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라배마 송
질 르루아 지음, 임미경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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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유일한 건강법이란 바로 경계를 넘어가보는 일이야. 과도함, 극단을 추구하는 거지. 용기 있게 자신의 전부를 내던져 스스로를 소진시켜야 해. 어차피 문명이라는 이름의 이 대전, 낡은 세계의 이 도살자가 우리 모두를 무차별적으로 죽일 테니까.”

 

고교 시절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올리버 스톤 감독의 〈킬러〉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연기파 배우 우디 해럴슨과 깜찍하고 아름다운 소녀 줄리엣 루이스가 출연한 영화였죠. 극중에서 미키(우디)와 말로리(줄리엣)는 미쳐버린 세상에서 그야말로 정상적(!)인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깨닫게 되죠. 그들은 결혼식을 올리고 666도로를 따라 허니문을 떠납니다. 살인이 끝없이 이어지는 죽음의 허니문이죠.

 

미디어는 그들의 살인행각을 거의 실시간으로 보도합니다. 10대들은 이들 부부의 행각에 열광하고 그들을 추종하게 되죠. 그들은 가는 곳마다 살인을 반복하고, 10대들의 열광은 더욱 커져만 갑니다. 과연 이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앨라배마송》을 읽으며 문득 어린 시절 보았던 그 영화가 떠올랐습니다. 당시 MTV 세대를 의식한 현란하고도 화려한 영상, 쉴 새 없이 이어지는 폭력의 향연 속에서 적잖은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당시 제 결론은 이것이었습니다.

 

“최고의 영화다!”

 

나름 방황하던 10대에게 이 영화가 어떤 영감을 주었던 것일까요. 아니면 입시에 찌든 제게 대리만족을 주었기 때문이었을까요. 저 역시 미쳐버린 세상에서 정상적인 삶을 포기하려 했던 것일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당시 두 주인공의 눈빛과 말투를 잊지 못합니다. 냉소와 허무, 그리고 삶의 극단을 향해 치닫는 무모함. 그들은 너무나 뜨겁게 사랑을 했고, 또 세상에 저항했습니다. 뭐 그렇다고 그들의 삶이 정당화될 순 없겠지만 말이죠.

 

잃어버린 세대, 미국 문학을 이야기할 때 절대 빠뜨릴 수 없는 스콧 피츠제럴드. 그리고 그와 함께 광기에 가까운 삶을 연출해낸 젤다 세이어. 이 미국 문학사상 가장 유명했던 커플에 대해 우린 어떤 평가를 할 수 있을까요. 미래에 대한 아무런 기대나 희망 없이 단지 지금을 위해 100% 자신을 소진시켰던 커플. 짧은, 그러나 너무나 화려했던 시기를 지나 길고도 처참한 내리막길을 걸어야 했던 커플. 이들은 1920년대 미국의 상징이자, 혼란스러운 세계의 거울이었습니다.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읽고서야 그 작품이 왜 그토록 찬사를 받았는지 간신히 이해할 수 있었던 무지한 저로서는 스콧 피츠제럴드의 천재성 역시 잘 알지 못하겠습니다. 물론 그의 다른 작품들을 읽어보지 못한 탓도 있겠지요. 하지만 《앨라배마송》을 읽으며 그가 천재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하지만 여기엔 조건이 붙습니다. 젤다와 함께 있는 한 말이죠.

 

젤다는 그 자체로 이미 스콧에 버금가는 열정과 재능, 광기가 있었다고 생각해봅니다. 물론 책은 허구입니다. 젤다에 대한 100% 사실이 아니란 말이죠. 하지만 어쩌면 그녀의 일생은 소설보다 더욱 극적이고 간절하지 않았을까 상상해봅니다. 사랑을 원했지만 한 달의 시간으로 만족해야 했고, 예술을 사랑했지만 결국 좌절해야 했던 불꽃같은 여인 젤다. 샐러맨더라는 단어가 절묘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녀는 불꽃 그 자체였으니까요.

 

읽은 이로 하여금 진을 빼놓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에너지를 앗아간다고 하기엔 무언가 표현이 적절치 않다고 생각하지만, 한동안 멍하니 쳐다보게 만드는 작품들. 저에겐 이 책이 그랬다고 생각합니다. 뜨겁고, 격정적이고, 아쉽고, 허무하고. 그리고 무언가 다시 그리워지는 감정….

 

항상 한 권의 책으로 또 다른 책들을 찾아 나서게 됩니다. 이 책으로 다시금 피츠제럴드의 책들을 찾아 기웃거릴 것 같습니다. 온전히 책 한 권 읽어 내는 것도 버거운 놈이 욕심만 많아지고 허영만 늘어갑니다.

 

꽤 멋진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소설 한 편을 써내려가기 위해 저자는 얼마나 많은 공력을 들여야 했을까요. 격정적이지만 전혀 난잡하지 않은, 뜨겁지만 외설적이지 않은, 잘 써내려간 두 영혼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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