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이여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 시대의 격랑을 헤쳐나간 젊은 영혼들의 기록
황광우 지음 / 창비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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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풍성한 한가위 보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야속한 비가 내려 피해를 입은 이들이 많습니다. 때문에 마냥 즐거울 수만은 없었던 연휴였습니다. 지금도 피해 복구에 구슬땀을 흘리고 계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한동안 책을 읽지 못했습니다. 남들이 말하는 슬럼프도 아니고, 그렇다고 재미있는 책이 없었던 것도 아닌데, 그냥 무기력하게 책을 읽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게으름이 이제 거의 불치의 단계로 들어선 것일까요.

 

이 책은 한가위 전까지 계속 제 맘을 흔들고, 또 아프게 했던 책입니다. 저자에 대한 간략한 배경은 알고 있었지만, 책을 통해 저자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더욱 더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역대 대통령 중 최초로 아침 토크쇼에 출연해 눈물을 흘렸다고 하더군요. 물론 저는 그 시간에 잠을 잤는지, 아님 무슨 짓을 했던 간에 시청하지 않았습니다. 얼핏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지만, 절대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프로를 본 벗들이 이야기 해주더군요. 눈물을 흘렸다고. 대통령이 모친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말이죠. 그리곤 그렇게 말했다죠. 모친이 돌아가시기 전 “정직하게 살라”는 유언을 남기셨다고요.

 

자칫 감동스러운 장면일수도 있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전 하나도 감동스럽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대통령의 모친이 안쓰럽게 느껴질 따름이었습니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대통령이 얼마나 정직하지 못했기에 마지막 순간까지 그런 걱정을 하셔야 했을까요.

 

우리 사회는 매우 위험한 사회입니다. 어떤 의미냐고요? 고통도 기쁨도 슬픔도 눈물도 저마다 살아가는 위치, 즉 계급에 따라 다르게 느낍니다. 이건 또 무슨 말이냐고요? 하루에 우리나라에서 자살하는 이들은 6명에 가깝다고 합니다. 매일 6명 이상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입니다. 그 어떤 이유든 이는 정상이 아닙니다. 가난이 원인이든, 개인적인 고통이 원인이든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던 이들의 심정을 헤아릴 수도 없으면서 자살은 범죄라고 비난하는 것도 우스운 일입니다.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과 같은 정글 자본주의에서 개인적 고통의 근원은 무엇이었을까요. 아마 대부분 돈과 관련된 것일 테죠. 취직, 가정형편, 결혼, 부모 부양, 자식 양육 문제 등. 아니라고 자신할 수 없습니다. 그렇죠. 세상은 이렇게 되어버렸죠.

 

그런데 그게 계급적 문제와 무슨 상관이냐고요? 그리고 왜 다르게 느끼냐고요? 스스로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내 일이 아니고 남의 일에 우리가 언제부터 관심을 끊기 시작했는지 말이죠. 우리는 어느새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루에 6명이라는 엄청난 수에도 무감각합니다.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생각이 뼛속까지 깊게 새겨졌습니다.

 

살인마도 이렇게 무서운 살인마가 있을까요. 하루에 6명씩 매일 생명을 빼앗는 공포의 살인마. 그 살인마가 판치는 세상에 살아가는 우리는 과연 무죄일까요. 자신보다 못 사는 사람. 자신보다 좁은 아파트 평수를 가진 사람. 자신처럼 든든한 빽을 가진 부모가 없는 사람. 자신보다 비싸지 않은 차를 가지고 있는 사람. 과연 그들은 자신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삶과 죽음에 대해 얼마나 생각하고 살까요.

 

그래서 이명박 대통령의 눈물이 가증스러웠습니다. 지금 이 땅에 대통령의 아집과 독단과 무지로 인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지, 그는 알고 있을까요. 그가 과연 온 국민이 시청하는 TV에 나와 눈물을 흘릴 자격이 있을까요. 전 자신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염치와 양심이라는 것이 있다면 말이죠.

 

또한 지금 우리 사회에 민주화를 위해 모든 것을 던졌던 이들을 생각했습니다. 저자와 같은 치열한 삶을 살았던 이들. 가증스러운 폭력과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결코 뜻을 굽히지 않고 독재와 싸웠던 이들. 그들과 국민들이 함께 만들어온 지금 이 시대를 하나하나 다시금 뒤로 돌리고 있는 집단에 대한 분노. 그 분노로 인해 대통령의 눈물이 가소롭게 보였던 것입니다.

