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이여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 시대의 격랑을 헤쳐나간 젊은 영혼들의 기록
황광우 지음 / 창비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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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풍성한 한가위 보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야속한 비가 내려 피해를 입은 이들이 많습니다. 때문에 마냥 즐거울 수만은 없었던 연휴였습니다. 지금도 피해 복구에 구슬땀을 흘리고 계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한동안 책을 읽지 못했습니다. 남들이 말하는 슬럼프도 아니고, 그렇다고 재미있는 책이 없었던 것도 아닌데, 그냥 무기력하게 책을 읽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게으름이 이제 거의 불치의 단계로 들어선 것일까요.

 

이 책은 한가위 전까지 계속 제 맘을 흔들고, 또 아프게 했던 책입니다. 저자에 대한 간략한 배경은 알고 있었지만, 책을 통해 저자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더욱 더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역대 대통령 중 최초로 아침 토크쇼에 출연해 눈물을 흘렸다고 하더군요. 물론 저는 그 시간에 잠을 잤는지, 아님 무슨 짓을 했던 간에 시청하지 않았습니다. 얼핏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지만, 절대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프로를 본 벗들이 이야기 해주더군요. 눈물을 흘렸다고. 대통령이 모친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말이죠. 그리곤 그렇게 말했다죠. 모친이 돌아가시기 전 “정직하게 살라”는 유언을 남기셨다고요.

 

자칫 감동스러운 장면일수도 있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전 하나도 감동스럽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대통령의 모친이 안쓰럽게 느껴질 따름이었습니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대통령이 얼마나 정직하지 못했기에 마지막 순간까지 그런 걱정을 하셔야 했을까요.

 

우리 사회는 매우 위험한 사회입니다. 어떤 의미냐고요? 고통도 기쁨도 슬픔도 눈물도 저마다 살아가는 위치, 즉 계급에 따라 다르게 느낍니다. 이건 또 무슨 말이냐고요? 하루에 우리나라에서 자살하는 이들은 6명에 가깝다고 합니다. 매일 6명 이상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입니다. 그 어떤 이유든 이는 정상이 아닙니다. 가난이 원인이든, 개인적인 고통이 원인이든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던 이들의 심정을 헤아릴 수도 없으면서 자살은 범죄라고 비난하는 것도 우스운 일입니다.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과 같은 정글 자본주의에서 개인적 고통의 근원은 무엇이었을까요. 아마 대부분 돈과 관련된 것일 테죠. 취직, 가정형편, 결혼, 부모 부양, 자식 양육 문제 등. 아니라고 자신할 수 없습니다. 그렇죠. 세상은 이렇게 되어버렸죠.

 

그런데 그게 계급적 문제와 무슨 상관이냐고요? 그리고 왜 다르게 느끼냐고요? 스스로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내 일이 아니고 남의 일에 우리가 언제부터 관심을 끊기 시작했는지 말이죠. 우리는 어느새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루에 6명이라는 엄청난 수에도 무감각합니다.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생각이 뼛속까지 깊게 새겨졌습니다.

 

살인마도 이렇게 무서운 살인마가 있을까요. 하루에 6명씩 매일 생명을 빼앗는 공포의 살인마. 그 살인마가 판치는 세상에 살아가는 우리는 과연 무죄일까요. 자신보다 못 사는 사람. 자신보다 좁은 아파트 평수를 가진 사람. 자신처럼 든든한 빽을 가진 부모가 없는 사람. 자신보다 비싸지 않은 차를 가지고 있는 사람. 과연 그들은 자신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삶과 죽음에 대해 얼마나 생각하고 살까요.

 

그래서 이명박 대통령의 눈물이 가증스러웠습니다. 지금 이 땅에 대통령의 아집과 독단과 무지로 인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지, 그는 알고 있을까요. 그가 과연 온 국민이 시청하는 TV에 나와 눈물을 흘릴 자격이 있을까요. 전 자신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염치와 양심이라는 것이 있다면 말이죠.

 

또한 지금 우리 사회에 민주화를 위해 모든 것을 던졌던 이들을 생각했습니다. 저자와 같은 치열한 삶을 살았던 이들. 가증스러운 폭력과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결코 뜻을 굽히지 않고 독재와 싸웠던 이들. 그들과 국민들이 함께 만들어온 지금 이 시대를 하나하나 다시금 뒤로 돌리고 있는 집단에 대한 분노. 그 분노로 인해 대통령의 눈물이 가소롭게 보였던 것입니다.

