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도둑 1
마커스 주삭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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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아하는 책을 단 한권만  꼽으라고 하면,

나는 아마 어느 책도 선택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질문을 조금 한정해서, 최근 몇 년 간 읽은 책 중에 가장 좋아하는 책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이 책 [책 도둑]을 꼽고 싶다!

 

이 책의 화자는 사신 (?), 죽은 이의 영혼을 운반하는 일을 하는 존재다.

그는 죽어버린 사람들의 영혼을 나르면서,

세 번에 걸쳐 이 소녀를 목격하고, 마지막 목격에서 소녀가 직접 쓴 소녀의 이야기 [책도둑]을 얻게 된다.

그리고,

이 슬프지만, 아름다운 책 도둑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리젤 메밍거라는 이름을 가진 소녀가 훔친 책과 선물 받은 책, 자신이 쓴 책을 포함한 열 권 남짓의 책에 얽힌 이야기!

 

1939년 독일의 무섭게 추운 겨울 어느 날 ,

리젤과 남동생은 어머니와 함께 기차를 타고 자신들을 맡아줄 양부모를 찾아 가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 도중에, 리젤의 남동생이 기차 안에서 죽는다.

얼어붙은 땅에 동생을 묻고, 다시 기차를 타고 떠나올 때

리젤은 동생 대신, 거기에 떨어진  한 권의 책을 훔친다. (리젤은 아직 글을 읽을 줄 모른다.)

 

[무덤 파는 이를 위한 안내서]

 

어머니는 리젤을 뮌헨의 힘멜 (하늘이라는 뜻이란다) 거리의 가난한 후버만 부부에게 맡기고 사라진다. (아마 아버지처럼 어디론가 끌려 갔을 테지만,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한스 후버만과 로자 후버만,

약간의 양육 수당을 벌고자, 리젤을 양녀로 맞은 사람들..

 

한스 후버만은 가난한 칠장이(페인트공?)였다.

한스는 나치 치하, 광기로 치닫는 독일 내에서, 당시 전국민의 90%가 지지하는 퓌러 (나는 이게 히틀러의 이름인 줄 알았다. 그런데, 지도자라는 뜻이란다) 를 지지하지 않는 나머지 10%에 속한,

그래서, 점점 사는 것이 힘들어져도,

말없이 그 고통을 감수하는 사람이었고,

로자 후버만은 그런 한스 대신, 부유한 사람들에게 세탁일을 해 주면서, 부족한 돈을 벌며 살고 있었다.

 

말끝마다 폭포수처럼 터져 나오는 욕을 입에 달고 살고, 때로는 무지막지하게 폭력을 휘두르는 로자에 비해,

한스 후버만은 너무 조용한 사람이었으나, 아코디언을 잘 켤 줄 알았고, 겁먹은 아이를 달래는 것을 본능적으로 아는 사람이었다.

그 두 사람이 이제 리젤의 엄마, 아빠였다.

 

밤마다, 악몽에서 깨어나 비명을 질러대는 아이를 위해, 몇 주 동안이나 곁에 아무 말 없이 함께 앉아 주며, 아이가 다시 잠들 때까지 기다려 주는 사람..

그리고, 리젤이 밤마다 꿈에 나타나는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한 동생의 얼굴을 이야기 했을 때,

그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리고 동생 대신 훔친 책을 보여 주었을 때,

그 책 제목이 

[무덤 파는 이를 위한 안내서] 이었음에도,

리젤이 원하는 대로 그 책을 밤마다 떠듬거리며 읽어주다, 직접 지하실 벽에 페이트로 칠판을 만들어 가면서, 리젤에게 글을 가르쳐 준 사람,

그 사람이 바로 한스였다.

 

그들과 살면서 리젤은 점차 생활의 안정을 느낀다.

그리고 이웃에 사는 루디라는 친구도 사귀고,

가난하지만,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아간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

당국이 불온 서적이라고 분류한 책들과 선전물들을 태우던 날,

소녀는 두번째로 [어깨 으쓱거리기]라는 책을 불길 속에서 훔친다.

그리고, 그 장면은

로자 후버만의 주된 고객이자 로자 후버만이 늘쌍 게으름뱅이라 경멸해 마지않는 시장 부인에게 고스란히 목격한다.

 

항상 보풀같은 머리를 하고, 마치 아들이 1차 대전에서 죽은 뒤.. 유령처럼 로자에게 세탁물을 건네던 시장 부인 (일자 헤르만)은

책으로 가득찬 자신의 서재를 리젤에게 개방한다.

 

그러다가,

일이 생긴다.

 

예전에 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났을 때, 한스 후버만은 전장에 끌려 갔었고, 거기서 한스에게 아코디언 연주하는 법을 가르쳐 준 에릭 판덴부르크라는 유태인 덕분에 가까스로 죽음의 신을 피했다.

 

거의 이십여년이 지나서,

유태인 에릭 판덴부르크의 아들, 막스 판덴부르크가 한스가 20여년 전에 에릭의 부인에게 주었던 주소를 들고, 초라한 몰골로 두려움에 떨며 힘멜가 33번지로 찾아 온다.

 

한스는 막스를 자기 집 지하실에 숨겨 준다.