 

흔히 노무현 대통령으로 상징되는 386세대에 대한 비판이 많습니다. 공부는 안하고 매일 데모만 하던 것들이 정권을 잡았으니 나라가 이 모양이 됐다고요. 노무현 대통령이 과연 386의 상징으로 인식되어도 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지금을 볼까요. 과연 공부는 안하고 매일 장사만 하던 이가 정권을 잡은 지금은 태평성세인가요.

 

전 묻어가는 이들을 증오합니다. 힘없고, 빽 없기에 오로지 모나지 않게 중간만 가라는 부모님들의 말씀. 튀지 말고 맨 앞도 맨 뒤도 아닌 중간에 서있으라는 말씀을 존중합니다. 옳기 때문이 아니라 지난 삶을 통해 그분들이 절절히 느낀 것이기에 존중합니다.

 

하지만 기회주의에 가득 차 다른 이들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 놓은 소중한 열매를 슬쩍 같이 따먹으려는 인간들은 증오합니다. 보신의 수준이 아닌 이들의 모습은 가증스럽습니다. 386세대 전부를 매도하는 이들도 가증스럽습니다. 그들의 과오가 분명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만들어 놓은 지금 이 시대의 열매를 나몰라라 슬쩍 향유하는 것도 보기 싫습니다.

 

적어도 그들의 희생과 헌신에 대해 기억은 해야 하지 않을까요. 얼마 전 인터넷은 용광로 청년 노동자의 이야기로 떠들썩했습니다. 물론 사람들은 곧 잊겠지요. 하지만 청년 노동자가 그 뜨거운 용광로에 떨어져 삶을 마쳤다는 사실은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같은 시기에 아버지가 장관이라는 이유로 특채로 외교부에 치직하려 했던 젊은이도 기억될 것입니다.

 

이미 우리 사회는 조선시대보다 더 지독한 계급사회가 되어버렸음을, 그리고 그러한 지독한 차별의 시스템을 만든 이들이 어떤 이들이었는지, 분명히 기억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래야 합니다.

 

새로운 진보담론이 필요하다는 말들이 많습니다. 민주당을 진보정당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생길만큼 현실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 과연 새로운 진보, 서민들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진보는 무엇이어야 하는지 고민합니다.

 

전 그 시작으로 선배들의 치열했던, 친구들의 눈물겨웠던 투쟁의 시간들을 먼저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지금 젊은 세대들이 그 때를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기억하지 않으려 해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 우리가 어떻게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면 미래도 무의미할 것입니다.

 

눈물겨운, 그러나 단 한 번의 후회 없이 고난을 스스로 벗 삼아 싸웠던 많은 이들에게 다시 한 번 경의와 감사를 드립니다. 당신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이 빌어먹을 세상은 더 지옥이 되었을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어둠은 간다. 그런데 역사의 새벽은 자연의 새벽과 달리 그것을 호명하는 이에게 온다. “타는 목마름으로” 호명하는 이들 말이다.

어둠이 가고 새 날이 시작되는 것이 대자연의 순리이다. 하지만 인간의 역사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갈 것인지 예측하는 문제 앞에서만큼은 겸허하자. 인간 역사의 풍부한 생명력을 누구의 머리로 재단할 수 있단 말이냐?

말할 수 있는 것은 흘러온 과거에 대해서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살자고 맹세한 우리들이었지만, 청춘의 뜨거웠던 약속은 식어가고 있다. 더러는 자식들 키우느라 애태우며 사는 그야말로 평범한 소시민이 되어 있기도 하고, 더러는 사랑하고 결혼하는 일마저 놓치고 지금은 풀벌레 소리 들리는 곳에서 인생의 뒤안길을 쓸쓸하게 보내는 벗들도 있다.

박기순, 윤상원, 박종철, 이한열……역사가 너무 사랑하여 일찍 데려간 넋들도 있고, 아직도 역사의 수레바퀴를 미느라 수고하는 이들이 있다.

…이야기는 여기서 마감하자. 그리고 이제 다시는 어머님께 효도할 수 없는 박종철 열사에게 꽃 한 송이를 바치자. 그의 앞뒤로 수많은 청춘들이 산화해 갔지만, 그의 죽음은 한반도를 뒤흔든 역사적 사건의 불꽃이었다.

