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올리버 색스 지음, 조석현 옮김 / 이마고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처음 소개 받은 것은 벌써 오래 전이었다.

 

내 사촌 동생이 동네 이동 도서관에서 제목이 특이해서 빌려 보았다가 책을 읽고 나서.. 너무 슬퍼서..울었다고 하였다.

당시 나와 사촌 동생은 오래된 친구 같은 사이였었다.

나와 내 사촌 동생은 독서 취향이 좀 겹치는 데가 있었다.

밀란 쿤데라를 둘 다 좋아했고... 같이 북회귀선을 읽으며.. 키득거렸었다. 카프카의 소설들을 함께 읽었다.

사촌 동생은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꼼꼼하게 읽는 것을 좋아했고, 나는 많은 책을 빨리 빨리 읽고 싶어 했던 것을 제외하면.. 그런대로 말도 잘 통해고 죽이 잘 맞았다.

 

그런 사촌 동생이 좋았던 책이라고 이야기 하길래...

나도.. 읽었다.

 

제목만 봐서는 처음에 무슨 소설책인 줄 알았었다.

그런데.. 이 책은 소설책이 아니라, 신경 장애를 앓고 있는 다양한 환자들에 대한 관찰 보고서이자 임상 기록을 담은 에세이였다.

 

정말로 다양한 부류의 환자들 이야기가 나온다.

 

그 중에서, "몸이 없는 크리스티나"라는 제목의 이야기는 정말 말 그대로 나에게는 충격 그 자체였다.

 

크리스티나는 병원에서 사소한 수술을 앞두고.. 제 몸이 사라지는 불길한 꿈을 꾼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크리스티나의 몸이 사라져 버렸다.

몸이 사라져 버린 크리스티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몸이 없으니,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 조차 쉽지가 않다. 커피 잔을 잡고 커피를 마시려고 해도.. 쥐고 있던 커피잔을 놓치기가 일수 였고, 몇 걸을 걷다가도.. 주저 앉아 버렸다.

갑자기 크리스티나가 왜 몸이 없다고 말하는지.. 왜 일어나서 걷질 못하는지.. 주변에서는 이해 할 수 없었으므로, 당황스러워 하였다.

 겉보기에는 큰 이상이 없었다.

크리스티나가 사라져 버렸다고 주장하는 그녀의 몸도 당연히.. 그녀와 함께.. 제대로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니 크리스티나가 하는 말들은.. 다 수술을 앞둔 환자의 불안 장애, 내지는 히스테리 쯤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단지 헛소리라고만 하기에는 크리스티나의 상태가 심각했다. 모든 근육의 움직임이 녹아내린 듯 흐느적 거렸고.. 나중에는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원인을 찾기 위한 다양한 검사들이 시도 되었고,

결국 크리스티나는 급성 다발성 신경염으로.. 신체의 고유 감각이 전반적으로 다 손상을 입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인간이 느끼는 신체의 감각은 오감이라고 말한다. 시각, 촉각, 후각, 미각, 청각, 이 다섯 가지.. 감각을 통해. 인간은 대상을 파악하고 경험을 축적하며 다른 존재와 소통한다.

그런데,

올리버 색스는 말한다.

어쩌면 인간에게는 오감보다 더 중요한, 너무 당연해서.. 자신이 갖고 있는 줄도 모르는 특별한 감각이 하나 더 있다고 말한다.

고유 감각이라고 불리는 그 것!

다시 말해서.. 자기 스스로를 느끼는 능력을 말한다.

우리는 굳이 오감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제 몸이 어떤 상태인지를 저절로 안다.

자신의 발가락이 어디에 있는지, 자신이 현재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는지 등등... 그냥 온몸로.. 자신의 존재 자체를 느끼고 받아들인다.

 

그런데..

크리스티나의 몸에서 그 고유 감각이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크리스티나는 자신의 몸을 느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눈으로 확인하기 전에는 제 몸이 어디에 있는지.. 제 손가락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27살이었던, 승마를 즐기던 지적이고 쾌활한 여성 대신..

눈을 감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환자가 남았다.

크리스티나는 걸음을 옮길 때마다.. 눈으로 제 발의 위치를 확이하고.. 제 발이 움직이는 것을 보아야 했다. 눈을 감아 버리면.. 보이지 않는 것은 사라져 버려서.. 자세를 유지하지 못하고.. 쓰러져 버렸다.

보통은 저절로, 혹은 반사적으로 일어나는 모든 동작들을 머리 속으로 생각하고 눈으로 확인해야 했다.

당연히.. 더이상은 보통 사람으로 살아갈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에게서 사라져 버린 고유 감각을 나머지 남아 있는 오감으로 메우며.. 힘겹지만, 굳세게 살아가고 있다고 하였다.

 

책 속에는 그녀 이외에도 다양한 신경학적, 또는 뇌의 병리적 손상으로 인해..

특이한 장애를 갖게 된 사람들, 그리고 그런 장애에도 불구하고..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으려 분투하는 사람들이 이야기가 많이 소개되어 있다.

 

뇌출혈로 쓰러진 이후에.. 오른쪽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게 되어 버려서.. 왼쪽 얼굴에만 곱게 회장을 하고.. 식사를 할 때도..  딱 절반, 왼쪽 편에 있는 것만 먹는 노부인 이야기..

침대에서 자다가.. 제 침대 속에 누군가 고의적으로 넣어 놓은 축축하고 기분 나쁜 정체 불명의 것 (사실은 감각이 죽어버린 자신의 다리)을 밀어 내려다가 .. 매번 침대에서 굴러 떨어져 버리는 남자 이야기..

책의 제목처럼.. 자신의 아내의 얼굴을 모자로 착각해서 쓰려고 했던 음악가 P씨

자신의 삶의 기억들이 통째로 사라져 버린 코르사코프 증후군 환자.

그리고 사라진 기억을 메우고 자신의 정체성을 붙들기 위해..끊임없이 가공의 이야기를 꾸며되는 또다른 코르사코프 증후군 환자...

 

사촌 동생 말처럼 책을 읽으면서.. 나도 슬펐다.

그러나,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내가, 그런 장애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 안도하고 감사했다.

내가 그런 안도감을 느낀다는 것에 대해서 약간의 부끄러움도 함께 느꼈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몇 몇 환자들 이야기가 참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그래서.. 몇년 전에 버스 안에서 우연히.. 경미한 투렛 증후군 환자를 목격했을 때..  '저 사람 좀 이상해!'라고 수군대는 대신..

그 사람이 환자라는 것을 알아 보았다.

 

내가.. 나라는 사실을 온전하게 느끼고, 경험하면서.. 나 자신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고마운 일이란 생각을 다시 해 본다.

 

여러 모로.. 여운이 참 많이 남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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