평소라면 온갖 욕설을 다 퍼부었을 로자도, 말 없이, 막스에게 스프를 건네 주고,

한스는 리젤에게,

한스가 리젤이 책 도둑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것처럼, 리젤 역시 막스가 자기 집 지하실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달라고,

리젤이 그 이야기를 누구에게건 하면..

한스와 로자가 리젤의 부모처럼 어딘가로 끌려가 다시는 서로 만나지 못하게 될 거라고 한다.

 

자신의 존재 자체가 얼마나 이들 부부에게 큰 위험이자 짐인지 알면서도, 염치 없이 살기 위해 이들 부부를 찾아 왔다는 사실,

그리고, 이미 그 훨씬 이전에,

살기 위해, 자신의 가족을 버리고, 자신만 독일인 친구 발터 쿠글러의 도움으로 은신처로 숨어들었었다는 사실 때문에..

온 몸이 두려움과 책망과 수치로 뒤덮여 한스의 집 지하실에 살게 된 막스에게

어느 날 그 집의 소녀가,

'아저씨 머리가 깃털 같아요!'라고 말해 준다. 소녀의 말에  막스는 몇 년만에 처음으로 자신이 벌레가 아니라 사람이라고 느낀다.

그리고 둘은 밤마다, 악몽을 꾼다는 공통점을 발견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털어 놓다가 점점.. 친구가 되어 간다.

 

그러면서 소녀의 삶은 집 안에서의 삶과 집 밖에의 삶으로 이분화 되었다.

집안에서 소녀는 막스의 친구였다.

추운 지하실에서 지내던 막스가 자신의 침대에서 죽어갈 때, 그의 머리 맡에 앉아, 자신이 가진 몇 권 안되는 책을 계속 읽어준 사람은 리젤이었다. 그리고 밖에서 솔방울, 깃털, 구름, 사탕 껍데기 같은 선물을 가져와 막스의 머리 맡에 놓아준 이도 리젤이었다.

 

막스가,

죽을 고비에서 벗어나, 다시 살게 되었을 때,

막스는 리젤에게,

기차안에서 자신이 무사히 한스네 집으로 올 수 있도록 위장막이 되어 주며, 자신의 생명을 구해 주었던 마인캄프 (히틀러가 쓴 책 [나의 투쟁]?) 책 지면을 뜯어 그 위에 페인트를 칠하고

열 페이지 조금 넘는 [굽어보는 사람]이라는 책을 붓으로 직접 그려서 리젤에게 선물한다.

 

평생 자신을 굽어 보는 사람들을 두려워 했던 ,

그러나, 이제, 자신을 굽어 보고 자신의 머리카락이 깃털 같다고 말해준 소녀를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게 된 한 사내의 이야기,

막스 자신과 리젤의 이야기였다.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사는 것이 점점 더 팍팍해졌고, 마지막으로 로자에게 세탁물을 주었던 시장 부인마저, 더이상 일거리를 주지 않게 되던 날,

리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온갖 욕을 다 시장 부인에게 퍼 부어 주고도,

분이 풀리지 않자, 그 집 서재에 들어가, 책을 훔친다.

 

훔친 책을 헤지도록 읽고 난 뒤에는 다시, 그 서재에 들어가 두 번째의 책을 훔치고.. 다시.. 세번째의 책을 훔치고,

그러던 어느 날..

서재 창문에 세워 놓은 사전 한권,

그리고 그 안에 쓰여진 편지,

 

'여전히 나는 너의 친구란다!'

 

유태인 박해가 극에 달하던 어느 날, 거리를 행진하는 유태인 노인에게 한 조각의 빵을 건네 준 한스로 인해,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던 이들의 생활이 파탄나 버렸다.

유태인의 친구로 낙인 찍혀 자신의 집에 언제든 게쉬타포가 들이닥칠 수 있다고 생각한 한스는 어쩔 수 없이 며칠 동안만 막스을 바깥으로 내 보내려 한다.

그러나, 수색은 없었고, 막스는 그 동안으로도 너무 고마웠다는 편지 한 장을 남긴 채 사라져 버렸다.

 

이야기의 마지막 즈음에,

공습으로 인해 힘멜 거리가 폐허가 되고,

리젤이 사랑했던 모든 것들이 다 사라졌다.

리젤이 이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아버지 한스 후버만도, 그리고, 욕을 입에 달고 살았고 키가 150cm 조금 넘을까 말까한, 옷장처럼 생긴 거친 여자였지만,  이 세상 누구보다 아름다운 엄마 로자 후버만도,

그리고 가장 친한 친구이자, 첫사랑인 루디도

그 공습으로 죽었다.

 

그러나,

더이상 폐를 끼칠 수 없다면서,

떠나 버린 막스가 쓰던 지하실에서, 자신의 이야기 [책 도둑]을 쓰던 소녀 리젤은 살아 남았다.

 

그리고,

1945년 10월 단정한 차림의 막스가 리젤을 찾아왔을 때..

나는 정말 많이 울었다.

 

아니,

책을 읽으면서.. 내내  참 많이 울었다.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온갖 이야기들..

극한으로 몰리게 되면, 인간이란 존재는 정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해 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아마도 세상에는 알려지지 않은 한스 후버만이나, 로자 후부만 같은 따뜻한 마음은 가진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아직도..

나는 눈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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