“무릎 꿇고 사느니보다 서서 죽길 원한단다, 우리들은 정의파다”

그렇게 우리는 살았다. “전두환은 해볼 수 있어도 미국은 이기지 못한다”는 장인어른의 말씀이 지금도 생생하다. 전두환의 퇴진은 사실상 미국의 굴복이었다. 박종철은 갔지만 그의 이름은 영원할 것이다. 우리 민중의 가슴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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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의 정치학
손민정 지음 / 음악세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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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가수 태진아의 〈옥경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미국 이민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태진아가 처음 선보인 재기곡이었죠. 그 노래가 한창 유행할 때 저는 초등학생이었습니다. 당시 박남정과 소방차 등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습니다만, 전 이상하게 이 노래가 좋았습니다. 그래서 학교 행사를 맞아 버스를 타고 놀러 갈 때면, 전 자의 반 타의 반 버스 앞에 나와 율동을 곁들여 이 노래를 부르곤 했답니다. 나이도 어린놈이 감히 트로트를 뭘 안다고 말이죠.

 

그렇습니다. 제가 로큰롤을 좋아하고 헤비메틀에 열광한 ‘락앤롤 정키’였지만, 트로트 역시 즐겨 부르던 장르 중 하나였다는 말이죠. 수많은 명곡들이 있지만, 전 나훈아, 조용필 등을 좋아했고, 옛 노래들. 그러니까 김정구 선생님이나 현인 선생님의 노래들도 좋아했습니다. 완전 애 늙은이였죠?

 

신형원 님의 ‘서울에서 평양까지’는 특히 좋아했던 노래입니다. 가사도 정말 예술이었고, 멜로디 역시 흥겨우면서도 왠지 비장함이 묻어있었습니다. 분단된 이 땅을 마음껏 돌아보고픈 마음이 절실히 담겨있는 노래입니다.

 

책은 흔히 우리가 ‘뽕짝’이라고 폄하하는 트로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일제시대 이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트로트가 어떻게 발전해왔고, 트로트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지, 특히 서민들에게 트로트는 무엇이었는지 친절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음악인류학을 공부하는 분입니다. 때문에 어설픈 가치 판단이나 독단적 규정이 낄 자리가 없습니다. 가장 큰 미덕이자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흔히 사람들은 트로트를 일본 엔카의 아류쯤으로 여기곤 합니다. 하지만, 책을 통해 분명 트로트는 우리만의 정서를 가지고 있는 우리의 음악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비록 엔카의 특징과 겹치는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그렇다해도 우리는 그저 엔카를 흉내낸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음악으로 다시 만들어낸 것이죠. 아울러 엔카의 유래 역시 따지고 보면 우리와 그리 관계는 없어 보입니다. 트로트는 우리의 음악이라고 자부해도 될 듯합니다.

 

가요무대, 전국노래자랑 같은 장수한 프로들을 보면 여지없이 트로트가 등장합니다. 아울러 어느 정도 나이를 먹었다고 스스로 느끼게 된 이들은 트로트 한 두 곡쯤은 레퍼토리에 반드시 들어갑니다. 술에 적당히 취해 사람들과 쳐들어간 노래방에서 역시나 흥을 돋우는 것은 신나는 트로트 한 자락입니다. 사람들은 노래에 취하고 눈물에 취합니다.

 

우리네 서민들과 함께 해 온 트로트. 가난과 설움의 시절을 함께 해 온 트로트. 전 그런 트로트를 한 번도 폄하한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역시 저도 별수 없었나요. 트로트가 한 물 간 장르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건방지죠. 사실 트로트는 단 한 번도 우리 곁을 떠난 적이 없었는데요. 책을 읽다 인상적인 문장들이 여럿 나왔습니다. “트로트는 흘러간 노래가 아니라 함께 흘러온 노래”라는 이야기. 그런 것 같습니다. 선술집이나 포장마차에서 슬그머니 취한 어느 나그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트로트 한 가락. 그 속에는 그이의 지나온 팍팍했던 삶이 묻어나옵니다.

 

저자는 수많은 현장 연구를 통해 글을 튼실하게 만들어나갔습니다. 많은 트로트 음악 종사자들을 만나고, 트로트에 여전히 애정을 가지고 있는 많은 팬들을 만납니다. 그 중 한 무명 트로트 가수의 이야기가 감동적입니다. 왜 트로트 가수는 ‘반짝이’ 옷을 입고 나와야만 하는가에 대한 대답이었습니다.

