범하나 지역에 자그마한 토굴들만이 밀집해 있는 이곳을 놈들은 군사적 목표라고 한다. 죽은 부모와 오빠, 동생의 원쑤인 미제국주의자들에게 어찌 죽음을 주지 않고 참을 수 있겠는가! 죽음은 죽음으로, 피는 피로 갚아야 한다.”

 

 

미 공군의 공중 폭격으로 가족 6명이 모두 사망하고 홀로 남은 안영실이라는 이름의 여성이 종군 기자들을 향해 토로한 내용이다. 책을 읽으며 가장 충격 받았던 내용은 흰 옷을 입은 무리에 대한 무자비한 폭격이다. 그리고 미 공군은 적군인 북한군과 중공군을 향한 폭격, 북한의 군수시설과 보급시설에 대한 폭격에 그친 것이 아니라 북한 주민들에 대한 폭격. 그리고 대한민국의 자유 수호를 위해 참전했다는 명목상의 이유를 집어던진 채 한국의 무고한 양민들을 학살했다는 것이다.

 

 

“이 책은 한국전쟁기 미공군 공중폭격의 배경과 전개과정에 대한 역사학적 분석을 통해 지나치게 우상화 혹은 악마화된 미국의 실체에 다가가고자 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2000년 즈음부터 미국의 국립문서보관소와 미공군역사연구실을 통해 공개되기 시작한 한국전쟁기 미공문 문서 약 10만 장을 수집·분석했다.” (p.6)

 

이 책은 쉽게 쓰이지 않았다. 저자는 처음 미공군의 한국전쟁 당시 폭격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부터 10년에 이르는 긴 시간 동안 이것과 관련된 각종 자료와 문서를 분석했다. 10년이 걸렸다. 전쟁이 발발한 지 50년이 지난 후에야 공개된 한국전쟁 당시 문서를 뒤졌다. 책에 덧붙인 주석과 참고문헌의 양이 70페이지에 이르는 것을 보면 그 과정이 얼마나 험난하고 지루하며 골치 아픈 것이었을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저자와 같은 연구자들이 있어서 나와 같은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한국전쟁 당시의 진짜 실체에 한발 더 다가설 수 있으니 충분한 고마움을 표현해도 마땅하다. 단순히 몇 가지 자료와 책을 발췌하거나 끼워 맞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의 이 연구에 대한 가치는 이미 충분히 증명되고 많은 연구자들에게 인정을 받았다고 한다. 한국전쟁에 대한 많은 책이 출간되고 자료가 소개되었지만 이 책을 읽으며 한편으로는 ‘한국전쟁을 연구하고 분석하는 학자들이 너무 게으른 거 아냐~’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시차를 두고 공개된 미국과 옛 소련의 군사기밀들에 접근하는 것이 물론 어려운 일이지만 학자로서의 사명을 가지고 덤벼들면 못할 것도 없을 것 같아 보이는데, 아직 우리는 한국전쟁에 대해 아는 것 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은 것 같다. 어느 정신 나간 단체에서 내게 연구비를 지원해 준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럴듯한 논문 한 편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은데. 흐흐흐. 말도 안 되는 얘기겠지? 흐흐흐.

 

 

“당대 전폭기 조종사들은 북한군 점령하의 남한지역 도시와 농촌을 향해 일상적으로 폭격작전을 수행했고 흰옷을 입은 민간인 무리를 향해 무차별적으로 기총소사를 가하곤 했다. 조종사들은 그 같은 자신의 행위를 군사적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정당화했다.” (p.166)

“독도폭격사건이 발생했던 1948년 6월 8일, 오끼나와 카데나기지에서 1분 간격으로 이륙했던 B-29기들은 카미노시마 북단에서 회합하여 11시 47분에 첫 번째 폭격시발점인 울릉도 상공에 도착했다.” (p.77)

 

거대한 폭격기 B-29기는 한반도의 북쪽과 남쪽을 가리지 않았다. 책의 단 한군데만 발췌했지만 책에 실리지 않은 무고한 양민을 향한 폭격은 엄청나게 많을 것이다. 일제 강점기 이후 기독교가 가장 안정적으로 정착해 성장한 평양지역과 북한의 서북지역 주민들은 미군의 B-29기가 자기 머리 위를 날아다녀도 미국 선교사가 세운 교회당 안에 대피하면 당연히 무사할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너도나도 집을 버리고 교회당으로 피신했지만 그곳은 공중에서 보기에 가장 좋은 폭격 대상이었다. 소이탄과 네이팜탄을 가리지 않은 미공군의 공중폭격은 교회당과 민가, 피난민들이 모여 있는 공터를 가리지 않았다. 그리고 독도와 울릉도에 대한 폭격, 나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당시만 해도 레이더 기술이 온전치 않아 미공군은 자체 관제시스템이나 조종사 각자의 육안식별로 폭격을 가했다. 울릉도와 독도는 그들에게 북한 폭격을 위한 연습 대상이었다. 분명히 작은 배와 민간인으로 식별 했음에도 공중 폭격은 멈추지 않고 이루어 졌다.

