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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메리 앤 섀퍼.애니 배로스 지음, 신선해 옮김 / 이덴슬리벨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래간만에 접하는 서간체 소설이다. 어렸을 적에 읽었던 [키다리 아저씨] 생각이 났다. 한 고아 소녀가 자신을 후원해 주는 아저씨에게 계속 편지를 써서 자신의 생활을 알리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자신이 너무나 사랑하는 남자가 바로 그 아저씨였다는 뻔한(?) 이야기였지만.. 나만의 키다리 아저씨를 좀 더 크면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만들었었다.
좀 더 큰 다음에, 영어 공부한답시고 원서로 그 책을 다시 읽었을 때는 내용 자체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그렇게 솔직하면서도 재미있게 표현할 수 있는 글솜씨가 더 부러웠었다.
이 책 역시도 다양한 인물들이 서로간에 많은 편지를 주고 받는 형식이다. 건지섬이라는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있는 섬에 사는 인물들.. (건지 감자 껍질 파이 북클럽이라는 독서 클럽 회원들)과 신문에 전쟁에 관련된 가공의 인물을 소재로 한 컬럼을 게재하고 있는 줄리엣이라는 여성 작가 사이에 주고 받은 편지들.. 또 줄리엣이 자신의 지인들에게 전해주는 건지섬 주민의 이야기들로 이 책이 구성되어 있다.
책을 읽으면서 처음에는 몇 년 전에 본 영화 [제인 오스틴 북클럽]이 떠올랐다. 케이블에서 몇 번이나 봤는데.. 웃긴 건 한 번도 처음부터 끝까지 본 적은 없고 이상하게 항상 중간 부분부터 보게 되어서.. 누가 누구인지도 잘 모르지만, 그래도 영화의 느낌은 참 좋았던 작품이었다.
그 영화에서 왜 처음에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제인 오스틴의 소설들을 읽고 함께 이야기하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암튼 다양한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책을 읽고 감정을 공유하면서,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고 타인을 보다 더 넓게 이해하는 법을 배우고 또 몇 몇은 진정한 사랑을 느끼고 하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나도 영화처럼 저런 독서클럽이 있다면 가입할텐데.. 하나의 책을 읽고 한 달에 한번 만나 똑같이 읽은 한 권의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거지. 같은 책을 어떻게 다르게 읽었는지도 살펴보고, 또 공감하는 부분에서는 같이 이야기하면서 동질감도 느끼고 자신이 책에서 느끼는 바, 생각하는 바를 말로 표현하면서 스스로 마음 속으로 정리도 하고.. 암튼, 영화라서 그런 것이겠지만, 거기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은 그 독서 모임을 통해 자신의 상처와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조금씩 더 나은 사람, 더 행복한 사람으로 성장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제일 부러웠던 점은 사람끼리의 따뜻한 교류였다. 전화도 이메일도 보편화되지 않은 그곳에서 사람들은 서로 간에 편지를 주고 받으며, 또 같은 책, 혹은 다른 책을 읽으며 공감을 나눈다. 서로가 서로에게 귀중한 친구고 이웃인 사람들의 모임. 그리고 그 사람들끼리 주고 받는 편지!
줄리엣이라는 작가에게 어느 날 건지섬에서 날라온 한 통의 편지.. 건지섬에 사는 시골 청년 도시 애덤스는 우연히 자신의 손에 들어온 찰스 램의 책의 원소유자에게 그 책의 저자 찰스 램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라면서, 저자의 다른 책들을 구해 볼 수 있게 도와달라는 편지를 보내고 줄리엣과 도시 애덤스, 그리고 그가 속해 있는 건지섬의 독서 클럽인 [감자 껍질 파이 클럽] 회원들과의 편지 교류가 시작된다.
건지섬은 프랑스와 영국 사이에 있는 영국령의 작은 섬인데, 2차 대전 당시에 독일군이 주둔했었다고 한다. 거기서 아주 우연한 기회에 독서 모임이 시작되고 처음에는 그저 눈속임에 불과했지만, 점차 사람들은 모여서 책을 읽고 그 책 속에서 현실의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힘과 미래를 꿈꿀 수 있는 희망을 품게 되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엘리자베스라는 용기있고 지혜로운 한 여성이 있었다. 독서클럽을 이끌었고, 독일군에 점령되기 전에 자식을 안전한 본토로 떠나보내려는 친구를 대신해 그 아들을 격려하고 배웅하고, 적군의 점령지에서 자식을 낳는 친구를 격려하고, 독일군 장교였지만, 마음이 따뜻한 독일군 장교를 사랑해서 남의 손가락질에 굴하지 않고, 그 사람과 사랑을 이루고, 그의 딸의 낳고, 건지섬에 끌려와 노동을 강요당하다 탈출한 어린 소년을 보호하다가 발각되어 수용소에 끌려가서도 희망을 이야기하던 여성!
마침 이야기 거리를 찾던 줄리엣은 건지섬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교류하면서.. 점점 건지섬 사람들과 동화되어 간다. 그 사람들을 사랑하게 되고, 엘리자베스의 죽음에 가슴 아파하고, 그녀의 딸을 자신의 딸처럼 키우고 싶어하면서.. 맨 처음 자신을 건지섬으로 인도했던 편지의 주인공 도시 애덤스를 서서히 사랑하게 되는 모습이 참 예뻤다.
물론 전쟁으로 상처받은 사람들.. 그리고 그 상처를 용기있게 극복해 낸 사람들의 이야기라 단지 가볍지만은 않지만, 줄리엣과 도시 애덤스의 이야기는 상큼한 로맨틱 코메디 같다.
서간체 소설만이 가질 수 있는 상큼한 매력이 담뿍 담겨있어서.. 책을 읽다보니.. 나도 오래전부터 쓰지 않던 편지를 막 쓰고 싶어졌다. 그런데.. 하도 오랫동안 편지를 안 쓰다 보니 마땅하게 보낼 사람도 없어서 괜히 종이만 만지막거리다가.. 결국 용인에 있는 동생에게 이 책 이야기를 써서 편지를 보냈다. 뜬금 없는 내 편지에 당황했을 동생의 반응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