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회귀선
헨리 밀러 지음, 김진욱 옮김 / 문학세계사 / 1991년 6월
평점 :
절판


내 이십대 후반, 나를 사로잡았던 몇 안되는 책 가운데 하나였던 북회귀선을 우연히 헌 책방에서 다시 만났다. 똑같은 표지에 갈색으로 누렇게 빛이 바랜 책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사게 되었다.  

집에 돌아와 다시 읽으면서.. 사람의 기억이라는 게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에 대해 절감했다. 북회귀선 하면 나에게 떠오르는 이미지는 파리 뒷골목, 사창가등을 전전하며 거지처럼 살던 한 사람.(아마도 헨리 밀러 자신이겠지)의 이야기라는 것 정도가 전부다.  

그래서인지 꼭 처음  읽는 것 같다. 

며칠에 걸쳐서 겨우 다 읽었다. 몇 몇 부분은 뒤집어질만큼 웃기기도 하고 또 몇몇 표현들에 대해서는 그럴 법하다고 공감하기도 하지만,  왜 내가 이십대 후반일 때, 이 책에 그렇게 열광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무엇에 반했던 것일까? 

세척기에다 큰 볼일을 본 불쌍한 인도인 에피소드?? 혹은 아직 아무런 작품도 쓰지 않았지만, 기성 작가들을 발 아래로 내려다보는 그의 친구 이야기?? 매혹의 도시 파리에서 운수 나쁘게 드센 프랑스 여자에게 발목 잡혀있다 헨리 밀러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탈출하는 그의 친구 이야기?? 도대체 어디까지가 실제 이야기이고 어디까지가 작가가 상상으로 창조한 인물들인지 구별할 수 없게 만드는 그의 솜씨?? 단 한가지의 사물에서 번뜩이면서 사방으로 튀는 헨리 밀러의 자유로운 상상?? 성에 관한, 그리고 보통은 점잔 빼기 마련인 인간의 자연스러운 생리 현상에 대한 적나라한 표현들??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무엇이었을까??  책을 다 읽은 지금도 그건 잘 모르겠다. 책을 읽으면서 공감하는 부분만큼이나, 저자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감 조차도 잡지 못하는 대목도 많았기에, 책을 제대로 읽기는 한건지도 확신이 없다.  

그럼에도.. 나는 이 작가가 좋다. 사람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 한 두마디로 어떤 사람의 본질을 표현해 내는 그의 어투가 좋다. 도덕적으로는 납득하기 힘들지만, 자유롭게 여러 음식을 맛보듯 여자와 관계를 하고 사람을 사귀는 그의 태도나, 자신의 자유를 위해 거친 삶(?? 글쎄, 거친 삶이라기보다는 비루한 삶이란 표현이 더 맞을 것도 같다. 지인들에게 빌붙어 끼니와 주거를 해결하는 경우가 태반이니까..)을 감수하는 모습까지 매력적으로 보인다.  

나라면 절대로 그런 삶을 선택하지도, 살아내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에 더 대단하게 보이는 것일 거다. 충분히 재능이 있음에도, 또 원한다면 다른 삶, 보통 사람들의 안락한 삶을 살 수도 있었음에도, 헨리 밀러는  자신의 자유로운 상상과 거침 없는, 그러나 가난하고 구질구질한 삶을 살아간다.  

예전에 읽었던 조지오웰의 [파리와 런던의 영락 생활]이란 책이 떠오른다. 잘 기억 나지는 않지만, 그 책에서도 조지 오웰이 파리와 런던에서 헨리 밀러처럼 가난하게, 어쩌면 더 가난하게 무료 급식소와 부랑자 숙박 시설 같은 곳을 전전하는 이야기였는데, 결국 조지오웰은 드디어 그 생활을 벗어나는 것으로 되어 있었던 것 같다.   

스스로 원해서 거지처럼 사는 사람과 그냥 거지와의 차이는 뭘까?? 

책을 다 읽고 나서 뒤에 해설을 보니, 1차 세계 대전이라는 미증유의 사건을 겪은 그 시대 유럽인들은 다들 혼란스러워했다는 설명이 나온다. 전쟁이라는 사건 속에 표출된 인간의 무자비한 폭력성과 잔인함, 광기 등등.. 그걸 이해하고 재발을 막기 위해 노력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는 반면, 헨리 밀러는 바깥 세상의 온갖 혼란에 반해 자신의 내면의 사유의 세계로 눈을 돌림으로써 그 시기를 살아내었다는 표현이 나왔다..  

그런 것이었나?? 

암튼, 나를 경탄케 하는 것은 자신이 원하는 바 그대로 살 수 있는 용기와 배짱이다. 타인의 시선이 나 평가에 연연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가치 기준에 따라 살아가는 힘.. 그건 그의 자신감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삶과 생각들을 글로 옮겨 낼 수 있는 능력!! 그것 역시도 경탄스럽다. 어쩌다 한번 편지를 쓸 때도 처음 인사말부터 수없이 썼다 지웠다는 반복하는 나와 같은 사람에게.. 머리속에서 벌어지는 숱한 단상들을 놓치지않고 글로 옮기는 그의 능력(?? 헨리 밀러가 실제로 이렇게 글을 썼는지 어쨌는지는 모르지만, 북회귀선을 읽으면서 내가 받은 느낌은 그랬다... )은 정말 대단하게 보였다. 물론 그의 삶의 방식이나 가치관에 대해 동의할 수는 없지만, 조금 이해할 수는 있을 것도 같다.  그의 다른 책들도 읽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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