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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어렸을 때부터 숱하게 제목을 들어봐서 왠지 이미 읽은 책인 것마냥 친숙하게 여겨지지만, 실은 전혀 들춰 본 적이 없는 이 유명한 책을 드디어 다 읽었다~~ 야호~~ ^^
며칠 전에 약국에서 이 책을 읽고 있는데, 어떤 여대생이 "이 책 너무 좋죠??"라며 말을 걸어 왔다. 사실 난 재미있다기 보다 어떤 의무감.. 이 유명한 책을 끝까지 다 읽고 말겠다는 오기 같은 걸로 버티는 중이었는데, 문득 그녀의 말을 듣고 나니 나 자신이 약간 한심하게 느껴졌다. 왠지 수준 높은 문학 작품을 이해하지 못하고 허영심으로, 혹은 지식욕으로 책을 읽는 것을 스스로에게 들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책을 다 읽은 지금도 왜 이 책이 그렇게 유명한 책인지, 걸작으로 평가받는지는 잘 알지 못하겠다.
다만, 조르바라는 인물만은 상당히 매혹적이다. 책상물림인 화자에 비해, 철저한 행동파(?), 혹은 자유주의자인 조르바라는 인물은 소설 전체에서 말 그대로 살아 숨쉰다. 조르바에게는 하루 하루가 새로운 축복이다. 매일 매일이 처음 맞이하는 날인 것처럼, 모든 사물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아름답게 느끼고 생을 만끽하면서 살아간다. 그래서 그는 하루 하루를 온전히 그 자신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자연 속에서는 자연 그대로가 되는 사람, 일을 할 때는 온전히 일 자체가 되어 버리는 사람, 여자를 사랑할 때는 오직 이 세상에 그 여자밖에 없는 것처럼 자신을 완전히 던지는 사람,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사람, 말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보다, 산투리나 춤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게 더 쉽다고 느끼는 사람, 인간에 대한 연민과 예의가 살아 있는 사람.. 등등.. 화자가 느끼는 조르바는 진짜 사람 냄새 나는 사람이다.
책의 배경이 되는 그리스의 상황을 알지 못해서, 책 전체에 흐르는 그리스와 터키의 문제나, 크레타인이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정서를 의미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일제 치하에서 우리 나라 지식인들 중에서 직접 의병 활동에 뛰어들거나, 학교 등을 세워 민족 계몽 운동에 뛰어든 사람이 있었던 반면에, 시대적 상황에 대한 좌절감으로 염세주의에 빠진 사람들도 있었던 경우와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암튼, 고통받는 동족을 구하기 위해 위해 직접 전선에 뛰어든 친구에 비해 화자(아마도 카잔카키스 본인이겠지만)는 현실의 문제와 고통을 피하기 위해 책의 세계로 도피하는 인물이다. 그런 그에게 운명처럼, 혹은 기적처럼 조르바라는 인물이 다가온다. 화자는 자연스럽게 조르바와 어울리면서 무엇에나 거침없는 말투하고, 본능에 이끌리는 대로 행동하고 하루 하루 진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자유로운 조르바에게 매료된다.
아마도 카잔카스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인간형이 조르바인 모양이다. 조르바는 자연과 대립되는 인간이 아니라, 자연에 속하는 사람이다. 또한 조르바는 인간에 대한 예의와 연민이 살아 있는 사람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인생의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이면서, 또 터무니없을 만큼 감정적인 사람이기도 하다. 하나님 조차도 자기 자신보다 힘이 세고 더 관대한 존재일 거라고 생각할 만큼 단순한 사람이지만, 때때로 내뱉는 그의 말 속에는 삶의 연륜에서 빚어나오는 지혜와 솔직함이 담겨 있다.
물론 보기에 따라, 여자 뒤꽁무니나 쫓아 다니고 맘 내키는 대로 자유롭게 그러나 무책임하게 살아온 인물이겠지만, 책을 읽다보면 조르바에 대한 그런 처음의 생각은 희미해지고, 그의 매력만이 강하게 뇌리에 남게 된다.
아마도 그건, 화자와 마찬가지로 어쩔 수 없는 책상물림인 나의 본성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조르바 같은 삶을 동경할 수는 있어도 결코 그런 식으로 살 수도 없는 나약하고 소심한 사람이기에.. 직접 몸으로 부딪쳐 삶을 경험하기보다는 책이라는 매체로 남의 삶을 엿보거나, 머릿속으로만 경험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