 

 

“9시 45분에 모스키토 와일드웨스트와 접속되었다. 배정된 목표는 겉보기에 피난민으로 보이는 약 30명의 사람들이었다. 통제관은 그들에게 공격을 가하라고 말했다. 네이팜탄으로 직격탄을 날렸다. 모두 죽었다.” (p.226)

 

네이팜탄으로 피난민으로 보이는 약 30명의 사람들을 모두 죽인 미공군 조종사의 임무보고서다. 짧은 문장이 더 섬뜩하다. 군인이 사용하는 문서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일상적이었다는 것이 충격적이다. 저자는 이렇게 한국전쟁 당시 무차별 공중폭격이 자행되었던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분석한다.

 

 

 

첫 번째는 전선의 상황이다.

 

 

“미공군은 한국전쟁 초기 급작한 전선의 상황 때문에 다수의 B-29기들을 원래 용도와는 달리 지상군 근접지원작전에 대거 동원했다.” (p.237)

“북한 지상군은 짧은 기간 동안 한반도의 90퍼센트 이상을 점령하며 연이어 승전보를 올리고 있었지만, 실제 38선 이북의 전쟁 후방지역에서는 연일 충격과 공포의 절규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p.148)

 

 

전쟁 초기 북한군은 터진 둑의 물처럼 남쪽으로 밀고 들어왔다. 대통령이 도망친 수도 서울이 북한군의 손에 들어가고 제대로 된 준비조차 하지 않았던 남한군은 남쪽으로 도망치기 바빴다. 제대로 된 준비나 훈련 없이 투입된 미공군은 북한 후방지역 폭격에 집중했다. 전선 후방으로부터의 보급과 수송을 차단하기 위한 작전이었다. 일제 식민지 시기 북한에 집중된 공업화는 미공군의 폭격의 주된 대상이었다. 초기 미군과 미공군 수뇌부의 방침은 정밀폭격이었다. 민간과 중국과의 접경지역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한국전쟁기 B-29기 폭탄 하나로 가로 5미터 세로 150미터 크기의 타깃을 적중시킬 수 있는 확률은 0퍼센트에 가까웠고, 최소한 100-200발의 폭탄으로 대량폭격을 가해야만 50-80퍼센트의 타깃 적중률을 기록할 수 있었다.” 는 웃기지도 않는 적중률로는 정밀폭격이 불가능했다. 이후 지역폭격이라는 이름으로 명령이 바뀌기는 했지만 민간에 대한 피해는 줄일 수 없었다.

 

 

“소각과 파괴를 위한 초토화정책 (scorched earth policy to burn and destroy)을 되풀이하여 강조” (p.284) 맥아더

“다른 소도시들도 시험 삼아 불태우고 파괴하시오 (burn and destroy as a lesson any other those towns)” (p.286)

 

전선이 고착되고 중공군의 참전이 이루어진 이후, 미군은 급박했다. 맥아더는 초토화정책을 지시한다. 이미 도시 기능과 산업 기능이 마비된 북한 지역 곳곳에 대한 초토화가본격화 되었다. 앞서 소개한 안영실이라는 북한의 양민도 이 초토화정책으로 인한 무차별적이고 무자비한 공중폭격 당시 피해를 입은 사람이다. 이미 집이 없어 토굴 생활을 하던 사람들에게 이전보다 더 참혹한 피해를 안겼다. 연합군 참전과 미공군의 공중폭격으로 압록강까지 차지한 후 종전을 기대한 미군 수뇌부는 워싱턴을 향해 장밋빛 보고를 남발했는데, 중공군 참전으로 다시 전선은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공중폭격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미군과 미공군 수뇌부 몇 명의 즉각적인 판단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정말 가슴 아픈 일이다. 그들 몇몇의 짧고 성급한 판단으로 인해 수많은 민간인이 학살된 것이다.

 

 

 

또 하나는 미군이 가진 인종차별주의와 미공군 조종사들의 결여된 인간애다.

 

 

“미공군의 공중폭격은 한국전쟁 초기부터 ‘누구도 진실로 이해할 수 없는 완전히 개인적인 증오’를 북한 곳곳에서 만들어내고 있었다.” (p.153)

“기초교육과 훈련과정에서 인문학적·사회과학적 지식을 배제한 채 기능주의적인 전쟁기계로 육성된 미공군 조종사들의 전시 행동양식은 폭격의 구조와 양상을 살피는 데 중요한 분석대상이다.” (p.188)

 

 

