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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는 길
이스마엘 베아 지음, 송은주 옮김 / 북스코프(아카넷)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한국 나이로 초등학생 정도에 불과한 아이들이 지구촌 어딘가에서 자기 몸보다 더 큰 총을 들고 전쟁에 참여한다는 이야기를 오래 전부터 들었다. 세계 곳곳에 불의와 불평등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기에..
또 무엇보다 내 삶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기에 난 다른 모든 것처럼 그들의 존재 역시 쉽게 잊어버리고도 잘 산다.
그런데, 가끔 이런 불편한 책들을 만난다.
이스마엘 베아. 힙합과 랩을 좋아하던 꿈 많은 12살의 소년이 내전에 휩쓸려 부모와 형제를 잃고 살아남아 소년병으로 전쟁을 직접 수행하다 간신히 거기서 벗어난 이야기..
이 소년의 조국은 시에라리온이다.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에 배경이 되었던 나라란다. 다이아몬드가 매장되어 있어서 더 불행한 나라.. 이 다이아몬드의 채굴권을 둘러싸고 여러 해 동안 이 나라는 내전중이었다. 부패한 정부를 타도하기 위해 일어났다던 RUF라는 반군 세력은 다이아몬드 광산을 점령하고 그 돈으로 무기를 사들이며 내전을 지속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마을을 점령하고 그곳 주민을 학살하거나 사지를 절단하고 어린 소년들을 강제 징집해 무기를 나르게 하거나, 혹은 직접 무기를 들고 사람들을 죽이는 데 앞장서게 했다.
이스마엘 베아가 전쟁을 만났을 때 그는 고작 12살이었고, 자신의 형, 친구와 함께 도시에서 열린 장기자랑에 참여하기 위해 가는 중이었다. 갑작스러운 반군의 기습에 부모 형제의 생사도 모른 채 살기 위해 도망친다. 도처에 불신과 살육과 광기가 넘쳐나는 시대이고, 누구보다 더 악랄하게 사람들을 죽이는 게 소년병들이라는 소문 때문에 그저 살기위해 도망치는 이스마엘의 무리들은 종종 거주민들에게 반군이라는 오해를 받고 냉대받는다.
천신만고 끝에 부모를 만나게 된다는 희망에 부풀지만, 부모가 살았던 곳이 반군의 습격으로 폐허가 되어 버리고 고아가 되어 버린 이스마엘은 결국 정부군이 되어 반군과의 전쟁을 치른다. 그런데, 정부군이라고 반군보다 더 나은 점이 있었을까? 처음에는 부모를 죽인 원수들을 죽인다는 생각이었겠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점점 살인기계처럼 되어 버린다. 전쟁 영화 람보처럼 반군을 죽이는 걸 자랑스러워하고.. 반군이 아니라, 민간인임을 알면서도 학살을 자행하는 그들의 모습은 섬뜩하다.
어린이에게 불과한 그들에게 마약을 먹여가면서 그들의 복수심을 부채질하고 사람들을 많이 죽이는 것이 영웅이라고 충동질 하는 정부군 장교.. 내 눈에는 그들이나 그들이 그렇게 원수처럼 생각하는 반군들이나 마찬가지로 보였다. 처음에 전쟁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는 몰라도 그건 전쟁이 아니라, 광기일뿐이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는 아이들에게 광기와 학살의 한 복판에 총을 들고 싸우라고 하는 것은 무엇으로도 용서될 수 없는 죄악이다.
인간이 어디까지 악랄해 질 수 있는 건지..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잔인한지..
다행스럽게도 이스마엘은 유니세프의 도움으로 전쟁에서 벗어나 재활 치료를 받기 시작한다. 물론 소년병으로 자유롭게 생사여탈권을 행사했던 기억은 재활이 계속될수록 가슴속에 참기 힘든 죄책감으로 되살아났지만.. 이스마엘에게, 또 다른 소년병들에게 "괜찮아, 너희들의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해주고 그들의 상처를 감싸주는 어른들 덕분에.. 이스마엘은 점점 마음의 안정을 찾아간다.
수도 프리 타운이 반군들에게 점령될 무렵 이스마엘은 다시 소년병으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조국 시에라리온을 탈출해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미국에 정착해 그곳에서 대학을 마치고 현재 국제 인권 감시 기구의 어린이 인권 분과 자문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세계 곳곳에는 수많은 이스마엘들이 아직 남아서 어른들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그리고 어느 한편에서는 그들의 전쟁을 부추기면서 자신의 이득을 챙기는 무리들이 있고.. 우리는 그렇게 채굴된 다이아몬드의 아름다움에 열광하면서 어쩌면 그 전쟁을 지속시키는데 일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책 뒷면에 이스마엘의 맑은 미소가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누가 이 아이들에게 총을 쥐어주며 사람을 죽여도 좋다고 말했는가? 이스마엘은 지금 미소 짓지만, 세계 곳곳에는 자신의 키보다 더 큰 총을 들고 총알받이로 싸우는 어린아이들이 수없이 많다고 한다. 그들도 이스마엘처럼 미소 지으면서 사람들과 다시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는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