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전태일.박종철이 들려주는 현대사 이야기
함규진 지음, 돌 스튜디오 그림 / 철수와영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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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와영희,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출판사입니다. 출판사 대표님과 친분이 두터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개인적으로 출판사에서 덕을 본 일도 없지만^^, 좋은 책을 많이 펴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란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책은 역돌이, 철수, 영희 등 세 명의 10대 어린이들과 백범 김구 선생, 박종철, 전태일 열사가 채팅과 이메일을 통해 한국 현대사를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무척 신선하죠? 아이들에게 우리 현대사를 이야기하는 이들 자체가 바로 현대사 그 자체입니다. 강사 선택이 참 탁월하다는 생각!

 

얼마 전 배우 문성근 님을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전 옆에서 구경만 했죠. 문성근 님의 말씀 중 이런 것이 있었습니다. “전 세계에서 자국의 현대사를 아이들에게 가르치지 않는 유일한 국가가 한국 아닌가. 그런데 그런 국가에서 독재정권들을 무너뜨리고 민주주의를 만들었다. 기가 막힌 일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참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나라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곳 대한민국이죠. 대학입시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국·영·수 공부하기에도 바쁘다고, 우리는 정작 가장 중요한 우리의 역사를 외면하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이런 책은 너무나 소중합니다. 아이들에게 우리의 현대사를 가르친다는 것은 단순히 과거의 사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랑스럽기도 하고, 때론 숨고만 싶은 우리 현대사를 통해 다시는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말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역사를 모른다고 개탄만 할 것이 아니라 먼저 다가가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합니다. 그것도 알기 쉽고 재미있게요.

 

여기서 참 어려운 문제죠. 알기 쉽고 재미있게. 너무 재미있게 설명하려 하다간 중요한 의미를 간과하기 쉽고, 또 한없이 진지한 모드로 나가면 아이들이 지루해 하고요. 때문에 채팅, 이메일, 메신저라는 도구를 통해 현대사를 이야기한다는 발상 자체가 자못 신선하고 재미있습니다. 아이들의 살벌한 타수를 오히려 어른들이 따라가기 힘들지도 모르죠.

 

백범 김구 선생이 말씀하신 ‘잘 사는 나라’. 우리는 그동안 잘 살기 위해 정말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때론 독재도 참아가며, 반공이란 이름에 주눅들어가며 남들이 민주주의를 꽃피우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할 정도로, 열악한 상황에서도 잘 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렇다면 정녕 잘 사는 것이 무엇일까요. 과연 우리는 지금 잘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지금 아이들에게, 어른들의 지금까지의 삶, 그 과정들이 모두 옳았고, 그 덕분에 너희들이 굶지 않고 잘 살 수 있게 된 것이라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을까요. 전 자신이 없습니다. 지금 아이들이 행복한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진정 잘 산다는 것은 단지 굶지 않고 생명을 유지하는 것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책은 말합니다. 일제 강점기 이후 지금까지 많은 이들이 잘 사는 나라를 위해 노력해 왔다고. 하지만 아직 우리는 더 많이 노력해야 하고 땀 흘려야 한다고. 단순히 GDP가 얼마냐의 문제가 아닌, “더 평화로운 세상, 더 자유로운 나라, 더 평등한 사회”바로 이것이 잘 사는 것이라고. 우리는 이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요.

 

단순히 어린이들만의 몫이 아님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잘못 이어져 온 것들을 제대로 바로 잡지 못했습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이래 지금까지 그 단추들은 줄줄이 잘못 끼워져 왔습니다. 물론 중간 중간 잘못을 바로 잡으려는 눈물겨운 노력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이 사회를 보면, 여전히 갈 길은 멉니다. 이승만 정권 당시 국회에서 깡패를 동원해 상대방을 폭력으로 위협하던 기억이, 새해 예산을 날치기로 통과시키고 그 과정에 같은 국회의원에게 주먹을 날리는 지금의 모습과 정확히 겹칩니다. 독재는 총과 칼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그 모습을 똑똑히 보고 있습니다.