태평양 전쟁으로 인해 일본군에 대해 질려버린 미군은 편집증적으로 동양인을 일본군과 동일시했다는 주장이다. 100% 동의할 수는 없지만 설득력 있는 부분이다. 2차 대전 시 유럽 동부 전선에서 겪었던 살인적인 추위보다 적도 인근 수많은 섬과 정글에서 마주한 살인적인 더위와 기꺼이 자살을 감행하는 일본군의 무모한 군인정신에 질려버린 것일까? 미공군 조종사들이 뻔히 보이는 피난민 무리에, 자신들은 민간인이라며 입고 있던 흰 옷을 벗어 흔드는 무리를 향해 기총소사를 가하고 네이팜탄을 투하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군인이 가진 명령복종의 구조로는 이해할 수 없는 비인간적인 폭력이다. 저자는 당시 미군의 상황에 주목한다. 아직 불안정한 유럽의 정세에 더불어 유럽과 미국 본토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극동의 한반도에 공군을 투입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빨리 조종사를 선발하고 훈련시킬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한국전쟁에 관련된 다른 책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해석이다. 워싱턴 당국과 미군은 한국전쟁에 참전하는 미공군 조종사들에 대한 특전을 제시했다. 일정 정도의 임무를 완수하면 진급을 보장한다거나 하는 것이었다. 특히, 사관학교 출신이 아닌 조종사들은 격추의 위험도 작고 타 대륙의 전선보다 안정적으로 보였던 한국전쟁에서의 임무가 어렵지 않았다. 출격해 미공군 자체 관제시스템의 명령하달을 완수하면 그만이었다. 조종석에서 바라본 폭격 대상이 민가이고 피난민 무리라도 상관없었다. 발사 버튼을 누르고 기지로 돌아가 임무보고서를 작성하면 끝이었다. 저자의 말대로 기능적인 전쟁기계로 양산된 당시 미공군 조종사들에게 어떠한 인간애를 기대한다는 것이 무모한 일이다. 거기에 더해 동양인에 대한 차별과 증오, 내지는 혐오는 이것을 더욱 부추겼을 것이다.

 

 

 

“1950년 11월 5일 맥아더는 북한지역의 모든 도시와 농촌을 소이탄으로 불태워 없애버리라는 공세적 명령을 하달했다. 그리고 워싱턴은 맥아더의 조치를 묵인했다.” (p.7)

“소위 ‘한국인의 자유’를 위해 실시되었다는 미공군의 대량폭격은 이렇듯 남과 북에서 대규모의 한국 민간인 희생을 끊임없이 강요하고 있었다.” (p.331)

 

‘한국인의 자유’를 위해 실시되었다는 폭격은 ‘한국인의 자유’도, 그들이 꿈꾼 북한군과 중공군의 섬멸도 성공해내지 못했다. 무고한 대규모 북쪽과 남쪽의 양민 학살은 전쟁이 멈춘 뒤 60년이 지난 오늘에도 제대로 규명해 내지 못하고 있다.

 

 

“폭격의 주체인 미국은 자신들이 치른 모든 전쟁에서 단 한 번도 공중폭격으로 인한 민간인 희생자 수를 밝힌 적이 없다.” (p.385)

 

 

전쟁은 멈춘 상태다. 미국은 한국전쟁 당시 미공군의 폭격으로 인한 민간인 희생자 수가 어느 정도인지 밝힌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그 숫자가 얼마 만큼인지 파악은 하고 있을까 싶다.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적으로 행해진 민간인에 대한 폭격이니 말이다. 밝힐 수가 없는 게 아닐까 싶다. 모르니까.

 

차마 서평에 삽입할 수 없었던 사진이 있다. 책에 실린 사진인데, B-29기에서 폭탄을 낙하산에 실어 떨어뜨린 장면이다. 공중에서 촬영된 사진인데 민간인 남성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낙하산과 그 끝에 달린 물체가 신기했던지 하늘을 향해 팔을 벌린 채 다가오고 있는 장면이다. 그 사진의 장면 이후가 어땠을지 상상하기도 싫다. 그렇게 큰 비행기와 그렇게 무시무시한 폭탄을 처음 본 사람들은 그냥 그 자리에서 폭탄을 맞았다. 눈앞에서 가족이 죽고 친구가 죽는 장면은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을 수 없는 것이다.

북한의 정치체제가 어떤 것인지, 세습 왕조의 코미디 같은 독재가 어떤 것인지 나는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들이 가진 미제, 미군의 비행기, 그 비행기의 폭탄에 대한 증오와 적개심이 어떤 것인지는 아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미공군의 폭격을 경험한 남쪽도 마찬가지다. 부모와 친지에 의해 비행기와 폭탄과 죽음과 또 비행기와 폭탄과 죽음을 전해 들었던 내 부모님 세대를 나와 같은 세대는 결코 이해할 수 없다. 그들에게 전쟁은 직접적인 것이었다. 직접 폭탄이 터지는 것과 그 터진 폭탄으로 인해 죽은 사람을 보지 못했지만 그것을 직접 경험한 사람들로부터 들었던 기억은 수십 년이 지나도 생생한 것이다. 전해진 이야기를 또 한 번 듣게 된 세대는 그만큼 더 알지 못한다. 이것이 한 번 더 전해지면

그만큼 더 알지 못하게 되는 것이고.

그래서 영화 국제시장을 보고 나서 무슨 소리를 해도, 그것은 각자의 자유다. 경험하고 전해들은 이야기는 각자의 경험과 기억에 따라 각색되어 체화되기 마련이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