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5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읽다 보면 어떤 책은  저자가 정확하게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어떤 의도를 갖고 그렇게 표현한 건지 잘 파악이 되지 않는 경우가 있는 반면, 또 어떤 저자의 글은 힘들이지 않아도 금새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공감이 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책 자체가 다루고자 하는 주제의 무게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저자의 필력에 따라 책 읽기의 난이도가 좌우되곤 한다.(또 외국 작가의 경우에는 번역도 한 몫을 하지 싶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쉽게 읽히는 작가가 반드시 훌륭하고 어렵게 읽히는 작가가 재능이 부족하다거나, 혹은 그 반대라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는 저자의 생각의 흔적을 쉽게 더듬을 수 있는 작가를 선호하는 편이다.  

그런 면에서 알랭 드 보통은 내게 선호할만한 작가이다.  

그의 다른 책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를 읽으면서, 남녀가 서로 사랑에 빠지는 이유, 그 지극히 개인적인 선망과 취향에 대해, 마음의 수없는 흔들림과 욕구와 이기심과 집착에 대해 그럴 듯하게 설명해 놓아서.. (물론 누군가를 사랑할 때 주인공처럼 쓸데 없이 너무 생각만 많으면 피곤하겠다는 생각도 들긴 했지만)  참 재미있고 기발하다고 느꼈었다. 다 읽은 다음 책 뒷편에서 그 책을 썼을 때 저자의 나이가 20대 중반에 불과했다는 걸 알고 약간의 질투와 부러움과 수치심(그보다 거의 십여년을 넘게 더 산 내가 그의 철학적 사유에 감탄한다는 게 좀 한심스럽게 느껴졌었다)을 느끼기도 했었다.   

그래서 난 약간의 설렘과 기대감 같은 것을 가지고 이번에 산 책 [불안]을 읽어나갔다. 솔직히 어떤 저자에 대한 기대 때문에 책을 다시 사게 되는 건, 특히 문학과 관련된 분야의 책을 사게 되는 건 밀란 쿤데라 이후로 참 오래간만이다. 그런데 읽다보니 이 책을 문학작품이라고 분류하긴 좀 힘들 듯 하다.  오히려 현대인의 불안 심리를 철학적으로 사유하는 글에 가깝다.  

 인간은 누구나 높은 지위를 갈망한다. 왜 그럴까?  

사랑이란  일종의 존중이라고. 특히 한 사람이 다른 존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라고 정의해 볼 때, 높은 지위에 있을수록 더 받은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우리가 높은 지위에 목을 매는 이유라고 저자는 말한다.  

다른 사람에게서 존중받지 못한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타인이라는 거울을 통해 자신의 나쁜 모습을 끊임없이 인식하는 과정이다. 저자의 말처럼, 자기 자신에 대한 평가 조차도 늘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가에 따라, 하루에도 수십번 뒤바뀔 수 있는 존재가 인간이다.  타인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나 자신을 내가 어떻게 평가하고 인식하는가가 좌우되기에, 늘 타인의 반응과 평가에 전전긍긍하게 된다.  

그럼 특히 현대인은 왜 불안한가?  

과거 사람들의 지위는 대개 타고난 신분에 의해 결정되어 졌다. 그러므로,  고귀한 신분으로 태어난 사람들은 고귀한 대로, 또 천한 신분으로 태어난 사람들은 천한 대로 각자 주어진 환경과 여건에 맞게 생활했으므로, 특별히 불안을 느낄 이유가 없었다. 즉, 나의 위치란 나 자신과 무관하게 출생과 더불어 주워지는 것이기에, 그것에 대해 내가 책임질 이유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가 정착됨에 따라, 언제부터인가 성공 신화가 만들어 졌다. 개인의 노력과 재능 여하에 따라 누구든지 성공할 수 있다는 신화가 만들어 진 것이다. 과거에는 한정된 곳에서 한정된 일을 하면서 늘 보던 사람만을 접하면서 살았기에, 특별히 성공이니, 실패니 하는 것에 연연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에 접어 들면서 누군가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특출난 성공을 한다. 그 특출난 성공이 바로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열등감의 원천이 되는 것이다. 저 사람은 저렇게 성공했는데, 나는 왜??  이렇게 어느 사이엔가 성공과 실패의 근원이 과거처럼 타고난 신분이 아니라 개인의 능력 탓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모든 사람이 갈망하는 성공과 높은 지위는 한정되어 있고, 당연히 그것은 소수의 몫이다. 그런데 우리 시대에는 모든 사람이 노력만 하면, 그걸 얻을 수 있다는 사탕발림이 계속되고 있고, 높은 지위에 이미 오른 사람은 오른대로, 치고 올라오는 다른 누군가에 의해 언제나 자신의 지위를 잃어버릴 수 있기에, 또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은 존중받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할 거라는 걱정 때문에 불안할 수 밖에 없다는 거다.  

그런 면에서 현대 사회는 물질은 풍요로워 졌는지 몰라도, 내면적으로는 참 불행한 세대란 생각도 해 보게 된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나와 똑같이 불안하고 나와 똑같이 사랑받기를 갈망하는 내 옆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는 마음이 필요한데, 그렇게 마음을 활짝 열려니, 늘 거절당하거나 상처 받는 게 아직도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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