 

지금의 추잡한 행태, 불의의 시대 역시 역사가 되어 기록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후세들은 지금 2010년 바로 이 시대를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요. 굳이 예상하지 않아도 빤히 보입니다. 그리고 창피합니다. 어떤 이유로든 불의를 정당화할 순 없기 때문입니다. 나약함 역시 정당화될 순 없겠죠.

 

우리의 역사를 바로 기록하고 이를 후세에 전하는 것은 어찌 보면 참 부끄러운 일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우리가 잘못한 것이 적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분명히 우리는 진실을 알려야 합니다. 아이들은 진실을 알고 자신의 시대를 또 다시 만들어 가야 하니까요.

 

소중한 분들이 만들어가는 소중한 책.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한 일입니다. 이런 책들이 보다 많은 아이들에게 읽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책 내용에 100% 동의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라도 아이들이 안다면 스스로 더 공부해서 더 가까운 진실, 더 치열한 삶 역시 느낄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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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라배마 송
질 르루아 지음, 임미경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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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유일한 건강법이란 바로 경계를 넘어가보는 일이야. 과도함, 극단을 추구하는 거지. 용기 있게 자신의 전부를 내던져 스스로를 소진시켜야 해. 어차피 문명이라는 이름의 이 대전, 낡은 세계의 이 도살자가 우리 모두를 무차별적으로 죽일 테니까.”

 

고교 시절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올리버 스톤 감독의 〈킬러〉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연기파 배우 우디 해럴슨과 깜찍하고 아름다운 소녀 줄리엣 루이스가 출연한 영화였죠. 극중에서 미키(우디)와 말로리(줄리엣)는 미쳐버린 세상에서 그야말로 정상적(!)인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깨닫게 되죠. 그들은 결혼식을 올리고 666도로를 따라 허니문을 떠납니다. 살인이 끝없이 이어지는 죽음의 허니문이죠.

 

미디어는 그들의 살인행각을 거의 실시간으로 보도합니다. 10대들은 이들 부부의 행각에 열광하고 그들을 추종하게 되죠. 그들은 가는 곳마다 살인을 반복하고, 10대들의 열광은 더욱 커져만 갑니다. 과연 이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앨라배마송》을 읽으며 문득 어린 시절 보았던 그 영화가 떠올랐습니다. 당시 MTV 세대를 의식한 현란하고도 화려한 영상, 쉴 새 없이 이어지는 폭력의 향연 속에서 적잖은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당시 제 결론은 이것이었습니다.

 

“최고의 영화다!”

 

나름 방황하던 10대에게 이 영화가 어떤 영감을 주었던 것일까요. 아니면 입시에 찌든 제게 대리만족을 주었기 때문이었을까요. 저 역시 미쳐버린 세상에서 정상적인 삶을 포기하려 했던 것일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당시 두 주인공의 눈빛과 말투를 잊지 못합니다. 냉소와 허무, 그리고 삶의 극단을 향해 치닫는 무모함. 그들은 너무나 뜨겁게 사랑을 했고, 또 세상에 저항했습니다. 뭐 그렇다고 그들의 삶이 정당화될 순 없겠지만 말이죠.

 

잃어버린 세대, 미국 문학을 이야기할 때 절대 빠뜨릴 수 없는 스콧 피츠제럴드. 그리고 그와 함께 광기에 가까운 삶을 연출해낸 젤다 세이어. 이 미국 문학사상 가장 유명했던 커플에 대해 우린 어떤 평가를 할 수 있을까요. 미래에 대한 아무런 기대나 희망 없이 단지 지금을 위해 100% 자신을 소진시켰던 커플. 짧은, 그러나 너무나 화려했던 시기를 지나 길고도 처참한 내리막길을 걸어야 했던 커플. 이들은 1920년대 미국의 상징이자, 혼란스러운 세계의 거울이었습니다.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읽고서야 그 작품이 왜 그토록 찬사를 받았는지 간신히 이해할 수 있었던 무지한 저로서는 스콧 피츠제럴드의 천재성 역시 잘 알지 못하겠습니다. 물론 그의 다른 작품들을 읽어보지 못한 탓도 있겠지요. 하지만 《앨라배마송》을 읽으며 그가 천재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하지만 여기엔 조건이 붙습니다. 젤다와 함께 있는 한 말이죠.