 

“반짝이 의상을 입지 않으면 안 되나요?”

 

“이런 의상은 내가 좋고 싫은 것과는 상관없어. 트로트에 대한 일종의 예의라고 할 수 있지. 티셔츠나 청바지를 입고 무대에 서는 것은 어르신들에 대한 예의가 아냐. 적어도 당신들을 위해 이렇게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트로트 가수의 기본자세라 할 수 있지.”

 

책을 통해 많은 사실들도 알게 됐습니다. 하춘화와 주현미가 얼마나 일찍 데뷔를 했는지, 전설적인 가수 배호는 왜 그리 인기가 있었는지, 조용필의 존재감은 어떤 것인지, 남진과 나훈아는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모두 흥미로운 것들이었습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남대문 시장 좌판에서, 시골 장터에 한 복판 엿장수의 흥겨운 무대에서, 우리는 트로트를 만날 수 있습니다. 힘들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모든 우리 이웃들에게 오랫동안 힘이 되어준 트로트. 걸그룹이 대세를 장악하고, 몸짱 가수들이 노래를 부르는지, 몸자랑을 하는지 모르는 이 시대에서도, 트로트는 반드시 살아남으리라 믿습니다. 아니 더더욱 그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못 믿겠다고요?

 

“오빠 한 번 믿어봐~!!^^”

 

음악은 한 개인의 예술 작품이기도 하지만, 여러 사람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문화 현상이기도 하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음악은 많지만 우리에게 의미 있는 음악으로 남는 것은 한정적이며, 그 의미는 타인이 아닌 우리 스스로 만들어간다. 우리가 살아가며 음악에 부여하는 의미와 가치는 다음 아닌 힘없는 ‘우리가’ 만든다는 것이다.

 

미국의 컨트리 뮤직, 일본의 엔카, 터키의 아라베스크, 이스라엘의 무지카 미즈라히 등 다양한 서민의 노래에는 의미심장한 철학적 의미와 아름다움이 있으며, 그것은 바로 노래와 그 노래를 사랑한 사람들의 치열한 투쟁이 뒤엉켜 형성된 것이다. 서민은 일상적인 노래를 통해 세상을 읽으려 하고 이해하려 하며, 계속해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해나간다. 그래서 서민의 음악은 사람들에게 느낌뿐만이 아니라 생각하게도 만든다. 가슴속에 파고드는 감동이라는 것은 느낌과 생각 그 어떤 것 하나라도 홀대하게 된다면 존재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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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아름다운 당신 - 우리 시대 작가들이 들려주는 평범한 사람들의 소박한 행복 이야기
도종환 외 지음 / 우리교육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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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 선생님, 소설가 공선옥, 김중미, 박정애, 전성태 등 우리 시대 작가 13명이 들려주는 평범한 이들의 소박한 이야기다. 평범하지만 결코 하찮지 않은 소중하고도 가슴 찡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아름답다는 단어가 지금처럼 획일화되고 또한 무참해진 시대가 또 있을까. 성형수술이 지극히 당연한 투자 내지 기호가 되고, 여성의 가슴 크기, 허벅지 크기가 거리낌 없이 언급되는 세상. ‘육덕지다’, ‘꿀벅지’ 등 낯 뜨거운 단어들이 쉴 새 없이 만들어지고 여성이 상품화, 성적 대상화로만 여겨지는 것이 이제는 당연시 되어버린 사회.

 

물론 남성이라고 해서 다를 건 없다. 식스팩, 몸짱 등 우락부락한 몸매를 가져야 남자로 인정받고, 거기에다 이율배반적으로 예쁘장하게 생긴 외모까지 갖추어야 한다. 결국 이 사회는 영혼으로 아름다움을 찾을 수 없게 되어버렸고, 오직 시각에 의존하는 아름다움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어버린 것이다.

 

때문에 13명의 작가들이 소개한 이들은 하나같이 이 시대가 요구하는 비인간적인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멀고 험한 산길을 마다하지 않고 이웃들에게 소식을 전해주는 집배원, 일평생 농부로 살다 농부로 생을 마감한 우리네 아버지, 아파트 단지에서 떡볶이와 오뎅을 파는 아주머니, 프레스공, LP 음반점 주인, 제관 노동자, 영화 연출부 막내, 복덕방 할머니, 춤이 좋아 스포츠 댄스 강사까지 되어버린 어느 평범한 주부, 목수, 화가, 숯 굽는 이, 조그만 통통배의 선장까지. 이들의 삶은 결코 눈으로 볼 수 없는 고결함과 함께 따뜻함이 담겨 있다.