 

흔히 노무현 대통령으로 상징되는 386세대에 대한 비판이 많습니다. 공부는 안하고 매일 데모만 하던 것들이 정권을 잡았으니 나라가 이 모양이 됐다고요. 노무현 대통령이 과연 386의 상징으로 인식되어도 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지금을 볼까요. 과연 공부는 안하고 매일 장사만 하던 이가 정권을 잡은 지금은 태평성세인가요.

 

전 묻어가는 이들을 증오합니다. 힘없고, 빽 없기에 오로지 모나지 않게 중간만 가라는 부모님들의 말씀. 튀지 말고 맨 앞도 맨 뒤도 아닌 중간에 서있으라는 말씀을 존중합니다. 옳기 때문이 아니라 지난 삶을 통해 그분들이 절절히 느낀 것이기에 존중합니다.

 

하지만 기회주의에 가득 차 다른 이들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 놓은 소중한 열매를 슬쩍 같이 따먹으려는 인간들은 증오합니다. 보신의 수준이 아닌 이들의 모습은 가증스럽습니다. 386세대 전부를 매도하는 이들도 가증스럽습니다. 그들의 과오가 분명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만들어 놓은 지금 이 시대의 열매를 나몰라라 슬쩍 향유하는 것도 보기 싫습니다.

 

적어도 그들의 희생과 헌신에 대해 기억은 해야 하지 않을까요. 얼마 전 인터넷은 용광로 청년 노동자의 이야기로 떠들썩했습니다. 물론 사람들은 곧 잊겠지요. 하지만 청년 노동자가 그 뜨거운 용광로에 떨어져 삶을 마쳤다는 사실은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같은 시기에 아버지가 장관이라는 이유로 특채로 외교부에 치직하려 했던 젊은이도 기억될 것입니다.

 

이미 우리 사회는 조선시대보다 더 지독한 계급사회가 되어버렸음을, 그리고 그러한 지독한 차별의 시스템을 만든 이들이 어떤 이들이었는지, 분명히 기억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래야 합니다.

 

새로운 진보담론이 필요하다는 말들이 많습니다. 민주당을 진보정당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생길만큼 현실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 과연 새로운 진보, 서민들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진보는 무엇이어야 하는지 고민합니다.

 

전 그 시작으로 선배들의 치열했던, 친구들의 눈물겨웠던 투쟁의 시간들을 먼저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지금 젊은 세대들이 그 때를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기억하지 않으려 해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 우리가 어떻게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면 미래도 무의미할 것입니다.

 

눈물겨운, 그러나 단 한 번의 후회 없이 고난을 스스로 벗 삼아 싸웠던 많은 이들에게 다시 한 번 경의와 감사를 드립니다. 당신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이 빌어먹을 세상은 더 지옥이 되었을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어둠은 간다. 그런데 역사의 새벽은 자연의 새벽과 달리 그것을 호명하는 이에게 온다. “타는 목마름으로” 호명하는 이들 말이다.

어둠이 가고 새 날이 시작되는 것이 대자연의 순리이다. 하지만 인간의 역사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갈 것인지 예측하는 문제 앞에서만큼은 겸허하자. 인간 역사의 풍부한 생명력을 누구의 머리로 재단할 수 있단 말이냐?

말할 수 있는 것은 흘러온 과거에 대해서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살자고 맹세한 우리들이었지만, 청춘의 뜨거웠던 약속은 식어가고 있다. 더러는 자식들 키우느라 애태우며 사는 그야말로 평범한 소시민이 되어 있기도 하고, 더러는 사랑하고 결혼하는 일마저 놓치고 지금은 풀벌레 소리 들리는 곳에서 인생의 뒤안길을 쓸쓸하게 보내는 벗들도 있다.

박기순, 윤상원, 박종철, 이한열……역사가 너무 사랑하여 일찍 데려간 넋들도 있고, 아직도 역사의 수레바퀴를 미느라 수고하는 이들이 있다.

…이야기는 여기서 마감하자. 그리고 이제 다시는 어머님께 효도할 수 없는 박종철 열사에게 꽃 한 송이를 바치자. 그의 앞뒤로 수많은 청춘들이 산화해 갔지만, 그의 죽음은 한반도를 뒤흔든 역사적 사건의 불꽃이었다.

“무릎 꿇고 사느니보다 서서 죽길 원한단다, 우리들은 정의파다”

그렇게 우리는 살았다. “전두환은 해볼 수 있어도 미국은 이기지 못한다”는 장인어른의 말씀이 지금도 생생하다. 전두환의 퇴진은 사실상 미국의 굴복이었다. 박종철은 갔지만 그의 이름은 영원할 것이다. 우리 민중의 가슴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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