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 뜨면 세수하고 밥 찾아 먹고 서둘러 출근해서 미친 듯이 일한다.. 그러다 보면 점심 시간이고 그 때 인터넷 서핑을 하다, 책 몇 장 넘기다 보면 다시 환자들이 몰려드는 시간... 다시 기계처럼 일하다 보면 하루 해가 저문다. 이렇게 살아온 지가.. 참 오래 되었다.  

아무 생각 없이 산다. 장기하의 노래 중에 [별 일 없이 산다]는 게 있었다. 처음 들을 때 참 신선한 충격이었다. 현재의 내 모습이 그들의 노래와 겹쳐 보였으니까.  그런데, 88세대, 현재의 기성 세대에 편입되지 못한 경계역의 젊은이의 방황과 슬픔과 소외를 노래한다는 평을 받는 장기하의 노래들이 기성 세대에 완전 편입된 (?) 40대에 막 접어드는 나의 정서와 같음을 느끼는 게 정상적인 걸까?? 

난 예전에 한 사십이 되면 인생에서 어려운 일은 없을 줄 알았다. 삶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모든 게 다 술술 풀릴 줄 알았다. 어떤 면에서는 인생의 절정을 지나 원숙미를 풍기게 될 줄 알았는데, 막상 그 나이가 되어 보니.. 여전히  서툴고 모든 게 어렵다.  

서툰 것에 대해, 어려운 것에 대해 둔감해지는 법은 배웠다. 그래서 남들 앞에서 티 나지는 않는데, 혼자 고요히 있다보면, 스스로 나는 무얼하면서 사는 건지, 난 왜 이런 모습인지 의아할 때가 있다. 말로는 혼자 조용히 책 보는 걸 좋아한다고 말하면서도 때로는 내가 진짜 책 읽는 것을 좋아해서 책을 읽는지 진짜 나 자신의 내면과 대면하는 걸 두려워하기 때문에 책을 읽는 건지 헷갈릴 때가 있다.  

조용히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의 갈피들을 따라 떠오르는 생각들과 느낌에 귀를 기울여 보았을 때, 너무도 보잘 것 없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까 두려워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진짜 나자신과 대면할 용기가 없기에, 가급적 다른 많은 일들을 만들고 꾸민다.  

책을 읽거나 인터넷 서핑을 하거나 텔레비젼을 보거나, 뜨게질을 하면서.. 스스로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사실은 중요한 일이 아니라,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는 스스로의 위안을 만드는 건 아닌지?? 

요즈음 내가 읽는 자기 계발 서적들은 하나같이 자신이 진짜 원하는 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느끼라고 한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자신만의 문제에 골몰해 있기에 다른 사람의 내면의 진심을 알아차릴 만큼 타인에게 깊은 애정과 관심이 없고 그러므로 그 사람 자신이 자신에 대해 느끼는 그 판단 그대로를 대부분 수용한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나 밝은 사람, 자신감 있어 보이는 사람, 따뜻하고 여유 있는 사람 (실제의 그의 모습이 그런지 아닌지는 별로 관심이 없다. 다만, 우리가 접하는 동안 그렇게 보이기만 하면 된다 )을 선호하게 된다고 한다.  또 생각의 힘이란 게 너무 절대적이여서 우리 누구도 자신의 생각 이상의 사람이 될 수는 없다고 한다. 구구절절 맞는 소리다.  

그런데, 진짜 중요한 문제는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 만큼 자신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게 아닐까??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몰라도 난 그렇다. 하루 하루 문제 없이 살고는 있는데, 물론 더 나은 모습의 사람으로 발전하면서 살고도 싶은데, 어디로 향해야 할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 여전히 알지 못한다고 느낀다.   

그래서 삶은 여전히 막막하고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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