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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짐승
헤르타 뮐러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평점 :
책을 고르다 보면 생전 처음 접하는 작가인데도 왠지 그 이름이 아주 친숙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이 책의 저자 헤르타 뮐러의 이름도 그랬다. 그의 작품을 한번도 읽은 적이 없는데, 왠지 구면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왜 그런가 했더니, 저자 소개에 노벨상을 수상한 사람이라는 설명이 나온다. 아마도 어느 해 인가, 신문 지상에서 오르내리는 그녀의 이름을 어디선가 접했거나, 축하 선물처럼 서점가에 깔렸던 그녀의 책들을 보았던 모양이다. 친한 사람들의 얼굴에서 남들은 모르는 예쁜 구석을 쉽게 찾아내는 것처럼 익숙한 것이 주는 매력은 상당한 듯 싶다. 서가에 진열된 여러 책들 중에서 이책을 골라낸 이유라면 아마 그 익숙함 때문이었을 거다.
책의 첫부분은 소설이 아니라, 무슨 현대 시 마냥 난해했다. 단어들이 일상적인 의미를 띄고 있는 게 아니라, 무언가에 대한 비유와 상징일 것 같기는 한데 도통 그 의미를 알 수 없어서..한 구절 한 구절 읽기가 좀 버거웠다.
책의 내용은 어떻게 말하자면 아주 간단하다. 감시와 통제가 일상화 된 나라 루마니아의 한 여대생 기숙사에서 평소 품행이 방탕했던 한 여학생이 목을 매 자살한다. 평소 그녀를 꺼려하던 나는 그녀의 석연치 않은 죽음 이후 독재자 치하의 현실에 눈뜨게 되고 비슷한 생각을 가진 세명의 남학생들과 어울리게 된다. 바깥 세상에서 보내온 정보에 눈뜨고, 현실을 냉철하게 인식하게 되면서부터 나와 나의 친구들은 볼온한 사상을 가진 사람으로 분류되어 체포되어 심문 받거나, 감시당하는 생활이 일상화된다. 방을 수시로 뒤지고, 편지를 몰래 뜯어보고, 고향집까지 뒤지며 독재 정권의 끄나풀들은 무언가 이들을 옭아맬 불온 서적이나 서류를 찾아내려 하지만, 이들은 용케 그들의 손아귀를 벗어난다. 계속되는 감시, 억눌려진 분노와 언제든 체포되어 고문 당하고 죽임을 당할 수 있다는 공포로 인해 나와 친구들의 삶은 점차 피폐해져간다. 가족과 친구 조차도 온전히 믿을 수 없게 만드는 숨 막히는 체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나는 가족과 독일로 망명한다.
공산 독재 정권 치하의 숨막히는 체제? 명확하게 같은 것은 아니겠지먄,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시절이 있었다. 사회의 부조리를 깨닫고, 혹은 민주주의를 갈망하면서 보다 나은 사회를 꿈꾸던 많은 사람들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거나, 불온 사상의 소유자란 딱지가 붙여져 직장에서 쫓겨나고 사회에서 배척당하던 시절이.. 그래서인지 책 속 이야기가 낯설지만은 않았다.
책의 제목이 책 내용의 대부분을 상상할 수 있게 해준다면 그 제목은 잘 지어진 걸까, 잘못 지어진 걸까? 제목에서 너무 많은 정보를 준다면 책을 읽기도 전에 이미 어떤 느낌 혹은 어떤 주제를 떠올리게 되고 그게 책 읽는 재미나 호기심을 반감시키는 경우도 종종 있다. 또 반면에 책 전체를 아우르는 핵심을 잘 포착해서 붙인 제목이 몸에 착 감기는 옷처럼 맞어 떨어져서 작가의 통찰에 경탄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 책은 어느 쪽이라고 해야 될까?
마음짐승이라는 책 제목처럼, 모든 인간들 마음에는 짐승이라고 부를 수 밖에 없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부당한 일, 혹은 옳지 않은 일임에도 침묵하고, 자신의 안전을 위해 다른 누군가를 희생시키면서도 죄의식을 갖기 보다는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타인의 고통에 대해 무감각하게 되는 짐승 같은 무엇인가가 내면에 깃들어져 있다. 그렇기에, 지금 상식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무수한 잔인한 일들이 인류 역사를 통해 자행되어 왔을 거다. 또 현재도 도처에서 인간이 어떻게 저런 짓을? 하면서 치를 떨만한 잔인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 거고.
책을 다 덮고 나서도 마음이 무거운 이유는 아마 내 속에도 깃들어 있을 그 놈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