 

젤다는 그 자체로 이미 스콧에 버금가는 열정과 재능, 광기가 있었다고 생각해봅니다. 물론 책은 허구입니다. 젤다에 대한 100% 사실이 아니란 말이죠. 하지만 어쩌면 그녀의 일생은 소설보다 더욱 극적이고 간절하지 않았을까 상상해봅니다. 사랑을 원했지만 한 달의 시간으로 만족해야 했고, 예술을 사랑했지만 결국 좌절해야 했던 불꽃같은 여인 젤다. 샐러맨더라는 단어가 절묘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녀는 불꽃 그 자체였으니까요.

 

읽은 이로 하여금 진을 빼놓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에너지를 앗아간다고 하기엔 무언가 표현이 적절치 않다고 생각하지만, 한동안 멍하니 쳐다보게 만드는 작품들. 저에겐 이 책이 그랬다고 생각합니다. 뜨겁고, 격정적이고, 아쉽고, 허무하고. 그리고 무언가 다시 그리워지는 감정….

 

항상 한 권의 책으로 또 다른 책들을 찾아 나서게 됩니다. 이 책으로 다시금 피츠제럴드의 책들을 찾아 기웃거릴 것 같습니다. 온전히 책 한 권 읽어 내는 것도 버거운 놈이 욕심만 많아지고 허영만 늘어갑니다.

 

꽤 멋진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소설 한 편을 써내려가기 위해 저자는 얼마나 많은 공력을 들여야 했을까요. 격정적이지만 전혀 난잡하지 않은, 뜨겁지만 외설적이지 않은, 잘 써내려간 두 영혼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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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무어의 대통령 길들이기 - 삼류정치에 우아하게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마이클 무어 지음, 최지향 옮김 / 걷는나무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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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류정치에 우아하게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라는 문구가 인상적입니다. 삼류정치, 미국 못지않게 여기에 대해서는 일가견이 있는 한국 국민들입니다. 역사상 유일무이한 병과 ‘보온병과’를 나온 정치인도 있지 않습니까. 삼류도 이런 삼류들이 없죠.

 

마이클 무어는 그야말로 미운 존재입니다. 미국이 그야말로 단 1%의 희망도 없는 나라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것이 바로 마이클 무어와 같은 이들이 소수 나마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니까요. 미국을 격하게 싫어하는 저에겐 미운 존재일 수밖에요.

 

책은 부시라는 그야말로 삼류 코미디에나 등장할 법한 인물을 대통령으로 뽑은 이후 8년 동안 미국에서, 또한 세계 곳곳에서 어떠한 재앙들이 일어났었는지 말해줍니다. 그리고 “난 정치 따위 관심 없어”라고 말하는 지극히 무책임한 이들에게 말합니다. 그런 무책임, 외면이 어떠한 재앙을 불러왔는지요.

 

“잘못된 리더가 우리를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미국 국민은 지난 8년간 여실히 깨달았다. 정치는 스포츠가 아니고, 우리는 관중이 아니다. 스포츠는 승자와 패자가 결정되면 그것으로 끝이지만, 정치는 그 순간 시작된다. 누가 권력을 잡느냐에 우리가 죽고 사는 문제가 달려 있다. 우리가 참여하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끝난다.”

 

우리나라 대통령의 임기가 5년인 것을 천만다행으로 생각해야 할까요. 우리가 정치를 스포츠로 생각하고 자신들이 관중이라고 착각한 대가는 참으로 참혹합니다. 미국 국민들이 지난 8년 간 뼈저리게 후회한 만큼, 우린 지금 이 순간 땅을 치고 있습니다.