 

책에 소개된 이들은 말 그대로 우리네 이웃들이다. 거창한 직함이나 빵빵한 재력은 없지만, 함께 나누며 사랑을 전하는 우리네 이웃. 소박하지만 그 소박함 속에서 삶의 긍정을 길어 올리는 위대한 사람들. 바로 그 사람들의 이야기다. 자신에게 닥친 가난과 수많은 고통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오히려 주변 이웃들의 고통에 더 아파하는 이들. 어찌 이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공선옥 작가의 큰아버지. 농부로 살다 농부로 가신 그이의 삶은 그 자체가 우리에게 크나큰 선물로 다가온다.

 

“모든 농부는 세상 모든 이의 아버지다. 그 아버지들은 한시도 놀지 않는다. 그들은 비가 오면 비를 피하지 않고 눈이 오면 눈을 피하지 않고 해가 뜨면 해를 피하지 않는다. 온몸으로 비와 눈과 해를 받아들이고 그리고 온 세상의 자식들을 받아들인다. 그 너른 품에 받아 안는다. 한밤중이어도 번개 치고 천둥 우는 밤에 논으로 달려 나가 물꼬를 본다. 밭에 나가 도랑을 친다. 그러고 나서도 그들은 잠들지 못한다. 비가 그칠 때까지 잠들지 못한다. 뽕밭에 가 뽕을 따서 누에를 먹이고 오디를 따서 자식을 먹인다. 그들에겐 조카도 자식이고 온 동네 아이들이 다 자식이다. 뽕 지게를 지고 오다가 뽕잎에 싼 오디를 제일 첫 번째 보이는 아이에게 먹인다.”

 

평생 ‘와셔’를 찍어내는 프레스공으로 일한 고경순 씨의 삶도 숭고하게 다가온다. 남편을 병으로 잃은 다음 두 아이를 키워내며 여전히 노동의 진실성을 온 몸으로 보여주며 살고 있는 그이에게 사람들은 ‘만석동 천연기념물’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정직한 삶, 땀 흘리는 삶을 묵묵히 이어나간 그이에게 어울리는 별명이다.

 

“선아 엄마(경순씨)는 일을 안 하고 노는 사람들을 경멸한다. 젊은 사람들이 더러운 일, 험한 일 가려 하는 걸 못마땅해하고, 공장 일보다 서비스업을 선호하는 젊은 엄마들을 보면 화가 난다. 그렇다고 돈벌이가 된다면 아무 일이나 막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선아 엄마는 사람이 하는 일을 정직한 일과 그렇지 못한 일로 나눈다. 그래서 정직하지 못한 일을 해서 돈을 버느니 차라리 굶어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아름답다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며, 더불어 이웃들과 함께 기쁨과 슬픔과 행복을 나누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바라보면 절로 아름답다는 감탄과 미소가 터지지 않을까. 나는 그런 사람들이 인터넷 포털을 누비는 온갖 잡스런 연예인들보다 딱 천만 배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성공이란 것을 오직 한 가지로만 규정짓고 그 길대로만 살아가는 사람들. 돈과 명예, 그따위 것들에 목숨을 걸다가 권력이 던져주는 노예의 떡고물을 감지덕지 받아먹으며 살아가는 군상들. 그러다 그렇게 흔적도 사라지는 부속들.

 

세상엔 의외로 그런 이들이 많다. 오직 숫자로만 파악될 뿐, 그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어떤 영혼을 가진 이들이었는지 기억하는 이들은 없다. 연봉이 얼마든, 어떤 직책에 있었든 그 따위 것들은 중요치 않다. 그들은 다만 소모품일 뿐이니.

 

책이 소개하는 이웃들과 같은 삶을 살기란 때문에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무정하고 뒤틀린 세상이 강요하는 시스템 속에서 안주하지 않고, 두렵지만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여정은 좌절과 편견과 지독한 가난이란 것들과 만나야 하는 길이다. 하지만 이들은 묵묵히 그렇게 자신의 길을 갔고, 어느 덧 그 삶의 주인이 되어 있었다.

