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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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80, 90, 그리고 2000년대 노래들을 자주 듣게 된다.

어떤 노래들은 지금으로부터 30년전 노래들인데도, 이상하게 그 노래가 촌스럽다거나 하지 않고 오히려 아련한 향수 같은 것을 불러 일으킨다.

요즈음의 보여지는 것 위주의 음악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것이

어쩌면 더이상 내가 젊지 않다는 것에 대한 반증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나는 가사를 음미하면서 들을 수 있는 노래들이 좋다.

 

좋은 노래나 좋은 책들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둘 다,  자신이 태어난 시대의 감성을 충실하게 반영하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그 시대를 넘어서는 힘이 있다.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은 나에게는 그런 의미에서 여전히 좋은 소설이다.

 

언제 내가 이 책을 처음 읽었었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내용도 가물가물.. 그저 한 꼬마와 그 꼬마를 돌봐 주던 어느 여자의 이야기라는 것과 그냥 막연히 좋았던 것 같은 느낌만...

아무리 찾아도 책을 찾을 수가 없어서.. 얼마전에 다시 샀고, 주말 내내 다시 읽었다.

 

또래 보다 조숙한, 그리고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10살 소년 모모라 불리는 소년이 자신을 돌보아 주던 로자 아주머니와 이별하기까지의 이야기가 이 책의 주된 줄거리이다.

 

로자 아주머니는 어쩌면 한때는 예뻤을 수도 있는, 그러나 지금은 늙고 뚱뚱한 유태인 여자였다. 아이를 키울 수 없는 아이의 부모들로부터 돈을 받고 임시로 아이를 양육해 주면서 살아가고 있었고, 화자인 모모는 그녀가 가장 오랫동안 데리고 있는 아이였다.

 

모모의 기억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모모는 로자 아주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열 살이라고 하지만, 열 살이라고 그대로 믿기에는 너무 조숙한 아이 모모에게는  로자 아주머니가 가족의 모든 것이기이전에, 삶의 전부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모의 눈에 비친 로자 아줌마의 모습이 아름답거나, 사랑스럽거나 하지는 않다.

7층짜리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을 힘들어 하는 늙고 지친, 그리고 돈 때문에 아들을 돌보는 일을 하지만, 부모로부터 버림 받은 아이들까지도 차마 내 보내지 못하고 끼고 사는,

때때로 아유슈비츠의 환영에 시달리고, 말 듣지 않는 아이들에게 거친 욕설을 퍼 붓다가도 울음을 터뜨리는 히스테릭한 병든 여인일 뿐이다.

 

나는 누구일까?

내 부모는 어떤 사람일까? 왜 내 부모는 나를 찾아오지 않는가?

왜 내 이름은 모하메드인가?

왜 아랍인인 나를 유태인 여자에게 양육을 맡겼을까? 내가 아랍인이 맞기는 한 걸까?

어린 모모에게는 궁금한 것이 많지만,

로자 아주머니에게 이런 것들에 대해 물어볼 때면, 로자 아주머니는 마치 모모가 당장이라도 자신을 버리고 떠나갈 것처럼 서럽게 울어대는 통에, 어떤 것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그녀와 함께 산다.

그리고 그녀가 돌보는 아이들을 돌보기도 하고, 거리를 쏘다니기도 하고, 아랫층에 하밀 할아버지 같이 경험 많고 눈이 아름다운 사람과 대화를 나누기도 하면서,

어찌보면 가난하지만, 또 어찌 생각해 보면 그 나름대로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로자 아주머니가, 뇌일혈로 점차..

정신을 놓아가게 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그녀가 병으로 인해 더이상 아이들을 돌보지 못하게 되면서.. 병들어 죽어가는 로자 아주머니를 모모가 돌봐야 하는 상황이 오게 된 것이다.

그러나, 고작 열살 (사실은 열 네살이었다. 어린 아이인 채로 자신의 품 안에서 모모를 키우고 싶었던 로자 아주머니가 모모의 나이를 속였다)자리 아이가 병들어 죽어가는 여인을 돌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만,

다행스럽게도 그 건물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도움 덕분에 간신히 간신히.. 모모와 로자 아줌마는 생활을 꾸려 나간다.

 

그러나,

그것도 서서히 한계에 봉착해 가고 있었다.

병원에서 수 많은 기계에 몸을 연결한 채.. 무의미한 삶을 영위하고 싶어하지 않는 로자 아주머니의 마지막을 지켜 주기 위해.. 모모는 모두에게 로자 아줌마의 고향인 이스라엘로 가게 된다고 속이고,

평소에 로자 아주머니가 악몽에 시달릴 때면, 숨어들곤 하던, 아무도 모르는 그녀 만의 안식처

지하실로.. 로자 아주머니를 데려 간다..

그리고.. 그 곳에서.. 숨이 끊어진 로자 아주머니와.. 3주 동안 더 살다 사람들에게 구출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난 조금 울었다.

 

책에서 하밀 할아버지가 모모에게 이야기 해 준 것처럼..

사람은 사랑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 없이 살아갈 수가 없었던 아이 모모는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법을 알지 못하였다. 그래서 숨이 끊어져 버린 로자 아줌마를 떠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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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뒷편에 부록처럼..

로맹가리가 왜 자신의 이름을 속이고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이 책을 썼는지에 대한 스스로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젊은 시절, 이미 꽤 성공적인 작가의 삶을 살아왔지만, 그럼에도,

더이상 누구도 자신의 작품을 제대로 읽지 않고 과거의 자신의 작품들로 자신을 한정시켜 버리는,

말하자만, 고착화된 이미지가 작가로서의 자기 자신을 대체해버리는 것, 혹은 그런 사람들에 대한 저항 ? 통쾌한 반전?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는 열망!

 

로맹가리는 그 것을 에밀 아자르 필명으로 성취해 내었다.

[자기 앞의 생]이 출간되고, 로맹 가리가 자살하면서, 유서에서 자신이 진짜 에밀 아자르라고 밝히기 전까지.. 로맹가리와 에밀 아자르가 동일인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으니까.

 

예전에 로맹 가리의 단편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내가 보기에도, 동일인이 쓴 것이라고 하기에는 풍기는 분위기가 참 많이 달랐다.

그런 타고난 재능이 조금은 부럽다.

 

누구나, 한번쯤은 지금의 내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 새롭게 시작하는 모습을 꿈꾸지만,

그걸 이룰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자신이 바라는 모든 것을 다 이룬 뒤, 로맹가리는 더 이상 삶의 이유를 찾지 못해 자살로 인생을 마감했으니,

차라리 그런 능력이 없는 우리 같은  평번한 삶이 더 나을 수도 있겠다.

 

암튼..

다시 읽어도.. 여전히 눈물나게 좋은.. 아름다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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