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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망가 섬의 세사람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9
나가시마 유 지음, 이기웅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일본 문단에서 상당히 큰 기대를 받고 있다는 작가 나가시마 유의 두 번째 단편집입니다. 글쎄요. 가와바타 야스나리나 오에 겐자부로와 같은 큰 작가들이 사랑하는 후배라 하니 꽤 괜찮은 작가인 모양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이후 전 세계인이 주목해야 할 작가’라는 수식어가 과연 일본 현지 반응인지, 번역 소개하는 국내 출판사 어느 직원의 아이디어인지는 몰라도, 아직 이 작가에게 그 정도의 찬사를 하기엔 이르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점 먼저 밝혀둡니다.
책은 동명의 소설을 포함 총 5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에로망가섬…〉은 솔직히 “이게 뭐야~”라는 실망감을 주었지만, 뒤로 갈수록 작품들이 독특하고 나름 재미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에로망가섬…〉의 스핀오프 작품이라 할 수 있는 〈청색LED〉까지 모두 읽은 후엔, “아, 나름대로 참신한 개성을 가진 작가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제가 감히 이 작가를 온전히 평가한다는 것은 우스운 일입니다. 하지만 얼떨결에 독자가 된 이로서 첫 만남에 대한 인상 정도는 표현해도 괜찮겠죠. 일단 제 평가는 “아직 잘 모르겠다”입니다. 마루야마 겐지나 무라카미 하루키 등의 작가 작품을 주로 읽어왔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아직 ‘나가시마 유’라는 작가에겐 그 어떤 강렬한 느낌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고작 단편집 하나를 두고 평가하는 게 성급하긴 합니다. 하지만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 단 한 편으로 전 그의 팬이 된 경험이 있습니다.
하지만 소설은 매력이 있습니다. 따뜻함도 있지만, 억지로 꾸며내거나 짜낸 것이 아닌, 자연스러움이 느껴집니다. SF적인 요소나 혹은 말도 안 되는 반전도 작위스럽다기 보다는 오히려 적절하다는 느낌입니다. 작은 일탈, 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그 자신에겐 일생을 건 처음이자 마지막 모험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작은 위험을 꿈꾸는 이들에게 소설은 위안이 됩니다.
흔히 일본 소설은 ‘거대’하거나 혹은 ‘유치’하다는 인상을 갖게 합니다. 너무 거대한 것은 접근하기 만만치 않고, 또 유치한 것은 너무 쉽게 읽혀 곤혹스럽습니다. 물론 그런 소소함의 매력 또한 적지 않기에 많은 국내 독자들이 일본 소설을 즐기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가시마 유는 이런 ‘쉽게 읽힘’과 ‘문학성’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작가로 주목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재미있으면서도 현대인들의 일상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며 이야기를 풀어내는 재주가 있다는 것이지요. 저 역시 그런 점에선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아무리 황당한 이야기라 하더라도 그 가운데에는 어쩔 수 없는 ‘소소한 군상’들이 있게 마련이거든요. 그들의 목소리, 이야기를 지나치지 않는 세심함이 작가의 소설에는 담겨져 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조금 더 그의 작품을 꼼꼼히 읽다보면 저처럼 늦된 사람들도 ‘아하’하고 고개를 끄덕일 멋진 이야기들이 등장할 것 같다는 기대를 합니다. 새로운 작가를 알게 되는 기쁨은 역시 만만치 않습니다. 작가의 멋진 작품을 기대합니다.
경유란 쓸쓸한 것이구나, 하고 사토는 생각했다. 몇 번이나 거듭 출발하게 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