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대교북스캔 클래식 24
나쓰메 소세키 지음, 김활란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어느 정도 소설을 읽었다고 하는 분들이라면 나쓰메 소세키라는 이름을 들어봤으리라 생각합니다. ‘일본의 셰익스피어’라 불리는 세계적 작가 나쓰메 소세키. 하지만 정작 그의 작품에 대한 수많은 평들만 얼핏 보았을 뿐, 그의 작품을 읽은 건 《도련님》이 유일했던 저였습니다.

 

때문에 《마음》을 읽기 전 어떤 두려움마저 들었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거장의 작품에 이제 막 눈을 돌리려는 풋내기의 두려움이랄까요. 조심스레 페이지를 넘겼습니다. 그리곤 읽는 내내 그 조심스러움을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이야기는 너무 고요했습니다. 너무 고요해, 그만 숨소리마저 내면 안 될 듯한 마음을 갖게 했습니다. 대학생인 ‘나’가 ‘선생님’을 알게 되어 그와 교제하는 과정을 소개한 〈선생님과 나〉부분이 일상적인 고요함이었다면, ‘나’가 부친의 임종을 앞에 두고 고향집에서 복잡한 심경을 겪는 과정, 그리고 ‘선생님’의 편지를 기다리며 애태우는 과정인 〈부모님과 나〉는 폭풍 전야의 두려움을 안겨 주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선생님과 유서〉에서 그 폭풍은 걷잡을 수 없이 터지고야 말았죠.

 

《마음》은 그야말로 인간 내면의 해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간의 선과 악을 극명하게 들여다보고 있죠. 상처받은 인간이, 때문에 아무도 믿을 수 없게 된 인간이, 결국은 자신마저 사악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심정. 그 참담한 슬픔은 모든 인간에게 해당되는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작가는 모든 인간에게 해당되는 바로 그 황당함에 천착한 것은 아닐까요.

 

전 책을 읽으며 엉뚱하게도 나쓰메 소세키가 바라봤던 그 인간의 마음이, 지금 이 시대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졌습니다. 자신의 절친한 친구보다 먼저 사랑하는 여인을 빼앗았다는 죄책감, 그리고 끝내 죽음으로써 그 고통에서 벗어나려 했던 ‘선생님’. 또한 그에 앞서 실연의 고통과 ‘혼자라는 고독감’을 견디지 못해 자살한 친구 K. 이 모든 이야기들이 왜 저에겐 아련하게만 느껴질까요.

 

지금 우리의 ‘마음’은 과연 당시의 ‘마음’과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을까요. 그래봤자 100년 정도 과거의 일인데, 왜 저에겐 까마득한 먼 일로 느껴지는 것일까요. 친구의 사랑을 빼앗는 것, 혹은 빼앗기는 것. 이것은 인간의 역사가 만들어진 이래 끊임없이 반복되었을 일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그 반복적인 일들이 지금은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을까요.

 

고루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전 나쓰메 소세키가 그렸던 선과 악의 고통스러운 천착이 지금 이 시대에선 오히려 너무나 낭만적이고 이상적인 모습으로 느껴졌습니다. 더 이상 양심과 염치와 ‘미안함’이라는 것이 남아있지 않은 시대에, 나쓰메의 소설은 오히려 위안이 됩니다. 그의 뛰어난 문장력이 물론 더 큰 감동을 주는 것이겠지만 말이죠.

 

“과거에 그 사람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는 기억이 이번에는 그 사람의 머리 위에 발을 얹으려고 하지. 나는 훗날 모욕을 당하지 않기 위해 지금의 존경을 거절하고 싶네. 지금보다 더 외로운 미래의 나를 견디는 대신 지금의 외로움을 견디고 싶어. 자유와 독립, 그리고 자아로 충만한 현대에 태어난 우리는 그 대가로 모두 이 외로움을 맛봐야 하는 거야.”

 

“나는 죽기 전에 단 한 사람이라도 좋으니 진심으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네. 자네는 그 단 한 사람이 될 수 있겠는가? 되어 줄 수 있겠는가? 자네는 정말 뼛속까지 진실한 사람인가?”

 

지금 우리는 자유와 독립, 자아로 충만한 삶을 살고 있을까요.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견디고 있는 이 지독한 외로움은 응당 어쩔 수 없이 참아야만 하는 것일까요. 훗날 모욕을 당하지 않기 위해 지금의 존경을 거절할 수 있는 용기라도 있는 것일까요.

 

나쓰메가 어떤 의도로, 혹은 어떤 ‘마음’으로 소설을 써내려갔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독자들이 그의 글을 통해 어떤 감흥을 얻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저는 《마음》을 통해 양심과 염치가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시대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그 어떤 ‘미안함’이 우리를 애타게 부르는 소리. 저는 그 소리 때문에 고통스러웠습니다.

 

질투, 연정, 욕망, 소유, 배신, 돈…. 인류가 멸망하는 그 순간까지 우리와 떨어질 수 없는 것들일 것입니다. 우리는 하잘 것 없는 인간이기에 매일 질투하고 사랑하며 욕망하고 배신합니다. 그리고 소유하려 하고, 돈에 집착합니다.

 

하지만 그 같은 것들을 바라보는 인간의 양심은 시간이 지날수록 저열해지고 비참해집니다. 우리는 돈이라는 발명품을 만든 대신, 양심이라는 인간 근원의 요소를 저버렸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작가의 글을 읽는 기쁨은 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남긴 질문. 그 아쉬움 속의 통렬함은 더 오랫동안 남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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