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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벌리어와 클레이의 놀라운 모험 1 - 퓰리처상 수상작 ㅣ 클럽 오딧세이 (Club Odyssey) 4
마이클 셰이본 지음, 백석윤 옮김 / 루비박스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소설 읽기를 싫어하는 분들은 그리 많지 않을 듯합니다. 각자 선호하는 장르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문학은 언제나 사람들에게 많은 기쁨과 감동을 전해줍니다.
저 역시 소설 읽기를 매우 좋아합니다. 장르 구분을 그리 하지 않는 편이라 다양한 소설들을 읽습니다. 물론 게으름 탓으로 많은 작품들을 읽지는 못했지만요.
제가 책읽기를 하면서 생긴 하나의 룰 비슷한 것이, 무슨 굵직굵직한 상을 받은 작품과 그렇지 못한 작품을 차별하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큰 상을 받은 작품들은 그 나름대로의 타당성과 예술성이 있기에 그런 것이겠지만, 그렇지 못한 작품 중에서 숨겨져 있는 보석을 찾는 재미도 쏠쏠하거든요. 또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큰 상을 받은 작품은 조금 지루한 면이 없지 않았습니다. 내가 수준이 낮은 탓이겠지요.
《캐벌리어와 클레이의 놀라운 모험》은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대단하죠. 게다가 노 대작가가 아닌 비교적 젊은 작가의 작품이라는 것이 더욱 놀라웠습니다. 과연 어떤 작품이길래 퓰리처상을 수상한 것일까. 궁금했습니다.
적지 않은 분량이 부담감을 주었지만, 천천히 책장을 넘겼습니다. 그리고 두 유대인 소년의 성장기, 성공기, 방황기를 함께 했습니다. 조 캐벌리어와 샘 클레이의 일대기는 그야말로 파란만장했습니다.
탈출로 시작한 그들의 모험은 미국의 역사와 맥락이 닿아있었습니다. 유대인의 길고 긴 탈출의 역사도 함께 했죠. 그리고 코믹스로 불리는 미국 만화의 역사와도 깊은 관련이 있었습니다. 사실 모두 제가 그리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지 못하는 분야이죠.
하지만 흥미로웠습니다. 배트맨, 수퍼맨, 판타스틱 포 등 익히 알려진 캐릭터들. 그들에 열광하며 유년기를 보냈던 미국인들의 정서를 100% 이해할 순 없었지만, 저 역시 어린 시절 저만의 영웅들이 있었고, 우상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나게 해주었죠.
출판사의 보도자료에는 “1천 쪽의 대작이 한 순간에 읽히는 놀라운 경험, 이어지는 묵직한 울림”이라고 소개되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작품을 읽고 난 저에게 적지 않은 분량이 순식간에 읽혀지거나, 묵직한 울림을 주었다고 말할 순 없을 것 같습니다. 아울러 온갖 미사여구나 수식어가 붙은 장문보다는 간결하고 깔끔한 단문 형식을 선호하는 저에게 4~5 줄 이상 이어지는 한 문장이 부담스러웠던 것도 사실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문체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충분히 즐거웠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1930년대~40대를 배경으로 한 미국의 역사, 제2차 세계대전, 대공황, 코믹스의 역사와 전설, 자유와 희망을 안고 뉴욕으로 밀려들어온 세계의 이민자들. 이 모든 것이 생생히 묘사된 책은 그 자체로 소중한 역사 공부이기도 했습니다.
아울러 미묘하고도 묘사하기 어려운 유대인 문제, 성적 소수자 문제를 비교적 가볍고도 우울하지 않게 표현한 부분은 특히 좋았습니다. 공산주의자만큼 배척되었던 동성애자. 그리고 수퍼맨과 배트맨으로 대표되는 코믹스 황금시대에 제동을 걸려 했던 윤리주의자들. 티브이 시대의 개막과 함께 사라진 코믹스 시대와 라디오 시대. 미국인과 똑같은 정서를 느낄 수는 없었지만, 저 나름대로의 향수를 갖게 한 부분이 분명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책을 통해 느낀 것은 우정과 사랑이었습니다. 인간에겐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숙제이자, 아름다운 삶의 조건이기도 하죠. 클레이와 캐벌리어의 우정, 그리고 로자와 캐벌리어의 사랑. 가족을 구하기 위한 캐벌리어의 헌신과 그것이 무너졌을 때 그가 보인 주체할 수 없는 분노. 모든 인간이 느끼는 희로애락을 저자는 두 유대인의 삶으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굳이 묵직한 울림은 필요 없을지 모릅니다. 페이지 마다 튀어나오는 기발한 문장과 유머, 가족에 대한 헌신, 질기고도 아름다운 우정과 사랑. 그것을 느끼는 것만으로 충분했습니다.
그리 가독성이 높은 작품이라고는 솔직히 장담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리고 미국인이 될 수 없는 우리로서는 그들이 느꼈을만한 향수를 느낄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류 공통의 언어인 만화와, 역시 모두가 가슴에 품고 사는 우정과 사랑, 가족이라는 주제는 분명 우리에게도 감동을 줄 수 있다고 느낍니다.
어렸을 적, 기를 쓰고 모았던 수많은 만화책들을 어느 날 아버님이 동네 아이들에게 한꺼번에 무료 대방출 하신 아픈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 많은 만화책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내 영웅들 역시. 책을 덮고 책장을 바라보니 지난 해 충동 구매했던 만화책 《샌드맨》1권이 보입니다.
고백하건대, 냅다 집어 들었습니다. 누가 그랬잖아요. 철들지 않은 남자는 늙지 않는다고. 그렇다고 어리다고 놀리진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