 

삼류정치를 만드는 것은 물론 질 떨어지는 대부분의 정치인들입니다. 하지만 그런 질 떨어지는 정치인을 선출한 것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우리들의 수준까지 동반 하락한 것이죠. 온갖 감언이설에 속아 우리는 민주주의를 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대가는 전임 대통령 한 분의 서거와 또 한 분의 결정적인 병세 악화로 나타났습니다. 결국 두 분 다 지금은 우리 곁에 안 계시죠.

 

뿐만 아닙니다. 우리는 이제 자동차를 파는 대가로 위험한 먹거리앞에 무방비로 노출되었고, 우리 농민들은 희망을 완전히 버릴 지경에 처했습니다. 10년 동안 지켜온 소중한 남북의 평화는 이제 내일 당장 전쟁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끝까지 왔습니다. 정부와 대통령을 비판한다고, 혹은 비판하는 동영상을 봤다는 이유로, 민간인을 불법으로 감시하고 사찰했습니다. 4대강 살리기라는 추잡한 프레임을 내걸고 4대강을 죽였습니다. 몇몇 건설업체들의 배를 불려주기 위해 전 국민의 세금을 낭비한 것이죠. 거기에 국민들은 변변한 항의 한 번 하지 못했고, 야당 정치인들 역시 무력했습니다.

 

언론과 예술·문화계의 입을 막으려 했습니다. 아니 회유를 통해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것들로 다시 만들려 했죠. 맘에 안 드는 이들은 조용히 사라지게 했습니다. 개그 프로, 가수의 뮤직비디오 까지 시시콜콜 따져가며, 정말 찌질이 같은 추태를 부려도 국민들은 그냥 그러려니 했습니다. 한마디로 모른 척 쌩깠습니다. 잘났죠. 아주.

 

민주당이라는 야당의 책임도 적지 않습니다. 죽기 살기로 정부와 싸워야 다음 대선 때 국민들이 선택해 줄 텐데. 눈치 봐가며, 적당히 넘어가는 꼴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찢어졌다고 씹어대더니, 그 당들이 각각 하는 노력만큼의 모습도 정작 그들에겐 안 보였습니다. 그들도 한나라당 찌질이들과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국민들이 짜증나고 화날 만 했습니다.

 

연평도 사건이 터지고 나서 대북 인식이 악화되고, 사람들이 멋도 모르고 조중동 찌라시들의 말만 믿고 열을 낼 때도, 민주당은 덩달아 묻혀 갔을 뿐, 별다를 노력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전쟁을 향해 치닫고 있는 정부와 한나라당을(그런데 군에 다녀오신 분들은 과연 몇 분이나?) 막고, 다시금 한반도를 평화와 공존의 땅으로 만들어야 하는 책임이 있음에도 충분한 노력을 하지 않았습니다. 6·2 지방선거 때 국민들과 다른 야당이 희생한 결과로 그만큼 표를 얻었으면 표 값을 했어야 합니다. 아깝습니다.

 

현 정권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어떤 카페들은 매일 매일 날짜를 세더군요. 대통령 퇴임 때까지 얼마 남았다고 말이죠. 그 정도입니다. 삼류 정치인들을 국회나 청와대로 보내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 이제 우리는 지긋지긋하게 깨달았습니다.

 

마이클 무어는 미국인입니다. 국가와 국기와 신 앞에 충성을 서약하는 것을 상당히 안 좋아하지만, 그의 애국심을 의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애국심이 없다면 이렇게 책을 쓰지도, 영화를 만들지도, 부시를 당장 체포해야 한다고 열을 내지도 않겠죠.

