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에리히 프롬 지음, 라이너 풍크 엮음, 장혜경 옮김 / 김영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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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에리히 프롬

현대 산업 사회, 특히 소비 사회에서 인간은 과연 자유로운가? 자신의 삶을 사랑할 능력을 여전히 가지고 있는가?

에리히 프롬이 이 책에서 일관되게 고민한 문제이다.

사랑에는 성장에 대한 갈망과 노력도 포함된다.

우리가 삶을 사랑한다면 삶의 과정이, 다시 말해서 변하고 성장하고 발전하고, 더 자각하며 깨어나는 과정이 그 어떤 성과보다 중요하다.

그런데 왜 갈수록 삶을 사랑하기 힘들어지는가?

프롬에 따르면, 첫번째는 과정보다 결과를 중요시하는 문화, 두번째는 점점 늘어가는 사물에 대한 채워지지 않는 욕심, 마지막으로 행동의 관료화 (최대의 경제성을 목표로 개인을 집단 구성원의 형식에 맞추려 하다 보니 스스로 온전한 자기 자신의 생명력을 발휘하기 힘들어짐) 등이 원인이 될 수 있다.

삶은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다.

"사랑은 행동, 소유, 사용이 아니라, 존재에 만족하는 능력이다. 진정한 사랑에는 타인과의 연관성과 자신의 온전함이 보존된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능력을 점차 상실해 가고 있다.

자본주의 생산 시스템 때문에 인간은 불안과 소외감을 느낀다.

오늘날의 인간은 소비하는 인간이다. 즉 인간이 완전한 소비자가 되기 시작했다. 이 새로운 유형의 인간은 내면의 공허, 내면의 불안을 강박적 소비를 통해 치유한다.

불안할수록 더 많이 소비하고, 더 많이 소비할수록 더 불안해지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마음 속 깊은 곳에 깃들어 있는 불안과 공포를 맞닥뜨리지 않기 위해 미친 듯이 일하고, 소비한다. 그러나 속으로는 깊은 무력감을 느낀다.

그러한 상태에서는 진정한 삶에 대한 사랑은 느끼기는 어렵다.

소외된 인간이 아니라, 창의적인 인간, 죽음에 이끌리는 사람이 아니라, 삶을 사랑하고 변화하고 성장하는 인간, 창의적인 인간, 활동적인 인간으로 거듭 나야 한다.

프롬에 따르면 창의성이란 보고 (혹은 의식적으로 인지하고) 대답하는 능력이다. 예를 들자면 장미꽃을 보고 , 저건 장미라고 인식하는 태도가 아니라, 온몸으로 생각하고 가슴으로 느끼는 능력, 눈을 감고도 내가 본 장미의 모든 것을 떠올릴 수 있을 만큼 인식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창의성을 위한 전제 조건은 감탄하는 능력이다. 프랑스 수학자 레몽 푸엥카레는 과학의 천재성이란 놀라는 능력이다라고 말했다. 학문의 수많은 발견이 이런 식으로 시작되었다.

창의성을 위한 두번째 조건은 집중력이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하면서 이미 다음 일을, 지금 하는 일을 끝마칠 수 있는 순간을 생각하다. 여러 활동을 동시에 하지만, 결국 어떤 일도 제대로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대부분 과거나 미래에 산다. 그러나, 실제 경험으로서의 과거나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여기만이 존재한다.

이 책 전체에서 가장 마음에 와 닿은 구절이다.

과거와 미래는 내 의식 속에서 존재할 뿐, 내가 경험하는 매 순간은 오직 현재일 뿐이다. 현재에 집중할 것, 온전하게 이 시간을 느끼고 경험하는 것이 어쩌면 삶을 사랑하기 위한 첫번째 조건일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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