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이레 / 2004년 11월
평점 :
절판


책 읽어 주는 남자??  

예전에 [밑줄 긋는 남자]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었다. 혹시 비슷한 내용일까??  

아케데미에서 케이트 윈슬렛이 이 작품으로 여우 주연상을 탔다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었다. 영화 소개 프로에서 잠깐 주인공 여자가 나치 전범으로 재판받는 장면을 본 적도 있어서 호기심이 동했다.  

일단 재미 있었다. 물론 책을 읽으면서 한나가 숨기고자 하는 것이 문맹일거라는 것은 쉽게 상상이 갔다. 그래서 스포일러에 의해 반전 내용이 공개되어 버린 영화를 그냥 편안하게, 다 아는 내용을 확인하듯 책을 읽어 나갔다. 물론 성에 처음 눈 뜨는 소년과 성숙한, 아름다운, 묘하게 매력적인 한나에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빠져들면서도 그녀와 거리를 두려고 하는 소년의  마음에 대한 묘사가 충분히 공감이 되었기에 순식간에 책에 빠져들어갔다.   

그러다가 마지막 대목에 이르러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 죄책감에 대해, 수치심에 대해, 자존감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한나에게는 차라리 감옥에서 수십년을 보내게 되더라도 자신이 문맹이라는 것을 숨기는 게 자존감을 위해 더 중요한 듯 했다.   

한나는  왜 자신이 보고서를 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지 않았을까??  

 나치 독일 시절 스스로 집단 광기에 휘달렸던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중, 스스로 죄가 없다고 단언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수용소에서 유태인을 학살했던 사람들 개개인이 악해서가 아니라, 그 시대, 그 환경, 그 분위기가 그들의 이성, 인간으로서의 동질감을 마비시켰기에 다른 사람들이 생각없이 하는 행동을 그들도 할 뿐이었는데, .. 그래도 그런 시대가 지난 뒤에 누군가는 그 학살과 광기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때가 온다.  

시대와 환경이 암묵적으로 동의했던 일이지만 그 시대가 지난 후 사람들은 마치 잠에서, 혹은 최면에서 깨어난 것처럼 비인륜적 범죄 행위에 대해 누군가에게 책임과 비난의 화살을  뒤집어 씌움으로써 법망과 자신의 양심으로부터 면죄부를 받는 일이 종종 있다.  

법정에서 한나는 문맹이라는 자신의 치부를 숨기고자 하는 욕망에서 때문에 빚어지는 어리석은 말과 행위들, 또는 진실을 밝히려는 말들이 꼬투리가 되어 시대의 광기에 타인의 생사를 마음대로 주무르는 잔인한 나치 앞잡이로 매도되어 종신형을 선언 받는다.  

주인공인 나만이 한나의 진실을 안다. 한나는 단지 문맹임을 감추기 위해 나치에 가입했고 그러다가 범죄의 동조자가 되었을 뿐이고 유대인들을 책을 읽어주는 도구로 사용했을 뿐이라는 말을 해서 한나의 죄를 덜어주어야 할지 아니면 한나의 선택을 존중해서 한나의 수치를 감춰 주어야 하는 건지 나는 고민을 하지만, 결국  모르는 척 방조자가 되어 한나를 외면한다..    

소년 시절 수영장에서 친구들과 함깨 있을 때 그녀를 외면한 이후 두번째의 외면이었다. 나는 죄책감에 시달리지만, 그런대로 내 삶을 잘 살고 있다.  

다시 십년의 세월이 흐른 다음부터 나는 한나를 위해 녹음을 하기 시작한다. 한나가 읽을 만한 책들.. 그녀를 위해 소년 시절에  떨리는 가슴으로 했던 그 일을 다시 하고 그녀가 있는 감옥으로 그 녹음 테잎들을 보내기 시작한다.. 

또 많은 시간이 흐른 다음 그녀에게서 편지가 온다. 나는 계속 책 낭독 테잎만 보낸고 답장은 하지 않는다.  

한나가 종신형에서 감형되어 풀려나기 전 나는 교도소장의 요청으로 한나를 방문한다. 수십년의 세월이 지난 다음 한나와의 어색하고도 서먹한 해후! 나는 한나가 다시 세상으로 나와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여러가지 준비를 하지만, 출감 하는 날 한나는 목을 매고 자살한다.  

교도소장의 안내로 찾아간 한나의 감방안, 낯익은 사진..  

이어지는 교도소장의 설명.. 한나는 계속 나의 편지를 기다렸었다!! 그리고 내가 녹음해준 책들을 빌려와 그 책과 내 테이프를 교재로 읽고 쓰는 법을 익혔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한나에게 나는 그저 책 읽어주는 어린 애인? 노리개? 나는 그녀의 불행에 어느 정도 책임을 느끼는 가해자?? 나에게 한나는 성을 가르쳐준 성숙한 여인.. 그러나 반인륜적 범죄자.. 내가 외면해 버린 불쌍한 여인??  

이런 식으로 규정되어졌던 관계가 마지막 그 대목으로 인해 평생에 단 한번의 사랑일 수도 있겠다로 바뀌어 버렸다. 사람이란 존재 자체가 어리석어서 자신의 현재의 안온한 삶을 지키기 위해, 타인의 시선에서 자신의 삶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삶에서 어쩌면 단 한번의 사랑마저도 제대로 알지도 못한채 지나가버릴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사랑에 대해, 사람에 대해, 수치에 대해, 죄책감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