 

그의 책을 통해 우리가 어떤 시사점을 얻어야 하는지는 자명합니다.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또 한 번 잘못된 선택으로 부자들은 더욱 부자가 되고, 가난한 이들은 더욱 가난해지는 악순환을 되풀이할 순 없습니다. 5년이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님은 현 정권을 겪으며 잘 아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더 이상 난 정치에 ‘관심 없어’ 라고 헛소리 하지 마시고, 어떤 수준의 정치인을 선출해야 할지, 어떤 수준의 정치 풍토를 만들어야 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박테리아가 왜 눈에 안 보이느냐고 묻는 대통령이 아닌, 보온병을 포탄이라고 들고 흥분하는 정치인이 아닌, 남의 책 표절해서 유명해진 다음, 오히려 원작자에게 전화해 쌍욕하고 협박하는 정치인이 아닌, 진정 국민들을 위해 노력할 수 있는 ‘싸가지’있고 ‘개념’있고 ‘상식’적인 정치인을 만들고 또 뽑아야 합니다. 총 한 번 안 쏴 본 사람이 폭격기로 당장 폭격하라고 떠들어댈 수 없는 정치 풍토를 만들어야 합니다.

 

아무런 업적도 철학도 없이 다만 “국민을 위해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같은 뻔한 소리 늘어놓아가며, 자기 아버지의 위상(그것도 지독한 독재자였던)만 믿고 감히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꿈을 꾸는 그런 몰염치한 정치인이 아닌! 정상적인 사람을 뽑아야 합니다.

 

마이클 무어는 미국이 제발 정신 좀 차리라고, 미국인들이 제발 정상으로 돌아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전 책을 읽으며 제발 우리 국민들이 그렇게 되기를 바랐습니다. 더 이상 격 떨어지는 것들은 안 보이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부자는 돈으로 사람을 쥐여 패도 되는 세상. 아버지만 잘 만나면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이들도 어마어마한 규모와 인력을 가지고 있는 기업의 대표가 될 수 있는 세상. 만약 그 기업이 망하게 되면 열심히 일한 직원들은 전부 어떻게 될까요.

 

재미있게 글을 읽어가면서도 절대 허투루 넘길 수 없는 책입니다. 두껍지도 않고, 지루하지도 않습니다. 미국의 정치제도 및 현재 꼬라지를 생생하게 알 수도 있고, 또한 미국이 어떻게 해야 그나마 양심적으로 살 수 있는지에 대한 비전도 신선합니다.

 

꼭 한 번 읽어보시라고 추천합니다. 아울러 반드시 우리나라의 현실과 리더들과 정치인들의 수준을 비교해가며 읽어보세요. 더 생생하고 뼈저리게 책이 다가올 겁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우리는 너무 상식 없는, 예의 없는 행동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뽑았습니다. 너무 창피해서 고개를 들 수 없습니다. 물론 전! 뽑지 않았지만 말이죠. 격하게 쪽팔립니다.

 

제발. 정신 차려야 합니다. 그냥 교과서에 실린 대로, 상식사전에 나와 있는 대로 사는 사람들을 뽑읍시다. 전과 17범 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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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대교북스캔 클래식 24
나쓰메 소세키 지음, 김활란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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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소설을 읽었다고 하는 분들이라면 나쓰메 소세키라는 이름을 들어봤으리라 생각합니다. ‘일본의 셰익스피어’라 불리는 세계적 작가 나쓰메 소세키. 하지만 정작 그의 작품에 대한 수많은 평들만 얼핏 보았을 뿐, 그의 작품을 읽은 건 《도련님》이 유일했던 저였습니다.

 

때문에 《마음》을 읽기 전 어떤 두려움마저 들었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거장의 작품에 이제 막 눈을 돌리려는 풋내기의 두려움이랄까요. 조심스레 페이지를 넘겼습니다. 그리곤 읽는 내내 그 조심스러움을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이야기는 너무 고요했습니다. 너무 고요해, 그만 숨소리마저 내면 안 될 듯한 마음을 갖게 했습니다. 대학생인 ‘나’가 ‘선생님’을 알게 되어 그와 교제하는 과정을 소개한 〈선생님과 나〉부분이 일상적인 고요함이었다면, ‘나’가 부친의 임종을 앞에 두고 고향집에서 복잡한 심경을 겪는 과정, 그리고 ‘선생님’의 편지를 기다리며 애태우는 과정인 〈부모님과 나〉는 폭풍 전야의 두려움을 안겨 주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선생님과 유서〉에서 그 폭풍은 걷잡을 수 없이 터지고야 말았죠.

