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천원 인생 - 열심히 일해도 가난한 우리 시대의 노동일기
안수찬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전에 시간당 최저 임금을 오천원으로 인상하려다가 정부 여당의 반대로 사천 몇 백원 선으로 맞췄다는 기사를 얼핏 본 것 같다. 몇 백원 더 올려 준다고 해서 기업 하는 사람들이 크게 난리 나는 것도 아닐텐데.. 참 너무들 한다는 생각을 했다.   

최근 들어 워킹 푸어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말 그대로 일을 하기는 하는데, 여전히 가난한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가 여태 세뇌 되어온 사고 방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단어이다. 열심히 성설하게, 근면하게 일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고, 아니 최소한 큰 부자는 못되어도 자기 식구 건사할 정도는 먹고 살기 마련이라는 생각이 머리 속 깊이 박혀 있다.  

옛말에도 "소부는 재근하고 대부는 재천이라. 小富在勤 大富在天: 큰 부자는 하늘의 뜻에 달려 있고 작은 부자는 근면한 데 있다 "는 말이 있다. 또 경제가 비약적으로 성장하던 시대에 청춘을 보내셨던 우리들의 아버지 시대에는 이말이 어느 정도는 들어 맞았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니.. 더 이상 그런 말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4천원 인생은 한겨레 21 사회부 기자 4인의 위장 취업기를 담고 있다. 힘겨운 노동 조건에 신음하는 우리 사회의 취약 계층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고발하고자 기획된 대로, 4인의 기자는 각각 식당 아줌마로, 마트 임시직 사원으로, 가구 공장의 노동자로, 공장 조립 라인의 단순 노동자로 대략 한달을 시간급 4천원 남짓을 받으며 다녔다.  

어쨌는 기자라는 번듯한 직업을 가진 그들이 직접 몸으로 부딪쳐 살아낸 현실의 이야기는 결코 녹녹하지 않다. 거의 11-12 시간의 고강도 노동을 하더라도 그들이 손에 쥐는 것은 최저 생계비가 될까말까  하고, 그 돈이라도 받지 않으면 먹고 살기 막막해 지고, 달리 갈 곳도 없고 설사 가더라도 지금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 어떻게든 버티며 일한다. 일하면 할수록 몸은 더 망가지고, 생활은 쪼들리고 희망은 부서지리라는 것을 알지만, 그나마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조차 없기에 그냥 하루 하루 버텨내듯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더 나은 조건의 직장을 구하기에는 너무 나이가 많이 먹었거나, 외국인 불법 체류자의 신분이거나, 경력이 부족하거나, 필요한 만큼의 교육과 자격을 갖추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곳에 취업한 기자들이 하루만에 , 자신이 기자라서 다행이라고.. 한달만 버티면 다시 자신은 기자 본연의 임무로 돌아갈 수 있다면서 간신히 버텨 내는 삶을 그들은 벌써 수년에서 수십년째 살고 있다. 발에 물집이 잡이고 손이 굳고, 온몸이 맞은 것처럼 아프고 소음 때문에 귀가 멍멍해지고 하루 종일 마신 분진에 가슴이 막혀도.. 또 자신을 아랫사람 취급하고 무시하는 사용주나 손님으로 인해 모멸감이니 설사 느껴진다고 해도 그곳에서 일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냥 참는다. 달리 방법이 없기에..   

안타까운 일은 그런 가난이 어느 사이엔가 대물림 되는 구조로 우리 사회가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개천에서 용났다는 말처럼 지독히 가난한 부모 밑에 태어났다고 해서 그 자식까지 가난하게 살지는 않았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가난한 부모 밑에서 적절하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받지 못한 자식은 원치 않았던 자신의 부모의 삶을 그대로 답습한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원천 봉쇄되 버리는 것이다.  

 보수 좋고 안정적인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그런 자리는 4년제 대학물이라도 먹고 어느 정도 스펙을 갖춘(그러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시간과 비용이 투입되어야 하는지) 사람들에게 돌아간다.  그러니 가난한 부모 밑에서 가난하게 성장해서 자신의 계발할 기회를 별로 얻지 못한 자식들은 자신들의 부모처럼 최저 임금을 받으며 파견 용역을 전전하거나 시급 사오천원짜리 아르바이트로 연명하게 된다.  

이대로는 안된다는 것은 알겠는데.. 저자들의 말처럼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점점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의 속성상.. 정부의 개입이 없다면, 기업들은 너도 나도 더 많은 이익을 위해 사람들을 더 쥐어짜게 된다. 그래야 무한 경쟁 속에서 좀더 나은 위치를 선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다보니 그 속에 속해있는 사람의 인권이나 생존권은 언제나 뒷전으로 밀리게 된다. 너 아니어도 대체할 수 있는 인력은 많다는 의식이 어느 곳에나 팽배해 있다. 그러니.. 사람이 귀한 것이 아니고, 돈이 귀할 뿐이다.   

물론 사회 취약 계층끼리 연대해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수 밖에 없겠지만, 그들은 당장 하루하루 먹고 살기에 바쁘다. 이들 자신의 이익을 대변해 줄 사람이 없기에..이 사람들을 위한 정책은 아직 요원하다. 그런데, 저들이 꼭 나와 상관없는 존재들인가? 당장 우리 오빠만 해도.. 비정규직을 전전하고 있다.  또 누구라도 이 험악한 경쟁 사회에서 한발 삐끗하면.. (갑작스러운 가족 누군가의 질병이나 사업 실패, 실직 혹은 요즈음 많이 회자되는 하우스 푸어 같이 대출 과다)에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는 덫에 빠진 것처럼 삶의 모든 수준이 추락하게 된다. 그러니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나 자신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이런 문제의식을 갖는 자체가 문제 해결을 위한 첫 출발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나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최소한 이땅에서만이라도 미래를 위한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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