 

모두가 노예처럼 버둥거리는 세상에서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분명 행운이자, 행복이다. 우리네 아름다운 이웃을 더 많이 바라보고,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소중한 책을 읽었다. 그리고 소중한 사람들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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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벌리어와 클레이의 놀라운 모험 1 - 퓰리처상 수상작 클럽 오딧세이 (Club Odyssey) 4
마이클 셰이본 지음, 백석윤 옮김 / 루비박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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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를 싫어하는 분들은 그리 많지 않을 듯합니다. 각자 선호하는 장르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문학은 언제나 사람들에게 많은 기쁨과 감동을 전해줍니다.

 

저 역시 소설 읽기를 매우 좋아합니다. 장르 구분을 그리 하지 않는 편이라 다양한 소설들을 읽습니다. 물론 게으름 탓으로 많은 작품들을 읽지는 못했지만요.

 

제가 책읽기를 하면서 생긴 하나의 룰 비슷한 것이, 무슨 굵직굵직한 상을 받은 작품과 그렇지 못한 작품을 차별하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큰 상을 받은 작품들은 그 나름대로의 타당성과 예술성이 있기에 그런 것이겠지만, 그렇지 못한 작품 중에서 숨겨져 있는 보석을 찾는 재미도 쏠쏠하거든요. 또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큰 상을 받은 작품은 조금 지루한 면이 없지 않았습니다. 내가 수준이 낮은 탓이겠지요.

 

《캐벌리어와 클레이의 놀라운 모험》은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대단하죠. 게다가 노 대작가가 아닌 비교적 젊은 작가의 작품이라는 것이 더욱 놀라웠습니다. 과연 어떤 작품이길래 퓰리처상을 수상한 것일까. 궁금했습니다.

 

적지 않은 분량이 부담감을 주었지만, 천천히 책장을 넘겼습니다. 그리고 두 유대인 소년의 성장기, 성공기, 방황기를 함께 했습니다. 조 캐벌리어와 샘 클레이의 일대기는 그야말로 파란만장했습니다.

 

탈출로 시작한 그들의 모험은 미국의 역사와 맥락이 닿아있었습니다. 유대인의 길고 긴 탈출의 역사도 함께 했죠. 그리고 코믹스로 불리는 미국 만화의 역사와도 깊은 관련이 있었습니다. 사실 모두 제가 그리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지 못하는 분야이죠.

 

하지만 흥미로웠습니다. 배트맨, 수퍼맨, 판타스틱 포 등 익히 알려진 캐릭터들. 그들에 열광하며 유년기를 보냈던 미국인들의 정서를 100% 이해할 순 없었지만, 저 역시 어린 시절 저만의 영웅들이 있었고, 우상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나게 해주었죠.

 

출판사의 보도자료에는 “1천 쪽의 대작이 한 순간에 읽히는 놀라운 경험, 이어지는 묵직한 울림”이라고 소개되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작품을 읽고 난 저에게 적지 않은 분량이 순식간에 읽혀지거나, 묵직한 울림을 주었다고 말할 순 없을 것 같습니다. 아울러 온갖 미사여구나 수식어가 붙은 장문보다는 간결하고 깔끔한 단문 형식을 선호하는 저에게 4~5 줄 이상 이어지는 한 문장이 부담스러웠던 것도 사실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문체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충분히 즐거웠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1930년대~40대를 배경으로 한 미국의 역사, 제2차 세계대전, 대공황, 코믹스의 역사와 전설, 자유와 희망을 안고 뉴욕으로 밀려들어온 세계의 이민자들. 이 모든 것이 생생히 묘사된 책은 그 자체로 소중한 역사 공부이기도 했습니다.

 

아울러 미묘하고도 묘사하기 어려운 유대인 문제, 성적 소수자 문제를 비교적 가볍고도 우울하지 않게 표현한 부분은 특히 좋았습니다. 공산주의자만큼 배척되었던 동성애자. 그리고 수퍼맨과 배트맨으로 대표되는 코믹스 황금시대에 제동을 걸려 했던 윤리주의자들. 티브이 시대의 개막과 함께 사라진 코믹스 시대와 라디오 시대. 미국인과 똑같은 정서를 느낄 수는 없었지만, 저 나름대로의 향수를 갖게 한 부분이 분명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책을 통해 느낀 것은 우정과 사랑이었습니다. 인간에겐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숙제이자, 아름다운 삶의 조건이기도 하죠. 클레이와 캐벌리어의 우정, 그리고 로자와 캐벌리어의 사랑. 가족을 구하기 위한 캐벌리어의 헌신과 그것이 무너졌을 때 그가 보인 주체할 수 없는 분노. 모든 인간이 느끼는 희로애락을 저자는 두 유대인의 삶으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굳이 묵직한 울림은 필요 없을지 모릅니다. 페이지 마다 튀어나오는 기발한 문장과 유머, 가족에 대한 헌신, 질기고도 아름다운 우정과 사랑. 그것을 느끼는 것만으로 충분했습니다.