 

《마음》은 그야말로 인간 내면의 해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간의 선과 악을 극명하게 들여다보고 있죠. 상처받은 인간이, 때문에 아무도 믿을 수 없게 된 인간이, 결국은 자신마저 사악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심정. 그 참담한 슬픔은 모든 인간에게 해당되는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작가는 모든 인간에게 해당되는 바로 그 황당함에 천착한 것은 아닐까요.

 

전 책을 읽으며 엉뚱하게도 나쓰메 소세키가 바라봤던 그 인간의 마음이, 지금 이 시대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졌습니다. 자신의 절친한 친구보다 먼저 사랑하는 여인을 빼앗았다는 죄책감, 그리고 끝내 죽음으로써 그 고통에서 벗어나려 했던 ‘선생님’. 또한 그에 앞서 실연의 고통과 ‘혼자라는 고독감’을 견디지 못해 자살한 친구 K. 이 모든 이야기들이 왜 저에겐 아련하게만 느껴질까요.

 

지금 우리의 ‘마음’은 과연 당시의 ‘마음’과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을까요. 그래봤자 100년 정도 과거의 일인데, 왜 저에겐 까마득한 먼 일로 느껴지는 것일까요. 친구의 사랑을 빼앗는 것, 혹은 빼앗기는 것. 이것은 인간의 역사가 만들어진 이래 끊임없이 반복되었을 일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그 반복적인 일들이 지금은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을까요.

 

고루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전 나쓰메 소세키가 그렸던 선과 악의 고통스러운 천착이 지금 이 시대에선 오히려 너무나 낭만적이고 이상적인 모습으로 느껴졌습니다. 더 이상 양심과 염치와 ‘미안함’이라는 것이 남아있지 않은 시대에, 나쓰메의 소설은 오히려 위안이 됩니다. 그의 뛰어난 문장력이 물론 더 큰 감동을 주는 것이겠지만 말이죠.

 

“과거에 그 사람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는 기억이 이번에는 그 사람의 머리 위에 발을 얹으려고 하지. 나는 훗날 모욕을 당하지 않기 위해 지금의 존경을 거절하고 싶네. 지금보다 더 외로운 미래의 나를 견디는 대신 지금의 외로움을 견디고 싶어. 자유와 독립, 그리고 자아로 충만한 현대에 태어난 우리는 그 대가로 모두 이 외로움을 맛봐야 하는 거야.”

 

“나는 죽기 전에 단 한 사람이라도 좋으니 진심으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네. 자네는 그 단 한 사람이 될 수 있겠는가? 되어 줄 수 있겠는가? 자네는 정말 뼛속까지 진실한 사람인가?”

 

지금 우리는 자유와 독립, 자아로 충만한 삶을 살고 있을까요.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견디고 있는 이 지독한 외로움은 응당 어쩔 수 없이 참아야만 하는 것일까요. 훗날 모욕을 당하지 않기 위해 지금의 존경을 거절할 수 있는 용기라도 있는 것일까요.

 

나쓰메가 어떤 의도로, 혹은 어떤 ‘마음’으로 소설을 써내려갔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독자들이 그의 글을 통해 어떤 감흥을 얻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저는 《마음》을 통해 양심과 염치가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시대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그 어떤 ‘미안함’이 우리를 애타게 부르는 소리. 저는 그 소리 때문에 고통스러웠습니다.

 

질투, 연정, 욕망, 소유, 배신, 돈…. 인류가 멸망하는 그 순간까지 우리와 떨어질 수 없는 것들일 것입니다. 우리는 하잘 것 없는 인간이기에 매일 질투하고 사랑하며 욕망하고 배신합니다. 그리고 소유하려 하고, 돈에 집착합니다.

