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을 끓이며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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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만에 김훈의 산문을 읽었다.

 

처음 그의 책 [칼의 노래]를 읽었을 때 신선하고 충격적이었던 그의 서술방식이 더이상 낯설지 않았다. 그래서 한결 책을 읽기 편하기도 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약간의 식상함도 있었다.

 

김훈의 글을 읽다보면..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늘 태극 형상이 떠오른다.

음과 양이 서로 맞물려 돌고 있는..

 

동양 철학에서는 모든 사물이 음양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여기서의 음과 양이 따로 동떨어진 개념이 아니다. 음 속에 양을 내포하고 있고, 또한 양은 음의 외형을 쓰고 자란다.

각각 음양의 대표 주자로 알려진 물과 불만 하더라도, 물이 겉은 부드럽고, 차가우나, 모든 생명을 낳고 기르는 뜨거운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 반면, 불은 겉은 뜨겁고 화려하나, 그 내면은 허한.. 본성을 갖는다고 한다.

양이 극에 달하는 때가 바로 음이 시작되는 자리요, 음이 가장 성할 때, 그 심부에서는 양이 태동하고 있다고 한다.

 

마치.. 음양처럼,

김훈의  글 속에는 서로 대립되는, 그러나,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는 두 가지 관념들이 종종 등장한다.

나와 너의 문제..

(이것은 칼의 노래에서도.. 적에 의해 규정되어지는 나와, 그런 나의 적으로 변주되었었다.)

삶과 죽음의 문제..

 

그중에서도. 김훈은

특히 보편성 안에 내재되어 있는 필연적 개별성(?)에 천착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예를 들자면, 모든 인간은 다 죽는다는 점에서 보편적이지만, 결국 모든 인간은 홀로 자신의 죽음을 감당해야 한다는 점에서 철저하게 개별적이고 고독한 존재라는 인식..

어쩌면, 그것이야 말로 존재의 숙명 내지는 본질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김훈은 지독스러울 정도로 이것을 파고든다.

 

우리 개개인에게 세상이란 어쩌면, 나와, 나 아닌 것 이렇게 둘로 나누어진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개개인은 오직 자신으로 눈으로만 세상을 경험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세상이라는 거울을 통해서만,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본다.

개개인이 경험하는 모든 것들, 생각하는 모든 것들, 아니.. 나라는 존재 자체가 철저하게 개별적이다.

내 밥은 오직 나 만이 먹을 수 있고, 내 고통도, 내 기쁨도, 내 슬픔도 철저하게 나 혼자만의 것이다.

태어날 때, 혼자였던 것처럼..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에 언제나 혼자였고, 죽을 때도 혼자, 개별적으로 죽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나 아닌 것들과의 합일을 꿈꾼다.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 사람으로 살다.. 사람으로 죽는 공통의 운명을 가졌다는 점에서.. 우리는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슬픔의 경험을 가지고 타인의 슬픔을 헤아리려 하고, 내 기쁨에 타인이.. 함께 웃어주길 기대한다.. 그 속에서 존재의 외로움을 잊으려 한다.

 

김훈의 표현을 빌자면.. 결코 건널 수 없는 심연의 거리를 뛰어 넘어, 너에게 닿기를.. 너를 이해하기를.. 꿈꾼다.

그에게는 바로 건널 수 없는 심연의 거리를 건널 수 있게 해 주는 것, 아니, 건널 수 있다고 믿게 해 주는 것이 그의 글이 아닐까?

 

그의 글을 읽으며.. 나 역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닿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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