 

그리 가독성이 높은 작품이라고는 솔직히 장담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리고 미국인이 될 수 없는 우리로서는 그들이 느꼈을만한 향수를 느낄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류 공통의 언어인 만화와, 역시 모두가 가슴에 품고 사는 우정과 사랑, 가족이라는 주제는 분명 우리에게도 감동을 줄 수 있다고 느낍니다.

 

어렸을 적, 기를 쓰고 모았던 수많은 만화책들을 어느 날 아버님이 동네 아이들에게 한꺼번에 무료 대방출 하신 아픈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 많은 만화책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내 영웅들 역시. 책을 덮고 책장을 바라보니 지난 해 충동 구매했던 만화책 《샌드맨》1권이 보입니다.

 

고백하건대, 냅다 집어 들었습니다. 누가 그랬잖아요. 철들지 않은 남자는 늙지 않는다고. 그렇다고 어리다고 놀리진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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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겨울 평화 발자국 6
강제숙 글, 이담 그림 / 보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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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만 나름대로 알찬 휴가를 다녀왔습니다. 부러 사람이 많은 8월초·중순을 피해 월말에 다녀왔는데요. 덕분에 차가 막혀 고생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즐거운 휴가였습니다.

 

다녀온 곳 중에는 전주가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1박을 했습니다. 전주에서는 한옥마을을 찾았는데요. 경기전 앞에서 한 시민단체가 경술국치 100년을 맞아 조그만 행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여러 게시물을 전시해 두었는데, 각 분야별로 친일을 한 인사들과 항일 운동을 했던 인사들을 비교해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거제에도 다녀왔습니다. 통영을 지나 왔는데, 윤이상 선생님의 모습이 담긴 현수막과 전시물들이 인상에 남았습니다. 문득 그 분이 더 그리워지더군요. 거제에는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이 있습니다. 그곳을 찾아 둘러봤습니다. 전쟁이 남긴 너무도 큰 상처들이 고스란히 다가왔습니다. 물론 편향되고 반공 일색인 설명들이 불편하기도 했지만, 이나마 과거를 기억하도록 애썼다는 것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아내는 모처럼의 휴가마저도, 꼭 이렇게 우울한 곳을 찾아야 하냐는 눈으로 절 바라봤지만, 이내 아내 역시 공원을 둘러보며 많은 생각을 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 그럼요. 사랑스런 제 아내 역시 이 땅의 역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한민족이자, 조선인이니까요.

 

《끝나지 않은 겨울》은 휴가를 떠나기 전 읽었습니다. 주로 청소년,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 형식이기에 금새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운이라고 하기엔 죄스러운 감정이 남아 한동안 멍하니 책을 바라봤습니다.

 

책은 정신대 할머님의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김순덕 할머님, 배봉기 할머님을 생각하며 글을 썼다고 말합니다. 김순덕 할머님은 1991년 우리나라에 사는 분으로서는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였음을 증언한 분입니다. 배봉기 할머님은 전쟁이 끝났을 때 오키나와에 남았는데, 1970년대 가장 먼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임을 밝힌 분입니다. 저자는 1972년 오키나와가 미군정에서 일본으로 반환되던 때, 불법체류자였기에 강제 출국을 당하지 않으려고 어쩔 수 없이 일본군 ‘위안부’임을 밝혀야 했던 할머니를 잊을 수 없다고 적고 있습니다. 기가 막힌 일입니다.

 

제가 감히 평화주의자라고 말할 순 없습니다. 사람을 마구 죽이는 전쟁, 액션 영화도 거리낌 없이 보고, 그런 게임도 즐겼습니다. 아울러 군대에 가 살인을 배우기도 한 죄 많은 영혼입니다. 진정 제가 평화를 염원하고 전쟁을 혐오했다면 입대를 거부해야 마땅했습니다. 하지만 전 겁 많고 어리석은 녀석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전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전 어떤 명분을 들이대더라도 전쟁은 지구상에서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 어떤 고귀한 명분도 인간이 인간을 살육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또한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일 수밖에 없는 여성, 어린이, 노약자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역사상 그 어떤 전쟁에서도 항상 그들은 가장 많은 피해를 겪었고,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가장 많이 죽어나간, 그리고 고통을 겪은 이들은 바로 여성과 어린이들이었습니다.