 

하지만 그 같은 것들을 바라보는 인간의 양심은 시간이 지날수록 저열해지고 비참해집니다. 우리는 돈이라는 발명품을 만든 대신, 양심이라는 인간 근원의 요소를 저버렸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작가의 글을 읽는 기쁨은 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남긴 질문. 그 아쉬움 속의 통렬함은 더 오랫동안 남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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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망가 섬의 세사람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9
나가시마 유 지음, 이기웅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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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일본 문단에서 상당히 큰 기대를 받고 있다는 작가 나가시마 유의 두 번째 단편집입니다. 글쎄요. 가와바타 야스나리나 오에 겐자부로와 같은 큰 작가들이 사랑하는 후배라 하니 꽤 괜찮은 작가인 모양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이후 전 세계인이 주목해야 할 작가’라는 수식어가 과연 일본 현지 반응인지, 번역 소개하는 국내 출판사 어느 직원의 아이디어인지는 몰라도, 아직 이 작가에게 그 정도의 찬사를 하기엔 이르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점 먼저 밝혀둡니다.

 

책은 동명의 소설을 포함 총 5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에로망가섬…〉은 솔직히 “이게 뭐야~”라는 실망감을 주었지만, 뒤로 갈수록 작품들이 독특하고 나름 재미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에로망가섬…〉의 스핀오프 작품이라 할 수 있는 〈청색LED〉까지 모두 읽은 후엔, “아, 나름대로 참신한 개성을 가진 작가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제가 감히 이 작가를 온전히 평가한다는 것은 우스운 일입니다. 하지만 얼떨결에 독자가 된 이로서 첫 만남에 대한 인상 정도는 표현해도 괜찮겠죠. 일단 제 평가는 “아직 잘 모르겠다”입니다. 마루야마 겐지나 무라카미 하루키 등의 작가 작품을 주로 읽어왔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아직 ‘나가시마 유’라는 작가에겐 그 어떤 강렬한 느낌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고작 단편집 하나를 두고 평가하는 게 성급하긴 합니다. 하지만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 단 한 편으로 전 그의 팬이 된 경험이 있습니다.

 

하지만 소설은 매력이 있습니다. 따뜻함도 있지만, 억지로 꾸며내거나 짜낸 것이 아닌, 자연스러움이 느껴집니다. SF적인 요소나 혹은 말도 안 되는 반전도 작위스럽다기 보다는 오히려 적절하다는 느낌입니다. 작은 일탈, 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그 자신에겐 일생을 건 처음이자 마지막 모험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작은 위험을 꿈꾸는 이들에게 소설은 위안이 됩니다.

 

흔히 일본 소설은 ‘거대’하거나 혹은 ‘유치’하다는 인상을 갖게 합니다. 너무 거대한 것은 접근하기 만만치 않고, 또 유치한 것은 너무 쉽게 읽혀 곤혹스럽습니다. 물론 그런 소소함의 매력 또한 적지 않기에 많은 국내 독자들이 일본 소설을 즐기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가시마 유는 이런 ‘쉽게 읽힘’과 ‘문학성’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작가로 주목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재미있으면서도 현대인들의 일상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며 이야기를 풀어내는 재주가 있다는 것이지요. 저 역시 그런 점에선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아무리 황당한 이야기라 하더라도 그 가운데에는 어쩔 수 없는 ‘소소한 군상’들이 있게 마련이거든요. 그들의 목소리, 이야기를 지나치지 않는 세심함이 작가의 소설에는 담겨져 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조금 더 그의 작품을 꼼꼼히 읽다보면 저처럼 늦된 사람들도 ‘아하’하고 고개를 끄덕일 멋진 이야기들이 등장할 것 같다는 기대를 합니다. 새로운 작가를 알게 되는 기쁨은 역시 만만치 않습니다. 작가의 멋진 작품을 기대합니다.

 

경유란 쓸쓸한 것이구나, 하고 사토는 생각했다. 몇 번이나 거듭 출발하게 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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