 

그럼 우리 역사를 다시 바라봅니다. 위안부 할머님들을 생각합니다. 그들은 인간으로서 견딜 수 없는 갖은 고통을 겪고 살아남았습니다. 하지만 정작 힘없고 나약해 그들에게 고통을 넘길 수밖에 없었던 국가라는 괴물은, 그리고 비열한 인간들은 할머님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덮으려 했습니다. 이는 비단 일본 정부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우리 정부라는 것 역시 이들의 고통을 조용히 묻으려 했습니다. 그런 일들은 지금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납니다. 어처구니없는 괴물의 모습입니다.

 

책의 제목과 같이 할머님들의 겨울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제 매주 수요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할머님들의 집회는 1000회를 맞이하려 합니다. 그 수많은 시간동안 외친 진심어린 사죄와 보상이라는 요구에 일본은 침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적으로 일본 정부만을 비난할 수 있을까요. 만약 우리 국민 모두가 할머님과 함께 했다면, 과연 일본은 지금처럼 뻔뻔히 침묵을 지킬 수 있었을까요.

 

얼마 전 기가 막힌 뉴스들을 보게 됐습니다. ‘신 한류’라는 제목으로 우리 걸그룹들이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는 뉴스였습니다. 기분이 좋아야 할텐데, 왠지 모를 모욕감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일본에서 짧은 치마와 핫팬츠를 입고, 나이에 맞지 않은 섹시어필한 댄스를 추는 모습. 거기에 열광하는 일본인들. 물론 순수하게 볼 수도 있겠지만, 생각이 꼬여버린 전 그렇게만 볼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음악과 함께 자신들의 육체를 함께 판매하고 홍보하고 있었습니다. 걸그룹 카라의 공연 모습 중 유난히 그들의 엉덩이를 부각해 돌아가는 카메라를 보고 기가 막혔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이상한 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전 그렇게 느꼈습니다.

 

70~80년대 일본 관광객들은 당당히 한국에 섹스관광을 다녔습니다. 지금도 물론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돈 좀 만진다고 일본인들이 했던 짓을 동남아와 중국에 가서 그대로 따라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게 여전한 우리의 현실입니다.

 

전 이런 모습들이 전쟁 기간 중 성욕을 풀겠다는 이유로 조선인 처녀들을 강제로 전장으로 끌고 간 일본군과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난한 나라의 여성들을 돈으로 유린하는 모습. 우리는 어느 새 일본군 위안부 할머님들에게 또 한 번의 죄를 짓고 있었던 것입니다.

 

국가가 보호해 주지 못한 할머님들의 고통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일본은 모든 위안부 피해자들이 생을 마감하는 그 날까지 버티겠다는 속셈이고, 무정한 세월이 그것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는 공식적 차원으로 아무런 말도 못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오히려 독도 문제와 관련해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달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정말 무참하고 무정한 세월입니다.

 

할머님들의 겨울은 언제쯤 끝날 수 있을까요. 저자의 노력처럼 많은 이들이, 어린이들이 과거의 가슴 아팠던 기억들을 기억하고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아울러 도저히 회개될 수 없는 어른들의 추악한 현실도, 똑바로 직시할 수 있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해서 점점 그런 잘못된 어른들이 발붙일 수 없는 땅이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일본에게 용서를 요구하는 것은 쉽습니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 자신을 반성하고 용서하는 것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베트남, 캄보디아 등에서 돈에 팔려 시집오는 어린 신부들을 폭행하고 살해합니다. 캄보디아 정부는 급기야 분노를 참지 못해 한국 남성과의 결혼을 금지시켜 버렸습니다. 사랑을 법으로 막을 수는 없겠지만, 정말 부끄럽고 부끄러운 현실입니다.

 

우리 스스로 일본인들과 다른 ‘인간다움’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야 할머님들의 긴 겨울도 끝낼 수 있습니다. 할머님들이 경술국치 100년을 맞는 심정이 어떠할까요.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이제부터 해 보려 해요. 겨울이 가면 봄이 오는데 내가 산 세월은 돌아보니 내내 한겨울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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